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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 오스트리아와 극우연정과 386

2000.2.21.월요일
딴지 국제부

오스트리아. 


일반인에게 그닥 낯익은 국가명도 아닌 넘의 나라 하나가 요즘 졸라 외신을 타고 있다. 


행여라도 모짜르트 등등의 천재적 음악가들이 활동했던 음악의 나라, 혹은 맛있는 비엔나 커피와 같은 이유로 외신을 타고 있었으면 본우원이 뭐 디빌게 있겠냐.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졸라 맛대가리 없는 이야기다. 잼있는 거 기대하시고 들어오신 분덜은 브라우져의 왼쪽 화살표 똥구녕을 살포시 누질러 다른 글부터 읽어 보시는 게 좋겠다. 


하여간, 남한땅의 절반이나 될까 말까 한넘의 나라, 일인당 GDP는 22,700달러(1998년)로 졸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에 극우정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한 것. 요거이 왜 국제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함 따져보고 이걸 왜 본우원이 디빌 수밖에 없었는지도 함 보도록 하자. 아참 글구 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찌에 대해선 요 기사(신나찌를 파헤쳐줄께!)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끼야. 





 민족 그리고 민족주의


통상적으로 우리나라 언론에 소개되는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은 양넘들의 분류에 의함 nationalist party로 구분된다. 그럼 우리말로 민족주의 정당쯤으로 낑겨 넣어야 마땅할텐데 왜 이게 문제인가? 민족주의 정당이 뭐가 어때서?


혹시 이거 이런거 아닌가? 



민족주의 정당이 정권에 참여키로 했더니, 외세가 졸라 지랄거리고 있다. 


이렇게 봐버림 외교관계를 동결하겠다는 둥 소란스러운 EU 회원국들과 미국, 이스라엘은 졸라 부당한 내정간섭을 하고 자빠진 외세가 된다. 울나라 몇몇 벼룩신문들의 경우, 오스트리아의 극우정당 자유당 당수 하이더의 말을 인용해 졸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약소국의 비애 비스무리한 소릴 가감없이 기사로 만들기도 했다. 


과연? 


적어도 유럽에서 민족주의 그리고 민족이라는 개념을 어떤 식으로 이용해 왔으며 그걸 내걸고 도대체 어떤 짓거리들을 했는지 안다면 절대로 그런 소리 몬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서구인들의 대구리에 안착한 시점은 빨라야 근대 이후다. 그 전까지? 왕족, 귀족과 평민과 같은 계급적 구분 절대적이었다. 우리로 치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쯤의 구호를 걸고 봉건체제를 뒤엎어버리면서 귀족 출신인 저넘이나, 평민 출신인 내나 같은 넘이라는 계급 통합적인 개념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개발된 개념이 민족이다. 물론 이런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구전되던 자기 민족의 설화나 신화가 재발굴되기 시작했고. 그 전엔 물론 귀족과 평민이 같은 민족이라고 조딜 나불거렸다간 화형감이었지.


그러다보니까 지금의 우리의 눈으로 보면 택도 없는 넘들도 지들을 하나의 민족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10년대 미국넘들 되겠다. 


흔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통칭하는 그 넘들은 지덜이 프론티어 정신을 가진 절라 우수한 민족이라고, 키 작고 몬먹어서 비리비리한 남유럽 출신의 이민자들은 물론, 역시 키 작고 비리비리한 짱꼴라들과도 구분되는 졸라 고귀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지덜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고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벤트가 미인대회 같은 것들이었다. 혈통적으로 따진다면 북유럽계의 짬뽕인 지덜을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만큼 민족이라는 개념에서 혈통은 중요한기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완전한 단일 혈통의 민족은 애초에 태생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옛부터 국가간의 교류는 끊임없이 진행되어왔으며 이런 교류는 인적 교류, 다시 말해 민족간의 혼혈이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다보면 이민족간에 눈이 맞아서 배까지 맞추게 되는 거야 불변의 진리 아니던가.  아리안 민족의 영광을 제3제국에서 구현하겠다던 히틀러 추종자들. 그래서 졸라 고생 많이 했었다. 


그 쪼맨한 유럽 대륙에서 게르만 민족이 가만히 있었어야 말이지. 라틴계랑도 좀 섞이고, 슬라브계랑도 섞이고, 골족도 물론 좀 섞이고... 그러다보니 아리안족 XY계 비스무리한 형태로 지덜 스스로 분류할 수 밖에. 


