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다 디벼보기 위원회] TALES OF HEROES 2001.6.14.목요일
며칠 전에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MSBP (Munchausen Syndrome by Proxy; 문히아우젠 증후군)과 관련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이 증후군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에서 1988년과 1994년에 올해의 장한 어머니로 선정되었던 두 여성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자녀들을 기아상태로 만들거나 독극물을 먹여 병들게 한 뒤에 아주 헌신적인 간호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서 그 사회에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 병이 증후군이니 만큼 발병원인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보통 아이들을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물건으로 생각해서 발생하는 병이라고 이 기사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꾸 나는 내가 아니라 그저 수많은 단위 중의 하나로 취급되어 가고, 또 자기의 정체성을 나로부터 발견하기보다는 남들이 알아주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이런 병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보다 열등한 불특정 다수들은 희생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런 강요된 희생들이 현실적 힘 앞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깔아뭉개지는 세태는 우리라고 해서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꼬우면 출세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는 편입니까, 아니면 많이 하시는 편입니까.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려면 기를 써 출세하거나, 모든 걸 잊고 마음을 비우거나, 아니면 맞받아 부딪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게 막 왔다 갔다 하실 지도 모르고, 좀 마음에 걸리지만 몸이라도 편하게, 출세한 편의 머슴살이를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마세요, 몇 년 전에 출세한 편의 하나였던 정태수라는 사람이 썼던 표현입니다) 하고 계시는 분도 있을 테지요. 이수현이라는 분 아시지요. 얼마 전 일본에서 지하철 철로에 떨어진 이를 구하려다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신 분. 제가 받았던 큰 감동만큼이나 많은 분들이 그 이의 얘기를 했던 걸로 알고있고, 또 고인의 이름 앞에 의인이라는 수사를 사용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수사가 영어사용권에서는 대개 영웅 (Hero)이라고 표현이 되고, 또 북쪽에서도 이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현이야 어찌됐든 요사이 대개 그 뜻의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이들이 나서지 않을 때 선뜻 나아가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일컫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그 영웅이 한 일이란 게 어찌 보면 아무나 할 수 있었고 또 했어야 했던 일이었던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그런 일을 하지 못했던 (아니면 안했던지) 대다수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사실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던가요. 내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지 마라 여러분이나 저나 아주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배웠고 또 누군가에게 그리 하라고 얘기하는 것들입니다. 헌데, 참 웃긴 것이 내 이익을 위해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수많은 생명까지 뺏어가며 출세한 이들이 아주 당당하게 큰소리치며 코방귀 뀌고 있는 걸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고 또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이 어려울 때 돕는다는 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그러면 아주 당연하고 너무 쉬운 거라고 배워왔던 삶의 방식들을 실천하지도 거스르지도 못하고 사는 수많은 우리들은 대체 뭡니까. 나는 어쨌든 열심히 살고있고 다른 이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살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런 비슷한 생각을 M. Night Shyamalan이라는 감독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맥락이 이어지는 두 개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두 영화는 <제 육감 (Sixth sense)>과 <금강불괴지신 (Unbreakable)>입니다. 육감(六感)은 인간이 가진 오감에 덧붙여 하나 더 있는 감각을 일컫는 말이고,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이라 함은 무협지 많이 보신 분들한테 물어보시면 답이 금새 나옵니다. 너무들 많이 보신 영화라 줄거리를 아주 간략히 말씀드리면,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한 꼬마 (제 육감)와 절대 다치지도 아프지도 않는 한 사내에게 벌어지는 일들 (금강불괴지신)을 얘기하는 영화입니다. 콜(Cole: Haley Joel Osment 분)이라는 녀석은 주위에서 또라이 취급을 받는 비정상적인 꼬마인데, 한때 유명했던 지금은 역시 정상이 아닌 정신과 의사 말콤(Malcom: Bruce Willis 분)의 치료를 받게 됩니다. 말콤은 이 꼬마가 정말 이상하게도 유령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는 걸 깨닫고 그 치료법으로 유령들의 억울한 사정을 나름대로 돕고 함께 이야기 나눠주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콜은 엄마의 MSBP 때문에 죽게 된 한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는걸 계기로 (저도 사실은 이 소녀의 엄마가 아이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자신을 찾아주는 유령들과의 벽을 허뭅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나는 전혀 또라이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깨닫고 정체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콜과 말콤은 말 그대로 또라이거나 비정상입니다. 