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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촉위원 소견] 남들의 영화라고 비웃어도 되나요?

2001.6.14.목요일

딴지 영진공
 

 

 

 

후배중 상당히 난해한 영화광이 하나 있습니다. 글쎄 이 놈을 영화광이라고 할 수 있을지....음. 하여간 영화를 끔찍히 좋아하는 건 사실이죠. 영화광이라기보다는 비디오광이 더 어울리겠네요.

 

 

 

 

학창 시절부터 30대 초반을 넘기며 지금껏 보아온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분명 남 못지 않습니다. 학교가 끝나면(학교를 졸업한 요즘은 회사가 끝나고) 별다른 술자리나 데이트가 없는 한(때론 술자리나 데이트가 끝난 뒤에도) 거처로 들어가면서 반드시 비디오 한편은 빌려서 들어갑니다. 거의 매일 말입니다.

 

그 정도 애틋한 영화사랑이야 다른 이들에게도 간혹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인간의 영화시청의 행태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웬만한 액션스릴요절복통 충격장면이 매2분마다 저질러지지 않으면.... 이 인간은,

 

.....잡니다. 그렇습니다. 자고 맙니다.

 

거의 매일 비디오를 빌려 다음날 채 20분도 보지 못한 비디오를 출근길 회수통에 넣는 쓰라림을 겪으면서도 이 행태를 반복하더군요. 웬만한 정도가 아니라 100편의 99편은 20분짜리 영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는 비디오뿐 아니라 가끔 있는 주말, 애인과의 극장나들이 때도 반복되는데 이런 잔인한 데이트 중 만행에 대해 그간 그와 극장을 함께 한 그의 여친들의 독설은 참으로 그에게서 존경받는 선배로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수많은 허리우드 액션 대작들도 그의 발 아래에선 그만 유럽예술 영화나 다를 바 없는 수면제였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미션 임파서블>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몇 년전입니다. 상큼한 토요일 오후, 데이트 약속이 틀어진 그로부터 전화가 왔죠.

 

"형 새로나온 <미션 임파서블> 보고싶제? 빨리 나온나. 내 표 사났거든.  얼른 나온나."

 

지 애인과의 틀어진 약속을 내게서 보상받으려고 내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를 아름다운 여인네와 보내진 못할망정 시커먼 머스마 둘이서 극장 나들이라.... 다가오는 야릇한 주위의 시선도 좀 꺼림직 했지만 평소 내만 아니면 된거지. 남에게 어떻게 보이건 상관없다라는 정직한 생활방식과 사람끼리 좋아함에 대해 동성애, 이성애 차별하는 건 편협이다라는 개방적 멘탈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 본인은 이내 개의치 않고 길을 나섰습니다.

 

극장은 요즘 허접의 상징처럼 되어가는 신촌의 모극장. 짧은머리 탐의 긴박하고파 하는 모습과 더 짧은 머리의 장의 꺼벙한 표정이 어우러진 극장간판을 지나 입실...

 

"형 나 오늘은 안 잘 거야. 아까 낮잠도 좀 잤고. 이거 열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잖아..."

 

어쩌구하며 온갖 허접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다 보니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자신만만, 영화에 몰입하는 대견한 모습을 보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더군요. 이제 영화는 중반으로 흘러갔고, 데이트를 대비해 자둔 보람이 있던지 이 인간이 안 자네요. 기특한 것. 영화도 그럭저럭 볼만도 하고 액션 영화답게 시끌시끌하니 그럴만도 했으리라 싶습니다.

 

졸린 걸 어쩌라구.....     

 

시간은 지나 중반쯤... 제작진이 나름대로 머리 짜서 얻어낸 나름대로 쌈박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 왜 우리 탐이 줄타고 내려와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공중에 매달려 컴퓨터을 전산실 여직원 자판 치듯하며 정보를 얻어내는 그 장면 있잖아요. 소리도 내선 안되고 과장 좀 보태 먼지하나 떨어지면 안 되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 한 5분쯤 되었나 싶을 조용한 장면인데. 갑자기 내 귓가로 고요한 극장 공간을 가로지르고 참으로 편안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인간 그 짧은 순간의 고요를 못 참고 잠자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남들은 다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는 장면에서 이 인간은 잘 조성된 숙면환경이라고 그냥 자버리는 것입니다. 깜깜하겠다, 조용하겠다, 그에게는 최적의 숙면환경이었던 셈이죠.

 

그런 게 무슨 영화광이냐고, 또 별로 재밌지도 않은 야그를 왜 주절거리냐고 심통내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제가 하고픈 진짜 이야기는 이 인간이 절대 안자는 영화들에 대해서입니다.

 

바로 져우싱치의 영화에 관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져우싱치 류의 영화에 관한 겁니다. 져우싱치가 누구냐고요? 그 왜 있잖아요. <도성>이나 <서유기 월광보합>같은 쇼킹 코메디에 나오는 무지 평범하게 생긴 인간말입니다. 한자로 우리가 그냥 주성치라고 부르는 애.

 

그런데 그 져우싱치만 나오면 이 인간 절대 안 존다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죠. 사실 제 후배 이 자식이 무슨 코메디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보기엔 우리 져우싱치의 코메디가 무슨 영화사적으로 쳐줄만한 대단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도 못하겠습니다. 더욱이 가끔 좀 너무 하는군 싶은 것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영화에 환장을 합니다. 왜인가? 답은 그 둘의 궁합이 맞다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그 둘의 손발이 맞다는 거죠. 그건 또 무슨 이야기냐고요?  

