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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여성들의 포르노, 야오이를 아시는가 (2)



 도대체 이유가 뭐야.


 억압된 성구조에 대한 반발심리


여기서 본기자, 지난 세월 오랫동안 묵혀왔던 열 좀 내줘야 겠다. 


박진엉이 누드 화집을 냈을 때 모 방송국 9시 뉴스에서까지 그 사건을 다루었던 것이 기억하시는가. 대학교수나 정치가라면 모를까 연예인이 낸 누드화집이 일대 이슈가 됐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본기자와 주변 엽기걸들은 박진엉의 누드에 눈을 뒤집고 환장했다. 


분명히 밝히지만 박진엉은 본기자의 타입이 전혀 아니올시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집어진 이유가 뭔가. 


그렇다. 본기자 카이, 굶주렸었기 때문이다. 씨바, 척박한 우리네 성문화풍토에 절로 솟구치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여성들이라고 남성들의 누드를 보는 게 즐겁지 않을 리 없다. (그렇다고 대로변에서 아무나 내리지 말라. 우리도 일정한 수준을 원한다) 


그러나, 이 넘의 사회는 성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남성들에게만 자연스럽게 있는 것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왔다. 대중문화에서의 성적코드는 철저하게 남성에게 맞춰져 있었다는 게다. 남성이 성에 있어 소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일종의 쇼크였던 게다. 바꿔 말해 항상 성의 대상이자, 객체가 되어왔던 여성이, 그동안의 남성중심 성오락에 그만큼 불편함과 불만족을 느껴왔다는 반증인 게다. 그저 남자연예인이 벗었다 것에 그렇게 환호하고 헹가래를 친 것은. 


남자넘들은 속셈학원 가는 길 담벼락에 붙은 종이쪼가리를 보며 (정갱이와 정갱이 사이, 뼈다귀와 살덩이가 타는 밤, 뿡 1,2,3..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다. 그 시절이 그립지 않은가...) 일찍부터 다종다양한 성적 문화를 향유해 왔으며, 역 앞에 수시로 전시되는 古書들을 쉬는 시간에 돌려보며 다음 수업시간을 상쾌하게 맞아들이곤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여성들, 우리는... 없었다. 씨바... 쫌만 참자. 참아 보자.. 라며 법적으로 모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성인식을 기다렸건만... 오오, 사회는 또 한 번 손을 들어 불쌍한 뇬들의 마빡을 후려쳤던 것이다. 


원하시는 품목이 없습니다.


그렇다. 원하는 품목이 없었다. 여성들은 언제나 대상이었을 뿐이다.  


자, 한 남자가 또 한 남자를 강제적으로 취한다. 야오이 섹스는 거의가 일방적인 의지로 강제된다. 후에 둘이 함께 즐기더라도 우선 시작은 그렇다. 그 뿐인가. 첫 섹스가 치러진 장소는 피와 정액으로 난장판이 되고 교성이 아닌 비명이 온 방을 울린다. 합의된 섹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남자가 당한다? 남자가 고통스럽다? 본 기자의 조사에 의하면 이 부분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는 이들이 많았다. 


이런 여자들은 모조리 미친뇬으로 보이시는가. 그게 아니라는 건 뒤쪽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새로운 것에 대한 신세대적인 취향


주류의 상품화된 이성애의 사랑타령은 신물나여.. 







야오이에는 이런 식의 패러디도 많다.
슬램덩쿠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지..


누가 사랑은 영원한 시요, 노래라고 했던가. X세대로부터 N세대까지의 신세대들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본능적으로 남자가 좋지만 너무나도 획일화된 애정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 -가요,영화, 드라마, 만화, 소설....는 이미 식상해져버렸다. 그렇다고 고전이나 사회문제에 몰입하기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대안은 새로운 것. 


사랑은 역시 가장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문제로 포기할 수 없는 주제지만 그 형식을 약간 비틀어 보면... 동성애...? 그렇다면 현해탄 너머 애들이 미리 길을 닦아준 야오이라는 세계가 눈에 확 들어온다. 


대중문화에 의해 일찍 이성애에 노출된 신세대는 또 그만큼 그것에 일찍 식상해졌다. 낯설음은 그들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이다. 


 성에 있어 수동적 객체로 훈련 받아 온 여성들의 안전 거리 확보


기사 작성 위해 수집한 야오이 소설을 읽어내려 가던 중 160여편째 쯤이리라. 대단히 색다른 이야기(짧은 단편)가 끼워져 있었다. 여자 고등학교 점심시간, 한 여학생이 교사 옥상으로 올라가고 뒤이어 교사가 따라 올라온다. 그리고 빠굴씬이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뭐, 원조교제라든가 사제지간의 도의에 어긋난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포르노였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그러나 그 전에 읽었던 야오이 글이 그보다 강도가 약했던 건 결코 아니었으며, 비틀린 관계 또한 만만치 않았다(의부 형제간은 약과고 만화로는 쌍둥이 형제간이나 의붓아버지와 양아들, 그리고 처남매형간이 커플을 이룬 경우 간혹 있었다) 그 때까지 읽었던 160여 편이 이 보다 음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닫고 굉장히 놀랐다. 


