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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스리랑카는 불타고 있는가?
- 스리랑카 내전, 그 불타는 잔혹함의 일대기 -

2001.6.22.토요일
딴지 지역분쟁 전문우원 데이먼


요 실론티를 마시면서 우리는 홍차의 꿈을 꾼다 

 

인도 남쪽의 작은 섬, 인도양의 진주라 불리는 이 섬 스리랑카의 중부 지방에는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다. 이 지역은 열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서늘한 기후를 지니고 있어서 일찍이 홍차의 산지로 개발되었다. 스리랑카에서 나는 이 홍차의 종류를 실론티(Ceylon Tea)라 부른다. 다른 곳에서 생산되어지는 홍차에 비해 부드럽고 맛이 풍부하며 향이 그윽해서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을뿐만 아니라 또 그 유명 Lipton사에 의해 대량 생산 되어지면서부터 유명해진 이름이다. 물론 여러분이 뜨거운 태양아래서 운동 후,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면서 벌컥벌컥 마셔대는 그 실론티도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자, 그러면 이 아름다운 고원의 푸른 차밭으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마음씨 좋게 생긴 대불상 주위를 거니는 살아있는 부처들, 아름다운 인도양 해변에 누워있는 까맣게 그을린 소년들의 미소, 찻잎을 따며 싱싱한 땀을 흘리는 타밀족 소녀들. 콜롬보 해안으로 들어오는 하얀 돛대의 범선과 그 선미에  서있는 당신, 연인의 허리를 살짜기 감싸면서 권하는 바알간 실론티. 그 홍차의 꿈.

 

그러나 필자. 그 실론티의 불그스레한 향취에서 스리랑카인들의 피냄새를 맡는다. 수십년간의 인류사상 가장 잔악하고 소름끼치는 내전속에서도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찻잎을 따며 피땀을 흘렸을 스리랑카 처녀들의 눈물이 보이는 거다. 그렇다면 대체, 실론티의 고향, 인도양의 진주, 그 아름다운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또 일어나는 중일까?

 

 

 

 싱할리족과 타밀족. 그들은 누구인가?

 

스리랑카 내전은 싱할리족과 타밀족이라는 서로다른 두 민족사이의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 싱할리족과 타밀족은 무슨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당도해 기나긴 분쟁을 시작하였을까?

 

스리랑카 인구의 70%가 아리아계의 싱할리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를테면 다수민족인 것이다. 이들은 남서부와 고지에서 살아가며 독실한 불교민족이다. 싱할리는 사자의 자손을 의미하며(그러므로 보이듯이 스리랑카의 국기에는 사자의 문양이 들어가 있다) 이들은 기원전 483년전에 실론섬에 건너와 왕국을 건설하면서 이곳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스리랑카 소수민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밀족이 있다. 이들은 또한 두 종류로 분류가 가능한데, 이전부터 스리랑카에 거주해왔던 스리랑카 타밀족과 19세기 이후에 이주한 인도 타밀족이다. 전자는 스리랑카 총인구의 12%정도, 후자는 5%정도를 차지한다. 인도 타밀족들은 19세기 이후 커피나 차의 플랜테이션을 위해 영국이 강제적으로 이주시킨, 인공적인 거주자들이다.  

 

기원전 3세기에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번영한 이후, 스리랑카의 역사는 남인도에 거주하던 타밀족과 원주민인 싱할리족의 끊임없는 투쟁들 사이에서 흘러왔다. 유럽열강에 대한 식민지 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이어지는 침략을 받으며 식민지화의 과정을 겪었고 마침내 1851년, 싱할리족이 건설한 캔디왕조는 영국의 침략으로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대영제국의 식민지 실론섬만이 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근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내전. 시작되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스리랑카의 싱할리족들은 싱할리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선포하고 소수 힌두교도인 타밀족에 대한 차별정책을 시작했다. 이에 타밀족은 독립운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세세한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1958년 타밀족과 싱할리족의 최초 민족분규가 발생했다. 그리고 1년 뒤, 당시 스리랑카의 수상이었던 좌익연합정권(그러나 이 좌익연합정권은 급진 불교도와 제휴하고 싱할리 민족주의를 내세운 앞 뒤 맞지 않는 허구의 좌익이었다)반다라이케 총리가 급진 불교도에게 암살당한다. 타밀족과 타협했다는 의심이 그 이유였다.