헌데, 이들은 정상적인 이들이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일들, 바로 별 것도 아닌 어려움에 처한 남을 돕거나 잘못됐던 일을 바로잡고자 나름대로 노력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위에서 본 바에 따르면 분명 영웅이 아닙니까. 참으로 서글픈 건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무슨 큰 대접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고 정상인 대접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여러분이나 저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콜이라는 녀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희한한 초능력인 건 맞는데 이건 정말 없었으면 하는 능력입니다. 하다 못해 땅에 돈 많이 묻어놓고 죽은 유령이라도 찾아준다면 그 돈으로 나도 좀 도움 받고 또 어려운 사람들도 정말 그럴 듯 하게 한번 도와볼텐데 이건 그것도 아니고, 어쩌면 하나같이 억울하고 힘없는 유령들만 찾아오는 게 무슨 초능력이라고. 어떻습니까, 이런 초능력을 여러분도 하나씩 가지고 계시지요. 내 주머니에 돈 한푼 없어도 왠지 굶고 있는 사람 보면 내 끼니라도 주는 게 마음 편하고, 게걸스럽게 내 이익을 탐하려다가도 괜히 가슴이 찔려 한발 물러서는 능력 등등 말입니다. <금강불괴지신>은 말하자면 장조 노래를 단조로 부르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로보트태권 브이> 노래를 정태춘이 구슬프게 부르는 걸 상상해 보시거나, 그도 아니면 딴따라 딴지에 한번 물어보세요. 그 느낌이 어떤가 하고. 이 영화의 대립되는 주인공 엘리야 (Elijah: Samuel L. Jackson 분)는 만화수집가이자 일러스트 화가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전통적인 만화의 기본구도는 선과 악의 대결이고 대개의 경우 소수의 초능력 영웅이 집행하는 정의가 기필코 이깁니다. 감독도 그런 얘기를 하곤 싶은데 도대체 현실이라는 것이 이런 장조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고 소수의 초능력 영웅이 집행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기에 이 영화의 분위기가 뭔지 모르게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고 좀 우스꽝스러운 영웅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 우스꽝스러운 우리의 영웅은 다름 아닌 데이비드 (David: Bruce Willis 분). 이 친구는 금강불괴지신이라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대단해 보이나요? 글쎄요, 이 친구의 능력도 콜이라는 녀석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아무나 가질 수 있고 또 가지고도 있는 능력입니다. 여러분들은 보통 자기 소개할 때 이런 말 쓰지 않으세요. "제가 뭐 별 가진 것도 없고 큰 능력도 없지만, 그저 내 한 몸 잘 건사하고, 잘 아프지 않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입니다." (건강과 관련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노력하고 계신 분들께서 오해 없으시길 빕니다) 데이비드라는 친구도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 친구는 미식축구 스타 (일종의 영웅)로 뜰 수 있었던 기회를 그 놈의 사랑 때문에 포기하고 경비직으로 살아가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물이었는데, 어느 날 자신에게 금강불괴지신의 몸과 Profiler (적당한 한국말이 생각나질 않습니다)의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Profiler의 능력도 누가 숨겨놓은 재물의 위치를 알아내는 그런 쪽이 아니라 그저 주변의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과 그 원인 제공자를 알아낼 수 있는, 역시 여러분이나 저도 가지고 있으면서 아주 처치 곤란해하는 능력일 따름입니다. 엘리야라는 친구는 자신의 불편한 몸에 대한 불만을 정상적인 남들에 대한 적의를 통해 해소하는 인물인데 (<로보트태권 브이>에 나오는 머리 큰 박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요), 이 친구도 자기의 정체성을 남들에게 인정받고 과시하고 싶어서 남들이 모르고 있는 자신의 커다란 범죄를 애써 데이비드에게 알려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결국, 감독은 불합리한 사회와 그 악행이란 게 무슨 괴상한 초절정의 사파고수들이 부리는 사술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나 또는 너 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여 그리 된 것이니 만큼 너와 내가 서로의 능력을 합쳐 그 동안 할 수 있었지만 외면했던 일들을 함께 하면 고쳐지리라는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사회 분위기 어수선하고, 가뜩이나 살아가기도 빡빡해서 골치 아픈데 이 무슨 엉뚱한 얘기냐" 이렇게 저를 꾸짖는 분들이 말씀이 줄지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지당하고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역시 항상 군시렁 거리는 말이니까요,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살 것이냐, 왜 살아가냐 하는 질문은 도대체 답이 없는데도 항상 머리에 맴돌고 또 잊을만하면 불쑥 튀어나와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바람에 대충 접어놓고 지내다가 가끔 저 같이 엉뚱한 소리하는 사람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잊고있던 그 문제도 한번씩 짚어보고 재밌잖아요, 아닌가? 어쨌든, 뭐가 맞을까요. 1) "에이, 그래도 출세는 하고 봐야돼, 그래야 남도 돕지." 저는 아주 가끔 3번 생각을 하다가는 그냥 말곤 합니다. 어떠세요,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영웅전설을 일단 접어봅니다. 딴지 영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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