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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너희가 인도네시안 드림을 아느냐


2000. 4. 24 월요일
딴지 인도네시아 특파원 가람

아무도 인도네시안 드림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메리칸 드림, 조선족들의 코리안 드림과 같이 인도네시아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꿈의 나라인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정확한 통계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약 2만 5천명으로 추산되는 이곳 교민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사원들과 의류, 신발, 완구 및 이에 연계된 자재업체의 현지투자공장 한국인 직원들을 비롯, 코린도, 코데코 등 인도네시아에 뿌리를 내린 한국계 대형그룹의 직원들과 그 가족들, 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 가라오케, 수퍼, 부동산 및 비자 브로커와 그 관련자들, 유학생들, 그리고 기회를 찾기 위해 장기 체류하거나 잦은 간격으로 찾아오는 수없이 많은 출장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지 교민사회의 규모가 1만명 이상이면 교민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벌여도 충분히 먹고 살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는 그렇게 한국식당과 가라오케들이 성업을 하는 것이고 자카르타 벼룩시장, 교민세계, 소망, 좋은 느낌, 한울, 지구촌 인도네시아, 한인뉴스 등 적지않은 교민잡지들이 치열한 광고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리라. 심지어는 현지에 나와 있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생명보험을 팔면서 일년이면 300일 이상을 자카르타에 출장을 나와 있는 ING보험 영업사원까지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인도네시아라의 싼 인건비라는 투자환경이 한국기업들을 끌어들였지만 이젠 비대해진 교민사회 자체가 개인과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는 형상이다. 한인회, 한인부인회, 봉제협회, 신발협회, 가라오케 조합, 요식업소 협회 등 한인회 산하, 또는 업종별 모임은 물론 백여개의 고교, 대학 동문회의 모임이 주말이면 자카르타 일대의 골프장을 한국인들로 들끓게 하고 출신지역별 모임, 출신 군별 모임(해병, ROTC 등) 등이 교민지의 전화번호부를 가득채우고 있다.

 

이런 학연, 지연을 찾을 단서들이 애써 찾지 않아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 누구든 맘만 먹으면 전화 한통으로 얼마든지 자신을 이런 교민단체에 스스로를 엮어 들어갈 수 있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출장오는 대부분의 자재업체들은 애써 자카르타까지 와서도 인도네시아인들은 단 한 명도 만나지 않고 돌아가곤 한다. 

 

상주해본 나라는 인도네시아 밖에 없으니 섯붙리 다른 나라의 한국인 교민사회와 비교해 보려면 주제넘은 짓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교민사회의 규모면에서 인도네시아아는 일본, 미국, 중국에 이어 네 번째 쯤 되보이고, 고스란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지역에 대부분 몰려 살고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 같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에 많은 한국인들이 몰린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한국사람들이 보기에 만만한 곳이라는 점이 적지않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곳은 한국에서 종종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오성식같은 사람은 끈질기게 찐따를 붙으며 영어 연습을 할 수 있는 배울 것 많은 코쟁이들의 나라도 아니고, 아파트에서 애들이 좀 뛰어다니고 고성의 부부싸움을 하면 이웃집에 고발을 당하는 그런 나라도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알파벳을 채용하면서도 동사의 시제나 명사의 성구분이 없어 인니어로 소설 쓸 생각만 없으면 3개월만에 대충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쉬운 언어의 나라이기도 하고 이슬람이 전국민의 90%를 차지한다지만 중동처럼 술이나 여자구경하기 힘든 나라도 아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하던 사람이라면 같은 비용으로 호화생활의 초보단계쯤을 시작할 수 있는 낮은 물가와 인건비, 풍부한 물자가 한국인들을 현혹한다. 휘발유는 리터당 150원 수준, 가라오케에서는 양주 한병, 안주 하나에 15만원 정도 내고 아가씨에게는 7천원 쯤 팁을 주면되고 운전사, 가정부 2명 월급 다 합쳐서 10-15만원 쯤 주면 되니 취학연령 이전의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부부에게는 세계 3위의 공기오염지역이라는 것만 잊어버리면 거의 준낙원 쯤 되겠다. 

