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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비타민 B17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2003.6.22.일요일
딴지 의학부








불행히도 이번 글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쉽게 쓰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어두시면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레트릴


여러분은 혹시 스티브 맥퀸이라는 영화배우를 아십니까? 아마 많은 분이 잊었겠지요. 코메디언 권귀옥님을 잊었듯이 많은 사람들은 스티브 맥퀸을 잘 모를 겁니다. 아, 어쩌면 바퀴 약 선전에 나왔던 스티브 맥퀸을 기억할지 모르겠군요.


스티브 맥퀸은 액션배우로는 매우 독특한 이미지를 남긴 배우로, 아마도 가장 뛰어난 작품은 <빠삐용>이겠죠. 앙리 샤리에르 원작의 실화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거의 마지막 부분에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나 유명하죠. <신시네티 키드>라는 도박 영화도 좋았습니다. 그 외 <황야의 7인>에도 나왔구요. 조금은 유명한 영화인 <겟어웨이>에도 나왔죠. <겟어웨이>는 알렉 볼드윈과 킴베이싱어 주연으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대탈주>에서 보여준 오토바이 탈주 장면은 정말로 압권이었죠. 원래부터 스티브 맥퀸은 스피드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입었던 카레이서 옷은 예전에는 석면이 들어있었고, 그가 젊은 시절에 일할 때도 석면에 노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석면 때문에 발생하는 중피종이라는 좀 특이한 암에 걸렸습니다. 그는 이미 암치료를 받기엔 너무 늦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할까요? 주류 의학계에서 희망이 없다고 할 때, 당연히 대체의학을 찾겠죠. 그도 실제로 대체의학을 찾았고, 멕시코로 건너가서 레트릴로 항암치료를 받습니다. 오늘은 이 레트릴 요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레트릴을 인터넷에서 뒤져보면 흔히 비타민 B17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레트릴을 비타민 B17이라고 하는 것은 판매하는 사람들의 주장이고 실제로 비타민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레트릴은 화학적으로는 살구씨에 존재하는 아미그달린과 매우 유사합니다. 왜 유사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원래 미국에서 크렙스 2세가 특허를 받을 때의 레트릴은 아미그달린 유사하게 반합성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멕시코 대체의학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은 자두씨 등에서 추출하는 방식으로 제조하므로 아미그달린 그 자체입니다. 아미그달린, <스타워즈>의 공주 아미달라와 이름이 비슷하죠.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잠시 화학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머진 굳이 볼 필요 없고 빨간 글씨만 보면 됩니다.


아미그달린 + H2O -----> 벤즈알데하이드 + 포도당 + 시안화수소 (HCN)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아미그달린은 분해되면서 HCN이 나옵니다. 하도 화학을 배우신지 오래된 분들을 위해서 기억을 상기시켜 드린다면, 이것은 흔히 말하는 청산입니다. 청산리 벽계수의 청산이 아니라 청산가리의 청산입니다. 시안화수소를 청산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시안화수소가 청색 염료에 많이 사용되었고 사용하고 나면 이 염료 때문에 청색얼룩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산가리는 일본식 표현이고 정식으로는 시안화칼륨입니다.


아미그달린은 몸안에서 분해되면 청산이 발생합니다. 청산가리는 누구나 알고 있는 맹독성 물질입니다. 혹시 아실지 모르지만, 예전에 콩에다 청산을 넣고 산에다 뿌려두면 꿩이 먹고 죽습니다. 그러면 그 꿩을 가져다가 내장을 제거하고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그 독약을 싸이나라고 불렀는데 싸이나는 시아나이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청산이온을 좀더 일반적인 이름인 "시안"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레트릴이 도대체 뭐가 중요할까 궁금해하실 지도 모릅니다. 제가 의사가 아니지만, 레트릴이 국내 사용되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체의학을 다루면서 첫 번째로 다루는 이유가 참 궁금하실 것입니다. 레트릴은 대체의학의 가장 대표적인 물질입니다. 레트릴은 나온지가 오래되었고 그만큼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대체의학자들이 레트릴을 다루는 것을 보고 그 사이트의 신뢰도를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야후에 들어가서 대체의학 사이트를 찾아보면 가장 인기있는 사이트가 하나 있습니다. 그 사이트에서 레트릴에 대한 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살구씨가 서양에 알려지게 된 것은 크렙스 박사에 의해서인데, 의학계에서는 인체 내부에서 피로물질을 회복시키는 구연산 대사과정을 일컫는 [크렙스 사이클]이라는 도식으로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특히 크렙스 1세 박사는 미국인이 무서운 유행성 독감으로 죽어가던 1918년, 기존의 항생제가 아닌 새로운 항생제로 수백명의 목숨을 구하는 기적을 행했다. 그가 사용한 항생제는 화학품이 아니라 왓슈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돌쓰아의 물이라 불리는 야생초 추출물이었다.


