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안효영 추천0 비추천0






[탐구] 딱지의 세계를 알려주마 -1-

2000. 4.24 월요일
딱지 연구가 안효영

어느 새... 세월은 흐르고... 우린 절라 커버렸다. 이제 앤 챙기고, 마누라 봉양하고, 애덜 간수하느라 먹고 살기 바쁘다. 씨바... 언제 이렇게 후딱 커버렸는 지... 


그래도 말이다. 때론 우리가 잊지 않고 살아야 하는 소중한 삶의 모멘트가 있는 법이다. 글고 기억너머 저편 먼지 속에 묻혀가는 어린 시절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물건들도 있는 법이고.


바쁘고 힘든 현실 속에서 이제는 잊혀진 어린 시절, 코 찔찔거리는 우리 곁에서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소품들... 하교길 우리들 주머니 속 백 원짜리를 강탈했던  국민학교 앞 문방구의 수많은 불량식품과 놀이용품들...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쓴 성분을 알 수 없는 돌사탕에서부터 어린 동심에 사행심과 요행의 비정한 세계를 일깨워 준 다양한 뽑기와 형형색색의 오묘한 색깔로 어린 마음을 사로 잡았던 다마...


본지 이제부터 그 때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우리에게 소중했던 그 것들의 역사를 올곧게 정립하고자 한다. 본지 이전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역사책 속의 역사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역사를 이제 바로 기록하고자 한다. 고려청자만 역사인줄 아는 바보들이 때문에 명랑21세기는 멀기만 한기다. 


자,오늘은 그 첫 번째로 딱지.







이게 바로 딱지여. 
아련한 추억이 후벼지는감.. 

니들 중 어릴 때 딱지치기 안 한 넘은 엄쓸거다. 그 당시 얼라들의 여가선용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딱지는 동네 골목 구석구석에서 치열한 명승부와 장대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었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주머니 가득해진 딱지에 뿌듯해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너의 당당하던 모습.. 기억하냐? 


이처럼 우리의 유년시절 최고의 놀이였고, 때로는 생활 그 자체이기도 했던 딱지. 


이게 언제 맨 첨 나왔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허나 서른 조금 덜 된 먹은 본인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딱지들이 대여섯 살 나이 많은 넘덜이 갖고 놀던 거라는 점과, 이 넘덜 중의 일부는 그들이 더 나이 많은 넘덜로부터 획득했던 장물이라는 사실을 볼 때 최소한 25년 이상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건 적어도 내 나이 전후 5-10년 정도 연배들은 딱지와 함께 유년을 불살랐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 속에서 7, 80년대 아동유희시장을 독점하며 확산일로를 걷던, 그저 영원할 것만 같았던 딱지의 영광은 90년대에 들어서며 일본 걸 흉내낸 조잡한 로보트 장난감의 시판과 겔라그 등 오락실 게임의 등쌀에 떠밀려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잊혀서 기억 속에서만 남아버린 딱지.  제국은 붕괴하고 남는 것은 오로지 잊혀져 가는 역사 뿐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본지와 그 이름까지 비스무리한 딱지. 그 거대한 발자취를 되살리는 역사적 작업에 니덜도 벌써 숙연해질려구 하지 않는가.





딱지의 구조와 변천사


 재원


정통 딱지의 재원은 다음과 같다. 











 딱지 재원표 


    형태: 원
    지름: 3.5 - 4 cm
    두께: 0.1 mm
    중량: 측정한계 이하
    동력: 완전수동
    평균비행거리 : 80-100cm


(오차범위 5%)   



 


딱지의 형태와 크기는 아동심리학적, 인체공학적 연구의 산물이다. 만약 딱지가 원이 아니라 네모다랗게 각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애덜 특유의 과격한 게임법으로 인해 모서리가 모두 뭉개져 버렸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형태 손상을 미연에 방지하는, 애덜 눈높이에 맞춘 구조가 바로 원이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경기 중 부상방지를 위한 배려다. 딱지를 다 뺏기고 열받은 넘이 날카로운 딱지 모서리로 상대를 그어버린다면...  유혈난동이 일어나고 딱지는 언론의 차가운 시선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디자인이 바로 원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딱지가 카드류의 범세계적 표준형태인 사각형을 버리고 과감히 원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던 것이다. 한민족의 주체성과 지혜는 이처럼 딱지 하나에서도 녹아 숨쉬고 있었다.