채찍을 쓰거나 침대에 손을 묶고 관계를 맺는 가학적 장면도 곧잘 나왔지만 역시 느껴지는 비정상적 음란함은 훨씬 덜했다. 10대 중반부터 포르노라든지 야화에 자연스럽게 접하는 남성들과는 달리 언제나 수동적인 성 객체로 훈련받아 온, 혹은 상업적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주입시켜온, 여성은 노골적인 남성 중심의 성오락 장르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인데 성적 흥미나 호기심이 없을 리 만무하다. 야오이는 교묘하게 두 가지를 충족시키며 젊은 여성들을 이끈다. SM적인 요소와 노골적인 성 묘사로 강렬한 듯 하지만 받아들이는 자극은 훨씬 완화되어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의 행위니까. 


 이상적 이성형에 대한 욕구의 동시 총족 


포르노에 양념처럼 끼어 있는 레즈섹을 보았는가. 개인차가 있겠지만 남자들은 별 재미를 못 느낀다. 


오히려 레즈비언의 섹스행위에 자신이 끼어 드는 상상을 했으면 했지. 보이는 행위에 자신이 대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오이는 포르노와는 조금 다르다. 결국 섹스행위가 둘 사이의 예외없는 종착점이고 그 비중 또한 높은 건 사실이지만,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상적 남성에 대한 소녀적 취향의 갈구이다. 


십대 후반~이십 대 중반의 여성들에게 물어 보라. 언뜻 다양한 듯 하지만 정확히 두 갈래로 갈라진다. 바로 위에 언급한 섹시가이 과 꽃미남 이다. 둘 다 좋아하는 애들도 있다. 


야오이는 한 방에 끝낸다. 


 여성이 즐기는 언더 섹스 문화 장르의 부재 


자료 수집 차 부탁한 야오이 팬들의 멜 중에 상당수가 개인적으로는 야오이가 포르노라 생각하며 역시 포르노로서 즐긴다는 의견이었다. ( 이 의견은 십대보다 이십대에서, 그리고 제법 연륜이 쌓인 층에서 나왔다. ) 본기자가 생각하기에 상업적인 면이 없다는 점과, 생산층과 소비층의 경계가 거의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포르노와 분명 다르지만, 포르노 대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성적 욕구를 타겟으로 한 장르는 철저히 남성 위주로 생산, 유통, 소비되어 왔다. 성오락 장르에 있어서 젊은 미혼 여성은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 야오이는 그 틈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야오이는 야오이일뿐.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남성들 중 이런 생각을 하는 넘들이 반드시 있으리라 본다.


" 미친 뇬들 아냐.." 


이제 그에 답하자.


야오이는 분명 정상적인 문화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적극 권장할 것도 못 되고, 여성의 사회적 성적 억압을 타파할 매개로서도 부적격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정상이라면 남성들이 보는 뽈노의 비정상성, 딱 그만큼만이다. 야오이를 즐기는 뇬들. 그래 미쳤다. 그러나, 그 뽈노를 즐기는 넘들이 미친만큼만이다. 



< 뽈노는 표현의 자유도, 인간의 해방도, 아무 것도 아니다. 뽈노는 전적으로 저지되어야 한다 >


C. A. 맥키넌이 반포르노 제정법 추진이라는 깃발을 흔들어대며 이렇게 부르짖을 때 대다수 남성들은 뭐라 했냐? 



놀고 있네. 뽈노는 그저 뽈노여. 뽈노 유통된다고 세상이 더 타락한다고? 우끼고 있네. 나, 어릴 적부터 뽈노 봐 왔고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며 학교 잘 다녔고, 대인관계 정상적이고, 애정관계 멀쩡하고 현재 업무 잘 수행하는 건실한 넘이여. 한때의 호기심이고 그건 자연스런 현상이여...  


옳은 말 되겠다. 건강한 성인남이라면 생활에 색기활명수로 그럭저럭 부담 없이 뽈노를 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젊은 뇬들은 프랑스시집이나 윤동주시집이나 끼고 편지, 약속이라는 영화나 보며 어머, 오빠, 넘 슬퍼여~라며 느그들 어깨에 기대고 훌쩍이는 취미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좀 저질스러운 걸 즐긴다고 색녀 취급하지 말란 말이다. 


이 땅의 젊은 뇬들이 남성 느그들 뽈노 본다고 색에 발광한 미친 넘들로 보든? ( 물론, 삼 시 세끼 굶어가며 날 밤 새우며, 이너넷 디비는 넘이나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넘들은 그런 소리 들어도 싸다. ) 여성들 취향엔 안 맞지만 나름대로의 즐기면서 살라고 내비둔다. 


