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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이란 이름이 처음 각인된 건, 1991년 낙동강에 사람이 조금만 먹어도 죽는다는 독극물인 페놀을 방류한 사건 때였다. 뉴스가 워낙 떠들썩했고 사람들이 많이 분노했었지만, 어느 순간 페놀 ‘방류’가 ‘유출’로 바뀌고 실무급 관리자가 감옥을 가는 선에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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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페놀폐수를 방류하기 위해 설치한 비밀하수구

(사진 출처: <한겨레> 1991년 3월 22일. 김선규 기자)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여력이 없는 거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굳이 낙동강 물을 취수원으로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은근한 반감을 표시했다. 수십 년간 변화가 없던 맥주시장의 판도가 뒤집어져서 그때부터 오비맥주는 더 이상 시장에서 1위를 하지 못했다. 아주 망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만 대한민국엔 그보다 더 이상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가끔 빵살이를 했던 실무관리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했다. 혹시 억울한 마음이나 약간의 죄책감이 마음을 움직여 다른 기록물이라도 남기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아마 아직 끈이 이어져 있을 터라 쉽지 않은 일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업이미지가 다른 것 같지만 그 후로 두산하면 페놀이 생각났다.


두산은 파카한일유압에 입사하던 2006년까지 나와 상관없는 이름이었다. 파카한일유압에 입사하자마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억눌렸던 사람들이 한일유압이 파카에 인수되는 어수선한 틈에 터져 나왔다.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자본의 입장은 완강했다. 노동조합을 원하는 사람들의 잔업거부와 특근거부로 생산량에 차질에 있었다. 애초에 주야간 맞교대와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정상생산량을 맞출 수 없는 구조였던 게 문제였던 것 같은데, 경영진은 노동조합을 원망했다.


파카한일유압으로부터 굴삭기에 들어가는 유압 컨트럴밸브를 납품받던 현대중공업과 두산 인프라코어의 담당자가 나섰다. 지네가 일단 급하니까 노동조합과 각을 세우지 말고 원청사의 생산라인에 차질을 주지 말 것을 요구했다. 물량공급에 차질을 빚은 중국의 부품 수입업체 사장은 현대와 두산만 고객이냐며 공장 정문에서 누어 난동을 부렸다. 그때가 좋았다.


덕분에 쉽게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즈음 경주에서 노동조합을 만든 노조 창업자는 행방불명 신고가 된 후 야산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돼 자살처리 되었다. 인천 어디의 중장비 업체의 노조위원장은 인사관리와 술자리에서 친분을 돈독하게 쌓은 다른 직원에게 '우발적으로' 식칼에 복부를 찔려 죽었다. 사제폭탄도 우발적이니 법적으로 틀린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노동조합을 인정해준 회사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경영진에게 제대로 갑질을 해준 원청사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납기지급인 물량을 맞추기 위해 일요일인 12월 31일 출근해서 1월 1일 아침에 퇴근한건 수당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순진했다.


파카한일유압을 화성의 외국인 전용공단으로 옮기려던 계획이 변경되었다. 노동조합과 협의를 해가며 공장을 옮기려면 애초의 계획에서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 너무 많아진다. 경영진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지 노동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취등록세와 법인세를 면제해주고 소득세도 깎아 주는 공단의 땅을 놀릴 순 없어 파카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입주시키기로 했다. 원청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담당이사와 납품처를 파카한일유압에서 법인이 다른 파카 코리아로 옮기기로 했다. 파카한일유압법인에 대한 경영진의 배임행위를 묻는 질문에 김엔장 변호사들이 내놓은 답변은 ‘원청사인 두산 인프라코어의 요청’이었다고 말했다. 서면자료도 제출한 걸 보면 아주 없는 말은 아니다.


