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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한국만화의 씨를 말려라!

2001.06.08.월요일

딴지 만화부흥 추진우원회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혁명이여
 김혜린 - <테르미도르> 중에서





툭하면 파업시위로 길 위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되는 파리. 어쩔 수 없이 차를 두고 걸어가는 무쟈게 평범한 프랑스 시민한테 물었다 한다. 절라 짜증나지 않냐고. 그 시민 물론 짜증은 났겠지만 대충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씨바 짱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나도 파업할 때가 있을 테니깐."


본 우원 이 말을 듣고 무척이나 자괴감 느꼈더랬다. 그래 너거뜰 선진국민이고, 젠장 우리는 후진 국민이다. 이거는 나라에 돈이 많고 적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먼가 하면 의식수준 차이다. 왜 우리 의식이 머 어때서?! 너 사대주의자냐 ?! 이렇게 묻는 독자덜 내 말 함 들어봐라.


본 우원 대학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였는데, 내 룸메이트였던 모모양 상당히 보수적인 아이라고 보여졌더랬다. 북한문제라면 모조리 회의적인데다 표현의 자유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으며 혼전순결은 절대 지켜야 한다 등등. 머 그걸 머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가치관을 갖는 것은 개인의 자유니까.


그런데 어느날 이 아이 심야토론을 보며 청소년이 동성애 하면 우짤래 하고 동성애에 게거품 무는 보수진영 인사 한명에게 "미친 쉐이" 라는 욕을 퍼붓고, 진보인사들에게는 마구 박수를 퍼붓고 있었더랬다. 그걸 본 본 우원 놀라기도 하고 궁금도 하여 모모양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강 이런 스토리였다.


모모양의 아버지가 티처인데, 아까 모모양이 마구 씹은 보수인사가 얼마 전 다른 토론프로에 나와서 티처들 정년단축 절대 관철 해야된다고 게거품 물었단다. 모모양 자기 아버지의 눈물을 피 토하며 토로하였다. 본 우원 이 말 듣고 얼마나 허탈했는지. 머 교사들 정년단축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 이 말이 아니다. 본 우원 따지고 싶은 것은, 왜 자기 아버지 눈물만 눈물인가. 굶어죽는 북한애들은 눈물이 없고 툭하면 분서갱유에 칼질 당하는 만화가들한텐 눈물이 없으며 혼전순결 안 지킨 뇬들은 순정도 엄나.


요즘 서양은 환경문제엔 보수도 진보도 없다 모두가 하나라고 외쳐쌌는데, 우리 졸라 잘난 한국땅에는 애초부터 진보도 없었고 보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환경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있는 건 걍 이기주의일 뿐이다. 부부가 같이 시위하면서 노동착취 부르짖고 나서도 집에 들어오면 어이, 부르는 즉시 밥하던 마눌 뛰쳐나와 재떨이 갖다 바쳐야 한다. 군부독재 대항하여 싸웠지만, 군대도 안가는 팔자 편한 가쓰나 주제에 예비역 보고 한마디 하면 찢어죽이고 말려 죽여야 된다.


논리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감성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니다. 내것만 아닌 타인의 고통도 느끼고 아파할 수 있는게 감성이다. 그들이 말하는 그거는, 누가 지보고 뭐라 하면 그 순간 빡돌아 제대로 말 들어보기도 전에 와구와구 짖어대는, 개도 가지고 소도 가진다는 "감정"일 뿐이다. 또한 "감상"일 뿐이며. 


감성적인 것과 감상적인 거는 하늘과 땅차다. 그런 감상주의에 빠진 주제들이 꼭 만화 보는 사람들 비웃는다. 쯧쯧 언제 철들래 이 지랄 떨어가면서, 조성모 뮤비 수준 영화나 보면서 휴머니즘 외치며 울다가 칭구 전화 받으면 눈물도 마르기 전에 뛰쳐나가 저 뇬들 따먹자 이딴 소리 한다 제길.