딱지의 크기도 그냥 주먹구구로 나온 게 아니다. 


오랜만에 졸업한 국민학교를 찾아본 적이 있는가. 어린 시절 그렇게 넓고 크게만 느껴졌던 운동장이 작은 공터 크기 정도로 다가오는 놀라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놀라움을 다시 만난 딱지에서 느낄 수 있게 된다. 


딱지의 지름은 3.5 - 4cm. 그러나 실제로 지금 니덜이 딱지를 본다면 옛날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이건 딱지의 크기가 철저히 6-13세 전후 어린이의 인체구조와 딱지게임이 원활히 이루어 질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열 살 전후의 얼라덜이 딱지를 손바닥 한가운데에 놓고 손을 말아 쥐었을 때 완벽하게 은폐되는 크기! 바로 그 지점에 딱지가 있다. 이러한 딱지의 크기는 좀만 작아져도 그림의 식별도가 떨어지고, 좀만 커져도 은폐성이 떨어진다는 과학적이고 경험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제작된 것이다. 


아 놀라워라. 


  재질


딱지의 재질은 종이다. 이거 모르는 넘은 엄따. 때때로 플라스틱 등 비정상적인 딱지가 출현한 바 있고 현재도 비슷한 게 딱지라는 명칭하에 유통되기도 하지만 진짜 딱지는 종이여야만 한다. 포커게임용 카드의 경우도 진정한 명품은 종이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가.  


딱지는 이른바 똥종이 라고 불리우는 누리끼리한 재생지를 사용해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억하니.. 좀 빠삭하게 깎은 연필로 글씨 쓸 때나 지우개로 지울 때 확 찢어져 버리던 그 갈색 종이. 







      이게 똥종이 공책...

이처럼 딱지가 싸구려 재활용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쉽게 구겨지고 보존 기간 또한 짧았던 관계로 관리에 많은 주의가 요구되었다. 그래서 딱지의 체계적 관리와 보존을 위해서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담았던 직사각형의 케이스가 딱지 수납함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이후 시대가 변하면서 빳빳하고 매끄러운 흰색 딱지가 똥색딱지를 밀어내고 전면에 등장한다. 


"미래소년 코난" 이나 "바다의 왕자 트리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급 딱지의 출현은 동네 딱지계의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재생 폐휴지가 아닌 천연 펄프를 사용한 수입 원료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딱지 가격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러한 가격변화는 신-구 딱지의 교환가치에 혼란을 가져와 동네 얼라들의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딱지의 내용과 변천사


딱지는 치고 뒤집고 넘기는 물리적인 힘을 이용한 게임 방식도 있었지만, 딱지에 인쇄된 내용을 활용한 게임방식이 주종을 이루었다. <글 높/낮> <별 높/낮>, <전쟁 높/낮> 등등.. 그렇기에 딱지에 인쇄된 내용은 그 딱지의 질과 소장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인물


딱지의 등장 인물은 주로 TV나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만화, 인형극, 드라마 주인공 등 대중적인 인지도를 위주로 선정되었다. 육백만불의 사나이, 이소룡, 수퍼맨, 김일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때론 이주일, 서영춘, 남철 남성남 등 코메디언 시리즈 딱지나 세계의 위인시리즈 딱지 등 교육적 효과를 노린 딱지가 등장하기도 하였고, 간혹 "3840 유격대"나 "전투"류의 전쟁을 다룬 딱지가 인기에 관계없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당시 군사정권하의 시대적 상황이 이러한 얼토당토 않은 딱지를 만들어 낸 것으로 판단된다.







영어사전에도 없는 BOMP(범프)란 단어는 20년 후 PUMP(펌프)의 출현을 예측한 딱지업계의 놀라운 미래예측력이라고밖에 볼 수 엄따.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딱지들을 보면, 뭘 그려놓은 건지, 무슨 내용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딱지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런 건 흔히 소재를 짐작하기 어려운 단편적인 그림과 어색한 대사, 이상한 영어 등이 셋트로 이루어져 있다. 우측 그림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런 류의 딱지들은 현재로선 내용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여 딱지사 연구에 한계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관련학계와 딱지유저들의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이거 울나라에서 방영 안 한 거다...

