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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춘향전>을 부쳐먹어 봤더니

2000.1.28.금요일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조상현 명창의 사랑가 한 대목이 짤막하게 지나가고, "春 香 傳"이라는 타이틀이 박히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곧바로 난데없는 "정동 예술 극장"이라는 표지판을 잡은 설정샷이 연결된다. "국창 조상현 명창 판소리 춘향전 완창"공연이 열리는 그곳에, 대딩덜 대여섯명이 주저리 주저리 떠들면서 들어간다.


그 넘뇬덜이 떠드는 내용 중 한 대목.


쫌 까분다 싶은 넘 : 야, 다섯시간이나 이걸 어떻게 보냐? 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리포트 낼테니까..


쫌 진지하다 싶은 뇬 : 전통예술이라는거 보고 후회하는적이 없더라고.. 참어라 참어.


그리고 조상현 명창의 인삿말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면서 영화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위는 <춘향뎐>의 도입부 요약인데, 이 도입부가 얘기하고자 하는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요즘 애덜이 인터넷이다 뭐다 떠드는데 말야, 니덜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라는걸 제대로나 알고 그러구 있냐. 좋다, 내가 오늘 니덜한테 판소리의 훌륭함을 함 보여주겠도다."


아무리 영화판의 어르신이 만든 영화일지라도 이런 식의 도식적인 훈계가 들어가면 영 거북살스런 거부감이 드는 본 기자이지만, 뭐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니깐 넘어가자. 이 영화가 스스로의 목표를, 자기가 홈런 넘길 펜스를 예고해주던 베이브 루스마냥 콕 찍어주고 있으니, 그쪽을 디벼보는 일이 훨 영양가 있는 일이다.


게다가 본 기자, 인터넷은 좀 알고 우리의 것은 조또 모리는 무식한 넘이니, 마루타로서는 안성맞춤이 아니던가.


 의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의 중심은 영화가 아닌 판소리다. 말하자면 조상현의 완판 춘향전을 요약하여 영상화시킨쪽에 가까운 판소리 영상독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내내 판소리를 깔아두고 그걸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조상현 명창의 공연모습과 그 신기에 가까운 소리에 쓰러지는 객석의 모습이 낑궈들어간다. 극중 춘향이의 대사와 판소리가 동시에 겹쳐져서 나오는가 하면, 몇 장면 안되지만 마치 마당놀이처럼 극중 인물들이 직접 판소리를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춘향전과는 전혀 다른 거예요.."라는 임권택 감독의 말대로 영화의 형식은 기존의 "춘향전"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형식은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완판 춘향가 듣고 필 꽂힌 임권택 감독이 자신이 느낀 감동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그리고 알기쉽게 전달하는게 목표인 영화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판소리를 알아먹을 수 있도록 자막까지 깔아뒀겠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판소리 공연을 보면서 머리속에 이런 저런 영상들을 떠올렸을 임권택 감독의 모습이 오버랩 될 정도다. 그 정도로 감독의 의도는 뚜렷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판소리


이 대목에서 또 한번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판소리의 영상화와, 그를 통한 판소리의 대중화에는 성공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쫙- 끌어 땡겼다가.. 툭! 놓으면서 풀어내는 맛과, 목소리 하나로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판소리의 멋을 실감 체험하게 한다. 완창 춘향전의 겨우 2/5밖에 안되는 2시간 남짓이지만, 조상현 명창의 소리에 호흡을 맞춰서 깔리는 영상들은 판소리의 맛을 시청각적으로 배가시키고 있다.


우선, 판소리의 완급에 그대로 맞춰진 영상은 동작과 음악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의 미키마우징micky mousing을 방불케한다.


남원의 풍광을 소개하는 판소리 대목에서 산, 운해, 철쭉들을 잡아놓은 장면이나, 춘향이 데리러 허위적 덩실덩실 뛰어가는 방자의 모습을 담은 장면 등은 판소리의 리듬과 분위기를 그대로 잡고 있다.


한양으로 떠나가는 몽룡의 모습이 점점 멀어짐에 따라 "떠나는 님의 모습은 달도 같고 별도 같고 나비도 같고.."하는 조상현 명창의 소리를 점점 줄여나가는 장면에서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여유로운 유머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판소리를 그대로 화면으로 옮기는 이런 형식외에, 판소리와 영화 대사를 그대로 일치시키는 형식 또한 사용되고 있다. 춘향이 한양으로 떠난다는 몽룡을 붙잡고 절규하는 대목 등의, 격한 감정이 표현되는 대목에서 그 효과는 만빵이다.