 

인도네시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카르타를 열대림에 둘러쌓인 작은 마을 정도로 생각할 지도 모르고 잡상인들로 번잡한 공항활주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허름한 중고차로 달려야 나오는 빈민가를 상상할지도 모른다. 자카르타에 처음 출장올 당시의 내 생각도 그랬다. 

 

 






 
 

 홍콩쯤 되냐구?  여기가 자카르타여.. 

 

 

 

 

 

 

그후 지사발령을 받게 될 때 뉴욕이나 동경으로 발령받는 동료들이며 선배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실은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미쯔비시 상사원 연봉에 맞추어 발령 즉시 수입이 6-7배로 뛰는 동경과 그에 못지않은 뉴욕은 소위 꿈의 발령지였고 그래서 대부분 회장의 눈도장을 받아둔 비서실 출신들이 지사원의 태반을 차지했다.

 

 

 심지어 그룹인사부장이 자기 자신을 뉴욕지사원으로 발령을 낼 정도였으니까. 이들은 대부분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럴듯한 부서의 팀장으로 영전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근사한 아파트를 그 사이 한 두 개 사둘 수도 있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랬다. 

 

 

그 외의 떨거지들중 그나마 그룹의 주력제품을 한다는 사람들이 홍콩이며 싱가폴, 프랑크푸르트, 타이뻬이 등으로 나가고 힘도 빽도 없이 해외지사 발령사실만으로도 성은을 입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호치민, 방콕, 뉴델리 등으로 내팽개쳐 졌는데 사실은 자카르타도 그런 지역중 하나였다. 

 

 

그 직장을 그만둔지 이미 오래된 후에도 내가 아직 자카르타에 남아 있는 것은 나 역시 인도네시아 드림을 꿈꾸기 때문일까?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 식당과 가라오케를 몇 개씩 거느린 사람들, 돈을 물쓰듯 하는 사람들과 같이 나도 버티다 보면 언젠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환상때문일까?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중반 3개월 정도 한국에 돌아가 영구귀국을 모색하던 당시 의류오더 수주와 시장조사 능력밖에 없는 내게 한국은 너무 터프한 곳이었고 나보다 날고 뛰는 사람들도 IMF의 엉덩이에 짖눌린채 지리멸렬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다.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사업상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그 시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돌아가 소위 지역전문가라는 우의를 활용하는 것이 차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었다. 

 

 

환상같은 것은 아직도 내게는 사치다. 

 

 

자카르타에 기적이 벌어진 것은 경제위기가 동남아에서 극성을 부리던 98-99년 사이였다. 그 사이 수많은 기업들이 이곳에서도 무너져 갔지만 그중 살아남은 한국업체들의 분전은 눈부신 것이었다. 빛덩이의 공장들이 살아나 빚을 갚는 것은 물론 공장확장에 들어갔고 새로운 공장들도 속속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그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아파트의 임대가격 인하에 따라 대부분 호화 아파트에서 보다 나은 문화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는 또 사정이 다르다. 한국업체들의 주축시장인 유럽의 제품 수입가격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수지를 맞추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고 그 여파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자재공급업체들에게 전가되어 불똥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독일바이어 전문공장들은 그 타격이 심할 전망이고 영국전문 공장들은 좀 덜한 편이다. 이런 상황은 Winter/2000 오더들이 선적되기 시작하는 올 하반기부터 보다 극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들 360여개의 한국인 공장들이 사실은 교민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기반이고 이들이 흔들리면 교민사회가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자카르타의 골프장과 야간업소들은 오늘도 여전히 한국인들로 흥청거리고 특급 이하 호텔들과 하숙집들은 출장온 한국인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올해 시장에 대한 예상이 나와 틀리든지 아니면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수교가 이루어지기도 전,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것이 어언 30여년. 

 

 

이제 자카르타에는 한국인들의 인도네시아 드림의 많은 성취가 보이지만 올해 역시 Sweet Dream이 계속될지, Indonesian Nightmare로 돌변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딴지 논설위원 겸 인도네시아 특파원   
가람 (philjkt@cbn.net.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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