일반적으로 딱지의 등장인물은 당시 인기의 정절에 있는 만화 주인공이었다는 건 이미 아는 얘길꺼고.. 


그런데 간혹 국내에서는 소개도 되지 않은 낯선 만화 주인공들이 딱지계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타이탄 3호"나 "번개철이" 다.


이들의 등장은 당시 초절정 인기를 누리고 있던 딱지라는 놀이수단을 활용하여, 새로운 만화를 소개하기 전 미리 얼라들의 관심을 끌어 보겠다는 새로운 마케팅의 시도였다고 판단다. 이처럼 "타이탄3호"류는 딱지로 만들어지고 나서야 얼라들이 그 존재를 인식했기 때문에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스토리를 아는 넘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딱지들이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당시 딱지가 얼라들의 문화생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음을 반증하는 사례라 하겠다. 


트랜드를 쫒아가지 않고, 스스로 트랜드를 선도하고자 했던 딱지 업계의 앞선 시대감각과 벤처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기호 - 숫자, 글, 별 


딱지에는 인물 외에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기호가 들어간다. 숫자, 글자, 별이 그것이다. 이 기호들의 크기나 양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게임이 진행되었음은 물론이다. 


초기 딱지들은 글자의 경우 6, 7자를 넘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를 넘긴 것은 대단히 특이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숫자도 대개 만 단위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게임유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숫자와 글, 별들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딱지 주위를 별로 빽빽이 에워싼 딱지가 나오게 되었고, 글자도 40자가 넘는 찌라시에 가까운 딱지가 등장하게 된다. 숫자의 경우는 천만 단위에서 심지어는 억 단위까지도 등장하게 됨으로써 딱지유저들간에 이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다문자, 고숫자 딱지의 등장은 웃고 즐기는 레저형 게임으로서의 딱지치기를 피 말리는 투쟁과 처절한 승부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딱지치기는 결코 우리의 어려울 때 이웃을 돕는 상부상조 정신을 잃지 않았으니, 이는 깨평이라는 구휼제도로 실현되었다. 깨평은 딱지를 모두 잃은 상대방에게 재활과 갱생의 의지를 북돋고자 잃은 딱지의 10%-20%를 되돌려 주는 제도로 우리의 아름다운 상부상조 정신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림으로 보는 딱지 형태 변천사


 - 제 1 세대 (~ 80년대 초반)


 대표적인 초기 형태.


실사를 대충 그린 조잡한 그림이  특징이다. 사진은 미국산 2차대전 티비 시리즈 "전투" 의 한 장면.  숫자는 고작 만 단위에 머물러 있다.


  


80년 초 당시 국민적 수퍼스타였던 코미디언 이주일. 딱지를 통한 지명도 상승에 힘 입어, 이후 정계 진출에 성공한다. 


우측 군대 계급장은 게임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군사문화가 얼라들의 놀이에 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제 2 세대 (80년대 초반 ~ 중반)


 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딱지의 등장인물 판도에도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만화의 주인공이나 인기배우 중심의 캐릭터를 과감히 벗어나 스포츠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게 된 것.


사진은 초기 프로야구판에 풍운을 몰고왔던 명문구단 삼미 수퍼스타즈.


 


 인기리에 방영된 티비 연재 만화 "전자인간 캐산". 1세대 딱지에 비해 그림과 색감이 진일보한 것을 알 수 있다.


캐산의 오른 팔뚝 위 "구구단" 를 주목해 볼 것. 딱지가 단순한 놀이도구가 아닌 유용한 학습도구였음을 보여준다. 


 


- 제 3 세대 (80년대 중반 ~ 후반 )


 이때부터 실사에서 캡춰한 정교한 사진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은 은하철도 999의 한 장면. 


1세대에서는 만단위에 불과하던 숫자가 인플레의 영향으로 이 시대에는 천만단위를 넘나들게 된다. 


 


 
역시 일본산 인기만화 "미래소년 코난" 의 한 장면. 


대사, 구구단은 물론 숫자마저도 없앤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감각을 자랑하는 작품.