 



만화 얘기 한다고 해놓고 머슨 딴 얘기냐고? 본 기자 만화 대여점 문제를 놓고 수많은 글도 읽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었더랬다. 그런데 젤 큰 문제는 이거였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를 따지는 사람은 거의가 만화가들과 만화가의 열렬한 팬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쪽이 당장 나한테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했다. "당장 만화 싸게 볼 수 있는데 왜들 그래", 이거다. 미래 같은 것도 생각지 않을 뿐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만화가들한테 "지 밥줄이라고 지랄한다" 란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심지어는 "너거뜰 절라 실력 없어서 아예 안볼걸 그나마 대여점이라도 있으니까 봐준다" 고까지 한다. 요런 말들이 버젓하고 떳떳하게 난무하는 세상 본 우원 앞으로 살아가기가 무섭기까지 했다. 정해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남의 소유를 무단으로 사용하면서 떳떳하기까지 하다는데 할 말이 없다. 오히려 윽박지른다. 베트남 등지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도 생각나고 목화 따던 흑인들도 생각난다.



당장 싸게 보는데 왜그래?


어떤 회사의 사장이 사원한테, "나 니 꼴뵈기 싫어 죽겠는데 니가 월급을 안 받는다면 중식 제공은 시켜주께 나와서 열심히 일해라, 대신 고마운 줄은 알아야 된다" 이랬다면 그건 뭔가. 회사 때려치면 된다꼬? 매사 그런 식이니까 울 나라, 뭐 한가지라도 달라지는 게 엄따. 맨날 똑같은 반복이다. 불이 나 어린애들이 떼로 죽어도 아무도 잘못 했다는 사람이 없다. 한 일주일만 지나면 걍 그건 남의 자식 일이다.


 


   


자 이 글의 주제, 만화 대여점 문제. 어디 함 조목조목 따져보자.


비됴 대여점도 있는데 만화 대여점이 왜 안되냐고? 이 한국땅에 극장개봉 안하고 바로 비됴만 나오는 영화가 어딨더냐. 만화는 책이 바로 극장이다. 젖소부인 바람 났네? 그럼 한국만화는 전부 젖소부인 바람났네 레벨만 나와야 속이 시원하겠냐? 근데 왜 일본만화랑 수준 비교할 땐 질이 낮네 어떠네 게거품들 무는지 모르겠다. 돈 낼땐 젖소부인 레벨로 내고 영화는 스필버그 스케일로 보겠다 이건데 캬 진짜 양심 엄따. 스필버그한테 가서 함 물어봐라 씨바 그래도 되냐고.









그럼 안되는 거 알쥐?
 


질이 낮다 운운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만화 본 거 몇 개나 되는지? 그것도 대본소용 혹은 대여점용으로 나온 만화들만 보고서 "야, 한국만화는 수준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이 대여점 밖엔 안된다니까" 이런다. 좌뇌 아이큐는 98 우뇌는 45다. 이큐는 제로다. 그 만화들은 대여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여점용으로 그런 수준의 만화가 나온거다.


함 생각 해봐라. 2천 몇백원에 총판에서 산 만화를 100회 대여하면 대여점 주인이 5만원을 버는데 만화가가 300원 버는 이 현실. 요기서 제 정신 가진 인간이면 질낮은 대여점용 만화 후닥닥 기획해서 여러 명 달려들어 파바박 대충대충 후루룩 그리지 하루에 한 페이지 그렸다 버리고, 스토리 어떻게 할까 머리카락 쥐어뜯고, 문하생이 한거 맘에 안 들어서 다 그렸다가 새로 그리고 그러겠남? 권당 육십만원 벌라고? 것도 순수익조차 아니어서 재료비 뺴면 마이너스 되는 그 돈 때문에?


근데 웃기는 건 정말 그 짓을 한다는 것이다. 울나라 만화가들 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들인가 부다. 청소년 보호법 참 올바른 법이다. 제정신 아닌 사람들은 병원이나 감옥으로 가야지 청소년들 보는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쓰겠나.


