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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메리칸 뷰티> vs <아이스 스톰>

2000.3.6.월요일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작년 99년, 울 나라의 문화간강부는 전세계 영화계를 향한 신선한 제안을 내놓아 화제가 될 뻔했다.


그게 뭐냐구  ?


"3대 국제영화제"라 하면 깐, 배를린, 배니스 영화제 이렇게 세 개를 뭉뚱그려 얘기하는 거라는 건 다 아시는 사실일 것이다. 몰라두 상관없구.


하여튼 울 문화간강부는 이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 아카데미 영화제를 낑궈넣서 "세계 4대 영화제"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하자는 제안했었더랬다.


본 기자같이 머리가 절라 굳은 넘들은, 국제영화제에는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The best foreign language film of the year)"같은 부문은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당연하잖어. 국제영화젠데 외국이라는 개념이 삐대고 들어갈 구녕이 어딨냔 말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일본문화 개방을 앞둔 시점에서 민족 존엄성 수호라는 절라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있는 문화행정 당국의 사고방식은 우리 범인들의 평범성을 훌쩍 뛰어 넘는다.


정책입안을 통해, 문화계 종사자들의 상식파괴적 창조정신을 촉구하는 이 실사구시의 자세를 보라. 또한 외국넘이야 어떻게 생각하건, 우리만의 조꼴리는대로 사고방식을 통해 한민족의 주체성을 수호하려는 이 드높은 민족기상을 보라.


평소에는 헐리우드 영화의 똥꼬만 따라다니면서도, 뭔 일 터졌다하면 "문화주권사수"를 외치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림사 18동인 헤어스타일로 변장을 하는 일부 영화인들에게, 이러한 문강부의 제안은 뜻깊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뻘소리에도 일관성이 필요하다


머 이런 교훈.




어쨌든, 이런 연유로, 국제영화제로 공인되고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는 영화가 바로 한 큐에 8개 부문 수상후보에 오른 <아메리칸 뷰리>다.


근데, 이 영화, 올 누드 배꼽에 장미꽃 한 송이 얹어놓은 살빛 가득한 포스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썩을대로 썩어있는 미국 가정 디비기라는 꽤나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다. 감독도 이 영화로 데뷔한 쌩초짜 신인이다. 제작비도 작년 <세익스피어 인 러브>, 재작년의 <타이타닉>의 조명 전구값 정도로, 거의 미국 독립영화들 수준이다.


이거이 웬일이냐. 아카데미가 이런 가난한 영화를 긍휼히 여기다니.


 



 



뭐, 영화를 직접 보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 무척 잘 만든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 좃선 영화평에서 예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본 기자가 개인적으로 98년 개봉 영화중 최고의 영화로 주저없이 꼽고 싶은 <아이스 스톰>과 절라 비슷한 구석이 많다. 물론 표절 시비를 걸고 싶은 건 당연히 아니다.


본 기자는, 비슷한 내용에 비슷한 주제의 영화가 하나는 아카데미에서 단 한 부문의 후보로도 못 올라오고, 하나는 벌써부터 8개 부문 후보에다가 언론의 극찬을 받는 이 이상스러운 현상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은거다.


걔들 눈에는 <아메리칸 뷰리>의 어떤 점이 그리도 월등했을꼬.




우선 이 두 영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갈데까지 가 있는 미국의 중산층 가족에 대한 얘기란 점에서 유사하다. 그 가족이 서로 이웃에 사는 두 가족이라는 점도 같고, 그 두 가족의 애덜이 연애질한다는 점도 같다.


물론 두 애덜은 사회에 불만많고 학교에 적응 못 하는(또는 적응 하는척만 하는) 비주류 학생들이다. 그리고 그 중 남자애(리키, 웨스 벤틀리 분)는 세상을 뭔가 신비로운 시각으로 보는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점도 같다. 리키한테 상처를 준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걔네 아버지고.













주인공 딸 제인 제인 남자친구 리키
(상처받은 넘)
리키 아빠
(상처준 넘)

근데 리키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해병대 장교다. 리키로 상징되는 순수 또는 미국의 미래가 걔네 아버지로 상징되는 파시즘에 의해 억압받고 병들어 가는걸 은근히 은유한 이러한 설정은, 닉슨과 월남전으로 상징되는 부패한 국가권력에 대한 차가운 조까!를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낑궈넣는 <아이스 스톰>의 설정과 일맥 상통한다.


하여튼, 이거 말고도, 두 가정 중 여자애네 집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는 점도 같다. 그 집 엄마 아빠가 경쟁하듯 바람이 난다는 점도 같고..









주인공 부부 레스터와 캐롤린
(허이구,얘덜 표정들 한번 살벌나다)

특히 비가 억수로 내리기 시작하고, 그때까지 영화가 깔아둔 복선들과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얽히고 섥힌 갈등이 한 큐에 폭발하는 후반부 클라이맥스는 너무나 흡사한 느낌이다. 팝콘 봉다리 뒤지는 소리마저 전혀 들리지 않는, 그 목구멍을 꽉죄는듯한 느낌의 클라이맥스 말이다.


이 정도라면 두 영화 모두 등장인물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거나, 인트로에서 한참 뒤에 나올 얘기를 먼저 잠깐 보여주는 과거 회상   (flash back) 작전을 취한다는 점 정도는 별로 얘기꺼리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아이스 스톰>은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기 하나 없는 차가운 느낌의 영화다. 정말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얼음같이 찬 비를 맞고 있는듯한 기분이 된다.