 

이후 2, 3차 좌익연합정권이 계속되면서 그 총리를 맡고 있던 (반다라이케 총리의 부인) 반다라이케 여사는 1961년, 싱할리어를 공용어로 법률화 해버리고 1972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싱할리어와 불교를 우대하게 되었으며 또한, 타밀족에게 불리한 교육제도를 만들고 스리랑카 동부지역 타밀족 거주지에 싱할리족을 이주, 정착시키는 정책을 만들었다. 특히 타밀족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계속하여 배출하고 고학력 고급인력들을 양성해내자 싱할리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인구비례 대학 입학제는 대표적인 소수민족 억압 정책이었다.

 

그 이후 타밀족의 폭동은 계속되었고 크고 작은 테러와 학살은 끊임없었다. 특히 1983년에는 타밀족 급진파 조직이 정부군 13인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싱할리족에 의한 대대적인 타밀족 학살이 일어났다. 타밀족 정치범 52명이 교도소 내부에서 학살당하고 수도 콜롬보의 타밀인들이 싱할리족 폭도들에 의해 무차별 테러당하면서 1천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많은 타밀족들이 캐나다나 호주, 영국으로 빠져나갔다(이들은 이후 타밀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자금원으로서 기능한다).






 
 

 

LTTE의 일상화된 폭탄테러

 

이 폭동 이후,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족 온건파 정당인 타밀 통일 해방 전선(TULF) <주>를 불법화시켰고 무력으로 타밀족의 독립운동에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이후 지리하게 계속될 분쟁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타밀의 독립조직중 가장 급진적이고 잔인한 테러리즘을 주창하는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었다. 잠자는 호랑이의 콧털을 건드린 셈이었다.

 

 

 

 내전의 키워드들(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 인도 : 거대한 형님의 참견

 

스리랑카 섬 내에서는 싱할리족이 다수민족이지만, 가까이에 거대하게 존재하는 남인도대륙에는 수천만명의 타밀족들이 다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싱할리족들은 그러므로, 타밀족이 결코 소수민족이 아니라고 느끼며, 그들의 분리운동으로 인해 남인도의 타밀족들의 헤게모니에 지배당할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인도는 83년의 폭동 이후, 마침내 스리랑카 내전을 인도의 종족내분으로 간주하고 간섭을 시작하였다. 87년 7월의 인도-스리랑카 협정에서 두 국가는 각기, 타밀족에의 자치권 부여와 타밀족 무장조직의 무장해제 보장이라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분쟁의 종식을 꾀하였다. 그러나 인도정부가 타밀 게릴라의 무장해제를 위해 파견한 인도 평화 유지군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스리랑카 내전은 인도군과 타밀 게릴라간의 격렬한 내전으로 탈바꿈했을 뿐이었다. 수많은 인명사상으로 인도정권이 스리랑카 정권과의 협약아래 다시 군대를 철수 시키자, 이번에는 같은 동족이 죽어가는데 어떻게 인도정부는 스리랑카의 괴수들에게만 분쟁을 맡겨두느냐며 배반감을 느낀 LTTE에 의해, 1991년 인도의 라지브 간디 총리가 남인도의 타밀나두주에서 암살당했다.

 

인도군의 철수 이후, LTTE는 스리랑카의 동북부 지역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었다.

 

 

 

 - 불교 : 광신의 종교가 되어 가는가

 

타밀족과의 유혈분쟁을 끝내고 자치권을 부여하기 위한 헌법개정안이 사상 처음으로 스리랑카 의회에 상정되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개헌안이 의회에 상정되자마자 스리랑카 전역에서 싱할리족에 의한 반대시위가 시작된 것이었다. 스리랑카의 급진파 스님들은 즉시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또한 수많은 불자들의 시위가 조직되었다. 스리랑카는 부처님의 땅이기에 선택된 사람만이 살아가야 한다는 그 유연하지 못한 일부의 종교적 광신이 스리랑카 내전을 더욱 광적으로 몰아가는 데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북아일랜드의 사태와도 매우 흡사하다.

