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렇지, 너무했다 (프랑스 ver)
프랑스 지역 선거가 끝났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극우 국민전선(FN)은 한 지역도 가져가지 못했다. 국민전선의 질베르 콜라르(Gilbert Collard)는 2차 선거 직후, 이러한 결과는 공화당(LR)과 사회당(PS)이 작당한 사기극에 프랑스 국민이 속은 것이라며 애써 화를 삼키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당수 마린 르펜(Marine Le Pen)은 1차 선거 때의 기록적인 붐을 언급하며, 우리는 비록 졌지만 절대로 패배한 것이 아니라며 호기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속이 부글부글했나 보다. 마린 르펜은 특히 미디어가 국민전선에 취하는 공격적인 자세를 두고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해 오고 있다.
12월 16일 수요일 아침, 프랑스의 뉴스 전문 채널
한국의 트위터에서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쓰인 언어는 프랑스어이지만 어찌나 친숙한지…
부르댕은 콧방귀를 꼈다. 마린 르펜의 분노는 꺼질 줄을 몰랐다. 르펜은 부르댕에 대한 화답으로 트위터에 "바로 이게 IS라고!"라는 메시지를 담아 세 건의 사진을 올린다. 이들 사진은 IS의 잔인한 처형 장면을 담고 있다. 모자이크 따위 씹어 먹은, 그야말로 생생한 장면들을 네티즌에게 구경시켜 준 것. 이튿날, 희생자 가족의 요청에 따라 세 개 중 하나의 사진은 삭제되었다. 나머지 두 개 사진은 2015년 12월 19일 현재까지도 르펜의 트위터에 버젓이 올라가 있다. 노모로. 베르나르 카즈뇌브(Bernard Cazeneuve) 내무부 장관은 이번 사건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상태. 이 사건은 이번 주 프랑스 사회를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 놓았다.
희생자는 탱크에 깔려 죽었다.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모습이다
한 남성(James Foley)의 목이 잘렸다.
피범벅이 된 얼굴은 남성의 상체 위에 올려져 있다.
희생자 가족의 정식 항의를 받은 르펜은 "누구 사진인지 몰랐"으며, "구글에서 검색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이어서 올렸다고 변명하며 해당 사진을 삭제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마린 르펜의 트위터 계정이 해킹된 것이 아니냐며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 이는 르펜 측에서 직접 한 것이다. 르펜은 <유럽1(Europe1)>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한 것은 부르댕"이라며, 그들에게 "IS의 잔인성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전선과 IS를 비교하는 몰상식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은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카즈뇌브 내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마린 르펜이 올린 이 사진들을 "IS의 프로파간다이며 테러 희생자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라고 밝혔다. 마뉘엘 발스(Manuel Valls) 국무총리는 이 사진들을 두고 흉악하다며, 르펜의 행동을 "정치적 도덕적 잘못"이자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기 전에 르펜은 변호사에게 직접 자문까지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르펜의 행동은 형법상 처벌받을 수 있다고. 2014년 8월에 수정된 형법 222조 33항에 따르면, 잔인한 이미지를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5년의 징역형과 7만6천 유로(약 9천9백만 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사진을 올린 목적이 고발을 위한 것이건, 혹은 찬양하기 위한 것이건 그 동기에 상관없이 게시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 단, 해당 이미지의 공개가 대중에게 사실을 알리거나 정의 구현을 위한 증거 제시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 조항은 아직 한 번도 적용된 바 없다 .
