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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K-19>를 통해 본 헐리웃 전쟁영화

2002.10.1.화요일
딴지 영진공 별걸다 디비보기 우원회

 


범위를 장르로 한정시켜 볼 때, 그 많은 장르의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논쟁의 부채질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는 대개 전쟁이라 사료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님 말구...



개인적인 원한관계와는 하등 상관엄씨, 국가의 대의 명분에 따라 적으로 규정된 나쁜넘을 살상해야 하는 전쟁의 속성상, 그 비극적인 드라마 속에 단순히 자국의 이익을 꾀하기 위한 파괴의 개념은 보는 관점에 따라 주제와 묘사가 상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3자라는 구경꾼(업자용어로 관찰자적 시선)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든다 다짐하더라도 감독 당사자의 성장과정, 학습지식, 처한 위치 등 무의식적이며 개인적인 온갖 배경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새 주관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당연한 거 아니냐?


그래서 영화잡지 프 모의 편집장 최 모씨 경우 반성이 없는 전쟁영화는 몽조리 부정적인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고 규정짓고, 전쟁은 어떠한 경우라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개념임을 거품 물었더랬다.


그런데 영화를 상업화와 미국화(Americanism)의 선전도구로 애용하고 있는 헐리웃은 전쟁의 비극성을 역이용, 가장 흥미 있는 오락임과 동시에 자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매체로 영화를 둔갑시켜 꾸준히 재미를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을 위시로 한 이런 경향에 대해 진작부터, 그 유명한 프랑소와 트뤼포 대인께서는 영화는 실질적으로 전쟁을 흥미 있게 보이기 위해 만드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에 반전(反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애초부터 미션 임파시블이다고 아예 대못을 꽝꽝 박았더랬다.


다시 말해, 헐리웃에 있어 전쟁영화는 돈을 버는 좋은 수단이자, 미국화를 전파하는 유용한 매체가 된다.


이에 반해 비교적 자본의 논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에 비해 약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덜 경우, 조심스럽게 전쟁영화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 본 우원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볼프강 페터센(Wolfgang Petersen) 감독이 1981년에 발표한 독일 영화 <특전 U보트  Das Boot>와 이를 벤치 마킹하여 오락영화를 만든 헐리웃의 <U-571>은 위의 견해를 가장 적절히 보여주는 사례다.



 


잠수함은 그 좁아터진 내부 땜시롱 겪는 잉간덜한텐 조또 욕보는 장소일테지만 영화로 보는 사람한텐 그 아비규환이 제공하는 긴장만빵의 똥꼬벌렁머리쭈삣 서스펜스로 존나게 매력적인 공간이다.



만약 삶과 죽음이 아슬아슬 줄타기를 타는 곳이 있다면 그 중 한 곳은 심해일 것이며, 그 안을 한 마리의 죠스마냥 유유히 휘젓고 다니는 잠수함은 죽음 위에서 작두를 타는 곡예를 펼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게다가 잠수함 내부에 상존하고 있는, 사방팔방이 짱막힌 공포와 오로지 청각과 순간적인 판단력에 의지해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는 수중전()은 확실히 지상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제한된 조건이 만들어 낸 상황과 극단적인 지랄발광의 인간심리로 인해 잠수함 영화가 꾸준히 제작, 개봉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


그래서 볼프강 페터센에게 잠수함 영화는 적과의 싸움보다는 인간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전쟁을 나름대로는 가장 객관적으로(물론 100%는 아니지만) 보여줄 수 있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Lother G. Buchheim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특전 U보트>에는 예의 그 헐리웃 전쟁영화처럼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전투장면이나 감동을 유발하는 드라마, 애국심을 고취하는 억지설정은 거의 발견할 수 엄따.


대신 잠수함의 실상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일반 관객에게 사실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할 만큼 숨기는 것 없이, 통제실에서 똥뚜깐까정 미화하지 않고 사방팔방 구석구석 여기저기 잠수함 내부를 묘사하고 있다.