 

잠깐만요. 사실 져우성치는 홍콩의 스필버그이자 탐 크루즈이자 짐 캐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컬트 취급 받는 그의 영화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을 대단한 생활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홍콩 시민들 사이에선 막강한 블럭버스터이고 홍콩영화계의 골든하베스터입니다.

 

지금은 한풀 죽은 듯도 보이지만 그가 나오면 무조건 기존의 모든 홍콩흥행기록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청룽이니 4대천왕이니 하는 치들에 비하면 가요톱텐식 개인투표에선 밀릴지라도 그와 그의 영화 인기는 홍콩인들 남녀노소의 고른 지지를 받습니다. 그는 영웅이 아니라 정말, 정말 괜찮은 옆집 총각입니다. 한마디로 홍콩인들의 사랑둥이죠.

 

사실 이 정도로 독특한 아이덴테티를 가진 배우가 어디 그리 흔합니까. 아카데미가 저주하는 허리우드의 보물 짐 캐리도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홍콩인들의 사랑으로 본다면 짐 캐리는 불쌍하죠. 당연 아주 못 봐줄 영화들은 아니라는 거죠.

 

그러나 그의 영화를 비디오에서라도 한번 정도 관람한 우리나라 사람의 10중 8,9는 뭐야 졸라 황당하잖아. 만화도 아니구말야라며 재밌게 본 것치곤 혹평을 서슴치 않습니다.






 
 

  

 

져우싱치의 이 화려한 변신을 보라!!!

 

사실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정서를 가지곤 그의 영화를 명작이라고 치켜주기엔 문제가 있습니다. 여짓껏 난 그 잘난 쒸네나 좃선, 그 외 여러 엄숙한 평론가들이 진지하게 그의 영화를 평가한 글을 본 적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이 달에 비디오란 같은 데서 홍콩 코메디물. 완전 킬링타임용으로 몇몇 황당한 장면에서 웃음을 자아내지만 저질스럽다. 별 몇개냐고? 별 없다! 이 정도 이야기를 조금 순화해서 내놓는 정도죠. (이런 지적허영과 편식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고상함지수를 갖추어야 나오는 걸까요)

 

이런 건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의 차이입니다. 그저 사는 환경이 다르고 그러다 보니 생각이나 삶은 방식이 조금 다르니 나오는 작은 차이입니다. 별 것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의 열혈팬들은 잘난 평론가들의 어떤 평에도 아랑곳 않고 그의 신작이 나오면 비디오가게로 달려갑니다.

 

따져보면 그의 영화는 황당하지만 즐겁고 억지스럽지만 기발하고 지저분하지만 건강합니다. 그의 영화의 서민적 체취도 좋구요. 형식적인 면에선 슬립스틱에 황당무계한 난센스 코미디입니다만 비약적인 전개나 비상식적이고, 때론 엽기적이기까지한 상황묘사를 하는데도 분명히 남다른 맛이 있습니다. 볼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저도 그의 영화 몇 편은 정말 재미있게 봤고 그의 열혈팬들을 크게 공감하는 축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까지 경멸비스무리한 걸 한다는 거죠.






 
 

 

ZAZ 사단의 <에어플레인>

 

제가 말하고픈 바는 바로 이겁니다. 결코 그래선 안 된다는 거죠. 영화자체의 메시지가 반민중적이거나, 내용이 인종차별적이거나, 형식을 보니 다른 영화를 아예 카피를 했다거나, 정말 초라하고 형편없는 대사에 성의가 없는 연기라면 당근 씹어야 합니다. (사람을 진짜로 죽이고, 얼라들 어찌어찌하는 걸 찍은 건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는 이유로만 씹어서야 됩니까. 져우영화와 비슷한 ZAZ사단의 <에어플레인>이나 발킬머 주연의 <일급비밀>같은 영화도 비슷한 대접을 받는데 제가 보기엔 그래도 정성들여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패러디로만 떡칠한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에서 실망을 했지만 그들의 작품이 아주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유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치 않고요.
 

 
 

저도 개인적으로 멜러물은 취향에 안 맞습니다. 하지만 욕먹을 정도만 아니면 멜러물도 괜찮은 작품은 찾아봅니다. 그런 영화에서 제가 발견하지 못하는 감수성을 어떤 이들은 잘 느끼고 제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구요.

 

우리가 커가면서, 공부하면서 흔히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자신을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겁니다. 거기에다 나와 다른 이들, 다른 의견은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까지 한다는 겁니다. 적어도 그런 증오를 받을 정도라면 정말 나쁜 놈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합리적이고 정직한 비판은 정말 비판하는 이도 비판받는 이도 충실히 키워줍니다. 심지어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주어듣는 이들도 키워줍니다. 하지만 별 내용없는 비난들은 모두를 멍청하게 만듭니다.

 

요즘 고은 선생의 미당 서정주에 대한 비판에 대해 말이 많더군요. 그가 지어낸 말장난 중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였다는 구절이 있더군요. 제 인생을 돌아볼 때 절 키워준 분은 5할이 부모님이고 5할이 절 비판해 주던 사람들이더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직한 비판은 우리 모두를 키워줍니다.  

 

그런데 너무 당연한 얘기라구요? 그렇다면 그처럼 당연한 얘기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든 까닭은 뭘까요?

 

 

 

 

딴지 영진공
공인 위촉위원 버디
(
yibudd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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