이후 식물을 통한 암 치료제 개발에 확신을 가진 크렙스 1세 박사는 훈자왕국의 식생활에 관심을 갖고 평생을 B17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1925년 살구씨가 제암효과가 있다는 사실만을 밝혀냈을 뿐 그 실체를 규명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제암효과를 나타내는 살구씨의 성분이 레트릴이라는 결정체로 그 실체가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25년 후.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그의 아들 크렙스 2세 박사가 B17 연구에 뛰어든 것이다.



살구씨


그는 암을 어떻게 치료하느냐보다, 암이 무엇인가, 왜 생기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두어 생화학박사가 되었다. 마침내 1950년 살구씨로부터 추출해낸 B17의 구조를 증명하고 결정체로서 분리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노벨상을 수상했다.


레트릴이라 명명된 이 결정체는 정맥주사를 통해 환자에게 주입된다. 정통의학계는 레트릴의 독성에 대해 경고를 하기도 하지만, 크렙스 2세 박사는 동물실험에서 무독성을 확인하였고, 인체에 대한 무독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혈관에 지속적으로 레트릴을 주사했다.


예상대로 문제될만한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임상사례를 통해 암뿐만 아니라 탁월한 진통효과, 혈압조절, 조혈작용을 돕는 효능을 갖고있어 류머티즘, 고혈압, 충치, 위장장애, 빈혈치료에 최적의 자연치유물질이라고 주장했다.


크렙스 2세 박사의 임상사례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개원의인 존 리처드슨 박사, 멕시코 티후아나의 어네스토 콘트레라스 박사 등이 B17 요법을 계승했다.


일단 위의 글에서 잘못된 내용만 지적해 보겠습니다.


우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크렙스 사이클(흔히 TCA 회로라고도 부릅니다)을 발견한 사람은 한스 크렙스이지만, 레트릴을 개발한 사람은 에른스트 크렙스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말도 안 되는 실수죠.


1918년 당시 크렙스 1세 박사는 파슬리로부터 만든 오래된 인디언 처방이 독감에 효과가 있다고 아마도 굳게 믿게 된 것 같습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발사매(Balsamea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그 처방을 렙티놀 시럽(Syrup Leptino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이것이 천식, 백일해, 결핵 및 폐렴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920년대에 미국 식품 의약청에 의해서 이러한 주장이 거짓이며 사기라는 죄목으로 렙티놀 시럽의 공급이 금지되었습니다. 수백명의 생명을 구했기는 무슨 수백명의 생명을 구하겠습니까? 자기 생명도 못구할 뻔 했는데...


윗글에서는, 크렙스 1세가 1925년 사망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1925년에 제암효과를 확인했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크렙스 1세는 1950년이 되기 전에 사망한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94살이 되는 1970년에 사망했습니다.









크렙스 2세 박사


크렙스 2세 박사는 실제로는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지극히 멍청해서 학교를 5군데나 전전하다가 겨우 인문학 학사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름도 거의 없고, 지금은 남아있지도 않은 오클라호마의 툴사에 있는 한 성서대학에서 레트릴에 대한 1시간짜리 강연을 한 후에 "과학 박사(Doctor of Science)"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학교는 과학관련 학과도 없고 박사학위를 수여할수 있다고 인정받지도 못한 학교입니다.


크렙스가 1950년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화가 날 정도로 엉터리입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1950년도 노벨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한스 크렙스박사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1953년입니다.



































