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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딴지스, 스키장에 가다

2000.3.06.월요일
딴지 수뇌부 스키장 체험팀







본지가  21세기 명랑사회 구현을 모토로 발행된 지 어언 2년여. 그러나, 아직까지 철저한 베일에 싸인 딴지 기자단의 실체는 어느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는 본지 기자단이 조폭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주변엔 언제나 명랑사회 도래를 저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음해세력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좃선같은..


그러기에 이미 신분이 노출된 본지 총수는 외출시엔 항시 3인조 꽃미녀 보디가드를 대동해야만 하며, 상근 수뇌부들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외출을 제외하곤 본사 사옥에서 24시간 근무태세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 겨울이 다 가는동안 남들 앤 팔짱끼고 눈길 걸을때 본지 수뇌부 요원들은 차가운 사무실 콘크리트 바닥에 짱박혀 버석버석 생라면이나 부숴먹고 있었더랬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걸 고진감래라 했던가. 날로 수척해져 가는 수뇌부 구성원들의 모습을 차마 두고보지 못한 본지 총수, 드뎌 철저한 계획하에 비밀리 단체여행을 시도하게 되었으니...


딴지스 역사상 최초의 스키장 여행. 그 감동의 대서사시를 여기 기록하는 바이다.



 


월남전 스키부대를 기억하시는가. <대한민국 육군 1급 보안사항>으로 분류되어 있는 스키부대의 월남참전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일부 스키부대 출신들이 술자리에서 <자신이 월남 스키부대 출신임을 실토하는 실수가 가끔 발생하지만, 다행히 스키부대의 실체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이 사실을 취중농담 정도로 치부하고 만다.


이제야 진실을 말하자면 월남전 스키부대에 차출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본 기자, 월남의 설원에서 벌인 끔찍한 전쟁의 기억 때문에 한동안 스키를 외면하고 있었다.


어찌 전우들의 피와 넋이 배어 있는 스키를 한낮 레크레이션으로 즐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딴지기자단은 본 기자에게 스키장을 갈 것을 강권하였고, 기자단 단결을 외치는 이들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30여년만에 다시 스키를 탈 수 밖에 없었다.


30여년만에 밟아보는 하얀 눈밭..


그러나, 시작부터 예전 스키부대 김 병장의 늠름한 모습은 구겨지고 말았으니..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단체로 빌려 입은 스키복은 알록달록 색동옷이었다. 어렸을 때 조그만 여자아이들이 입던 짙은 노랑바탕의 빨강, 주황, 녹색 줄무늬의 한복을 기억하시는가. 요 색동 한복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이 오색찬연한 스키복을 입은 한 떼의 무리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명절두 아닌데 왠 스키장에 세배하러 떼거리로 왔냐..는 듯한 사람들의 따사로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엉거주춤 리프트를 향해 기어갔다. 월남전 정글의 빙판을 누비던 실력이 불끈거렸지만, 나의 과거가 탄로날까봐 다른 딴지기자들처럼 엉덩이를 쭈욱 빼고 초보자 행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국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으니..


초고속 활강으로 레인을 내려오다 양쪽 구석에 파 놓은 참호(일반인들은 이를 도랑이라고도 부른다)를 발견한 본 기자, 그만 월남전에서 스키부대에서 익힌 습성이 발동하여 재빨리 참호로 뛰어 들었다. 참호 속에서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려고 한참을 버둥거리니 스키장 패트롤은 내가 실력부족으로 도랑에 빠진 듯 여겼는지 손을 잡아 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그러나, 어찌 스키부대 최정예요원 김병장이 민간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오.


나는 괜찮다는 손표시로 그를 돌려 보냈고, 한참 지난 후 이 곳이 월남전 눈내린 정글이 아닌 한국의 스키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도랑을 나올 수 있었다. 


이 때 현장을 목격한 일부 무지몽매한 기자들은 이 사건을 활강중 속도제어를 못하고 또랑에 빠진 초보자의 실수쯤으로 여기고 말았지만, 어찌 이들이 참전용사의 비애를 이해할 수 있으리오..


아... 아직도 월남전 설원을 누비던 전우들의 우렁찬 함성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 딴지 편집장 김도균     
(DDanjiedit@netsgo.com





불과 얼마전만 하더라도 차 지붕에 얹혀있는 스키 판때기들을 보고 오.. 빙판길로 인한 차체 전복에 대비한 슬라이딩 연착륙 시스템..하고 감탄해 마지않던 본 기자에겐, 스키란 머나 먼 신기루같은 존재였다.


허나, 수뇌부의 스키장 비밀여행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을 목전에 둔 이상,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일. 본 기자는 우선 예상되는 각종 두려움들과 쩍팔림들을 최소화하는 것을 긴급 당면과제로 설정했다. 이에 본 기자는 스키장 경험자들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한 간접 스키장 적응 훈련에 돌입했다. 본 기자, 참으로 치밀하기도 하다.


