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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마이크는 악세사리의 일종이었다


2000.2.16 .수요일
딴지 전임 논설위원 겸 음악전문기자 크리티카

오늘날의 한국대중음악엔 껍디만 존재하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간 기사를 올리지 못한 관계로 본기자의 메일함에는 게으름을 성토하는 독자들의 항의성 메일이 간간이 수신되었다. 차일피일 딴짓 좀 하느라 원활한 기사 업데이트가 되질 못한 건 원래 딴지스타일이 그러려니 하구 이해하기 바란다.


대망의 2천년을 맞은 지 어느덧 두 달째..


그러나 지금에도 우리의 대중음악계는 그다지 큰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외적으로만 따지자면 새로운 얼굴들이 연일 쏟아져나와 신문과 인터넷 연예/방송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고, 힙합에 이어 테크노가 각광을 받는 등 장르가 다각화 되고 있다고 한다. 허나, 극소수의 시도들을 제외하면, 이는 여전히 십대위주의 일회용 음악문화의 일단면에 가깝다. 게다가 음악 자체보다는 의상, 머리모양, 소품같은 껍데기에만 시간과 노력과 돈을 쏟아붓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건재하다.


밑으로부터 뿌리가 생성되어 점차 줄기가 퍼져가는 식의 근원적 자생력을 갖춘 대중문화가 중심에 서질 못하니, 우리네 대중음악은 늘 물 위에 뜬 개구리밥처럼 유행따라 발길따라 흘러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장르가 떴다하면(요즘의 경우에는 테크노 - 근데 요즘 테크노 딱지달고 유행하는 음악덜, 이거 테크노 맞냐?) 개나 소나 모조리 그 음악에 달겨들고, 그거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으면 거의 원시인 취급을 당하는 지금의 상황..


사실 진짜로 원시적인 것은 다름아닌 이런 문화적 환경이다. 불과 작년에 유행하던 가요음반을 들어도 어딘지 촌스럽게 들린다는 얘기는 무얼 뜻하는건지 곰곰 생각해보라.


이런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거액의 돈을 제시받고도 컴백을 거부한 ABBA의 얘기는 정말이지 머나먼 딴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컴백 거부는 둘째 치더라도, 지금 우리나라 가요계에 떴다 싶은 가수들 중 그런 컴백 제안을 받을만한 가수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심히 의문이다.


사설이 길었다. 자, 그럼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한달전쯤 우연히 켠 TV에 요즘 가장 인기있는 여자가수 이정횬가 나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것을 보았다. 국내에 테크노붐을 일으킨 가수중 하나라고 하는데 자신의 무대의상과 소도구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본기자, 그녀의 모습과 립싱크하는 모습을 그날 TV에서 처음 보았고 노래 역시 까페에서 무심히 몇 번 들어본 적밖에 없었던지라, 그녀의 음악에 대해서 심층적인 디비기는 하지 않겠다. 이걸하면 분명 삼천포로 새는거니까.


본 기자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있는 소도구에 대한 것이다. 다음은 모양이 꽤 독특한 손에 차는 타원형 마이크(일명 손찌 마이크)라는 것을 소개하며 MC와 그녀가 나눈 대화내용 중 일부이다.







MC : 마이크가 정말 독특한데 그거 정말 소리 납니까?

그녀 :
전선(Wire)을 연결하면 소리나요.

MC : 그많은 소도구와 마이크에 선까지 달고 게다가 무거운 옷까지 걸치고 노래까지하랴 자그하만 몸으로 정말 힘들겠슴다.

그녀 : .. (가볍게 스마일)

 












상단 사진들이 문제의 그 손찌 (KBS-TV 촬영)


본 기자, 레코딩과 오디오 테크널러지쪽에도 얼마간의 지식과 경험이 있다. 무대에서 쓰여지는 마이크와 요즘 유행하는 해드셋(Head-set wireless), 레코딩에서 사용하는 각종 마이크는 유,무선을 막론하고 웬만한건 대부분 다 사용해 봤다. 물론 비싸기 땜에 개인적으론 너댓개밖엔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와이어를 연결할 변변찮은 Port 하나 없는 그 대형반지 마이크라는 일종의 공예품을 가지고, 실제 작동하는 Wireless Microphone이라고 대답하는 그녀를 볼 때, 본 기자는 조금 서글퍼졌다. 물론 몰라서 그런것일수도, 작동 안 하는 것인줄은 알지만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그렇게 말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열창하는 그녀.. 열창.. 과연 그럴까?