1950


화학상


오토 딜스
쿠르트 알더


독일
독일


디엔 합성 발견 및 개발


 


문학상


버트런드 러셀


영국


 


철학자


평화상


랠프 번치


미국


아랍-이스라엘 휴전협상 성립에 기여한 공로


 


물리학상


세실 파웰


미국


핵과정에 대한 연구에 있어 사진적 방법 : 중간자 발견


 


생리학·의학상


필립 S. 헨치
에드워드 켄들
타도이스 라이히슈타인


미국
미국
스위스
 


부신피질 호르몬과 그 구조, 생물학적 효과 연구


 


그외 치료에 대한 내용은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레트릴에 관련된 사람치고,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일부 의사가 멕시코에서 사용하는 것은 멕시코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이동하기가 쉽기 때문일 뿐입니다.


앞서 인용한 한 대체의학 사이트의 글은 거의 대부분이 거짓말이며, 치료효과와 같이 일부 사람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와 개발자의 학력같은 것도 제대로 모르고 글을 쓰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대체의학을 판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면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레트릴은 위에 말한 것말고도 매우 재미있는 사건과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레트릴의 발견


크렙스 박사는 자두씨에서 항암성분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추출하고 이것을 사르카시네이즈(Sarcarcinase)라고 부르면서 이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 물질을 1949년 그의 아들이 추출하는 방식을 바꾸면서 레트릴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추출한 것과 아들이 추출한 것이 서로 동일하다는 증거는 현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추출한 것을 아버지가 추출한 것과 동일하다고 우기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1962년 미국 FDA에서 인터뷰 당시 그는 레트릴이 신약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가 처음으로 이것을 사용한 것이 1951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약허가 기준을 피해 볼까 했던 것이죠. 그리고 1951년 추출한 물질은 실제로는 1938년 이전에 이미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1938년도의 식품·의약품·해리스법 규정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결국 당국의 규제를 받기 시작하자, 이들은 엉뚱한 헛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물질이 비타민 B-17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약이 아니라 식품으로 규정받아, 신약 규정을 피해볼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실제로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체의학계에서는 이 물질을 아직도 비타민 B-17이라고 합니다.
 


 레트릴의 제조, 판촉


레트릴을 제조한 사람은 더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1956년 아들 크렙스는 앤드류 맥노튼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캐나다군 사령관인 고() 맥노튼 장군의 아들이었습니다. 맥노튼 장군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과 캐나다의 국가 연구 위원회 의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훌륭한 장군의 아들이었던 앤드류 맥노튼은, 사실 매우 위험한 인물로, 이차 대전 후에 싸게 얻은 전쟁 잉여 물자를 필요로 하는 다른 나라에서 판매함으로써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신생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하였으며 피델 카스트로의 이중간첩으로 표면적으로는 쿠바의 바티스투다 정부를 위해서 일했지만, 종종 카스트로의 지지자들이 이 무기를 가로채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카스트로는 그를 "명예로운 쿠바의 시민"이라고 불렀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맥노튼이라는 사람은 무기 밀매상으로 떼돈을 번 사람입니다.   


무기 밀매상인 맥노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맥노튼 재단 건물 안에 레트릴을 위한 회사를 만들고 전세계에 걸쳐서 7개의 공장을 설립합니다. 그가 세운 회사의 대주주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서 기소되기도 했던 갱단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증권거래 위원회가 기소해서 그 회사의 미국 내 주식 거래를 영구히 금지시켰고, 이탈리아에서도 주식관련으로 기소당하고, 캐나다에서도 이와는 관계는 없지만 다른 주식 사기사건으로 1만달러의 벌금형과 1일간 투옥되는 형을 받았으나, 그가 벌금을 거부하고 또한 형도 복역하지 않고 캐나다를 떠났기 때문에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맥노튼은 레트릴 제조 공장을 세운 것뿐만 아니라 초기 판촉을 담당했는데 맥노튼은 글렌 키틀러라는 가톨릭 관련 신문의 저널리스트(과학 관련 저널이 아니라)에게 바람을 넣어서 기사 몇 편과 "레트릴: 암의 조절"라는 책을 출판하여 레트릴이 마치 박해받는 항암제인것 처럼 광고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서히 전설이 시작됩니다.
 


