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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 가뭄? 그래서 어쩌라구?

2001.6.19.화요일
딴지 수자원 대책 우원회

고등학교 국사 상 교과서를 펼쳐보자. 거기 보면 부여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억나냐? 허허... 벌써 가물가물 하시다니 독자들도 늙었어... 하여튼 보면 졸라 엽기적인 얘기가 나온다. 걔들은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농사가 안 되거나 하면 왕을 처벌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다는거 아니겠어? 그게 다 왕이 부도덕한 탓이라는 거야. 우박으로 수박이 다 깨졌다. 올해 먹고살기 힘들겠다. 씨바 왕을 죽여라! 뭐 이런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이거지. 거 참... 지금 딱 보면 알겠지만 정말 가당치도 않은 짓거리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거랑 왕이 부도덕한 거랑 무슨 상관이람.






 
 

 

"왜 상관두 없는 시빌 걸고 지랄이야 쓰앙.."

 

이렇듯이, 둘 사이에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붙잡고 시비를 거는 것을 일컬어 우리는 주술적, 좀 점잖은 말로는 지랄이라고 통칭한다. 이런 것은 역사책을 펴보지 않아도 교통사고 현장, 초등학교 애들 싸움터 등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문화적 현상인거시다. 그리고 한 군데 더, 바로 신문지 위에서 보면 확 드러난다.
 

 

자, 분명 가뭄이 심했던 건 사실이야. 그렇지? 철도 안됐는데 날씨는 졸라 덥고 비는 안 온다. 논이 쩍쩍 갈라지고 있고 비관한 농부 아저씨는 자살하는 등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 뭐 요런 건 객관적인 사실이지. 그래서 매년 하는 헛짓거리긴 하지만 또 국민들은 개떼처럼 신문사로 방송국으로 성금을 몰아주고 있고, 각 신문사들마다 농촌에 사랑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고... 익숙한 풍경이다.

 

그리고 뱅기 노조를 앞세워 노동자들이 떼거지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좀 굵직굵직 한가봐. 뱅기에 병원에 여기 저기 사업장들도 졸라리 참여했지. 그리고, 역시 아니나다를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신문들은 아까 우리가 그 행위를 지랄이라고 명명하는데 합의한 그 짓거리들을 서둘러 행하기에 바빴다. 자, 어디 보자고.

 

우선 조중동... 헤드라인부터 화려하다.




 
 

 


마이너 신문들은 은근히 까대는걸?




 
 

 

왜 이럴까? 본 기자, 당일 아침에 가판에 죽 놓인 신문 마빡들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뭄이 심하면 농민 고통이 극심하다. 근데, 노동자들이 데모를 안 한다고 하늘에서 비가 오냐? 농민들 얼굴에 꽃이 피냐? 노동자들의 파업과 농민들의 고통 간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본 기자의 아둔한 대가리로는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가뭄으로 국민 정서가 안 좋은 시기에 파업한다? 야, 솔직히 니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해봐라. 물론 농업에 종사하거나 혹은 친척 중 가뭄으로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아닌 독자들이 대상이다. 니네, 농민들의 고통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하고 있냐? 그 알량한 국민 정서라는 것도 파업하는 노동자를 씹을 때나 씨부렁거리지, 비 좀 안 온다고 수도꼭지만 비틀면 물 펑펑 나오는 도시에 사는 니네들이 불안해할 게 뭐 있냐 이거다. 정작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유 삼아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엄살로 매도하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다.

 

그래,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걸 가뭄을 이유삼아서 막는다고 치자. 그리고 뭘 어쩔건데? 비 올 때까지는 힘들고 더럽고 꼬와도 입닥치고 가서 일이나 하라는 거냐? 설마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님이 노동자들이 데모하는 꼬라지를 보고 성질이 나서 비를 안 내려주는건가? 아... 그런 거였어? 미안하다. 내가 무식해서 미처 하늘의 뜻까지는 읽지 못했지 뭐야.






 
 

 

"자기도 빤스만 냄기구 팔았구나?"   