그렇다. 꼴뵈기 싫으면 쥑이라 깨끗하게! 치사하게 "니 넘 불쌍하니까 밥은 먹여줄게 대신 일 열심히 하고 내 눈에 안 띄게 조심조심 다녀라" 라고 1970년대 즈그 집 어린 식모 강간한 저질중년변태 같은 소리 해대지 말고.


 


   


본 우원 좀 지나치게 흥분했던 것 인정한다. 그런데 증말 한국만화 생각하면 눈물 앞을 가린다. 80년 광주 때 미취학 아동으로 흥겹게 골목 뛰어다니며 놀았던 본 우원 또래의 얼라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즉 전노시절에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진짜 썰렁하게 살았더랬다. 언론이 통제되고 광주의 일 같은 건 상상도 못하는 보통 울 엄마아빠덜은 심져 전노가 대통령이 되니 깡패가 없어서 살기 좋다고까지 했다.(삼청교육대에 다 집어넣었으니 그랬겠지)


학교선 입시결과로 경쟁을 하면서 새벽 7시에 자습 시작 밤 11시 반에 끝냈고 교문 앞에 서있다가 귀 몇 센치로 머리 자르고 체육선생은 가방을 뒤져 소설이라면 명작이든 포르노든 가리지 않고 박박 찢었다. 어떤 선생은 샤르트르의 구토를 뻇어들더니 야한 부분 좀 찾아봐라, 를 성희롱이랍시고 했다. 이런 선생들 만화만 보면 그렇게도 신명이 나는지 그 즉시 뺏어서 분 풀릴 만큼 머리통 신나게 갈겨대고 벅벅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렇게 찢겨졌던 그 만화들이 지금 말하는 80년대의 초걸작만화들이다. 따질 것 없는 아트들. 대본소 대여점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까지 인정하는 바다. 그러면서 대본소 옹호의 논리로 이용한다. 대본소 체제에서도 그런 걸작들이 배출되지 않았는가. 예술가가 돈 보고 에술하냐 이거다. 말도 안된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신들의 황혼> <1815> 등등 그 걸작만화들은 우리 만화가들이 가난은 물론 검열이며 개무시며 틈틈이 행해지던 분서갱유의 십자가까지 지고 피로 써낸 것들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예술가니까 라며 그런 걸 인내만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다.


대여점이 있는게 나으냐 없는 게 나으냐. 낫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해서는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다. 작은 거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안되는 거고 아무리 악인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안되는 거다. 제기랄 놈의 대여점을 다 없애라 부르짖는 게 아니다. 대여점 주인들이 악덕하다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기본적인 도리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그런 현실을 이런 저런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정당성을 찾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거다.


또한, 대안도 없으면서 어쩌란 말이냐! 늘 대안을 말하라고 부르짖는 이들에겐 무서운 구석이 있다. 그 옛날 소위 공순이 공돌이들이 서너 시간 자고 붕어빵 하나로 점심 저녁을 떼우고 독하게 폐 앓고 손가락이 잘려가며 미싱을 돌렸던 시절에도, 그거 아님 먹고 살 대안이 없으니 너희는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한다고 했었다.


마리 앙뜨와네트의 파란만장한 러브로망을 그린 일본 고전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대신에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를 보면서 혁명이란게 무엇인지, 8년 광주가 뭔지, 나 개인만이 아닌 사회란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던 순간들 본 우원 떠올린다. <참된 휴머니즘에의 피맺힌 자성론>이 패배주의적 변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김혜린 작 <테르미도르>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맺는다.








혼돈의 세월이 얼마를 더 흐른 후에라도-


멋대로 떠들지마라 가볍고 무책임한 입술들이여


어찌 하여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웃지 마라 폭양아, 바람 속에서도 제비꽃은 지고 또 피나니-
 




딴지 만화전문가
함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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