 초기 레트릴에 대한 평가들


초기엔 굳이 많은 평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레트릴은 약이기 때문에 신약허가 자료를 제출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제출한 자료도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임상시험허가가 취소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기관에서 실험을 요구하거나 사례에 대한 보고를 요청했고 실제 조사한 결과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효과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트릴은 시험적으로 일부 판매가 되기는 했지만 연방 정부에서 확인한 이후로는 여러 가지 규제가 가해졌기 때문에 합법적으로는 사용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와서는 환자들이 의학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미국의 20여개 주가 사용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임상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고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람 중에 레트릴에 관련된 사람치고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엉터리 과학자와 전미보건연합


이 이야기는 좀 나중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서 먼저 합니다. 레트릴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던 과학자가 몇 명 있었습니다. 그들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전미보건 연합 소속이었던 딘 버크입니다.









딘 버크


딘 버크 박사는 코넬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립 암연구소에는 1939년부터 참여하였습니다. 10년후 그는 국립 암연구소의 세포화학분야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맥노튼의 요청에 따라서, 버크는 레트릴이 조직배양된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맥노튼에게 그가 "암세포가 마치 파리처럼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버크는 레트릴이 암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이며, 이것이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며, 이것이 암을 예방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또한 국회 증언에서 레트릴이 설탕보다 독성이 적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레트릴 순회 강연"에 얼굴을 들이 내밀었으며, 전미보건연합에서 레트릴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버크의 레트릴에 관련된 주장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시안화수소는 암세포만 죽이는게 아니라, 모든 세포를 다 죽입니다. 더군다나 레트릴이 설탕보다 독성이 적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말이죠. 청산가리가 설탕보다 안전하다는 말은 누가 말해도 믿지 못할 겁니다. 딘 버크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더하면 역시 엉터리 항암제인 하이드라진을 가장 뛰어난 항암제로 적극 지지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사해보면 하이드라진은 동물에서 암을 일으킨 발암물질이며, 항암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임상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레트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전미보건연합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단체를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그룹은 돌팔이 치료 기구를 판매하는 전자 의학 재단의 사장인 프레드 하트에 의해서 1955년 설립된 단체로, 많은 엉터리 치료를 지지하고 지원했습니다. 그러면 전미보건 연합을 설립한 전자의학 재단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앨버트 애브람스


지난 20세기에 미국의 가장 유명한 돌팔이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돌팔이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앨버트 애브람스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는 엉터리 전자 장비를 만들어서 뭐든지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 진단장비를 빌려 주면서 절대로 열어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궁금증이 많았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밀리컨이 열어보고는 정말로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터와 몇 가지 부품이 있지만 이러한 부품이 전자회로상으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브람스는 자기가 만든 기계가 라디오닉스라는 자신의 이론에 근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라디오닉스는 전자파장을 이용해서 질병을 진단하는 것으로, 물리적으로는 공명현상을 이용한다고 주장은 하는데, 거의 전부가 사기입니다. 하여튼 라디오닉스 이론에 근거하려면 최소한 전자기파를 발생하거나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기기를 뜯어 보았을 때는 이러한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이 기기를 이용해서 검체를 시험했을 때 결과도 엉터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한 기니픽의 혈액 검체는 암, 골반-요도 결핵으로 진단되었고, 양의 피를 검사한 결과는 유전적인 매독으로 진단되었으며 250 달러에 치료가 가능하다고 제시했습니다. (1930년대의 250 달러는 엄청난 돈입니다.)


참고로 정말로 더 웃기는 것은 이 라디오닉스 이론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하는 기계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대체의학계를 비롯하여 한의학계에서 주장하는 파동의학이라는 것인데, 한의사들은 파동의학 장비를 이용해서 기를 측정한다고 합니다. 현대의 기기들이 어떠한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앨버트 애브람스의 기기는 엉터리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비는 돌팔이들이 사람들 속이기에는 너무나 좋습니다. 국내 일부 한의사들이 이러한 장비를 이용하는데, 한의사들이 제대로 검증하고 사용하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파동의학이 양자역학과 관련되었다는 소리를 자주 하는데, 그런 소리를 집어치우고 실제로 검체를 가져다가 실험했더니 얼마나 정확하더라 하는 실험결과나 제출했으면 합니다. TV에 몇 번 나와서 이런 저런 주장하는 것은 전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쨋거나, 애브람스가 이러한 장비를 팔아먹고 사기친 것은 좋은데, 그의 사기에 속아서 라디오닉스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프레드 하트가 바로 애브람스의 뒤를 잇는 사람입니다. 하트는 애브람스의 전자의학 대학이라는 곳의 대표였는데, 이곳은 라디오닉스 이론을 널리 퍼뜨리고 라디오닉스 장비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전자의학 대학은 1946년 전자의학 재단(Electronic Medical Foundation)으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1954년에는 정부가 이 재단에서 만든 제품에 대해서 배포 금지명령을 내립니다.