판소리와 대사를 일치시킨다는 것은 결국 대사의 출발점인 영상과 판소리를 일치시키는 것이고, 이것은 대사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판소리의 절절한 필을 그대로 영상에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따 씨불, 거 말 한 번 복잡하다..


어쨌거나, 단언컨데 <춘향뎐>은 아마도 판소리의 맛을 그대로 살려가면서 재미있게 감상하게 하고자했던 모든 시도중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서 있다.


 영화


아무리 17번씩이나 영화화 된 닳고 닳은 이야기라지만, "춘향전"의 이야기 자체는 여전히 쏠리고, 애틋하고, 흥분되고, 화나고, 통쾌하게 만드는 버라이어티 쑈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는 훌륭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귀신도 웃기고 울린다는 명창의 판소리로 듣는다면야 그 흥분은 말할 것도 없겠다.


즉, 우리가 <춘향뎐>을 보면서 어떤 종류의 찡한 감정이나 통쾌함 같은 것을 느꼈다면, 그의 약 78% 정도는 원래 "춘향전" 이야기와 그걸 불러낸 조상현 명창의 몫이다. 그 판소리를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덜 지루하게 보도록 한 임권택 감독의 몫을 빼고, 액면 그대로 영화만 생각한다면 말이다.


뭔 얘기냐.


이 영화, 한 편의 상업영화로서 보자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본 기자같은 까막귀가 들어도 그 느낌이 절절하게 와 닿는 조상현 명창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정일성 촬영감독의 예의 그 아름답고 정제된 한 폭의 그림같은 촬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엑스트라와 물량을 동원한 시대 재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별로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사실 2시간의 상영 시간은 꽤나 지루하게 느껴지며, 감독이 많은 방점을 두었다는 조선시대 청소년들의 사랑 이야기는 별로 절절하게 와 닿지 않는다. 아마도 독자 제위께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셨을 사랑가 대목을 재현한 씬도 그 강도면에서 <노는 계집 >에서 신은경이 보여줬던 파워 어택의 반에도 못미친다. 아, 안타까와라..



 문제들


좀 세부적으로 디비보자.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것은 캐스팅의 실패다. 예고편을 보니 주연 맡은 애덜, 임권택 김독, 정일성 촬영감독같은 할아버지들한테 절라 야단맞아 가면서 고생고생하면서 찍은 고충 어렴풋이나마 알겠더라. 하지만, 그건 그거고 영화는 영화다.


몽룡역의 조승우는 이몽룡 특유의 카리스마를 살리고 있지 못하다. 발음은 어딘지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며, 입가에 거의 시종일관 어정쩡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물론 외유내강적인 여유로운 웃음은 아니고. 설상가상으로 마스크마저 지나치게 서구적이라 마치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나이가 좀 들어보여서 그렇지, 차라리 변학도 역을 맡은 이정헌이 몽룡 역으로 더 나을뻔했다.


이건 춘향 역의 이효정도 마찬가지다. 춘향역에 차라리 향단이 역을 맡은 이혜은을 쓰는게 나을뻔했다. 예전 춘향역에 당첨됐다구 했을때의 스틸 사진 볼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솔직히 왜 얘가 춘향역에 뽑혔는지 본 기자는 잘 모르겠다. "춘향전"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한국적인 마스크의 소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현대적인 매력의 세련된 마스크도 아니고, 연기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밋밋함과 아슬아슬함 사이를 넘나드는 두 주인공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딘가 체한듯한 불편한 기분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임권택 작품"이라도, 관객들과 직접 스크린에서 만나는 사람은 어쨌든 배우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주연배우들은 감독이 의도한 바대로 영화를 만들어가는데 있어 책임의 큰 부분을 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다른 이야기도 아닌 "춘향전"인데.


덧붙여 춘향의 대사는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별들의 고향>필이 배어 나오는 오버 더빙으로 처리돼 있다. 근데 이거, 성우가 따로 녹음해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색스럽다. 현장 동시 녹음과 더빙이 번갈아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 평소에 난청이 아닌가 의심을 받곤하는 본 기자가 이런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깔 정도면 좀 심각하다.