현재 이에 대한 낭트(Nantes) 검찰청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1월 테러 이후 희생자들의 시체가 즐비한 바타클랑 공연장 사진이 인터넷을 장식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이 사진들을 비공개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국민들에게도 희생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와 같은 사진들을 올리지 말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반면, 마린 르펜은 이번 사건 외에도 수년에 걸친 이슬람 혐오 발언, 유럽의회 대리 투표 등 온갖 기행으로 고소 및 고발당한 건이 수두룩하다. 아직은 그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마린 르펜을 언론의 최고 관심사로 만들어 준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마린 르펜 = 시청률 증가’라는 공식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사실, 나조차도 다른 정치인 이야기보다 마린 르펜 이야기를 들춰 보는 게 훨씬 쉽고 재미있다. 어쨌거나 이번 트위터 사진 개재 건 전에 변호사에 자문까지 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또한 지난 지역선거 1차전에서 파리 테러 효과를 톡톡히 경험했음을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르펜의 2017년 대선을 향한 전략 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했다 (한국 ver)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화제다. 오죽하면 <알자지라>에서도 김 대표의 발언을 지면에 실었다. 정치인의 우선적 목표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거라면 르펜만큼은 아니지만 일단은 성공했다. 세계 진출, 축하드린다.
니 얼굴은 연탄색
사진 출처 : 트위터 '아몰랑'
한국에 다녀온 적잖은 프랑스인들이 한국은 인종차별적인 사회라고 한탄한다. 그럴 때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은 인종 다양성을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다만 이제서야 이를 경험하는 시작 단계에 놓여져 있으며 곧 적잖은 사회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곤 한다. 그런데 그게 벌써 몇 년 째다. 이제는 이런 구차한 항변 그만하고 싶다. 그런데 여당 대표의 발언을 보니 슬슬 다른 변명을 찾아봐야 하지 싶다.
니 눈은 이렇게 째졌어
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유럽인들 눈에 나는 그냥 동양인이다. 가끔씩을 길을 지나다 보면 내 앞에서 "니하오", "곤니치와", "안녕하세요"를 지껄이며 관심을 끌어 보려는 치들이 있다. 자기 눈을 옆으로 찢으며 놀리는 애들도 있다. 실제로 아시아 사람들의 눈은 쌍꺼풀이 있건 없건 이들의 눈에는 째진 눈(yeux bridés)이다. 한 번은 친구들과 저녁 시간, 파리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저기 뒤에서 어떤 술 취한 아줌마가 "쉰똑(Chintok, 중국놈)"이라고 소리치며 우리를 쫓아 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신경질이 나기도 했고, 가끔씩은 무섭기도 했다. 머리가 산발한 아줌마가 손에 든 술병을 던지며 쫓아 올 때는 정말 무서웠다. 지금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려 나왔다. 한 무리의 남자 고등학생들이 내 옆을 지나가면서 소위 ‘째진 눈’ 퍼포먼스를 하고 지나갔다. 열이 뻗쳤다. 불러 세웠다.
나: 너네 나 알아?
걔네: ?
나: 너네가 방금 한 행동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는 알아?
걔네: 아, 그래? 그럼 미안. 그런데 담배 있어?
나: !!!
걔네: 그럼 우리랑 놀래?
나: 너네같이 생각 없는 애들이랑은 안 놀아
걔네: 그래? 그런데 전화번호 뭐야?
나: 아 됐어. 가던 길이나 가.