비상벨 소리에 똥누타 바지도 걷지 못한 채 똥꼬를 드러내고 달려나오는 장면과 좁은 통로 한켠에 마련된 장교덜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식사장면은 그 사실감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으로써, 잠수함 내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외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초췌해지는 승무원의 모습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깔끔한 장교 한 명을 설정, 대비의 효과를 극대화한 점이나 일기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등 작은 묘사덜이 돋보이는데, 이는 원작의 작가가 실제로 잠수함에 승선하여 직접 경험하였기에 가능한 표현들이었다. 그래서 극중 해군 정보부 특파원으로 등장하는 워너 대위(허버트 그로네메이어 분)는 영화의 원작자로 볼 수 있다.


그러니 당 영화는 사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엄꼬 결국 <특전 U보트>는 헐리웃의 오락영화처럼 특정사건이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묘사라는 측면에서 잠수함에 승선한 승무원덜의 생활상을 출정-공격-침몰-수리-복귀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 애인 알몸 공개하듯 그대로 드러내는 거다.


독일 감독이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나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삽입한다거나 아니면 당시 자국의 행위에 대한 반성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전쟁의 참혹상이란 이런 것이라며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거리를 둔 채, 도끼눈 부라리며 째려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2000년에 발표된 조너선 모스토우 감독의 <U-571>은 헐리웃적인 영화를 가지고 어떻게 뚝딱거리면 미국 만만세가 가미된 헐리웃 풍의 오락영화로 기능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일단 조너선 모스토우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볼프강 페터센의 걸작을 넘어설 수 없음을 잘 알고 <특전 U보트>의 특징을 <U-571>로 차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이 점은 잠수함 내부의 묘사에서 주로 목격이 되는데, <U-571>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괴츠 바이드너는 바로 <특전 U보트>에서 미술감독으로 참여했던 스텝이다.


그 결과 <U-571>의 초반부, 독일군이 등장하는 장면은 잠수함 내부의 모습, 초록색 심해 그리고 독일어 대화로 인해 마치 <특전 U보트>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하지만 비유띄 벗뚜 그러나,


<U-571>은 헐리웃에서 제작한 잠수함 영화이다 보니 <특전 U보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뻥튀기적 오락 요소가 젖소부인 가슴 마냥 풍만하다.


많은 돈을 들여 폭파장면을 만드는 등 존나게 스펙터클한 화면구성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으며, 관객은 스타를 보러 온다는 속설에 충실하게 매튜 매커너헤이, 하비 카이텔, 빌 팩스턴과 같은 특급 배우는 물론 존 본 조비와 같은 유명 가수를 불러들여 스크린을 울긋불긋 화려하게 수놓는다.


게다가 물론, 극적인 상황이 만들어내는 헐리웃표 감동을 빼놓을 수 없는 법. 당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 수세에 몰리던 쥔공 잠수함이 사태를 역전시키기 위해 마지막 사생결단의 어뢰포를 발사하는 과정에서 숭고하게 전사하는 아군 승무원의 죽음을 삽입한 씬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리고 그 미국 승무원의 죽음은 당 영화에 등장하는 헐리웃 A급 배우들의 친밀함과 서로 접목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위대하고 또 위대하고 더 위대하신 미국의 힘을 느껴보라고 은연 중에 강요한다는 거, 이제 상식이 아니겠냐.


덧붙여, 자국 군인이 승선했을 때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던 독일산 잠수함 U-571이 독일어를 읽을 줄도 모르던 미국 군바리덜이 승선하자 단 한 번의 가르침으로 천하무적 백전불패의 막깡 잠수함으로 탈바꿈한다는 이야기 전개는 헐리웃 영웅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발톱을 뽑아드는 아주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음악의 사용에서도 역시 두드러지는데, 특히 <특전 U보트>와 <U-571>의 음악은 상이한 모냥새로 그 정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비극임을 강조한 반전(反戰) 영화답게 <특전 U보트>는 비장한 음악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전체를 통틀어 이 한 곡만이 영화 음악으로 들릴 뿐인데, 이는 아주 당연한 선곡이라 할 수 있겠다. 원래 전쟁이라는 거에는 승리와 패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극만이 있을 뿐이지. <특전 U보트>는 이와 같은 명제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헐리웃 영화는 어떨까? 물어보나마나 뻔하다. <U-571>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각 장면의 분위기에 따라 관객의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들뜨게 혹은 가라앉게 만들 요량으로 미국의 영웅주의를 연상케 하는 행진곡에서부터 전우애를 기리는 장송곡까정, 음악이 상황을 호치키스 박아 버리듯 아예 규정해 버린다.