 

문제의 근원은 경제-식민지적인 헤게모니의 불평등에 있음에도 그것이 마치 광적인 종교전쟁인 듯, 사람들의 눈을 성전의 검은 두건으로 뒤집어 씌워 버리는 것이다.

 

 

 

 - 소년병






 
 

 

이 소년도 언젠가 총을 들게 될 것이다

 

스리랑카 내전의 가장 소름끼치는 특징중의 하나는 수많은 소년병과 자살테러이다. 특히 LTTE는 계속하여 소년병들을 군인으로 선발하고 있다. 2000년 들어서도 계속되는 십수년에 걸친 전쟁으로 정부군과 LTTE 모두 병력증원에 고심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계속되는 엠네스티와 UN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7세 이하의 소년병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간다. 작년 10월 25일에는 LTTE측의 소년병 출신으로 스리랑카 정부군에 의해 재활교육중이던 25명의 소년들이 수용소 관리자 2명을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리다 3천여명에 달하는 주민들에 의해 마구 난자당해 죽었다. 이 사건에 대해 정부와 LTTE측은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쁠 뿐이었다. 결국 무엇이 그들의 이상인지도 모르는 코흘리개들의 죽음일 뿐인게다.





 
 

 

라트나시리 위케레마나야케 스리랑카 총리()는 군인 수가 부족해 타밀 타이거 반군을 물리치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를 많이 낳아 군대에 보내줄 것을 촉구했다. 병사생산이야 말로 스리랑카 여인들에게 제일의 임무이다. 이 기이한 전쟁의 아수라장...

 

 - 일상화된 고문과 실종

 

양심수를 비롯한 수많은 타밀족 정치범들이 기소와 재판의 절차도 없이 비상계엄령과 테러행위방지법에 의해서 구속되고 있다. 수많은 정치범들이 또한 강간당하거나 고문을 당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체들이 발굴되고 있음에도 그 책임여부와 상세한 내막들이 은폐, 축소된체 남아있다. 앰네스티에서 파견된 국제 법의학자들이 발굴된 시신들을 계속해서 조사하고 범죄자들의 확인을 시도하고 때로는 밝혀내고 있지만 1999년말 현재까지, 그 누구도 고문과 실종범죄에 관련되어 구속당한 적은 없다. 타밀지역 내에서의 고문과 학살들에 대해서는 그 리서치 여부 자체가 극히 힘든 것이나. 비밀구금이나 고문이 일상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는데에는 이의가 없다.

 

또한 23년동안 사형폐지국가였던 스리랑카는 담당 판사, 법무부 장관, 검찰청장이 만장 일치로 사형을 권고하면 대통령은 변경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방침을 확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사형제도를 되살려 놓았다.

 

 

 

 - 해외 원조와 언론

 

1만여명으로 구성된 LTTE 반군세력이 12만명에 달하는 스리랑카 정부군에 대항하여 대등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해외에 거주하는 타밀족 단체의 후원자금과 캄보디아등지에서의 무기 밀수, 그들의 지배하에 있는 스리랑카 북동부 지역의 주민들에게서 걷어내는 세금에 있다. 특히 83년 콜롬보에서의 싱할리족 폭동 이후 해외로 도피한 수많은 타밀족들은 인터넷등 수많은 매체를 이용해 스리랑카 정부에 대한 격렬한 반대 여론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그들은 스리랑카 정부의 역사 왜곡과 편파적 정책, 부패와 부정, 인권탄압등을 폭로하고 있다. 또한 이에 맞서 싱할리족 스리랑카인들의 여론조성과 해외에서의 LTTE 테러와 민간인 학살 시위도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LTTE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는 북미거주 스리랑카인들의 가두시위

 

 

 

 이제 내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만만치 않는 소스들을 그득 품고있는 두 민족들의 웹사이트들은 온통 증오로 가득찬 잔악행위들로 가득차 있다(심장이 약하신 독자나 노약자들은 절대로 그 사이트들이 품고 있는 사진 자료들을 클릭하지 마시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를 이토록 철저하게 찢어 발기는 내전은, 그토록 복잡하게 얽혀 세계의 무관심속에 곪아오고 있었기에 더욱 더 안타깝고 그 만큼이나 이미 분쟁의 뿌리를 떠나버린 상태이다. 심지어 필자. 그 엄청나게 많은 비인간적 상호학살들 중에서 한두가지의 예를 따로 떼어내어 언급할 수도 없다.