이렇게 되자 현실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새로운 단체를 만들 게 되는데 그 단체가 바로 전미보건연합인 것입니다. 이 전미보건연합은 "의학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마음껏 돌팔이 장비를 팔아먹는 것과 돌팔이 의술을 퍼뜨리고자 했습니다. 프레드 하트가 사장이 되고, 미국 FDA에 가장 적대적인 사람들을 전미 보건연합의 위원회에 앉혀 놓았습니다. 이 단체는 대체의학의 여러 모임을 주선하고, 대량 편지보내기 운동을 일으켰으며, 법정에서는 의심스러운 치료법을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놀랄 것도 없이 전미보건연합의 이사회와 간부들이 레트릴 관련 범죄로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전미 보건연합에 대한 자료는 의외로 국내에 자료가 일부 번역된 것이 있습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의 뿌리는 돌팔이의료(medical quackery)의 토양에 뿌리박고 있는데 1950년대 초기에 전자의료재단(Electronic Medical Foundation)이라는 조직이 돈이 되는 우편진단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한다는 전자치료기구를 팔았다. 대략 3,000명의 개원의들이(주로 척추치료사들인데) 환자들로부터 채취한 혈액표본을 건조시켜 이 재단에 우편으로 보냈다. 이러한 일을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에서는 의심하였고, 스스로 몇 개의 혈액표본을 보냈다. 오른쪽 다리를 잃은 사람의 진단명은 오른쪽 다리와 발목의 관절염이었다.


또한, 죽은 사람의 표본에 대한 진단명은 직장염이었고, 수탉의 혈액표본에 대한 진단명은 축농증과 나쁜 치아(bad teeth)였다. 식품의약국(FDA)의 조사관은 또한 치료기구도 조사하였다. 그들은 이 기구가 단순히 초인종이나 작은 라디오전도체와 비슷한 회로만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1954년 미국 지방법원은 이 회사의 사장인 하트(Fred J. Hart)에게 이 치료기구의 배포를 중단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얼마 후 하트는 전국보건연합(NHF)를 창설하였다.


하트는 배포중단 명령을 받은 이 기구를 계속 배포하였으며, 범죄혐의로 기소되어, 1962년에 벌금 500달러의 실형을 언도 받았다. 1957년과 1963년 사이에 전국보건연합(NHF)의 몇 명의 다른 간부들 역시 거짓된 의료정보와 함께 체중조절 제품을 만든 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언도 받았다.



 보건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


레트릴이 유명한 것은 항암제로 팔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환자들이 "의학의 자유"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의학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레트릴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려면 그 전에 누군가가 레트릴로 치료를 했고, 효과가 우수하다는 소문이 돌았겠죠. 바로 리차드슨이 레트릴을 사용한 대표적인 의사입니다.


세금 납부 실적으로 볼 때, 별 볼일 없는 의사였던 리차드슨은 대사요법을 개발하여 레트릴과 비타민, 효소를 이용해서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법적으로 레트릴을 사용하여 2년만에 수입이 17배가 증가할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캘리포니아의 암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처벌 받았습니다. 그가 체포되자 그가 소속되었던 존 버치 소사이어티의 회원들은 암 치료요법 선택의 자유를 위한 위원회(현재는 의료선택의 자유 위원회라고 불림)를 결성했습니다. 존 버치 소사이어티는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단체로, KKK단에 가입한 것이 비난거리이듯 사람에 따라서는 이 단체에 가입된 것 자체가 비난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이 있던 중에 러더포드 사건이 발생합니다.