니덜도 잘 알다시피 영화에서, 그 무엇보다도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쉽게 좌지보지하는 강력한 압박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니까 결국 <U-571>은 음악을 통해서도 미국화를 역시 은연 중이면서 노골적으로 주입하고 있었던 거다.


무서운 너무 시키들...



 


지난주에 개봉한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의 <K-19>. 아는 넘들은 알고 모르는 넘들은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건 요기 나오는 등장인물과 잠수함이 몽조리 소련제라는 것.


극중 해리슨 포드가 미국넘이지만서두 그가 맡은 K-19 함장 역은 알렉세이 보스트리코프니까 소련넘인 것이고, 부함장으로 나오는 리암 니슨 역시 헐리웃을 본거지로 삼는 아일랜드 넘이지만 당 영화에서는 미하일 폴레닌이라는 소련넘인 거다. 물론 그들의 쫄따구덜도 all of 소련인 건 당근이고.


그래서일까, 당 영화는 오사마에게 폭탄테러를 당해 분노를 사고 있던 미국 관객들에겐 자신들의 영웅담이 아니기 때문인지 거의 왕따에 가까운 외면을 당했더랬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설정을 두고 미국의 비평가 집단은 관객과는 반대의 반응을 보이며 술렁거렸다.


어떤 평자께서는 헐리웃이 처음으로 소련넘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며 호들갑성 멘트를 날리기도 했고, 헐리웃이 제작했지만 소련넘이 주인공이기 땜시 지잘난 미 제국주의가 없어졌다고 과장된 풍선을 불기까지 했다 전해진다.


왜 그랬던 것일까?


보셨다시피 헐리웃에서 전쟁을 소재로 가지고 만든 영화 중에 <특전 U보트>처럼 전쟁 그 자체를 디빈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왔다면 만날 <U-571>처럼 전쟁이 흥미꺼리로 전락하거나 아님 지잘난주의로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K-19>는 헐리웃 영화이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 영화는 바로 실제 K-19의 함장이었던 니콜라이 자테예프의 자서전을 원안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원작을 몽땅 영화로 옮겨온 건 아니고 당 자서전에 나오는 실화를 기본골격으로 해서 거기에 상상력을 동원, 살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한다.


그 때문에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전 K-19 선원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존나게 바보처럼 묘사했다며 시나리오 작업서부터 수정을 요구하였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엄포까정 놓았더랬다.


하지만 감독인 캐슬린 비글로우는 이에 개의치 않았고 최대한 미국의 시각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을 하였다.


실존인물은 물론이거니와 그 가족,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당시 K-19 대원의 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이너뷰를 하며 이야기가 왜곡되지 않도록 힘썼으며, 폐기된 K-19를 대신하야 이제는 낡아빠져 고철이 된 소련제 잠수함을 찾아다가 소품까지 사실적으로 재현하도록 노력하였다.


이런 노력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모스코바 현지의 촬영을 무난히 협조 받는 데에까정 이어졌다. 사실 당 영화가 소련을 바보로 만들고 반대로 미국 잘났다고 연출했다면 러시아 정부에서 촬영을 허락해 줬을 리 없자너.


그니깐 당 영화는 미국의 자본으로 만들었지만서두 미국이 중심에 놓인 이야기가 아니라 최대한 소련의 시각에서 진행된 이야기라는 거다.



미국의 평론가덜이 당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몬지 이제 감이 잡히지...


하긴 <K-19>처럼 미국 만만세 신경 안 쓰며 본 헐리웃 영화도 드물긴 하다. 근데 미국인이 쥔공으로 등장해도 미국 만만세 삘 안 나오게 만드는 건 어려운가, 꼭 이렇게 미국넘이 소련넘 연기해야지만 가능한 건지...



 
딴진공 별걸다 우원회
검열우원 나뭉이
(namung@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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