크흑. 발렸다. 너무 화가 났지만 남학생들은 이미 자리를 떠났고 그날 내 공부는 공쳤다. 그저 장난에 불과하다고 볼지도 모른다. 누구 말처럼 친근함을 표시하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연 아시아인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흑인에게 대놓고 "니 얼굴 연탄색", 혹은 아랍인에게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쳐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프랑스에 인종 차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엄청 많다. 특히 흑인과 아랍인에 대한 차별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에서는 분명히 이를 잘못이라고 못박아 두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인종(race)’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것을 아주 무식하고 잘못된 것이라 본다. 대신 ‘출신(origi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인종차별적 발언은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다만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은 적잖은 경우에 대수롭지 않은 농담 정도로 넘어간다. 프랑스 사회에 아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은 관계로 제대로 논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에서 한 흑인 유학생에 대한 "니 얼굴 연탄색" 발언이 그저 "친근함을 표현한다는 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발언이었다" 는 간단한 사과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이는 전적으로 무지에서 온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전근대적인지 고려해 보지 않은 데서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제대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음을 생각해 보면 애통하지만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니 눈 째졌다고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 허용 수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금지된 주제들이 존재한다. 인종, 민족, 종교에 대한 증오, 전쟁범죄 예찬, 성적지향성 및 장애에 대한 차별, 마약 사용 선동, 부인주의 등이 바로 그것. 특히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한 법 조항은 1881년 이래 존재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 당장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아놔 깜둥이들 완전 싫어!"라고 글을 올린다고 해서 잡혀 가지는 않는다. 욕이야 왕창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언론이나 정치인이 이 같은 발언을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슬림들이 프랑스 사회를 망칠 거야
에릭 제무르(Eric Zemmour)
사진 출처 : <르몽드>
며칠 전, 프랑스의 TV 프로그램 진행자 에릭 제무르(Eric Zemmour)가 무슬림 혐오 선동 발언으로 3000유로(약 4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에릭 제무르는 지난 2014년 10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서 "무슬림들은 코란이라는 그들만의 법전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프랑스의 교외 지역을 점거해 버리는 바람에 프랑스인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한 "프랑스인들 사이에 무슬림이 살고 있는 현 상황은 프랑스를 혼돈과 전쟁 상태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의 <이텔레(i-Télé)>는 그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켜 버렸다.
재판에서 검사는 만 유로를 구형했다. 검사는 제무르는 방송인으로서 많은 이들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슬림 전체에 오명을 씌우는 발언을 한 것이며, 이는 무슬림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체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며, 오히려 제무르 자신이 시민 전쟁을 바라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또한 제무르는 이슬람 혐오 선동 발언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에도 텔레비전에서 "마약 거래상들은 대부분 흑인이나 아랍인"이라는 발언으로 두 건의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동성애는 역겨워
크리스틴 부탱(Christine Boutin)
사진 출처 : <르몽드>
그런가 하면, 12월 18일 금요일에는 프랑스 카톨릭민주당(Parti Chrétien Démocrate)의 전 대표 크리스틴 부탱(Christine Boutin)이 성적지향성에 대한 차별 발언으로 5000유로(약 65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 졌다. 부탱은 2014년 4월 , 프랑스의 정치 잡지 <샤를르>와의 인터뷰에서 "동성애는 역겨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역겹다는 것은 아니다. 원죄는 허용할 수 없는 것이지만 죄인은 언제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부탱은 이번 판결에 대하여 "나의 의견은 언제까지나 카톨릭 전통에 의거한 것"이라 밝히며 "동성애자들에게 비난을 가한 것은 아니"라고 유감을 밝혔다.
분명 한국과 프랑스는 많이 다르다. 아주 많이. 따라서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다만, 성적 차별, 인종 차별, 종교의 차별, 빈부의 차별 등이 보다 심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서도 최소한 이와 같은 장치가 존재하고, 또 작동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너무 늦기 전에.
덧붙임. 2015년 12월 셋째 주 TOP25 기사
*17일은 개인 사정으로 기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 <프랑스는 지금> 연재 기사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인터넷 기사 매일 5건, 한 주에 총 25건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사로, 동시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프랑스어로 된 매체의 기사들을 모두 프랑스인들만 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세계 프랑스어 사용자의 대부분이 프랑스 본토에 분포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사 검색 시간은 프랑스 시간으로 매일 오전 8-9시 사이입니다. 프랑스 현지 시간에 따라서 기사를 수집하여 오류를 최대한 좁히려 하였습니다.
3. 본 연재물에서는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혹은 프랑스 매체에서 다루는 모든 기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 관계로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인권의 나라’라던가 ‘낭만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민낯은 어떤지, 한국의 모습과는 어떻게 닮고, 또 다른지를 전할 수 있다면 제 목표는 충분히 전달한 것일 듯 합니다.
지난 기사 |
아까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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