글렌 러더포드는 1971년 대장에 포도알 만한 폴립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검 결과 이것이 암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이것을 제거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수술이 무서웠던 그는 멕시코로 넘어가서 오아시스 병원의 콘트레라스 박사의 치료를 받습니다. 이 치료를 레트릴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치료도 겸했기 때문에 고쳐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자신을 치료한 것이 레트릴이라고 강력하게 믿고 1975년 FDA을 대상으로 "말기"암 환자가 레트릴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집단소송을 주도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서부 오클라호마 미국 지방법원 판사 루더 보하논(Luther Bohanon)이 맡았습니다. 보하논은 러더포드의 소망에 대해서 매우 동정적이었습니다. 1977년 보하난은 만약 그들이 의사로부터 그들이 "말기암"이라는 진술서를 받아만 오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게끔 레트릴을 수입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법원 명령을 발표했습니다. 2년 후, 미국 대법원은 "말기"환자에게 제공되는 약은 FDA의 규제로부터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보하논의 판결과 러더포드와 그의 지지자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진술서 시스템은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인 1987년까지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레트릴을 판촉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거대한 정부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작은 사람들"로 그리곤 했으며, 레트릴의 판매를 합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79년까지 21개 주에서 레트릴을 주의 경계 내에서만 판매하고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특히 그들은 레트릴을 FDA가 관할하는 것을 제외시키려고 시도했지만, 1983년 하원의원 맥도날드의 사망으로 이것은 성공하지 못하고 점차 사라져갔습니다.


일부 레트릴 관련 사이트에 가면 아래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1979년 캘리포니아주 보건국은 신문을 통해 “살구씨를 30개나 먹고 시안중독에 걸린 로스앤젤레스의 부부”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 보도는 그 동안 살구씨의 시안화합물은 암세포 부근에서만 독성을 발휘한다는 대체의학계의 주장에 찬물을 끼얹는 대소동이었다.


이 일로 약국에서는 B17 제품이 자취를 감추었고, 하와이보건국은 건강식품점에서 취급하는 살구씨를 몰수하는 조처를 취했다. B17요법을 시행해온 병원과 의사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온 것은 물론이었다.


레트릴이 사람들의 인식속에서 사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레트릴이 미국에서 불법화된 이유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레트릴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위의 내용은 그러한 내용은 전혀 밝히지 않고 마치 누군가의 음모 때문에 레트릴이 사라진 것같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멕시코의 오아시스 병원


현재 멕시코의 오아시스 병원은 레트릴 요법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맥노튼이 초기에 판촉하고 키틀러가 레트릴에 대한 책을 쓰자, 세실 호프만이라는 유방절제술을 받았던 여성은 몬트리올의 맥노튼 재단을 찾아가서 레트릴을 얻어옵니다. 그녀에겐 불행히도 미국내에서는 자신에게 정맥주사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멕시코로 찾아가서 그 유명한 어네스트 콘트레라스 박사를 찾습니다. 그녀는 레트릴 치료로 암이 나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전이된 암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망 전까지는 레트릴의 적극적인 옹호자가 되고, "암 환자와 친구들의 국제 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여러 가지 대체의학을 판촉했습니다.



오아시스 병원 홈피지


사람들은 왜 멕시코에 대체의학 병원이 많은 지 의아해 하는데, 그것은 미국에서 가깝고 미국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체의학 병원은 멕시코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있습니다.


멕시코의 어네스토 콘트레라스 박사는 병원을 짓고 희망의 오아시스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금은 그냥 오아시스 병원이라고 부르며 이 병원은 대체의학 특집을 하면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유명한 병원이 되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완전 돌팔이 병원이고 사이비 병원이죠. 현재는 아들 프란시스코 콘트레라스가 운영합니다.
 