이런 문제가 생긴 이유는 춘향가 판소리를 틀어놓은 상태에서, 이에 맞춰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텔 미 썸딩>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요즘 한국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의 수준으로 볼 때 이건 너무했다고 본다. 게다가 판소리를 다루는 영화임에야.


 "춘향전" vs <춘향뎐>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아주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지날지도 모른다. 사실 이 흥미진진한 시도를 지루한 것으로 만든 것은, 그 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잘게잘게 썰어서 그걸 시나리오로 다시 각색해내지 않는다면, 어차피 영화는 판소리에서의 한 얘기 덩어리가 일단락 지어질 때까지 그걸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영화의 시퀀스의 덩치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 때문에 컷의 길이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는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춘향전"이 주는 잔재미들이 사라져 버린건, 너무 컸다.


이번 <춘향뎐>에는, 이몽룡한테 적당히 개기는 방자가 아닌 충실한 하인으로서의 방자의 모습만 있을 뿐이며, 아버지한테 야단맞는 이몽룡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춘향전"의 빼놓을 수 없는 잔재미인 방자와 향단이의 언더그라운드적 로맨스도 없다.


원래 판소리 원본엔 그런거 없는건가? 본 기자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런거 조또 모린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안다. "춘향전"은 그 시대의 오락적인 요소가 총망라 돼 있는 민초들의 오락이자 삶의 위안꺼리였다는 거. 판소리는 그걸 가장 재미있게, 실감나게 전달하는 수단이었다는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록 세트 디자인이나 고증은 영화 <춘향뎐> 발치에도 못따라갔지만, 이민우가 이몽룡 역을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줬던 95년 추석 KBS판 <춘향전>이 차라리 훨씬 재밌었다.


김희선은 지금과 다름없이 그때도 연기는 절라 못했지만, 신선한 맛은 있었다. 거기에서는 방자랑 향단이도 누룽지 나눠먹으면서 연애질했고(그때 허준호가 방자 역으로 참 딱이었지), 변학도 생일잔치를 뒤집어 엎는 장면도 더 통쾌했었다. 어사또가 된 이몽룡이 춘향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 신파쪼로 덥썩 끌어안기도 했다.


이런거 유치찬란한가? 하지만, 본 기자의 싸구려 취향으로는 원래 "춘향전"의 맛이란 그런 맛이 아닌가한다.


물론 고전의 가치를 아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상업영화를 통해서 이걸 알게 된다면 그것도 무척 의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업영화가 대중들을 교육, 계몽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다음에야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예전의 판소리 "춘향전"이 대중을 계몽하려고 들지 않았듯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춘향전"의 그 생명력 또한 바로 폼잡지 않고 대중들의 희노애락을 생생하게 담아 내면서, 그것으로 그들에게 여러 즐거움을 선사하려고 했던 유희정신, 그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언더그라운드 식품들, 즉 돌 캬라멜, 쫄쫄이, 달고나, 쵸코 건빵, 마분지 쥐포 등의 식품들의 대열에 함께 있다가 오버 그라운드로 올라가버린 소라형 스낵같은 과자를 먹을때면 본 기자는 항상 불편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훨씬 세련되어지긴 했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예전의 모습에서 너무 달라진 옛 친구를 보는듯한.


 


 덧붙여서


 이 영화의 찌라시를 볼 것 같으면, 주연배우들의 이름은 맨 뒷장에만 코딱지만하게 나온 걸 알 수 있다. 임권택 감독의 이름이 여기저기 큰 활자로 8번이나 박혀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무엇을 중요시하는 영화인지 짐작할 수 있다.


 우쨌거나 머니머니해도 본 기자가 가장 재밌게 보았던 "춘향전"은 어린시절 소녀지에 별책부록으로 끼워 나오던 "올칼라 소년소녀 고전문학 시리이-즈"로 읽은 춘향전이었다.


변학도에게 치도곤을 당하고 옥에 갇힌 춘향이에게 참새하구 쥐가 와서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주는 순정만화풍의 삽화가 그려져 있던, 그리고 어사또로 나타난 이몽룡에게 곤장을 맞는 변학도의 히프에 멍이 경천사지 10층 석탑마냥 솟구치는 삽화가 그려져 있던 그 촌스럽디 촌스러운 춘향전 말이다. 이거, 기억이 나실랑가.. 



 


-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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