민족이 이따구로 애매모호한 넘이다 보니 민족주의도 졸라 애매모호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야 당근빠따다. 민족을 구분하는 넘들만큼 민족주의의 형태도 졸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대략적인 구분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저항적 민족주의다. 국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저항을 조직하기 위한 동질집단이라곤 대부분의 경우 민족 밖에 없다. 또 하나는 이에 반대되는 팽창적 민족주의로, 우린 졸라 위대한 민족이니까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건 자연스러운기여를 주요한 모토로 삼고 있는 넘이다. 


근대에 들어서야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 급조된 민족주의라는 게 무슨 무슨 주의라고 불리기엔 너무도 부실한 넘인 것은 당연빠다. 더구나, 민족주의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부터가 워낙에 불분명한 넘이니 우짜겠는가. 그러니,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다른 이데올로기랑 짬뽕된다. 순수한 민족주의 따위는 존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존재한 적도 없다. 


그래서, 양넘들의 구분법에서 nationalist party라고 불린다는 건 이넘덜이 팽창적 혹은 배타적인, 극우 정당이라는 뜻 되겠다. 


 팽창적 민족주의, 그리고 오스트리아


민족주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몬한 본우원, 그래도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선 감정이 없다. 그거라도 없으면 뭘로 외세의 침탈에 저항하겠어. 문제는 팽창적 민족주의다. 이넘이 파시즘과 결합한 것이 바로 나찌(Nationalsozialist, 줄여서 Nazi)고. 근데... 이넘의 나찌즘은 독일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 독일민족이었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 탄생할 수 있었을까?


당시의 독일의 상황은 나찌라는 바이러스가 배양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오스트로헝가리안 제국으로 유럽의 중원을 장악하고 있던 넘들이 1차대전 이후 쪼그라들어버렸고, 배상금 못갚는다고 지덜 땅덩어리를 프랑스에 뺏겼으며, 1차 대전의 패배에 대한 전쟁배상금 때문에 나라경제가 아작난 상황이었다. 거기다 철저한 자유국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거의 완전한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었다. 


맑스와 엥겔스가 만약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곳은 독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마냥 절라 전투적인 노동자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던 동네에서 그와는 정반대되는 정치형태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은 1차대전 이후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 때문이었다. 


이넘의 나찌가 태동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던 곳은 독일이었지만, 나찌가 정권을 잡고나서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나찌독일에게 헌납한 넘들이 있었다. 지금 외신에 자주 오르락내리락 하는 국가, 오스트리아. 이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나왔자너. 


하여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독일과 병합했을 뿐 아니라 나찌즈 친위대(일명 SS) 지원자의 40%가 오스트리아인이었을 정도로 나찌에 적극 동조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스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뤼른베르크 재판에서 수많은 나찌 고위관계자들이 전범으로 처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넘들은 거의 대부분 살아남는다. 연합국 넘들의 눈이 어떻게 된 건지 오스트리아넘들은 나찌독일의 첫번째 피해자로 인식되었던 것이다.(참고기사


외부에 의한 나찌전범 처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독일 넘들 따라갔을 뿐이에여~라며 오리발을 내밀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버린거다. 그랬기에 거의 대부분 나찌 부역자 출신인 자유당이 1949년 선거만 하더라도 11.7%의 지지율로 16석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전범국이었던 독일의 경우엔 아예 사상검열을 통해 나찌들을 격리시키고 있었던 상태였음에도 말이다. ( 예전에 최장집 교수 물고 늘어질 때, 좃선벼룩이 독일도 사상검열한다고 조디를 놀렸던 적이 있다. 독일의 그것은 나찌들이 공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다. 나찌는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에 모든 다른 정당들을 해산시켜버리고 지덜 혼자서 모든 것을 장악하는 민주주의의 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넘들은 요걸 최장집 교수 물고 늘어지기할 때 독일도 그런다며 써먹었다. 최장집교수가 나찐가. 하여튼 비러무걸 씹숑덜이다.)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하기까지, 그리고 외르크 하이더


그동안 국제사회는 극우주의자들이 전혀 청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이 40~50% 가량의 지지율로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었기에 10% 미만의 극우정당지지율은(49년과 53년의 총선을 제외하고 83년총선까정 자유당의 득표율은 5% 내외였다) 무시할 만한 대가리 숫자라고 판단들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1986년 총선에서 9.7%로 18석을 얻은 자유당은 90년 총선에서 16.6%, 94년에선 22.6% 그리고 작년 총선에서 26.9%로 급격히 그 세를 확장한다. 한때 51%의 지지를 얻었던 사회민주당은 반대로 83년부터 그 세를 잃기 시작해 86년 43.1%, 90년 42.8%, 94년 34.9%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자유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찌부역자 청산과정이 없었던 것에 기인한다. 그리고 다른 EU 국가들처럼 오스트리아 역시 장기간의 불황과 고실업에 시달려왔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던 셈이다. 


