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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신귀족? 함부로 운운하지 마라!!

2001.5.24.목요일

딴지 작위 심사 우원회

 

 

 

 

신귀족? 도대체 어떤 족속들일까?

 

언제부터인가, 요즘 신문 잡지 안가리고 신귀족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드랬다. 서양의 어느 먼 나라 얘긴가 하고 읽어봤더니 요 코닥지만한 우리나라에 그런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계층을 그렇게 부르는가 궁금해 인터넷 검색 엔진에 신귀족을 키워드로 쳐넣고 관련 웹사이트가 뜨길 기다렸다.

 

맨처음 올라온 사이트를 클릭하니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떴다.

 

"이 시대의 신귀족이 모여사는 당당한 상류사회 -- 방배동 OO빌"

 

난 그제서야 깨달았다. 신귀족들은 주로 방배동의 ㅇㅇ빌에 모여산다는 것을.

 

그 아래 사이트에선 좀더 구체적인 단서를 찾았다.

 

"선택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신귀족의 대열에 오릅니다.
명품의 숨결을 느껴보십시오"

 

엄청 비싼 외제 안경테 선전하는 문구다. 음 신귀족 대열에 오르려면 저 안경테는 필수로군. 혹시 모르니 적어야지.

 

지금까지의 단서로 나는 신귀족은 노력을 해서 가능한 어떤 계층이라고 짐작했다. 그 아래 또다른 사이트를 읽고 나는 확실히 신귀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MBA, 과연 신귀족을 만드는 자격증인가?"

 

여기서 MBA란 미국 명문대의 MBA를 지칭하는 것으로 따라서 신귀족이 되려면 학벌과 재산 이 모든 것을 두루 갖추어야 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전체를 종합해서 다음과 같이 결론 지었다. 비싸고 좋은 데서 공부해 돈 많이 벌면 원래 평범한 사람도 신귀족이 되는 거구나라고. 나는 그 아래 또다른 사이트를 클릭하면서 내 추측이 옳다는 걸 확신했다.

 

"자녀 엘리트 교육을 희망하는 분을 받습니다.
자녀가 신귀족으로 바뀝니다."

 

음.. 역시 교육이 관건이군. 평범한 아이도 신귀족으로 바꿀 수 있다니.






 
 

 

 

헷갈리긴... 훗...

 

하지만, 또 다른 사이트에 나오는 휴머니스튼가 하는 영화 광고 카피는 나를 좀 헷갈리게 했다.

 

"퇴역장성 아들로 수표를 천원짜리 쓰듯하는 신귀족 마태오(안재모)"

 

돈 잘쓰는 퇴역장성의 아들이라, 이거 평범한 아이가 아니쟎아. 교육과 재산말고도 좋은 집안 배경도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거 뭐 좀 헷갈리네.

여기까지 와서 나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신귀족이고 뭐고 다 좋은데, 우리나라에 신귀족이 생겼다면, 그 이전에 여기에 상대되는 구귀족이 있었다는 얘기 아닌가? 도대체 구귀족들은 누구란 말인가?

 
 

귀족? 그거 우리나라에 있기는 했냐?

 

인터넷 상에 운영되는 잡지인 북O리란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구귀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과거 귀족의 결정 기준은 부의 정도가 가장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신귀족은 다르다...돈만 있다고 되었던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부와 전문적 지식과 자기만의 소신까지 겸비한 신지식층이라는 것이 기존의 상류층과는 다른 점이다."

 

그런데 말이다. 요 글을 쓴 기자는 뭘 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그에 정의에 따르면, 돈많은 사람들은 재벌이나 졸부 할 것 없이 모두 구닥다리 과거의 귀족이란다. 난 이런 얘기 여기서 첨 봤다. 재벌들이 엄청 기분 나쁠텐데….

 

혹시 과거에 구귀족 신귀족으로 우리나라의 일부 계층을 언급한 예가 있는가 궁금해 구귀족 신귀족 두 단어 모두 키워드로 넣고 검색엔진을 가동시켰더니, 관련 사이트가 나왔다.

 

그런데, 이거 신라 시대 아닌가? 골품제도를 두고 이런 구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음, 이건 나도 중학교때 배웠다. 그런데, 신귀족이란 단어는 신라시대와 현대에만 존재할 뿐 그 중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귀족의 맥은 신라시대 이후 끊겼다가 최근에 다시 부활한 것일까?






 
 

 

그래?
난 드라큐라 백작이다, 씨바야...