 
 

 

 

정부군에 학살당한
타밀족 희생자들

 

타밀 테러리스트들에게
학살당한 싱할리족

 

내전이 종결되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싱할리족을 위시한 스리랑카 다수세력의 분쟁종식을 위한 비전과 타밀족의 그것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싱할리족은 두 개의 각기 다른 자치정부를 지니는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것으로 분쟁을 종식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타밀족은 실론섬안에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 타밀족만의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근원적인 비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흘러나온 그야말로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지로 내전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가동시키는 껍질속의 신체기관들은 30여년동안 내전을 지속시켜온 분쟁 그 자체의 자동적인 파급방식이다. 테러리즘은 테러를 낳고 권력은 권력을 지속시키는 모순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놓아두는 것이다. 그 수많은 개인적인 광신과 애욕들이 개체적으로 활동하면서 멈출 줄 모르는 원동력을 얻어 버린 것은 아닐까.




 
 

 

스리랑카의 국기를 살펴보자. 1948년에 제정된 이 국기의 칼을 든 사자는 이 나라의 상징이며 또한 그것은 싱할리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LTTE(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의 호랑이는 또 무슨 뜻인가. 호랑이는 11세기에 스리랑카의 북부를 점령한 남인도의 타밀족 왕조인 촐라조의 상징이다. 즉 타밀족은 싱할리족의 사자에 대항하는 뜻으로 호랑이를 그들의 상징으로 선택한 것이다. 스리랑카 내전은 그러하다. 실질적으로 이 분쟁에 있어서 다수파와 소수파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것은 마치 대등한 육체적 관계로 서로를 상처내며 결국 함께 죽어가게 되어있는 사자와 호랑이 전쟁의 운명이다. 결국 그 누구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혹은 원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 차가운 죽음의 승리를 맛보게 될 것이다.

 

 

 

 시작으로 돌아가 - 누가 내전을 만들었는가?

 

독립이전, 사실상 불교도인 싱할리족과 한두교도 타밀족의 분쟁은 존재하긴 하였으되 그것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까지 오히려 스리랑카 내부의 분열은 그 악명높은 카스트 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좌파의 입장에서 반추해 보건데, 악랄한 민족주의 이념에 근원한 집단 무의식적 증오가 아니라, 계급과 노동의 가치를 역전시키기 위한 일종의 좌익적 투쟁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지대 농경 싱할리 카스트들과 저지대 어업 카스트와의 대립, 인도출신 타밀 노동자에 대한 원주민 타밀족들의 괄시. 게다가 식민지 체제하에서 영국의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하던 행정관료들의 착취. 중요한 것은 계급과 경제적 위치에서 기인하는 분열양상이었지, 지금처럼 타밀족과 싱할리족이 서로의 종교와 민족을 압살하려 목을 조르는 민족분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누가 이 모든 것을 부추기고 숨겨진 민족정신에 불을 활활 지르고 말았을까.






 
 

 

요노무 차밭 때문에...

 

그것은 바로 제국주의자 영국인들이었다. 영국인들에게 있어서 스리랑카를 통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들을 갈가리 찢어서 분열시키는 것이었고 또한 영국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스리랑카의 산물인 차의 농사를 짓기위해 억지로 남인도에서 실어온 타밀족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보장해주어야 했다. 타밀족은 정치, 경제적으로 영국의 비호아래 성장해 나갈 수 있었고 이로서, 영국의 식민정권에 대해 불복종운동을 전개하던 다수민족 싱할리와 강제이주당해 플랜테이션의 도구로 사용되던 타밀족 사이의 간극은 넓어져 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영국에 의해 급조된 민족정신이며 창조된 분쟁이다. 그러므로 영국은 북아일랜드의 분쟁을 창조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식민지에 초야의 혈흔을 남겨놓고 온 것이다. 죽어도 지워지지 않는 민족주의의 혈흔.