독일에선 합법적으로 활동하지 몬하는 신나찌덜이 국경 넘어 오스트리아에 들어와 활동을 하면서 이들의 추종세력이 오스트리아에서 확장되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 한집만 계속 소독을 안 하면 그 집에 동네 바퀴벌레들이 모두 모여있다가 퍼져나가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올해 총선의 결과만을 놓고 극우의 준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때늦은 것이다. 이미 94년부터 22% 내외의 지지율을 확보하며 유럽국가들 중 극우정당이 가장 많이 득표하는 나라가 오스트리아였으니까. 그럼 도대체 이넘들이 워떤 정강 정책을 펼쳐왔기에 다른 국가들에서 이렇게 난리인가? 정작 자유당 당수인 외르크 하이더는 캐나다에서 우린 나찌가 아녀!라고 했는데?


딴거 볼거없이 하이더 이 넘이 행한 그동안의 주옥같은 조디놀림만 보면 몬 생각을 하는 넘인지 대충 나온다.




" 나찌의 노동정책이 건전했다 "
" SS친위대는 존중돼야할 나찌군의 일원 "
"
나찌 수용소는 처벌 수용소 "


이미 우리나라의 외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넘의 아부지는 나찌 돌격대(SA) 대원이었으며 엄니는 나찌 부인회 간부셨다. 

종종 빨래판으로 짜장면 면빨 뽑는 소릴 하는 일본 넘들처럼 이넘도 뒤집어지는 소리하고, 그 담날 사과하고, 다음날 그걸 번복하는 짓을 계속해왔었다. 오죽하면 이넘이 워낙에 예측불가능한 넘이라, 오스트리아의 주식시장이 개판이라는 표현을 Financial Times에서 이런 식으로 했을까. 



"If he(여기서 he는 하이더라는거 말 안해도 알쥐?) can keep his mouth shut then the government may survive."


- 2000년 2월 12일자, "Bears rule in Haiders Austria", William Hall


본우원 지금까지 Finacial Times와 같이 권위있는 신문에서 남의 나라 당수더러(그것도 연립정부에 참여한) shut his mouth라는 표현쓰는 거 몬봤다. 우리로 치면 본지와 같이 졸라 전문적인 명랑용어를 구사하는 신문이 아닌 일반 벼룩신문에서 그넘이 조디를 닥치면이라고 쓴거니까. 그동안 이넘이 얼마나 황당한 인종차별발언과 외국인혐오증을 드러내고 있었고 또 그것을 다른 서구국가들이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표현이다. 


 근데... 왜 난리인겨?


졸라 깨는 넘들이 정권에 참여하는 거, 이거 지구상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 우끼고 자빠진 넘이 정권에 참여했다고, 주변 국가들이 외교관계를 격하시켜버리네 어쩌네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이더가 졸라 깨는 넘이라는 것까지는 말이 필요없지만, 하이더 주장처럼 내정간섭이다 씨바들아~라는 소리까정 들어가면서 주변 국가들이 이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첫번째 이유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외교적 제재에 나선 국가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역사적 경험이다.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미국은 유럽의 전후복구사업, 이른바 마샬플랜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붓는다. 물론 유럽이 이뻐서가 아니라 대공황을 경험한 후, 지들끼리 조빠지게 물건만 만들어 봐야 살 능력이 없는 넘들이 태반이면 조땐다는 것을 뼈져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적으로 등장한 소련의 서진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후복구비용의 상당부분을 투입하는 것은 미국넘 입장에서 보자면 꼭 필요한 투자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쟁배상금을 물어도 션찮을 독일에도 그넘의 돈이 졸라 많이 들어갔다. 전쟁배상금? 그런 건 요구도 안했고. 

왜 그랬을까?


