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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잔소리쟁이들, 독야청청 중!

2002.1.8.화요일
딴지 영진공 사무총장


작년 부산 국제 영화제 행사기간 즈음.


지갑도 넉넉하지 못하려니와 아무리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한들 그 시간을 조리있게 사용해 부산까지 발걸음을 할 요령이라고는 전혀 없는 본 우원과 같은 "방바닥 장판과 혼연일체형 인간"들을 위해 공중파에서 경쟁적으로 부산을 리얼타임 현장중계 해줬더랬다. 그렇다고 영화 한 편을 공짜로 얻어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러는 와중에 보았던 뉴스가 바로 "예술영화 수호천사단".


바로 그렇다. 각종 팝콘 영화와 심심풀이 땅콩 오징어 영화들이 춘추전국으로 난립하며 강호쟁탈을 벌이는 이 땅의 천박한 영화현실에 개탄한 역전의 용사들이 구국의 결단으로 일어서 예술영화를 수호하시겠다는 거다.


보라, 이 우수한 엘리트님들의 우국충정을. 어느 시대 그 누구도 예술이 뭔지, 영화가 뭔지 그 정답을  핵심 마스터 밑줄쫙 요점정리할 수 없었던 이 마당에 "예술"뿐만이 아니라 "영화"까지 광채도 찬란하게 마빡 타이틀로 내걸고 수호하시겠단다. 이 분들이 수호하시는 그 영화에 인류사의 논쟁이며 비밀이었던 "예술"과 "영화"에 대한 모든 정답이 들어있는가 보다. 세계 영화사와 미학사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작년 한 해 우리 영화는 한 푼의 쇳가루를 위해 영화가 가지는 예술로써의 기품은 초개처럼 버리는 천박한 팝콘영화들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별다른 사회의식을 보여주지 못하던 영화판에서 "안티조선"의 한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공천 한 자리 보고 특정 대선 후보의 얼굴마담이 되는 게 아니라 확고해 보이는 정치적 소신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는데도 말이다. 또한 물론 몇몇 영화의 대박에 힘입은 바이긴 하지만 상반기 관객점유율 38.5%를 기록했다면 충분히 희망이 있는 일 아닌가 싶은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 우국충정의 대열에 합류하신 분들은 예술영화 수호에 목숨을 건 이 분들만이 아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의 영화평자님들 역시 이런 방면에서는 2등을 서러워하시는 분들 아닌가.


그래서 이 분들 표현대로라면 "스펙터클의 만신전 앞에 모여든 관객은 그 싸구려 조각상 앞에 거듭 절하며 경배하는...", "평론가들이 아무리 거품을 물고 흥분한들 말짱 헛일... "이 되어 버린 것이 작년 한 해 우리 극장가였던 거다.


그런데 이러한 우국충정의 날세운 펜빨은 뭔가 켕기는 바가 사뭇 있어 보인다. 왜냐면 이 펜빨의 상대는 자본력과 배급력을 좌청룡 우백호로 끼고 있는 웃기면 장땡인 싸구려 영화들 같지만 그 속옷을 슬며시 벗겨보면 "우매한 관객"이라는 원망이 살포시 배어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분들의 이러한 열사의 투혼에 크게 필 꽂힌 관객이라면 "난 왜 무식할까?"를 큰 소리로 열 번 복창하며 잘못을 반성토록 해라. 그러나, 이 분들이 펼치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비판이야 마땅히 자리해야 할 준엄한 책무요 신성한 역할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짱박아 슬쩍 슬쩍 내뱉는 "우매한 관객"의 논리는 작년에도 여전히 계속된 식자들의 "나홀로 독야청청"일 뿐이라는 게 우매한 내 생각이다.


막말로, 연봉 10억의 프로야구 A급 투수가 투심 패스트 볼을 못 던지는 일반인을 원망할 수 없는 노릇처럼 영화보고 썰을 풀어 세 끼 식사를 해결하는 영화의 달인된 고수님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한 달에 한 번 스트레스 해소하러 꿈공장을 들르는 일반인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또한 그 투심 패스트 볼을 못 던지는 일반인은 다 나름대로 프로축구 선수일 수도 있고, 프로농구 선수일 수도 있는 각자 분야의 달인이 된 자들일텐데. 그 분들이 넌 왜 똥볼만 차?, 넌 왜 덩크슛 못 해? 하고 따지고 들면 어쩔려구.


그게 아니라 설령 대국민 기본 문화교양 시험 커트라인이란 게 있어,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커트라인에 한참 모자라는 문화적 지진아라 하더라도 식자층의 이런 식 독야청청은 모양이 안 산다. 왜냐면 그거야말로, 빠순이 부대라 일컬어지는 HOT 여중고딩 팬클럽 애들을 보고 무식하다고 비아냥대는 모양새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걔네들이 HOT 빠순이가 된 것이 어디 걔네들 탓이겠냐. 학교 끝나면 학원가랴 학원 끝나면 과외하랴, 공연은커녕 떡볶기 찍어먹을 시간도 없이 그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빠순이 키워서 먹고사는 TV뿐이라는 사실이 잘못인 것을. 그래서 빠순이를 욕할 게 아니라 빠순이를 양산하는 학벌위주의 이 땅을 욕하는 게 정답일텐데 말이다.


사실 영화평자들의 독야청청은 고질병인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클리쉐"니 "비선형적 내러티브"니 "데꾸빠쥬"니 하는 전문 업자용어 남발로, 표지는 여배우 사진이 박힌 대중잡지건만 알맹이를 보고는 제본이 잘못된 학술논문집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적도 있다.


지식과 정보 혹은 진실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전문 업자용어라는 방패 뒤에 꼭꼭 짱박아 두고는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독야청청했었던 거다. 대중잡지 안에서나마 지식은 조금 친절하거나 민주화되면 안되는 걸까? 그런데 어쩌면 이건 이 땅의 모든 식자들의 고질병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그리 쑤셔먹을 게 많은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영화관련 잡지는 꾸준히 늘어 작년에는 영화 주간지가 4개로 불어나기까지 했다. 대중에게 선택받아야 살아남는다는 시장의 법칙 또한 꾸준히 늘어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기 시작했을 거다. 그 덕에 대중을 왕따하던 업자용어 남발이라는 잔혹무도는 많은 부분 말끔히 사라진 듯 싶다.


하지만 방패만 치우면 뭐하나? 이왕 치웠으면 방패 뒤 그 자리에 숨지말고 방패 밖으로 나와 합석을 해야지. 방패를 치우니 인터넷을 통해 아마추어들이 맞짱을 신청하며 덤비고, 그렇게 띄워준 영화는 뜨기는커녕 자빠라지기나 하고, 그러니 홀로 괴로워 쓴 소주 들이키며 열패감에 시달리고, 그러다 다소 오바되어 "우매한 관객"까지 궁시렁대게 되는 심정이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홀로 독야청청하며 투덜대기보다는 그렇게도 걱정이 되는 2001년 한국의 영화현실로, 이 땅의 관객 속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당연히 어려운 일이리라. 어쩌면 정치투쟁이 먼저일지도 모를 일이고.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것까지도. 그것이야말로 준엄하고도 마땅한 비평의 책무요 식자의 도리일테니까. 



딴지 영진공 사무총장 철구
(chulgoo@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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