 

하지만, 아니다.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 진짜 귀족이 있었다. 구한말과 일제시대 때 자작, 백작이니 하는 귀족 작위를 받은 한국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자손 중 오늘날 이른바 명문가와 지도층에 편입된 사람들도 있겠으니, 아, 바로 그들이 귀족 맞겠네. 요렇게 말하면 이의 달 사람 많을 거다. 아니 그들이 친일파 자손이지 어떻게 귀족일 수 있냐고.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이렇게 결론 내렸다. 현재 우리나라에 귀족 없다고.... 여기저기서 정의 내린 귀족층이란 그냥 유한 계층, 재벌, 준재벌, 엘리트 지도층, 뭐 이런 걸로 부르면 된다고...

 

그런데, 원래 귀족이 없었다면, 신귀족도 없어야 되는 거 아닌가?

 

사실, 신귀족을 언급한 기사들을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신귀족을 지들 마음대로 정의한 다음 외국의 귀족과 비교하는 걸 빼놓지 않는다. 우리 귀족들은 이리저리해서 외국 귀족 발끝에도 못미친다고. 그런데 이런 비교 대상은 주로 영국의 귀족이 되곤한다. 오늘날 귀족 제도가 남아있는 대표적인 나라기 때문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류층 발목잡지 말라. 그들은 귀족이 아니다. 정말, 우리나라엔 귀족 제도 없다.

 

누가 언제 만들었나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 서핑 결과 난 이 용어를 백화점이나 이른바 명품점들에서 만들어 유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타겟으로 하는 층은 미국의 엘리트 직장인을 가리키는 여피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버드나 예일, MIT 의 MBA출신으로 연봉을 수억씩 벌어 상당히 높은 상품 구매력을 갖춘 층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여피족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럼, 이 여피족이라는 용어가 오히려 우리나라 경우에 딱 들어맞는 거 아닌가?

 

본 우원이 보기엔, 우리의 백화점이나 명품점 홍보 직원들이 생각해보니 여피족은 뭔가 품위가 떨어져보이고 그래서 신귀족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낸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 귀족 같엉? 아잉~

미국의 빌 게이츠는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그를 귀족 운운하는 걸 못봤다. 그의 행색이나 거취에서 아무도 귀족적인 냄새를 맡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며, 능력이 있는 사람은 별다른 배경을 갖지 않고도 입신양명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어느 정도 배경을 갖추었지만, 그 스스로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출세의 신화를 이루었다. 빌 게이츠는 말하자면 재벌 여피인 셈이다(자신의 아버지 후광에 크게 힘입어 명문 대학가고 대통령까지 된 부시는 그래서, 요즈음 미국에서 코미디언이나 토크쇼 진행자들의 비아냥 거리로 전락되었는지 모른다.)

뭔가 엄청난 집안 배경을 갖춘 층을 겨냥해 신귀족이런 용어를 쓰길 고집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자꾸 귀족이 있는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 모델을 찾으려하는지 모른다. 사실 영국에 안성맞춤인 모델 층이 있긴 있다. 신사(gentry) 계급 이 그들이다. 철저히 장자 상속이 원칙인 영국 귀족의 방계 후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비교적 부유하고, 높은 학식을 갖추었고 또한 아주 중요한 것으로 그들은 명품을 애용한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신귀족이라고 우기고싶은 계층은 여피족과 신사 계층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여피족이 대개 집안 배경없이(또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런 위치에 도달한다면, 신사 계층은 집안 배경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조금 있다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오늘날 영국에서 귀족은 거의 씨가 말랐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영국을 이끌고 있는 계층이 바로 이 신사계층이라 할 수 있다. 윈스턴 처칠도 그 계층에 속한다.

 

그런데, 여피족이 철저히 자본 주의 논리 속에서 태어난 프로페셔널(돈이 상당히 중요한)인 반면 신사계층은 아마츄어에 가깝다. 원래 집에 돈이 있기 때문에 돈 벌기 위해 학문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법학과 의학등을 공부해서 자기 사는 지역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아직도 아마츄어리즘이 살아있는 것 같다.

 

노벨 화학상을 두번 탄 생어라는 생화학자가 있다. 그는 특허를 냈으면 빌 게이츠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를 개척했지만, 거의 특허를 내지 않았다. 병든 사람들이 더 저렴하고 폭넓게 혜택을 받게 하자는 아마츄어리즘에서다. 빌 게이츠는 이거 도저히 이해못할거다.

 

그런데, 이렇게 모범적인 삶을 사는 신사계층이 명품을 애용한다. 물론 개중에는 흥청망청 돈을 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개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사들의 명품관은 좀 독특하다.

