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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이와이 순지 성공의 비결

2000.4.24.월요일
딴지 말초 영화부장 한동원

 

 

 

 

봄바람에 실려와 온몸을 적셔서 내 마음마저 투명하게 만들어 버릴 것만같은 달콤하고도 알싸름한 민들레 향기같이 다가온 그.. 

 

아아, <4월 이야기(四月物語)>를 보고 나는 이와이 순지 감독 옵빠에게 진정 경배를 바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각종 언론에서 그 가슴두근한 연정을 고이접어 봄바람에 살랑띄워 날리곤 했던 얘기들, 즉 "신세대의 우상", "수채화같은 감성", "사랑의 감정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 "여배우를 가장 예쁘게 보이게 할 줄 아는 감독", "일본 슈퍼 뉴 웨이브의 대표주자"같은 얘기들은 모두 이와이 옵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걸 여태까지 몰라 준 난 정말 바보, 바보같아.

 

이런 이와이 옵빠에 대한 삑사리스런 얘기들을, 따스한 봄볕의 아지랑이 같은 유혹에 못이겨 기지개를 켜고마는 한 마리 자그마한 고양이처럼, 난 정말 견디어낼 수 없었다. 

 

해서, 본 기자는 이와이 옵빠에게 팬 러브레터 한 장 고이 접어 보내는 마음으로, 그에게 전해져야 마땅했던 이야기들을 첫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잎에 실어 날린다. 

 

아앙, 설레어라..

 

 






 
이와이 옵빠..
 

 

 

그러면 이제부터 <4월 이야기>를 통해 새삼스럽게 발견해버린 이와이 순지 옵빠의 성공비결들을 독자 니덜에게 살며시 속삭여주께. 귀 쭁끗 기울여 죠야 돼? 아라찌? 

 

아앙, 약속해죠..

 

손가락 걸고 엄지 도장 꼬옥 찍어써? 

 

그럼 가께..

 

 




 
 

비결  반복학습법

 

 

 

이와이 순지의 영화를 보면 어쨌든 그 화면은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 "이와이 순지만의 감성영상" 머 이런거 때문이 아니다. 이건 얘의 영화가 단순암기, 단순응용의 지존만을 양산해내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훤히 꿰뚫고 있기라도 한 듯한 반복 학습법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4월 이야기>를 보면, 이러한 이와이 순지의 작전이 이미 궁극의 경지에 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한 시간이 쪼금 넘는 이 <베스트 극장>스러운 영화의 줄거리를 얘기하겠다.

 
 

"첫사랑 선배 옵빠를 사모한 나머지, 그를 따라 도꾜의 대학에 간 한 시골 소녀가 첫사랑 옵빠와 간신히 안면을 튼다. (끝)"

 

끝인줄 다 아는데, 왜 굳이 "(끝)"을 붙였냐고 물으신다면 본 기자, 이렇게 대답해드리겠다. <4월 이야기>란 영화가 거기서 딱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인제 뭔가 본격적인 얘기가 나오는가부다..하는 바로 그 시점에, 그만 딱 손털고 돌아서는 필로 화면이 시꺼매지며 버럭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 버린다는 얘기다. 

 

머, 이건 첫사랑의 설레는 느낌과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 열린 결론의 형식을 취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전에 무슨 얘기를 어떻게 끌어왔는가가 중요한 관건으로 부상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이와이 순지의 진가는 바로 이 대목에서 발휘된다. 그는 <러브레터>에서도 익히 봐 왔던 반복학습법을 통해, 그야말로 "열다섯 단어 이내로" 요약될 수 있는 줄거리를 가지고 60분을 채워낸다. 과연 놀랍지 아니한가.

 

독자 제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더 구체적으로 읊어보겠노라. 

 

주인공 우즈키(마츠 다카코 분)가 도꾜에 처음 이사해서 집 정리가 끝나고 나는 시점부터 이와이 순지가 준비해둔 반복학습법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학습과정은 대략 아래와 같다.

 
 

우즈키는 책을 고른다  우즈키는 책을 본다 우즈키는 영화를 본다 우즈키는 책을 고른다 우즈키는 낚시 동아리에 간다 잔디밭에서 허공에 낚시질 연습한다 우즈키는 책을 본다 우즈키는 책을 가방에 넣는다 우즈키는 자전거를 몰고 어디론가 간다 우즈키는 책을 고른다..

 

60분 내내 별로 내용도 없는 이런식의 우즈키의 사생활이, 예의 그 쾌활명랑하면서도 어리둥절하고 연약하게 우측으로 15° 각도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연신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달고 다니는 마츠 다카코의 얼굴과 함께 끝도없이 반복된다. 물론, 예의 그 "스미마셍~"은 내내 별책부록처럼 붙어 있고. 

 

 

당연히 관객들의 뇌리에는 영화의 장면과 여주인공의 얼굴이 팍팍 각인된다. 심지어는 봄지루함에 지쳐 졸던 관객들의 뇌리에마저. 마치 엠씨 스퀘어처럼. 

 

이것은 과연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마법"이랄 수 있겠다.