앞서 말했지만, 독일에서 나찌라는 바이러스가 배양될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이 청구했던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이었다. 가뜩이나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국고가 뽕빨난 시점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함으로서 경제복구가 늦어졌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박탈감 그리고 고실업상태가 지속됨으로서 나찌가 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아울러 민족주의라는 넘이 앞서 말한바 있듯, 자기완결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먹혀 들어가는 경우는 그 동네가 피압박 민족이거나, 역사적 성찰이 없는 덜떨어진 동네일 경우 뿐이다. 이것 때문에 전후복구사업비중에서 상당부분이 교육부분에 투입되기도 했다. 제대로 된 교양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헛소리 안 믿을테니까. 다시 말해 민족주의라는 넘이 태동할 수 있는 환경자체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돈을 들이 부었던 것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소국들에서 발호하는 민족주의는 결코 팽창적 민족주의로 나설 수 없는 반면에(옆에 있는 강대국들 콧털 건드렸다가 무슨 꼴 나려고),  독일과 같은 동네에서 민족주의가 다시 튀어나오면 그건 팽창적 민족주의일 수밖에 없기 까닭에 이런 넘이 나타날 환경 자체를 차단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던 것이다. 


민족주의가 다시 세를 규합하는걸 막기 위해 돈을 허벌나게 부을 정도였던 미국이나,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영광 우짜고 저짜고 하는 독일넘들에게 호되게 당한 바 있는 인근 유럽국가들, 그리고 수백만명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숨진 이스라엘이 길길히 뛰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두번째 이유는 이 넘들이 그렇쟎아도 각국에서 세몰이에 나서고 있는 각국의 극우정당들의 종합지원센터가 되는 사태가 발생할까봐 그런 것이다. 지난 22호의 딴지성명(브리지도 바르도 니나 잘해)에서도 잠깐 언급된 바 있는 프랑스의 국민전선(FN)을 비롯해 노르웨이의 진보당(이런 거 보면 확실히 당이름과 정치적 지향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과 같은 극우정당들의 득표율이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맞물려 10%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서유럽에 비해 몇 배는 더 어려운 동유럽 국가들은 더 심한 상태고. 


극우정당 하나가 정권 잡아 세계대전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 넘들이 때로 정권 잡으면 무슨 짓을 할지 도대체 누가 알겠는가? 오스트리아에 대한 규탄과 동시에 각국 정부에서 이민법을 대폭 강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넘들이 대중에게 먹히고 있는 요소를 줄이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는기다. 요거까진 미국도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세번째는 EU의 미래와 연결된 문제다. 


소련연방 해체이후,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면서 EU는 그 덩치를 계속 키워왔다. 근데, 극우는 물론이고 보수정당치고 EU에 호의적인 넘 없다. 탈퇴해야 한다고 하지. 


사실 보수당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의 인민당이 수 십년 동안의 연정파트너였던 사민당과 결별하고 극우당인 자유당과 손잡은 것도 유럽통합에 대한 이견이 한 부분을 차지했었다. 


화폐통합까지 하면서 유럽합중국으로 나가기 위해 졸라 노력중인 상태에서 엄한 넘들이 정권 잡는 바람에 이 일정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기 빤한데 우찌 잠자코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한 번 EU회원이 된 국가를 말썽부린다고 쉽게 탈퇴시킬 수 있느냐. 졸라 어렵걸랑. 가입의 경우엔 회원국 전체의 승인이 있어야 하고 탈퇴는 더 힘들거덩. 이런 상황에서 깡패 같은 넘들이 정권 잡고 줄창 훼방놓으면 EU 전체가 속수무책되는 거지. 


외국인에 대해서만큼은 오스트리아 자유당 넘들과 거의 비슷한 정책을 펴고 있는 다른 유럽국가들이 외교적 관계 들먹이면서 시끄러운 것은 대략 이런 세가지 배경이 깔려 있는기다. 


 그리고 어떤 나라...

그럼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외세의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 자유당 에 대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99년 총선에서 최악의 투표율이 나왔던 것은 그동안 메이져 정당들의 부패에 질려버렸기 때문일 뿐이다. 


이들은 인민당이 보수 + 우익 연립정부를 구성하려는 그 순간부터 "난 하이더 안찍었어 짜샤!를 구호로 외치며 자유당의 연립정부 참여를 반대해왔고, 지난 19일에는 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25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비엔나의 거리로 뛰어나왔다. 심지언 중고삐리까지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상태다.


아무리 극우가 연립정부에 참여할 만큼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고 하지만, 다수는 그들이 정권에 참여하는 것이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제3당이 된 인민당이 정치적 논리만으로 극우를 연정 파트너로 선택한 것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우원 바로 이 부분에서 그들이 졸라 졸라 부럽기 그지없다. 