 



 


 딱지의 변형과 새로운 시도


 전지 딱지


초기 딱지의 불문율은 어떠한 그림이나 사진도 반드시 딱지 한 장, 즉 하나의 원 안에 모두 나타내져야 한다는 거였다. 즉 한 넘의 얼굴만을 나타내든 여러 넘의 전신을 나타내든, 한 개의 딱지 안에서 모든 그림들이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무언의 규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은 이후, "슈퍼맨" 이나 "우주 해적선(애꾸눈 하록)" 등 전지 딱지의 등장으로 그 고삐가 풀리게 된다. 작은 원 하나에 지구를 지키는 영웅 수퍼맨의 모습를 담거나 초거대 우주 전함의 위용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업체측의 자성에서 비롯된 변화였다.







  딱지에 나타난 수퍼맨의 XX부분 

이로 인해, 약 28장에서 32장이 들어가는 딱지 한 판에 큰 그림 한 종류가 인쇄된 딱지가 등장한다. 즉 어떤 딱지에는 슈퍼맨의 얼굴이, 또 다른 딱지 한 장에는 슈퍼맨의 다리, 또는 왼쪽 그림과 같이 주요부위가 나타나게 되는 형태다.


이러한 전지딱지는 딱지 안 뿐만 아니라, 딱지를 따내고 남은 부분에도 그림이 인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러한 형식은 딱지의 내용은 그 원형 틀 안에서 표현되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뒷통수를 친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과감한 파격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딱지가 단순한 놀이기구의 성격에서 벗어나 하나의 콜렉션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전지딱지는 딱지 하나하나를 뜯어내는 순간 그 가치는 상당히 절하되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즉, 전지딱지에서 뜯어낸 각 딱지는 커다란 그림을 분할해 놓은 퍼즐과 같은 모양이 되어 버려 온전한 딱지에 비해 오히려 평가가 떨어지는 경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딱지를 뜯어내기 전 상태의 전지딱지만이 콜렉션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까지 전해지는 온전한 상태의 전지딱지는 거의 없다. 동네친구들의 게임참여의 유혹을 떨쳐낼 만큼 확고한 자의식을 갖추지 못한 얼라들에게 전지딱지를 그저 콜렉션으로 남겨두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었으리라. 


또한 전지딱지에 있어서 그림의 분할은 게임에 예상치 못한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딱지에 나타나 있는 인물 또는 대상의 구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즉, 푸르죽죽한 허벅지 한 짝만으로는 그가 진정 지구의 구원자 수퍼맨인지 퍼런 스타킹 신은 무다리 쌀집아저씨인지 식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종류에 따라서는 주인공이 누군가의 문제가 승패에 중요한 변수였기에 게임진행에 있어 새로운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지딱지의 출현은 등장인물의 정체성 문제로 인해 동네 딱지계 전반이 갈등과 혼란에 빠진 질풍노도의 시기를 도래하게 했던 것이다. 


왕딱지


딱지의 세계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했던 시도로서, 대원군의 당백전 발매 이래 한국 역사상 최대의 실패작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보통 크기의 두 배쯤 되는  왕딱지의 등장은 출시 초기부터 딱지계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안정된 딱지판에 극소수의 왕딱지 출현은 심각한 금융 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즉, 보통 크기의 딱지 1장과 왕딱지 1장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교환가치상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1:1로 교환할 것이냐, 아니면 교환 비율을 다르게 할 것이냐, 다르게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등 정리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국제 환율 분쟁을 방불케 하는 혼란과 투쟁이 각 골목을 휩쓸게 되었다.










                   

보라.. 난세의 군웅 왕딱지(좌)의 압도적 위용을.. 



일시적으론 개별상황마다 무력으로 해결이 된다 해도 이로 인한 분쟁의 불씨는 언제나 상존해 있었고, 왕딱지가 섞여 딱지치기를 할 때마다 새로운 이슈로 대두됨으로 인해 이제 딱지계의 평화는 사라진 듯이 보였다. 


딱지계의 최대의 시련기였다.


한 차례 거친 태풍이 딱지계를 휘몰아친 후, 결국 우리의 현명한 얼라덜은 암묵적 합의하에 왕딱지 불매운동을 벌임으로써 분쟁을 피해가려는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이런 자정운동의 결과 왕딱지는 아주 잠시동안 영욕에 가득찬 생을 마감하고 딱지 크기는 다시 평준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이후 딱지의 크기가 완전히 표준화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왕딱지의 쇠퇴 후 평균 크기에 못 미치는 작은 딱지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들은 "인디오 소년 빼빼로", "바다의 왕자 트리톤"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은 크기는 왕딱지의 경우처럼 교환가치의 혼란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면 새로이 등장한 이것덜은 종이질에서의 우위를 무기로 크기에서 오는 열세를 보완해, 표준딱지와 그 교환가치를 균등하게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므로서 시장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역사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은 딱지업계의 온고지신이 돋보인다 하겠다.