반면에 <아메리칸 뷰티>는 차분하면서도 절라 골때리는 상황들로 고난도 코메디를 구사하는 영화다. 특히, 이 골때리는 상황과 오해들이 후반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점점 웃을 수 없는 치명적인 파국으로 꼬아넣는 솜씨는 무척 새롭다. 이걸 보면, 이 영화, 마치 <아이스 스톰>을 우디 앨런 버전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우디 앨런이 뭐 하는 넘이냐구? 몰름 걍 넘어가자. 그런거 몰라두 사는데 지장엄따).


게다가 영화는, 주인공 레스터(케빈 스페이시 분)가 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 분)를 처음 보고 한눈에 뻑가는 대목, 그리고 그날 밤 침대에서 걔를 떠올리는 대목에서 CG까지 동원한 환상 장면을 만들어낸다. 즉, 천정에서 홀라당 벗은(물론 결정적인데들은 다 가렸구.. 그래두.. 꼴딱..) 안젤라가 장미꽃잎으로 가득찬 Bed of roses에서 허우적거리는 환상을 CG까지 동원해서 만들어 낸다는 거다.



아마도 이 설정은 한국 남성 관객층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한 설정이라고 사료된다. 거, 왜 있잖어. 한참 당구 맛들이기 시작하는 다마수 80쯤 되는 시기에, 잠자리에 누우면 천정이 당구대로 보이는 증상. 바로 그걸 연애질에 차용했다는 얘기다. 이거 어떻게 알아냈을까나..




우쨌든, 이 영화는 그 분위기 면에서 보자면 <아이스 스톰>과는 사뭇 다른 영화다. 하지만, 이거 말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영화의 결론이다.


<아메리칸 뷰티>는 어이없는 파국을 맞은 주인공의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회고로 끝을 맺는다. 물론 화면은 흑백이고, 슬로우 모션이다.


소시적 보이스카웃 캠프에 누워서 보던 하늘, 가을의 은행잎, 돌아가신 할머니, 친구의 첫 자동차, 딸, 그리고 아내. 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우리의 주인공 레스터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인생이 참 살기 후달려도, 지나놓고 나면 그게 다 즐거운 거야


머냐, 이거. 잘 나가다가 막판에 이런 진부하기 짝이 없는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으로 뭉개다니. 그렇게 웃기지만 처절하게 망가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나서 막판에 인생은 즐겁구나아~ 산너머길...하는 결론을 내냐. 기껏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였나? 머, 헐리우드 영화가 다 그렇지 머..라고 해 버리기엔, 그때까지 이 영화가 해 온 얘기들이 너무 아깝다.











이렇게 외롭게들 살아도 결국은 인생은 아름다와라라구?




반면에 <아이스 스톰>을 보자. 영화의 첫 부분에 전철역으로 아들의 마중을 나온 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다시 나온다.


처음 볼 때는 그냥 평범하고 단란해 보이던 한 가족의 모습이, 빤쭈속까지 속속들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까발켜진 뒤인 영화 막바지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어떻게 달라 보이냐구? 그건 영화를 직접 보고 느끼시라.


그리고 영화는 가족들 앞에서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끝맺는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그저 울 뿐이다. 그러나 구구절절한 <아메리칸 뷰티>의 설명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많은 것들을 관객들에게 던져준다. 가로수 가지마다 얼어붙어있던 그 아이스 스톰이 온 몸에 들러붙어있는 듯한 차가운 느낌과 함께 말이다.




하긴 그렇다.


이런 암담한 엔딩은 관객들을 절라 찝찝하게 만들기에 딱 좋다. 짠, 짠, 짜~잔! 하는 엔딩이 없으면 극장 문 나서는 관객들한테 "무슨 영화가 이래 씨바.."라고 욕먹기 딱 십상이다. 하지만, 어차피 관객들에게 뭔가 치부를 보여주고 문제를 던지려고 작정을 했으면 끝까지 일관성을 잃지 않고 제대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님 아예 시작을 말던가 말이다.


물론, 엔딩 하나로 <아메리칸 뷰리>는 형편없는 영화다라고 도매급으로 깎아내리고 싶은건 아니다. <아메리칸 뷰티>는 분명 잘 만든 영화다.


하지만 <쒸네 21>의 언급처럼 "빈틈이 없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정도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수필버그가 주인장으로 있는 드림웍스 SKG에서 제작, 배급을 나선 영화답게 그 수필버그 냄새 물씬 풍기는 삼천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때리는 것만 봐도, 이 영화, 결코 "빈틈이 없"진 않다.


아카데미 8개부문 노미네이트라.


비록 차가운 분위기의 영화였지만, 본 기자의 생각으로 <아이스 스톰>은 연출, 남우주연, 조연, 촬영, 편집, 오리지널 스코어, 미술, 시나리오(<아메리칸 뷰티>가 아카데미 후보로 오른 8개 부문)에서 <아메리칸 뷰티>에 결코 뒤지지 않는 영화였다. 그런데, 아카데미의 대접은 어땠는가. 한마디로 찬밥 아녔나. 0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니.


<아메리칸 뷰티>가 드림웍스 SKG에서 만든 영화라서 그랬을까. <아이스 스톰>의 이안 감독이 대만출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딴 정치적 문젠 본 기자는 잘 모르겠다.


사실, 아카데미가 뭔짓을 하건 말건, 그건 본 기자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그 별로 공정해 뵈지도 않는 미국넘들 영화제에서 손 번쩍 들어줬다고 우리까지 뻑가서 겨드랑이 털 훤히 보이도록 쌍수 번쩍들어 환호하는건 절라 우낀다. 그것도 선심쓰듯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부문을 낑궈넣어주고, 특히 동양권 영화에 대해서는 "어? 누구셔요?"필의 대접을 하는 "세계 4대 국제 영화제"인데 말이다.





어쨌든, 본 기자, 예부터 상 같은건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특히 그게 칭찬과 격려를 위한 것이 아닌, 경쟁과 순위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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