 

결과적으로 이야기는 50여년을 둥글게 한바퀴 휘돌아왔다. 결국에 희망은 스리랑카의 좌파들이 희망하듯이, 양측의 노동자계급이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하나의 스리랑카를 이루어내는 것일까? 그것은 다만 순수한 환상론에 머무는 것일 따름은 아닐까하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 신념들은 귀담아 들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통일이 양 당사자간의 자발적 결정에 근거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분리권을 스리랑카 헌법에 포함시키는 문제
 법률에 근거한 차별을 종식시키는 것
 타밀어 사용지역의 자치권과 소수지역을 위한 민병대의 필요성(그것이 필요악이라 할지라도)
 타밀어를 중앙언어로서 나란히 공용하는 것
 타밀지역의 경제적 낙후를 타파하기 위한 국가소득의 공정한 분배문제(결국 문제는 경제권이라는 것은 북아일랜드나 체첸 그리고 가까이는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타밀의 해방운동은 결국 어느정도 양보와 함께 스리랑카 내부의 새로운 싱할리 노동계급과의 상호이해와 협력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게다. 아. 이것마저도 잔혹하기 그지없는 이 무시무시한 상호학살의 전쟁터에서는 환상론일 뿐임에도.

 

 

 

 비아그라가 전쟁을 한다
-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요

 

인도대륙의 한 귀퉁이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이 아름다운 실론섬에서 수십년간 계속되어온 학살의 흔적들은, 이상할만큼이나 우리에게(그리고 서구의 미디어들에게) 천대받아왔다. 거대한 연합제국을 꿈꾸는 유럽대륙의 구석에 붙어서, 이성의 유럽시민들에게 자신들의 허구와 모순을 일깨워주었고, 그로 인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보스니아에 개입할 수 밖에 없었던,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세계의 여론들(우리의 눈과 귀들). 거대한 유대 헤게모니와 이슬람 헤게모니의 맞불 전쟁터인 팔레스타인 분쟁에 쏠려있는 전지구적인 관심들. 인자한 달라이 라마의 캐리커쳐 아래서 존경을 담아 티벳독립을 주창하는 그 이성적인 서구사회의 움직임들(그것이 비록 중화자본의 거대화를 온몸으로 막아 세우려 하는 미국의 유아적인 경쟁심리에서부터 힘을 획득하든 아니든).






 
 

 

전쟁의 희생자들 -
이름없는, 얼굴없는, 잊혀진

 

이러한 전지구적 반응들은 혹시, 그것들이 서구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권력들과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지역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주창하는 인간애는 어디에서 정당한 보편타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학살극들로 점철된 현대 아프리카 국가들의 황폐한 인간성 말살의 흔적들에 누가 귀기울이는가. 기독교도도, 이슬람교도도, 유태인도, 석유도, 사회주의도, 그 어떠한 정치, 경제적 잇권도 존재하지 않는 스리랑카의 전쟁터, 목이 베이고 팔다리가 잘려 죽어가며 울부짖는 타밀족, 싱할리족 소년들의 외침에 누가 사려깊게 주목하고 개입할 것인가. 우리는 그 대안없는 무조건적 민족자결주의를 선별적으로 외칠 것인가.  

 

얼마전 스리랑카군은 부상병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비아그라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스리랑카군은 지뢰와 테러로 불구가 된 병사들이 심리적인 장애로 말미암아 부인과의 성관계에서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고 밝히고, 비아그라가 이러한 공포를 치료해 줄것이라고기대했다. 당신이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이 기이하고 잔혹한 무관심의 제노사이드는 그래서 비극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희비극에 가깝다. 바로 그것이 내성이라는 것일게다.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일상의 비극화 과정들. 그래서 그것은 너무도 쉽게 잊혀지곤 한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실론티를 마시며 하얀 돛대를 높이 세운 홍차의 꿈을 꾸며, 비아그라를 생각하며 웃을 것이다. 제국주의가 창조해낸 식민지들의 민족주의,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홀로코스트들. 우리 역시 그 리스트에 올라있는 이름중 하나라는 것을 잊고 실론티를 벌컥벌컥 마실뿐이다. 씨이이원하게.

 

 

 

신출귀몰 딴지 국제 지역분쟁 담당
데이먼(close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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