 

 




 
 

비결  배짱

 

 

 

이와이 순지의 성공비결중 또 하나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거라면 극의 흐름과는 별로 관계없이 로옹~ 테이크(long~ take, 컷 없이 저얼~라 오래 찍기)로 질릴 때까지 보여주는 두둑한 배짱이다.(주)

 

이미 독자제위께서 눈치를 까셨겠지만, 그 보여주고 싶은 거 중 일순위는 물론 이쁘장하고 앙징맞은, 최소한 그렇게 보이려고 절라 노력하는 여주인공의 얼굴이다. 그리고 뭔가 샐쭉 빼는 듯한 표정과 두손 고이 앞으로 모은 파리스러운 자세이다. 그리고 긴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다. 그리고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다.

 

 

덕분에 이와이 순지의 영화들(적어도 국내개봉된 두 영화)을 보면 움직이는 일본 미소녀 사진집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영화로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배짱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4월 이야기>를 통해 본 기자는 이와이 순지의 배포가 한 단계 더 파워업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중반쯤에 우즈키가 혼자 극장에 들어가 보는 난데없는 흑백 사무라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바로 그 파워업의 총아다. 

 

<이끼데이따 노부나가(生きてぃた信長)>라는 제목의 이 흑백 대하 칼쌈 영화는 오래된 필름인 척 하려고 화면에 비오는 효과를 넣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이와이 순지가 직접 만든 것이라는 걸 눈치까게 된다. 어쟀든, 영화속의 영화로서 상영되는 이 난데없는 사무라이 무사 영화는 67분 상영시간에 거의 5분이 넘게 보여진다. 

 

이건 무사시노(武藏野)에 사는 첫사랑 옵빠를 그리는 "우즈키의 무의식의 심층을 잡아내기 위한 소중한 장치"라는데, 그렇담 이와이 순지의 법통을 이어받아, 삼성동 사는 옵빠를 사랑하는 소녀의 "무의식의 심층을 잡아내기 위"해서 샘숭 모터카 광고만 한 10분 정도 보여주는 영화를 한 편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물론 이건 내 영환 내 맘대로 한다. 절라 심오한 의미 갖다붙이는 건 평론가 니덜이 한다하는 배짱과 영화에 플롯 따위가 뭔 필요냐. 이쁜 여자 이쁘게 실컷 보여줬음 땡이지하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완전히 구비되었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이런 면에서 확실히 이와이 순지는 배짱계의 간판스타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비결  자상한 배려

 

 

 

위의 비결들 말고도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결혼사진적인 소프트 필터를 주리장창 써대는 "은근과 끈기", 자전거, 스웨터, 긴치마같은 소품들 한 번 써먹으면 절대로 퇴출시키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가는 "의리", 이삿짐 나르기, 우산 빌려주기 같은 유머를 적당히 아쉬울 때 끝내지 않고 영화가 거의 <부담의 왕국> 수준이 될 때까지 계속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필의 "후덕함"등도 성공비결로 꼽을 수 있겠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지면이 좁더라도, 윤전기 잉크 많이 든다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이 성공비결 하나는 언급해야겠다. 

 

"늘 엉뚱한 이야기를 던지는 사오정 캐릭터에서, 제 맘대로 짐을 처분하는 이삿짐 센터 직원까지" 특유의 간지러우면서도 안 웃긴 오바 코메디를 하는 캐릭터들을 뜬금없이 낑궈넣는 "자상한 배려"가 그것이다. 

 

이게 왜 배려냐. 

 

이건 관객들로 하여금 웬지 절라 몸을 비비꼬고 싶게 하고, 보는 내가 다 쩍팔려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함으로써, 영화관람 도중에 자연스러운 근육이완과 혈액순환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고도의 장치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이 자상함, 이것이 바로 이와이 순지 성공 비결의 핵심인 것이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자, 지금까지 "문득 찾아오는 사랑의 기적을 마법처럼 빚어내"기만 하는 영화감독으로 알려져있던 이와이 옵빠의 숨겨진 성공비결을, 훈훈한 봄바람에 실려와 하늘을 온통 분홍빛으로 뒤덮는 벛꽃잎의 눈처럼 살며시 알아보았다. 

 

근데, 사실 이와이 옵빠가 자기 혼자의 매력만으로 성공을 거둔건 아닐꺼다. 이와이 옵빠 성공의 뒤에는 평소에 한국영화 얘기를 할 때는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아침 햇살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이슬과도 같은 침을 튀겨가며 역설하지만, "일본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와이 옵빠의 영화 앞에서는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에메랄드빛 바다와도 같이 넓은 가슴의 평론가 언니, 옵빠들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앞에서는 한 마리 꽃사슴같이 연약해지기만하는 국민감정을 생각해서 "세계 4대 영화제"같은 새로운 개념을 주창해가면서까지 일제영화수입을 막아온 문화간강부 옵빠덜의 공헌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이 옵빠덜 덕분에 우리는, 이와이 옵빠 영화들의 빽판들을 구해보면서 난 역시 남다른 영화광이야하는 가슴 벅차오르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이와이 옵빠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푸른 하늘높이 뜬 양떼 구름너머 저 머나먼 곳까지 키울 수 있었다.

 

아, 이 봄 햇살 찬란한 4월, 풀내음나는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 같은 이와이 옵빠의 영화를 보고, 나는 삶이 가르쳐주는 마법과도 같은 성공비결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벅차오르는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환희..

 

 

 

 

아앙, 기뻐..

 

 


- 딴지 말초 영화부장 한동원
(sixstrings@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