 

촉구한다, 씨바. 국민 정서 어쩌구 하면서 파업하는 사람들을 매도하는 자들이여, 앞으로 가뭄이 다가오면 오줌은 꼭 밭에 가서 싸고, 똥도 변기에 넘칠 때까지는 물 내리지 말지어다. 온 국가가 타들어가는 가뭄에 어떻게 그런 사치스러운 짓을 한단 말이냐. 조중동과 기타 신문들과 방송국 직원들은 특히나 그렇다. 딴지에서 발굴한 문화유산인 요강을 손에 손에 지참하고 출근하시라. 동료들과 서로의 자쥐를 봐가면서 돈독한 친교를 쌓으시라. 친교도 쌓고 농촌도 돕고. 어찌 아니 좋을쏘냐.

 

이것만으로 뭔가 좀 아쉽다 싶으면 이제 너희 집 가산을 필요 없는 것부터 하나 둘 정리할 때가 온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내다 팔아 가뭄으로 고통을 겪는 농부들 뒷주머니에 쿡쿡 찔러주라. 90년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받았던 그들에게 니들이 살림살이 팔아 보태준 성금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 옷도 빤쓰 난닝구 하나만 냅두고 확 다 팔아치워서 농촌에 보내버리자구. 국민 정서가 안 좋다잖아 국민 정서가!

 

하지만 역시 개인적인 행동으로는 뭔가 모자라다. 그렇다. 씨바. 서울시장 고건아, 앞으로는 가뭄나면 무조건 서울시에 들어올 수돗물을 몽조리 우리의 논밭에 처부어라. 각 지역 도시들도 모두 함께 해 주길 바란다. 물론 우선적으로 신문사에 들어가는 물부터 끊어야지. 니들 눈에는 저 눈물마저 말라버린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이지 않느냐? 니들이 밥 짓고 이빨 딲고 하는 그 물이 농촌에는 너무도 절실하단 말이다!

 

본 기자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꼭 이런 놈들이 있었다. 평소때는 졸라 쌩까고 지내던 사인데 내 손에 맛있는 거 들려있으면 와서 친한 척 하는 개쉑들. 어깨동무를 턱 걸치고 주딩이로는 우린 친구잖아? 운운하는데 눈깔은 날 쳐다보고 있지 않다. 그 모습이, 현재 농민들을 바라보는 신문사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 나만의 오바액션인가?

 
 


솔직히 말하면 집에서 위의 기사를 쓴 바로 그 다음 날 비가 와버렸다. 본기자, 사실 좀 난감했다. 비가 온게 띠껍냐고? 사람을 뭘로 보냐. 이 기사의 속성상 바로 그날 팍 나갔어야 한다 이거지. 그 순간을 휘어잡지 못한거 본 기자 지금도 못내 아쉽다. 마치 액션 샘플러마냥 콱 움켜잡았어야 하는데 말야... (간접광고였다 씨바)

 

자, 어쨌거나 이미 비는 왔고 가뭄 상황은 끝났다. 아니 이제는 오히려 장마란다. 근데 왜 난 여태까지 물고 늘어지고 지랄인가? 왜긴 왜야, 가뭄이 끝났어도 좃선과 친구들이 하는 짓은 그대로니까 그렇지. 다행히 비는 왔지만, 그러나 본질적인 건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우리도 미신 좀 그만 믿자. 대체 노동자들 시위와 농민들이 가뭄으로 고통 겪는게 무슨 상관인데?

 

가뭄이 아니라 전쟁이 터져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합당한 수준까지 지키는 것은 자신의 권리일 뿐 아니라 한 생명체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언론이 대중을 휘두르려고 곡필과 말꾸미기를 서슴치 않는 이 시대에 우리는 좀 더 이성적이고,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발 엄한 사람들 붙잡고 괜히 감정에 휩쓸려 욕하거나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필요에 의해서 파업하는 사람들한테 왜 지랄인가? 엉? 씨바...

 

가뭄? 어쩌라구 어!

 

 

 

딴지 수자원 대책반장
無名(bard_of_wi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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