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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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친구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1.5.21.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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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친구>를 보았다
<JSA> 열풍이 채 식기도 전에 친구라는 영화 한 편이 전국을 들끓게 하고 있다.
한 달만에 관객 500만 돌파를 해 냈고 700만 정도는 무난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부 열혈 팬들은 1000만 돌파운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맥을 못 추고 쓰러지는 걸 보면 그 긴 설움의 날이 이제 가고 바야흐로 한국영화중흥의 시대가 도래한 듯 하다. 분명 반가운 일이고 희망적인 일이다.
지금 <친구>는 그 정점에 있다. 분명 친구는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상업적 성공은 물론이고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서나 부산사투리가 대유행이다.
아시다시피 <친구>는 13살 어린 시절부터 만난 4명의 친구가 76년부터 96년까지 겪는 사랑, 우정, 배신 등을 그린 영화이다.
필자 역시 같은 시기를 산 사람이라 그런지 <친구>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괜히 없어진 낡은 교복과 교련복이 입고 싶어졌고 롤라장에 가면 그 시절 그 여학생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가슴 설레었다. 급기야는 유오성과 장동건이 멋있어 영화를 본 다음 날, 난 비장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까까머리로 밀어 버렸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중간에도 빨려드는 듯한 마력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뭔가 잔인하다는 느낌과 우정이 저런 걸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 바로크적이라는 비장미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의 향수와 추억을 넘어서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확실히 가진 건 다음 날 빡빡 민 머리가 스산하게 느껴질 때였다. 한국적 휴먼 노스텔지어라는 영화가 신파로 느껴지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친구>가 말하는 친구는 누구인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스토리를 보면 깡패들 얘기가 많이 나온다. 실화에 근거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건 여러분도 아실 것이다.
주인공 유오성은 칠성파의 중간보스급이고 장동건은 칠성파가 범죄와의 전쟁으로 보스가 잡혀간 상황에서 성장한 군소 폭력조직의 행동대장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화를 지나치게 사실과 연관해서 볼 필요는 없겠지만...
<친구>란 영화에서 말하는 의리와 우정의 실체를 알아보려면 조금의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칠성파는 김태촌으로 유명한 서방파와 호국청년연합회라는 이름을 내건 호청련 등과 함께 국내 3대 폭력조직에 해당한다.
이들은 빠징꼬 업계의 대부라는 정덕진씨의 비호와 배려를 받고 성장했으며 엄삼탁씨와의 연계설로도 잘 알려진 조직들이다. 칠성파는 야쿠자와 연계되어 있었고 범죄의 세계화를 도모한 조직으로도 알려져 있다. 결국, 폭력조직의 끝은 우리사회의 비리와 그 비리의 정점인 정치권과의 연계 등을 통해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선거 등을 기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에서의 준석과 동수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가지 못하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타 조직원을 살해하며 아둥바둥 성장해 가려던 사람들이다. 바로크적 비장미의 현실은 결국 이런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에서 동수역의 장동건이 죽기 직전 부하에게 했던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니는 친구 있나?"
이 말은 우리를 집단최면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극적인 면이 있다. 나 역시 정말 나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 자문해 보았다.
니.... 친구 있나? 
우선 죽은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4명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더 넓게 생각해 보니 80년 이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져간 많은 이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특정한 친구를 위해 죽어간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나와 직접 연고가 없는 이들이 더욱 많지만, 나는 이들이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조그마한 이권으로 목숨을 뺏고 뺏기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친구로 또는 우정으로 포장하는 건 아닐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간 팍팍한 현실이 더 밉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화적으로 보더라도 <친구>에서 말하는 친구보다는 <JSA>에서 서로 총을 겨누었던 남북의 병사들간의 짧고 비극적인 우정이 훨씬 더 보편적인 친구의 감성에 와 닿는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필자가 너무 정치적, 사회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는 탓일까?
<친구>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곽경택감독과 출연 배우들 모두는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오래 전 친구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전화 한 통 건네기를 바랬다고 소박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의도가 이렇듯 순수했다하더라도 영화를 필름이 아니라 문화로써 이해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적어도 그 파급력이 지금처럼 엄청난 상황에서라면 더 더욱 그러하다. 단지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다는 등의 상투적인 비판차원이 아니다. 물론, 18세 이상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이지만, 어쩌면 그러기에 더욱 위험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함께 있을 때 두려울 것이 없고 미안할 것도 없는 그 <친구>는 우리가 어디선가 많이 본 친구들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로 대표되는 하나회의 친구들이 그러했고, 시도 때도 없이 따따부따 나발을 불어대는 김영삼 선생님의 상도동 아저씨들이 그러했다. 물론, 김대중 선생님도 그러했다.
그들은 친구간의 우정과 의리, 배신 등으로 한국현대사를 얼룩 지웠다.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과학적 분석도 불가능하게 했던 슈퍼 울트라 메가톤급 논리인 우리가 남이가(남이야, 남이사 등의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역부족이다. 어쨌든 필자는 엄연히 그들과 다른 남(태우)이다) 앞에 서면 이러한 의혹은 더욱 더 커진다.