남성, 느그들이 뽈노도 보고 기형도 시집 펼쳐들고 논문도 작성하듯, 야오이 보는 뇬들도 야오이 보다 신갱숙 책도 보고 졸라 수준 높은 영화도 보고 클래식도 듣는다. 느그들이 밤에 뽈노 보고 낮에 초건전 남아로서 맡은 바 책무 다하듯, 뇬들도 야오이 보고 초건전 여아로서 맡은 바 책무 다한다.


알겠냐? 


뽈노가 뽈노일 뿐이듯, 야오이는 야오일 뿐이다. 


 벗트, 그러나


벗트, 그러나.


야오이를 무작정 즐기는 일부 뇬들에게도 본기자 할 말 있다. 야오이 팬들 중 일부는 야오이를 허용하는 일본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 강대국이라고 한다. 과연?


야오이가 소녀만화시장의 50%를 차지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곳에서 주류의 대열에 합류해 있을 거라는 오해들 하고 있다. 일본의 만화시장은 철저히 상업성에 바탕을 두고 성장해온 곳이다. 일본 사회가 야오이라는 장르에 관대해서 그렇게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결코 아니다. 또한 개인의 성적 자유에 대한 존중에 기반을 두고 그런 장르가 생성된 것도 아니다.


단지 사랑을 증폭시키는 장해(신분차, 전쟁 등등)가 시대상 먹혀 들지 않는 지금, 긴장과 갈등의 또 다른 소재, 대용품으로 취했을 뿐이다. 일본 특파원 맨뒤님의 친구(야오이 오타쿠)가 했다는 다음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지금이야 컴퓨터 통신이나, 사회적으로 많이들 보니까 조금 좋아졌지만 한 때는 편지나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맘이 맞는 친구와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일본특파원의 취재에 응한 여성들은 한결 같이 야오이라는 걸 알고는 있으나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부인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서점마다 야오이 코너가 있고 기본 독자층도 형성되어 있지만 역시 그곳에서도 주류장르로 대접 받고 있지는 못한다. 그곳에서 야오이는 여성들이 즐기는 포르노이며 문화의 third party라고 인지되는 정도다. 지난, 2년 간의 문고, 코믹판의 상위 랭킹 20 위안에서 야오이 작품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 그런 헛소린 하지 마라. 


야오이 팬들이여. 사회가 너희를 부당하게 소외시키고 못살게 구는가? 우선 야오이가 문학인지 포르노인지 확실히 구분하여 즐겨라. 문학이라 생각되면 문학의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고(문학은 글이 아니며 이야기도 아니다) 부단히 비평해서 문학의 기준에 미달하는 것들은 과감히 도태시켜 버리고, 포르노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포르노로서 즐기고 문학이란 포장 뒤에 숨지 마라. 그리고 그것이 포르노라면, 미성년자들에 대한 고려를 확실히 해라.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해갈시키는 포르노는 그 폐해에 대한 논란을 떠나 그 필수불가결에 대한 확고한 인식은 남성들 사이에 이미 광범위하게 자리잡아 이미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자신들의 성오락인 포르노에 대해 관대하게 인정하며, 소수 젊은 여성들의 저급문화장르는 무조건 사회해악으로 치부하고 본질적인 혐오감을 드러내는, 그리고 아예 그 존재조차 고찰해보려 하지 않는 태도는 파쇼다. 


포르노를 성의 정치적 표현으로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남자들이 던지는 <포르노는 포르노일 뿐이다> 라는 말은 여성들에게도 해당됨을 왜 모르는가 말이다. 물론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가 지니는 문제점을 제대로 정화하지 못하는 뇬넘들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거기에 넘과 뇬에 대한 고정된 시각차를 넣어서 안된다. 


본기자 야오이 팬 아니다. 야오이를 옹호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길게 야오이 이야기를 한 것은, 야오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 성문화가 여성 전체에 가하고 있는 폭력과 억압을 까발리고, 이 압제의 사회구조에 본기자 카미카제가 되어 정면으로 돌진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온갖 권력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소시민 약자로만 생각하지 말고, 니들 자신부터 뇬들에 대해 문화적으로 무의식적 압제를 가하는 성문화에서의 지배계급이라는 걸 깨달아라. 이 남자 노무 쉐이들아 !


마지막으로, 본 카이 기자에게 메일 쎄릴 넘들. 잘 생각해보고 쎄려라. 본기자 만만치 않다. 엽기성이 본지 총수와 공화당 총재 허옹 정도면 모를까 어설픈 도전은 사양한다. 하긴 본지 총수의, 그분의 엽기성은 나로서도 따라갈 수 엄따. 참고하라.  다만, 본 기자의 매력에 매료된 넘들의 멜이라면 기꺼이 수용한다. 졸라!


 



- 대한민국 젊은 뇬들의 명랑엽기색기성문화 
창달을 위한 카미카제, 이 시대 진정한 도발적
팜므파탈 카이 ( drydesert@lyco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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