 

런던의 중심가 어딘가에 100년이 넘은 양복점 거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양복 한벌 맞추려면 보통 다른 데서 맞추는 것은 10배쯤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주고객층은 왕족, 귀족, 신사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비싼 옷을 사입는 이유는 부의 과시일까? 아니다. 이렇게 비싼 옷은 오히려 좀 촌스럽다한다.(난 아직 보지못했다.) 그대신, 매우 가볍고, 몸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사들은 이런 옷 한벌 사서 체형에 맞지 않거나 헤질때까지 입고 다닌다. 언젠가 우리나라에 팔꿈치에 천이나 가죽을 댄 양복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원래 그렇게 제품화되기 전에 그런 옷을 입은 효시는 바로 이들 신사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보니 역시 우리나라에서 귀하신 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의 모델을 영국에서 찾는 건 좀 무리인 듯 싶다.

 
 

 신귀족! 그래도 기어코 한번 찾아보자!!

 

이제부터는 역으로 진짜 문자 그대로 신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아보고 거기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준거집단을 찾아보자. 역시, 귀족의 나라 영국에서 그런 계층을 찾는게 빠르겠다.

 

오늘날 영국에는 크게 세습 귀족종신 귀족이 있다. 세습귀족은 문자 그대로 작위를 세습하는 고전적인 의미의 진짜 귀족이다. 종신 귀족은 자신의 업적으로 작위를 받은 계층이다. 이들 계층은 1958년부터 생겨났는데,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극소수에 불과한 세습 귀족으로 이루어져 다소 위축된 상원의 숫자를 늘리기 위함이었다. 영국에서 세습귀족의 수는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귀족 자제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귀족이란 말 함부로 써선 안된다는 거다. 요즘 박항노 원산가 하는 사람이 이른바 지도층 자제의 병역비리를 도와주었다고 해서 나라가 뒤숭숭하다. 정말 귀족되려면 이런 짓거리부터 하지 말아야한다.






 
 

 

 

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었다. 이 영화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뜀뛰기를 즐기던 트리니티 칼리지를 다니던 두 학생(아마도 귀족 아니면 신사)중 한명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고 나머지 한명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거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귀족이나 신사의 이미지를 또렷이 파악할 수 있다. 한 측면은 귀한 신분임에도 기꺼이 전쟁터에 나가 죽는다는 거와 올림픽에 나갈 정도로 아마츄어 정신에 충만해 있다는 거다.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유명한 칼리지는 앞에서 언급된 트리니티 칼리지다. 이 칼리지는 뉴턴과 바이런, 베이컨 등 다수의 기라성 같은 위인들을 배출한 학교다. 우리는 이들의 동상을 그 학교 채플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채플의 벽에 빽빽하게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맨 처음 나는 이 이름이 트리니티 출신으로 비교적 덜 유명한 사람들의 명단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1,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학생들 명단이란다. 20세기 초에 영국 귀족들 대부분은 옥스브리지 출신이었다. 특히, 트리니티 칼리지 학생은 대부분 귀족층 자제였다. 이들이 전쟁이 나자 모두 자원해서 참전해 국가에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이게 귀족 정신이다. 함부로 귀족 운운하지 말라.

 

각설하고, 맨 처음 종신 귀족의 성립은 세습귀족 작위를 주기엔 웬지 걸맞지 않은 국가 유공자에게 뭔가 그와 같은 기분을 안겨주려는 의도에서 이뤄졌으며, 동시에 부족한 상원 의석의 일부를 늘려보려는 거였다.

 

처음엔 그렇게 상징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이 작위는 단지 기분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최근 세습귀족의 상원의원 자격 자동 취득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상원은 어느 정도 권한을 갖고 있다. 최소한 하원에서 의결된 사항을 1년 정도 미룰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다. 이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국정에 참여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종신 귀족들이 의회에서 직능 대표제를 구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종신 귀족은 세습할 수 없고, 본인에게만 그 작위가 주어지긴 하지만, 귀족의 나라 영국에서 새로이 만들어 낸 귀족 체계이므로 이거야 말로 신귀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뻐하라~!! 드디어 찾았다~!!

 

이렇게 구구절절히 설명해주었는데, 기어코, 반드시, 무조건, 우리나라에서 신귀족을 찾아보겠다는 미련을 못 버렸다고??  

 

알아따.. 니네들의 끈질긴 근성, 높이 평가한다.

 

이건 국가적 차원의 일급기밀 인데, 니네들한테만 갈켜주마.

 

작위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굳이 찾는다면, 국가에서 공인 받는 신지식인 정도 될게다.

 

허거~걱!! 그럼 심형래가 신귀족 ????

 

좀 헷갈리지만 머 그런 거 같다.…. 언젠가 난 그가 검은 정장에 나비 넥타이 맨거 봤었다. 그게 어디서였더라? 동물의 왕국이었던가?

 

딴지 귀족 작위수여 심사 우원회
맹성렬(slm2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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