케이스 스터디 결과, 다수의 스키장 경험자들로부터 "값싼 장비들은 그냥 구입해서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개중에 꼭 필요하고도 값싼 장비는 스키 장갑이다"라는 교훈을 얻은 본 기자, 곧장 장갑 구입 프로세스에 돌입했다. 본 기자, 참으로 저돌적이기도 하다.


허나, 바야흐로 개구리 빠굴뜨는 춘삼월을 목전에 둔 이 끝물에, 스키 장갑을 단박에 구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화점의 스키 코너는 다 팔고 남은 떠리 물건들의 먼지를 털고 있었으며,  . 스포츠 메이카 매장에서 스키 장갑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이고, 그 자리를 개학을 맞이한 고삐리덜의 배낭들이 메우고 있었다.


본 기자의 스키장 사전적응 프로젝트는 그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빨간 손바닥 목장갑은 어떨까..등의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던 본 기자, 마지막 들른 스포츠 매장(특정업체 홍보를 피하기 위해 나이뀌였다는 언급은 하지 않겠다)의 문을 여는 순간, 드디어 올것이 왔음을 직감하였다.


양말과 정체를 모를 아대들에 섞여있던, 그 대문짝만한 장갑. 바로 스키장갑이었다. 이 반가움,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어흑! 스키장갑 너 반갑다.


근데, 그 스키장갑에 접근하여 자세한 관찰을 수행한 본 기자는, 그 투박하고도 구린 디자인에 허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스키장갑에 호화찬란한 불꽃무늬는 웬말이며, 또, 크기와 두께는 왜 그렇게 무식하던가. 스키장 가서 무슨 곰발바닥 께임 할 일 있나, 씨방..


그 무식한 디자인의 스키장갑 앞에서 사느냐 마느냐의 번민을 거듭하고 있던 본 기자 앞에, 고삐리에게 배낭을 무사히 판매하고 난 점원 아저씨가 드디어 접근하였다. 그리고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매혹의 바리톤으로 넌지시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아, 꼴키파 장갑 사시려구요?"


오.. 꼴키파..


왜 나는 장갑에 새겨있던 "GK"에 주목하지 못했던가. 왜 나는 손바닥에 붙어있던 우툴두툴한 고무를 지압용이라고 생각했던가. 왜 나는 그 장갑과 함께 걸려있던 아대들을 다양한 형태의 고추 보호대라고 생각했던가. 왜 나는 그 코너에 붙어있던 이똥국의 대형 부로마이드에 단 한 점의 의혹도 품지 않았던가..


본 기자의 기자정신이 땅으로 꼬라박는 바로 그 순간,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한 줄기 식은땀은 본 기자의 빤쭈를 흥건히 적시기에 충분했다.


그 뒤, 스키장에서의 죽음의 질주를 하는 동안에도, 목장갑을 뚫고 들어오는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수면위로 자꾸만 부상하는 그 쓰라린 추억은 본 기자의 빤쭈를 식은땀으로 얼룩지게 했다.


아, 본 기자는 참으로 쩍팔리기도 했다..


-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sixstring@netsgo.com)





본기자, 강원도에서 군생활하면서 지긋지긋하게 눈을 봤었드랬다. 그래서  지금도 눈이라면 자다가 경끼부터 하고보는 스타일이다. 그러기에 스키장은 별로 땡기지도 않았고, 스키장에 가 본 일도 없었다.


하지만, 수뇌부의 결정을 거스르는 건 변견 앞에서 엉덩이까는 것보다 위험한 일이란 걸 알기에 묵묵히 짐을 챙길 수 밖에 없었다.


스키장에는 난이도 별로 여러개의 코스가 있었다. 초급자는 옐로우 코스를 먼저 마스터 해야 한다지만 본기자 걍 생깠다. 그 바로 위에 보이는 그린코스...그 길고 넓은 코스에 매료된 본기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로 중급자 코스에 도전했다.


오후 내내 뒹굴고 넘어지고 하다보니 어느새 조금씩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속도조절도 좀 되는거 같고 특히 커브를 틀때는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비상 하는듯한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내어 주위 사람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푸하하! 저 사람 커브 트는 것 좀 봐! 양팔을 왜 저렇게 쫙 벌리는거쥐?"


오후 스키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본기자 생각했다. "더 잘 탈수도 있었는데...문제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였어. 글타믄? 그래! 야간스키를 타자." 결심이 굳어지자 본기자는 다른 기자들을 꼬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8시. 본기자, 본지총수, 영화부장 한동원 이렇게 3인의 가니 부은 넘들은 운명의 야간스키를 떠났다. 스키장에 도착해보니 역시나 사람의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훗...조아써. 마음껏 스피드를 만끽해 보자."