<친구>는 혈연, 지연, 학연을 떠나 개인이 버티기 힘든 우리 사회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늘진 집단 만능주의를 다시 한 번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그 흔한 깡패라는 소재로 집단최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노스텔지어로 포장된 그릇된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것일 때에 우리는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깡패들의 욕망실현에 박수를 보내는 위험한 군중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다른 친구들
<친구>를 보며 떠오른 영화들이 있다. 우선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떠올랐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고교시절 친구가 실수로 사람을 죽여 감옥을 다녀온 후 깡패가 되고 자신은 형사가 되고 깡패를 동경하는 미래 없는 자신의 동생이 그의 부하가 된다. 동생이 다른 폭력배들과의 싸움에 칼받이로 동원되어 죽고 자신은 친구와 결투를 벌여 친구를 죽이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이 영화는 폭력세계를 아주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형사는 형사대로, 깡패는 깡패대로 자신들이 왜 그러한가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고교시절의 절친한 친구가 반대의 입장이 되어 서로를 미워하며 급기야 죽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폭력에 대한 동경이 결국은 현실에서 얼마나 무모하고 의미 없는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동생(류승범 분)이 죽는 장면은 <친구>에서 동수역의 장동건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잔혹하다.
적어도 이것이 폭력세계의 현실이 아닐까 한다.
<게임의 법칙>이나 <초록 물고기> 등의 영화에서도 가진 것 없는 한 젊은이가 폭력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는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우리가 이러한 영화들을 반공영화류의 국책 계몽영화로 생각지 않는 한 <친구>에 대한 씁쓸함을 지워 버릴 수 없다.
<친구>와 유사한 영화로 <Once upon a time in America>가 있다. 이 작품도 어린 친구들이 마피아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사랑과 우정, 배신 등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는 원래 3시간 45분 짜리 인데 흥행 때문에 제작사가 86분을 짤라내고 2시간 19분물을 개봉하였다고 한다. <친구> 역시 2시간 35분 짜리인데 40분이 잘려 나가 1시간 55분 짜리 영화가 되었다. 두 영화 다 감독이 못 보여준 부분이 많은 영화이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는 원래 열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경제공황에 초점을 맞춘 버전(우리나라에 소개된 버전)과 갱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버전, 성의 혼란기를 통과한 20대에 초점을 맞춘 버전 등의 네 가지 버전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 여덟 가지 버전은 사라졌다고 한다. <친구> 역시 감독판이 나오면 또 다른 측면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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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upon a time in America> |
그러나, <Once upon a time in America>는 미국 암흑가의 전성기였던 20년대부터 40년대 초반까지는 물론이고 패밀리의 몰락과 함께 본거지를 떠난 쇠락한 전직 갱이 귀향해서 겪는 후일담까지 서술함으로써 정치세력과 관계를 맺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범죄집단이 장기적으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까지를 보여 주고 있다.
단순한 갱영화의 차원을 넘어서 그 시대의 사회상과 범죄의 본질을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친구>는 추억과 향수를 통해 친구를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관계의 부정적 측면을 너무나 많이 노출시켰고, 그들이 폭력에 의존하게 하는 광기 어린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데에도 부족하지 않았나 한다. 결국은 스타와 안일한 상업주의에 기댔다는 혐의를 지워버리기 힘들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를 Once upon a time in Korea가 아니라 옛날에 부산에 깡패들이 살고 있었데이로 만들고 만 것이 아닐까? 결국 친구는 향수를 자극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한국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사회성이 결여되었다. 시대정신과도 거리가 너무 멀다. 진정한 우정과도..
우리는 시다바리가 아니다!
<친구>가 그리는 그릇된 우정은 한국영화의 신파 멜로와도 맞닿아 있다. <친구>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되듯이 기존의 한국영화의 멜로공식에 입각한 영화들(<편지>, <약속>, <선물> 등)도 모든 사회적 관계가 무시되고 오직 둘 만의 사랑만이 절대 절명의 가치라는 허황된 관념을 유포하며 우리를 매료시켰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가치들의 시다바리가 아님을 선포해야 할 때이다. 장르가 어찌됐건 현실의 모습을 정확히 해석한 상황에서 영화적 상상력이 동원된 그런 감동적인 영화를 기대하고 싶다.
아직 한국영화의 중흥을 얘기하기에 부끄러워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여고동창생> 노래를 들으며 <고교얄개>가 보고 싶은 것도 괜한 이유만은 아닐 듯 싶다. 다음엔 <친구>의 감독과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와 연출력을 진정한 친구간의 우정을 그리는 데 쓸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친구는 오래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고 했다. 깡패는 폭력을 쓰면서 못된 짓을 하는 무리를 일컫는다. 이 둘의 함수관계를 난 아직 풀지 못하겠다. 그나마 <친구>에서 잊히지 않는 것은 아마 이런 사람들에게 바쳐져야 적합할 듯 싶은 다음의 대사 하나가 아닌가 싶다.
대우자동차노조원 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한 경찰과 90년대 초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에게 식칼로 응수한 정주영 일가, 변칙상속의 귀재 삼성그룹, 병역비리와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는 기득권 층, 국민을 위한다던 국민의 정부 이들 모두에게 이 말을 던지고 싶다.
마이 무우따 아이가? 고마해라!
민원인
대구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남태우
(difa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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