어차피 가요계에서 그녀뿐 아니라 모두들 춤추느라고 마이크는 장식으로 취급, 립싱크만 한다는건 이젠 우리 나라에선 상식이 되어버리다시피한 건데...


하지만 본 기자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TV에서나 공연장에서나 항상 짜여진 립싱크만 하는 우리의 어린 가수들만이 각광을 받는 지금의 왜곡된 현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거다.


사실 가수가 라이브 무대에서 마이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소리와 느낌은 무척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회사의 어떤 모델을 쓰는가에 따라서도 그 느낌이 미세하게 달라지게 된다.


예전에 읽은 한 기타리스트의 인터뷰에서 이런 대목이 있었다.



질문 : 실드(그러니까 기타에 꽂힌 그 전선)를 쓰시다가 와이어리스(즉 무선)로 바꾸셨는데, 연주에 어떤 영향은 없나요?


답 : 음.. 와이어리스를 쓰니 약간 음이 컴프레스가 걸린듯한(머, 좀 복잡한 얘기니깐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상관엄따) 느낌이 있더군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잘 나가는 가수(!) 중, 이런 인터뷰가 가능한 가수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마이크가 유선에서 무선을 바뀐것에 대해서 그 음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를 파악하고 있는 가수가 과연 있겠느냔 말이다.


이 정도까지는 안 되어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의 분위기와 감정에 따라 마이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입과의 거리는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청중들에게 어떻게 들리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신경 써야하는 분위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대위에 있는 마이크 스탠드는 간주가 나오는 동안 그거 잡고 무술시범하라고 있는건 아니며, 모니터 앰프는 그 위에 발 올려놓으라고 있는건 아니다. 마이크가 손 심심하니까 하나씩 들고 나오는 악세사리가 아니듯이 말이다. 그렇게도 손이 심심하면 담배라도 한까치 들고 나오던가. 왜 엄한 악세사리를 마이크라고 해야하는 코믹한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마이크가 더 이상 장식품이나 소도구가 아닌 가수의 실제소리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제 기능으로 쓰이는 시대는 과연 언제가 되어야 올 것인가.





우리는 대중음악에 있어 연주력이나 녹음기술은 뒤질지언정 가창력에서만은 일본을 앞선다고 자부해 왔다. 자칭 평론가라는 사람들중에도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이가 적지 않다. 문화를 가지고 경쟁적 의미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 본기자이지만 여기서도 한마디 묻지 않을수 없다. 우리보다 노래 못하는 대다수 일본 가수들도 춤출거 다 춰가며 실제로 노래하는데 그렇게 노래 잘 한다는 우린 그럼 몬가?


한 가지 얘길 더 해보자. 예전에 리쑤만이 지가 데리구 있는 가수를 가수로 보지말고 엔터테이너로 봐 달라는 얘기를 했었다. 국내 최고의 문화종합 주간지를 지향하는 <쒸네 21>의 "김뽕쓱 칼럼"에서는 어 그럴 수도 있겠네하면서 얼씨구 맞장구를 춰줬고.


이거 한마디로 조까는 소리라는거 알쥐? 기본적으로, 가수라면 자신의 음악으로, 노래로 관객들을 엔터테인하는게 기본이다. 그 다음에 그 전달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춤이며, 의상이며, 무대장치며, 조명이며 하는 것들이 따라 가는거지.


어쨌든, 본 기자가 이번 기사를 마련한 목적은 결코 일방적인 비난 또는 흥미성 문제제기만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황금만능주의와 한탕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가 되고 대중문화 역시 강하게 영향을 받다보니, 어느샌가 우리들의 대중예술에 대한 판단기준마저 희미해져 가지 않는가하는 생각에서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자신의 음악을 가지고 대중을 열광시키는 음악가(뮤지션)가 아닌, 독특한 의상과 춤으로 한 껀 치고 빠지는 댄싱 모델들에게만 열광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언제가 되어야 정직하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인가.


마이크가 악세사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지금의 인식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너무나 요원한 얘기일 뿐이다.





다음호에는 진작부터 예고드린 대로 샘플링 음악의 문제점에 대해서 논해볼까 한다. 기대하시라. 




- 딴지 전임 논설위원 겸 음악전문기자 
크리티카 (crit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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