 치명적인 오류와 희생자들


레트릴은 무게로만 따졌을 때 6%가 시안입니다. 이러한 물질을 항암제라고 말하는 것도 슬픈일이지만, 이로 인한 희생자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앞서 말한 리차드슨이 수 만명을 진료했지만 그들은 대부분은 사망했습니다. 미국 국립 암연구소는 레트릴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수 만명의 의사와 관련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효과를 본 사람을 찾았습니다. 미국내에서 레트릴을 사용한 사람이 7만명이나 되었지만 편지는 겨우 93건에 대해서만 제출되었고, 이를 검토한 사람들은 레트릴이 항암효과가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국립암연구소에서 편지를 보낼 때는 효과를 본 사람만을 찾았지만 수 백명의 의사들은 레트릴을 처방했으나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 천여명에 대한 자료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는 국립암연구소에서 직접 임상시험을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암이 치료된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시안 독성이 나타났습니다. 이로서 레트릴이 암에 치료효과가 있다는 논쟁은 끝났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과학적인 증거 말고도 레트릴을 주장한 사람들이 뻔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국립 암연구소에서 레트릴을 수거해서 제품이 정확한가를 확인한 결과 때문입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표시된 양과 실제양이 상당히 달랐으며, 1500 앰플중에서 400개는 뭔가 이상한 이물질이 있었고 20개에는 미생물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혹시 아시겠지만 앰플에서 미생물이 자라는 경우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예전에 한 제약회사의 제품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사망입니다.


정상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사람이 레트릴에 의해서 희생된 사례도 당연히 대중매체에서 다루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아마 스티브 맥퀸도 한 사람의 희생자라고 볼 수 있겠죠. 사실 미국 내에서 스티브 맥퀸이 레트릴 치료를 받았으나 곧 사망한 것도 레트릴 붐이 꺼지는데 상당한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요약

여러분은 지금까지 레트릴이라는 물질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사용되고 금지되었는가에 대해서 아주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글이 좀 길었기 때문에 요약한다면, 원래부터 사기 기질이 있던 크렙스라는 사람과 멍청한 그의 아들이 레트릴을 암치료제로 만들었고, 무기 밀매로 돈을 번 사람이 레트릴 공장을 세우고 과학이 아닌 가톨릭 계통 잡지의 저널리스트가 이에 관련된 책을 썼으며, 극우단체에 소속된 의사가 레트릴을 불법적으로 이용해서 떼돈을 벌었고, 그 극우단체는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엉터리 요법을 판촉하고 다녔습니다.

돌팔이 의료기기를 만들던 회사가 자사의 제품이 금지당하자 만든 단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과학자는 레트릴이 설탕보다 안전하다는 헛소리와 레트릴이 암을 치료한다는 엉터리 주장을 했으며, 별볼일 없었던 멕시코의 한 의사는 스스로 레트릴을 가져온 환자로 인하여 떼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극우단체가 만든 보건 자유를 요구한 단체에 소속된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레트릴이 널리 사용되기는 했으나, 치료효과를 본 사람은 극히 드믈었으며, 결국 제대로 된 임상 시험을 통해서 레트릴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레트릴은 현재 인터넷에서 쉽게 광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레트릴 치료를 하는 오아시스병원의 평균입원기간은 3주이며 비용은 약 1천만원이 넘습니다.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은 이러한 거짓 치료 효과를 믿고 국내에서도 최근에는 매실이나 자두의 씨를 항암제라고 달여 먹기도 하도 포도씨를 진액을 내서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정말 속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레트릴은 항암제도 아니며, 비타민도 아니고, 안전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몇몇 한의사들이 오아시스 병원을 다녀온 후 자신들이 레트릴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국가의 심한 제약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환자로서는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대체의학 사이트들은 비타민 B17, 레트릴, 아미그다린을 항암제로 묘사하고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대체의학의 가장 대표격인 사이트 하나에 레트릴에 대해서 얼마나 엉터리 주장을 하는지 살펴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마지막 말은 대체의학의 상당수가 사기라는 것입니다. 비록 전부가 사기는 아니겠지만, 여러분은 대체의학 사이트를 가 보시고 그들이 레트릴에 대해서 어떻게 써 놓았는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한결 같습니다. 모두 어디서 베낀 듯이 똑같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대체의학의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냐고. 사실 우리나라에는 대체의학을 비평하는 사이트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곳 제가 권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저도 홈페이지를 운영하지만 제 사이트는 아니고, "건강과 과학"이라는 사이트입니다. 이 사이트는 저도 참여하고 있지만 다른 여러분이 참여하면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호에는 가능하다면 수돗물 불소화를 다룰 것입니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수돗물 불소화를 다루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윗 글은 수돗물 불소화의 전편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딴지 의학부
김진만(jeank@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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