 


 이면 딱지


딱지 역사에 있어서의 가장 큰 실험적 시도 중 하나가 바로 딱지 뒷면의 활용이었다. 기존에는 무슨 내용이던 한면에만 인쇄되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었으나 언제부턴가 뒷면에도 인쇄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지면을 배로 활용함으로써 딱지를 구입하는 어린이들로에게 같은 가격으로 두 배를 즐기는 듯한 기분을 얻을 수 있었기 해주는... 먼가 공짜인 듯이 보이게 하는 상술, 현대 마케팅의 기본이 이미 딱지에 도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왼쪽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실 뒷면에 인쇄되는 내용은 앞면보다 질이 훨씬 낮았다. 간단한 그림에 글자만 몇 자 기재된 썰렁한 딱지가 대부분이었고 그림 없이 글자나 별만 인쇄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어떠리.. 공짠데.


이처럼 디자인과 마케팅의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양면 딱지임에도 큰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건 뒷면 그림땜에 서로간에 남이 들고 있는 패를 다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화투장 뒷면에 저마다 다른 표시가 있는 경우를 생각하믄 된다. 이때는 특히 기억력 좋은 놈덜이 유리했으므로 공부 못하는 넘덜은 딱지계에서조차 변방으로 밀려나는 계급분화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 문제는 의외로 치명적인 것이어서 결국 이면 딱지도 다소의 혼란과 분쟁을 초래했을 뿐 딱지계의 대세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타 


딱지에 따라서 간혹 특이한 내용이 인쇄된 것들이 있었다. 가위 바위 보 나 주사위 등 다양한 게임을 가미한 것과 특정 주제에 대한 정보전달에 중점을 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야구가 한창 인기였던 80년대 초중반에는 프로야구 선수의 이름과 경기 실적에 대한 설명 또는 야구용어에 대한 설명이 기재된 딱지가 등장하기도 했었고 이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야구카드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냉전시대의 한복판에 있던 한반도에 소련 우주선 소루즈 발사기념 딱지가 나왔다는 사실.. 동심은 일찍이 이념의 경계를 허물었었다...

그밖에 이와 유사한 것으로 개의 종류에 대해 기재된 딱지, 기념우표에 대해 설명되어 있는 딱지도 있다. 이로써, 딱지가 단지 게임의 수단이나 부의 축척만이 아닌 백과사전의 교육적 효과를 겸비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말 그대로 하나의 시도로만 그치고 만다. 대부분의 유저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실험 딱지들은 금방 사장되고 말았으며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딱지의 기본틀인 인물, 별, 글자, 번호/숫자의 일반적 골격은 흔들림없이 유지되었다. 





 


 


- 결론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딱지는 여러 면에서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각종 변종 딱지들의 끝없는 도전... 


그리고 이어진 혼돈과 갈등. 


그러나 난세의 혼란 속에서도  정통 딱지를 지키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선배 제현들의 끝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결국 도도히 흐르는 대세의 물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온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보라. 푸라스틱이나 고무로 만든 유사 딱지나 따조따위를 가지고 노는 요즘 애덜. 그넘덜의 가슴 어느 구석에 똥종이 딱지를 와이셔츠 박스에 싸서 보존하던 선배덜의 정신이 실려 있을 것이며, 그넘덜의 머리 어디에 프로야구 선수의 성적과 개의 종류를 줄줄 외우던 그 빛나는 지성이 담겨 있을 것인가.   


그러나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스타크래프트와 플레이 스테이션을 다시 딱지로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사실 하나만은 잊지 말자. 누구에게나 소중한 어린 시절은 있는 법이고, 그 작지만 아름다운 시절을 행복하게 했던 것은 많은 돈과 거대한 권력이 아닌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피에쑤> 좀더 자세한 딱지정보는 요기로 가 보시라.



딱지 연구가 안효영(omoo@dreamwiz.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