전 직원의 약 60%, 197명 중 113명을 정리해고.jpg  


2009년 구조조정계획이 발표되었다. 113명을 잘라내기로 했다. 사원의 60%에 가까운 인력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구조조정 계획이 방송을 탔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도 나오고 <피디수첩>에 방영되었다. 방송 후 구조조정 인원이 32명으로 줄었다. 우리는 끝까지 가기로 했지만 중간에 일부는 회사랑 합의금을 받고 발을 뺐다. 남은 사람들은 대법원까지 가서 졌다. 손석희씨는 MBC를 떠나 JTBC로 옮겨갔고, <피디수첩>의 피디들도 잘렸다. 그 지랄 같은 시간을 딴지일보와 함께 보냈다.


얘기로 돌아가, 113명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고 투쟁을 선택한 사람들은 거점을 만들기로 했다. 공장 안마당에 천막을 치기로 했다. 개인들의 작은 힘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상징과 거점은 중요하다. 상징과 거점이 중요하단 건 노조원들보다 노무관리자들이 더 잘 안다.


천막을 칠 만한 자리에 트럭과 상용차들을 주차해놓았다. 상급단체의 집회지원을 받았다. 집회신고를 했고, 경기도 인근의 노동조합에서 집회지원을 나왔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노무관리이사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대리가 경비실 지붕위에서 캠코더로 집회장면을 촬영했다. 촬영된 영상이 어디까지 보고되고 공유되는지는 모른다. 서울 집회에 참석한 일을 인근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가 아는 척 하는 걸 보면 꽤 넓게 보고되고 공유되는 것 같았다.


집회가 끝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공장 안마당으로 빽빽하게 들어섰다. 쟈키로 차를 살짝 들어 올리고 바퀴 아래마다 앵글로 짠 바퀴달린 보드를 깔았다. 바다에 화물차가 떠내려갔다. 화물차가 배처럼 떠내려가는 모습으로 피플파워를 보여주었다.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리던 사람들도 순간만은 고무되었다. 그 자리에 천막을 세웠다. 촬영을 하던 대리는 얼굴이 노래졌다. 그냥 몰려왔다 리본이나 묶고 갈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던 거다.


대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촬영하던 캠코더를 놓치 않은 걸 보면 순간적인 기지로 충성심을 보고 하려는 것 같았다. 노동부에 가면 지역 노동조합의 간부들의 이름과 사진이 있는 조직도가 있다. 노무관리를 하는 사기업의 관리자들에게도 공유되는 것 같았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욕을 했다. 하다 보니 흥에 겨웠는지 이름 아는 사람들을 지명하며 가족 욕을 하고 두루두루 저주와 모욕을 한다.


그러다가 욕 배틀이 붙었다. 서로가 진심으로 열이 받은 것 같았다. 원래 싸움이 벌어지면 그렇다. 싸움이 진행되면 처음에 싸웠던 이유와 명분보다는 감정만 남기 쉽다. 열이 받은 노조 간부가 금속노조 조끼를 벗었다. 원청사인 두산인프라코어 작업복이 나왔다. 캠코더와 CCTV 앞에서 충성심을 어필하던 대리는 다시 얼굴색이 바뀌었다.


90도로 몸을 숙이고 사죄인사를 한다. 어께에 힘을 주고 약간 거만한 모습으로 두산인프라코어의 노동자는 떠났고, 대리는 뒷모습에다 연신 굽신거렸다. 풀이 죽은 모습으로 사무실로 들어간 대리의 얼굴을 보며 너나 나나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캠프파이어 장작을 쌓아 놓은 것처럼 엇갈리며 서로를 누른다.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동안 사정을 담은 선전물을 인쇄해서 여론을 만드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것만큼 원청사에게 호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은 교통비가 많이 들어 가까운 인천의 두산인프라코어에 선전물 내용이 바뀔 때 마다 자주 갔다. 선전물을 받아주는 사람은 그래도 수원보다 많았지만 그렇게 큰 호응과 관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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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은 딱하지만 파카한일유압이 아닌 ‘파카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부품이 납품된다는 이유로 라인을 세울 수는 없었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고 운이 따르지 않았다. 더 운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 잊히진 않겠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즘 다시 그 이름을 듣는다. ‘사람이 미래’라는 말 대신 ‘도산이 미래’라는 비웃음과 함께 정리해고 소식이 들린다. 입사 1~2년차도 희망퇴직을 시켰는데 여론이 나빠지자 다시 불러들이고 3년차부터 내보낸다고 한다. 찍어서 권유하는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하루 종일 벽보고 앉아있는 업무지시를 받은 사람도 수십 명이고, 급하게 잘라내는 바람에 생산 공백이 생겨서 다시 계약직을 채용한단다.