자신만만하게 당당히 슬로프 위에 서자 갑자기 본기자는 약간의 불길함이 엄슴해옴을 느꼈다. 왜지? 그린코스는 이미 마스터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본능적인 두려움은 뭐지...약간 살 떨리고 있는 사이, 동행한 본지총수와 영화부장은 이미 슬로프를 내려가고 있었다. 내려가면서 영화부장이 던진 한마디. "겁나요?"


자존심에 타격를 받은 본기자는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힘차게 도약했다. 사건은 여기부터 시작 되었다. 야간스키의 경험이 전혀 없던 본기자...추운 밤중에는 스키장의 눈이 얼어버린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거기다 그늘쪽의 코스를 선택해 버렸으니...


본기자의 스키는 눈이 아닌 얼음위를 미친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무지막지한 스피드에 깜딱 놀라 급히 커브를 틀려 했으나 이미 스키는 본기자의 다리힘으로 제어할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게다가...설상가상으로 스키의 앞쪽이 점점 좁아지더니 급기야는 X자로 서로 겹쳐져 버리는 천인공노할 사태가 발생해 버리고 말았다.








폭주기관차같은 이드냐 기자의 활강을 보라.


폭주. 그렇다. 본기자는 한밤의 용평 스키장 그린코스를 폭주하고 있었다. 스키는 점점 가속을 더해 드디어 마찰계수 0에 도달했고 붕 뜨는듯한 느낌과 함께 지면에 닿아 있어야 할 발이 계속 날아댕기고 있었다. 이제는 신이 아닌이상 누구도 본기자의 활강을 막을수 없었다. 체감속도는 대략 시속 300Km 정도...


멈춰야 했다. 저 멀리 슬로프의 끝에는 무시무시한 철제 울타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멈추지 못하면 저 울타리에 정면 충돌할 것이고 본기자 인생 조지는 거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운바, 이 상태에서 급격히 수동으로 브레이크를 걸었다가는 힘의 반작용 법칙에 의해 본기자 다리가 또각 부러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냥 넘어져 버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 속도에서 엉덩이를 지면에 댔다가는 마찰에 의해 평생 무한똥꼬함몰증후군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으앙...


어느새 본기자는 앞서 출발했던 본지총수와 영화부장을 엄청난 스피드로 추월해 버리고 있었다. 뒤에서 본지총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야~ 잘타네?" 뭔가 답사가 필요할 것 같아 일부러 크게 웃음소리를 내보았지만...


공허했다.


이제 울타리가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스피드로 미루어 보건데 대략 10여초 후면 정면충돌할 거리였다. 이제 이 상황을 탈피할 방법은 오직 하나뿐. 본기자는 필사적으로 유체이탈을 시도했다. 어떻게든 혼이라도 빠져 나가야 이 엄청난 두려움을 견딜수 있을 것 같았다. 버트 유체이탈은 당근 아무나 되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정신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본기자에게 마치 신의 계시처럼 강하게 뒷골을 때리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스키 타보신 분들을 잘 아시겠지만 스키와 스키화를 연결해주는 부분에는 폴대로 딱 찍어서 서로를 분리시켜 주는 장치가 있다. 그걸 눌러주면 본기자의 동체와 스키가 서로 떨어질테니 이때 덤블링 3회전을 사용하면 살아날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 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울타리를 바로 코앞에 두고 본기자는 당구칠 때 마세이 찍던 감각을 되살려 폴대로 힘껏 분리장치를 쌔리 찍었다.


"썬더버드! 분리!"


그와중에도 딴지 기자다운 멘트를 외치며 힘껏 날아오른 본기자는 약 5미터 정도를 나른후 얼음위에 나뒹굴었다. 히프에 극심한 충격파가 전해져 오면서 잠시 정신을 잃었던 본기자는 잠시후 사태파악을 위해 부스스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한때 본기자와 생사를 함께할 뻔 했던 본기자의 대여 스키는 울타리를 뚫고 그 뒤에 있는 식당 벽에 쳐박혀 있었다. "만약 아직까지도 내가 저기 매달려 있었다면...아마 담날 아침 용평 스키장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온몸에 울타리 문신이 새겨진 나의 처참한 주검을 보게되겠지..." 라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뒤늦게 따라 내려온 본지총수와 영화부장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으나 본기자는 아무런 대답없이 유유히 담배 하나를 빼물었다. 그리고...천천히 연기를 내뿜으며 허리케인 죠의 마지막 대사를 나직히 뇌까렸다.


"하얗게...태워버렸지...후후..."  




- 딴지그룹 비서실장 이드니아 콘체른
(edenia@netsgo.com)





- 딴지수뇌부 스키체험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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