온 유럽을 들끓게 하는 그넘의 동네에서 극우의 지지율은 겨우 26%에 불과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지역정서라는 희안한 넘이 투표질을 결정짓기 때문에, 도대체 그 출마한 넘의 대가리에 똥만 가득한 극우인지 몬지에 대한 판단 자체를 건너뛰기 때문에, 결국 그 국회에서 극우 아닌 넘 찾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 십년 전 부하의 총탄에 북망산 등정에 성공한 굼바리 독재자가 사후 20여년이 지난 뒤엔 근대화에 성공한 영웅( 참고기사 박정희 <근대화> VS 채플린 <모던 타임즈>), 니는 고문받아바써?)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가 하면, 주리줄창 빨갱이 사냥에 종사해온 어떤 구케의원의 후원회에는 1000명이 모이고 있거든. 


당연히 졸라 싸가지엄꼬 자격없는 여의도 물장사 추방운동에 걸려들었지만, 용병들이 뽑은 리스트에 올라 영광이다라는 거지 발싸개 같은 조디놀림을 자행한바 있다.


그동안 쌓아놓은 공덕이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검찰의 소환만 23번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위처럼 당당하게 버팅기다가 당사로 도망간 후 더 가관인 조디 놀림을 자행해버렸다. 


"나 구속되면 전국 최대 득표 당선이야"라고.


더욱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그게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범국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독일이라고 해서, 나찌와 나찌잔재청산이 뤼른베르크 재판 하나로 끝났던 것이 아니다. 68년 전 유럽을 휩쓸었던 학생운동이 있었기에, 국민이 고분고분하면 국가가 버르장머리가 없어진다며 봉기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청산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럼 그 어떤 나라에선 독일과 같은 국민들의 저항과 그 결과물이 없었던가. 아니다. 87년엔 헌법 몬바꾸겠다고 발버둥치는 굼바리 정권에게서 항복선언을 받아낸 바 있으며, 전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전국단위의 반정부 학생조직까지 출범시켰었던 적이 있다. 


본우원, 그 당시 아저씨들이 핵교를 졸업한 후 조직한 동우회의 명단에 이름 올리고 있다. 본우원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 함 절대로 아니지만, 나름대론 치열하게 살 수 있었던 기회를 주었던 이들에게 아직도 고마운 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그 동우회 출신자들 상당수가 386세대라는 이름으로 출마한다. 상당수는 지금의 여당에서 몇몇은 야당에서 출마의사를 밝혔다.

본우원,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있다.

그들이 과연 세대의 이름을 감히 사용할 수 있느냐고.

68년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독일 넘들은 20년 뒤에 그때 가졌던 신념을 거의 고스란히 가진 상태에서 녹색당의 이름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20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이 해온 수많은 활동의 고단함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그들에게 누가 될 거 같아서 글로 표현하질 못하겠다.

새로운 정치의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움직였던 유럽의 그들은 맨주먹으로 기성정당의 장벽을 헤치면서 정치권에 진입했지만, 의장님들은 기성정당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세대 앞의 한 사람은 87년 대항쟁의 뇌관이 되었던 어느 대학생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 구속되면 전국최대득표 당선이야~라고 조디를 놀리고 자빠진 넘이 맹활약중인 정당에 입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절망한다. 불과 1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다고 기성판의 새로운 양념을 자처한단 말인가. 이른바 개혁세력이 기성정당에 들어가서 뭔짓을 했는지 지난 구케에서 충분히 보지 못했단 말인가?

6.25이후 첫 대파업을 촉발시켰던 당시 여당의 새벽체조. 거기서 이른바 개혁세력이 몬짓을 했었는가?

그래서 극우정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온몸으로 거부하는 국민이 있는 오스트리아가 부럽다. 그리고 386세대라 하더라도 말번이었던 까닭에 어디 명함조차 제대로 내밀어 볼 수 없었던 본우원, 하지만 피로 쓰여진 역사라고 하는 80년대 학생운동사에서 그 피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 본우원은 그넘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넘들은 정작 386이라는 이들이 가졌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장이라고 불리는 사회의 여기저기서 피땀을 쏟고 이들의 이름을 팔아먹고 있는 넘들이기에.

치열하게 살았다는 하나의 증명이었으며 내 자신이 영예롭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그 동우회의 명단에서, 그리고 당신들이 말하는 386세대에서 이젠 내 이름을 삭제해달라. 이 씨바들아. 





- 전대협 동우회 6기
딴지전임논설우원 Samuel Seong 
( whitelancer@netscap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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