제대로 된 기업인이라면 ‘두산맨’으로 정신교육을 받은, 자식 같은 젊은이들을 내보내는 일에 대형 참사와 같은 충격과 고통을 받는다. 그 후유증인지 친자식을 승진시켰다. 아니면 파카한일유압의 대리처럼 하기 싫은 일을 잘 수행해서 포상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대리는 지금 차장인가 부장인가로 승진해있다. 엊그제 같은데 10년이자 지났다. 시간이 빠르고 인생이 짧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젠택과 쌍용차의 시공간적 관련성을 다시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세월호 참사 때 어떤 어머님의 말을 다시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시절 참사를 지켜보면서 안됐다는 생각을 그 당시만 하고 그냥 살아서 자신의 자녀에게 이런 일이 닥친 것 같다며, ‘당신들의 일이기도 하다’는 회한 섞인 부탁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를 누군가 한사람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증오를 돌리는 편이 속은 편하지 싶다. 세상 쉽게 살려는 사람들은 유병언을 타켓으로 삼았고, 생각을 조금 더 하는 사람들은 더 깊은 음모를 추정한다. 음모로 추정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참사의 짜임새는 엉성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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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의 죽음과 함께 세월호의 진상 또한 사라진 것 같다.


대형 참사는 한 개인의 음모와 악으로 일어나지 못한다. 개인 때문에 참사가 일어나기에는 우리의 사회는 고도로 분화되고 연결되어있다. 참사의 원인이 아주 나쁜 악당 때문이고 히어로가 무찔러 주면 좋겠다. 대형 참사는 악당 때문이거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참사가 진행되는 긴 과정 동안 아무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선박연령을 높이는 법을 만들어주고 로비한 사람, 불법개조를 승인해주고 개조한 사람, 부족한 급여를 과적과 절차를 밟지 않은 승객을 묵인함으로 벌충하려던 사람. 급여를 충분하지 않게 주고 비정규직 선원을 고용해서 직무에 대한 소명의식을 날려버린 회사와 직원들, 관례대로 적당히 못 본 척 넘긴 경찰과 공무원들, 자녀와 제자가 여행가는 길에 대한 안전여부를 검토하지 못한 부모들과 선생들, 부모들과 선생들에게 안전에 대한 생각할 여유조차 없게 몰아치는 사장과 교육부. 말 잘 듣는 교육만 받고 다르게 생각할 방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과 돈 계산만 바쁜 어른들, 척박한 풍토에서 겨우 나오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방송과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규정과 법을 치우치게 집행하고 판결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역할을 하고 브레이크를 걸었더라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거나 경미했을 수도 있다.


희생자인 학생들과 선생님 지금 피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는 부모들까지 거론하는 건 미안하다. 그분들에게 이 글이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침묵함으로써 어떠한 일에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저마다 자신이 겪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하면 세상이 조금씩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타인에게 대하는 조금은 부당한 대접을 자신은 결코 당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요원한 일이다.


두산의 경영진이 당하는 당사자에겐 참사와 같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건 그럴 수 있다. 그래야만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참사를 겪는 분들과 다음 참사를 겪을 분들과 지켜보는 분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결과는 형편없고 과정도 부족하지만 내 역량만큼의 몫은 했다고 생각한다.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고 그릇이 큰 사람들이 많다. 위로와 응원이 감사와 감탄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범우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