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한동원 추천0 비추천0



2000.1.29.토요일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우리 민족의 20세기는 진정 파란만장했다. 치욕적인 일제강점으로 20세기를 열어 6.25를 치뤘고, 군사구테타와 군바리 독재정권을 겪어내야 했으며 결국은 고통스러운 IMF로 20세기를 마쳤다. 항상 난세에는 영웅들이 있기 마련. 바로 그런 영웅들을 본지가 20세기 역사모로눕히기 차원에서 찾아나섰다.

그러나 본지가 언제 남들 하듯 하는 것 봤냐. 본지는 본지만의 엽기 컨셉이 있다는 거, 이거 이미 범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본지가 앞으로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 영웅들은 지난 20세기 우리 민족의 자존과 긍지를, 어쩌다보니 본의 아니게 지켜낸 영웅들 되겠다. 감이 잘 안 잡히냐. 보믄 안다.


오늘은 그 대 역사의 제 1탄 되겠다.






인명별 전화번호부.


불과 5년전만 하더라도, 이 책이 공중 전화 부스에 당당당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맨손으로는 오로지 차력사들만 찢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책..이라기 보다는 둔기에 가까왔던 이 '인명별 전화번호부'.




하지만 2천만명이 핸펀을 보유하고, 이름만 입력하면 전화번호를 씸플하게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하고 작금, '전화번호부 인명부'는 이미 우리의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그리 쉽게 떠나 보낼 수 없다.


어린 시절의 지루한 오후, 불장난 불쏘시개나 딱지 종이가 모자라던 때에도 그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떼어 주지 않았던가. 또한 어린 주인의 짖궂은 괴롭힘에도 언제나 묵묵하게 주인곁을 지키는 충견과도 같았던 그. 그는 그의 백년지기 구들장을 위해, 라면 냄비의 뜨거움을 온 몸으로 막아주던 의리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또한 회사, 관공서 등의 집단이 개인보다 중요시됐던 그 시절, 전화번호부 인명부는 당시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되었던 최후의 보루였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전국으로 배포되는 그 뚜꺼운 책에 우리 아버지의 성함, 우리집 주소, 우리집 전화번호가 반듯한 활자로 찍혀 나오는 것을 보고 자부심 이상의 뿌듯한 감정을 느꼈었다.


"아, 우리집도 매스콤 탈 수 있구나.."


그 뿌듯함은 도덕책이나 국민윤리 교과서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 바로 그것이었다.











하늘색 종이와 [가 ] 첫 페이지의 이 첨예한 대치 상황을 보라


그리고 그 존엄성에 대한 자각을 선두에서 지켜냈던 것은, [가 ]라는 제목과 함께 시작하는 전화번호부 첫 페이지였다. 이 페이지는 본 기자로서도 감히 함부로 딱지화 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관공서 전화번호"라는 국가권력의 위협과 하늘색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위태롭게 대치하던 그 첫 페이지..


삭풍이 몰아치는 그 최전선의 선두, 즉 첫 페이지 맨 첫 줄에 우뚝서서 일신의 안위를 탐하지 않으며, 오로지 개인 정보통신의 안위와 순수성을 지켜내고자 했던 중원의 영웅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전화번호부를 지켜낸 사람들"이다.


온갖 장난전화질, 침 발라 넘기기, 볼펜 낙서질등의 환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그리고 본의 아니게 전화번호부 인명부 첫 페이지 맨 첫 줄의 자리를 올곧게 지켜낸  당대의 영웅 호걸들..


그들에 대한 경외심에 숙여진 고개를 곧추세워, 본 기자, 지금부터 그들의 무언의 호령소리와 전화벨 소리로 가득했던 그 곳으로 떠나고자 한다.


전화번호부 수호의 선두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영웅들의 꿈과 야망, 모험과 사랑 그리고 좌절과 희망의 대하 드라마..


아, 이 벅찬 가슴 달래고,


시작한다.









62년 전화번호부


때는 바야흐로 62년, 아직은 가갑선 대인의 시대가 열리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직업별 전화전호와 개인 전화번호가 한 권의 전화번호부에 뭉뚱그려져서 실리고 있었다. 직업별과 개인이 분리독립되기 전인 78년까지, 전화번호부 인명부는 태동기이자 혼돈기라 할 수 있는 시기를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강갑득", "강길만", "가재남"등의 당시 개인 전화번호의 선봉장들은, 캐나다 회사의 한국 현지법인으로 추정되는 "가나다 미장원" "가나다 商社" "가나다 여관"등의 상업용 전화번호에 대항하여 힘겨운 주도권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끗발은 선두를 탈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혼돈과 암흑의 시대에, 최초로 상업용 전화번호로부터 선두를 탈환함으로써 전화번호부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이후 '전화번호부 인명부'가 독립되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본의 아니게 마련한 호걸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73년에 등장한


"가 갑 손" 대인이다.











두 가갑손 대인의 선두 등극 (73년)



특기할만한 것은, 이 "가갑손" 대인이 전화번호 한 끗발로 2인자로 쳐진 또 한 명의 동명 이인을 대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본의 아닌 '가갑손 2인 연합'으로 인해, 이들의 선두탈환은 '최초'라는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선두 굳히기의 기틀을 확고히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연합 통치는 75년 선두 가갑손의 퇴진으로 2년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동시에 [가 ] 첫번째 페이지는 첫줄은, 가갑손 연합의 그늘에 가려 3인자의 자리에 만족해야 했던 "가경출", 그리고 77년에 등장한 신진 여성세력인 "가경자"등의 내노라하는 쟁쟁한 영웅 호걸들의 일대 격전장으로 변하게 된다.










선두 가갑손 대인의 퇴진 (75년)


잦은 내분으로 인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인명별 전화번호 진영은, 77년 급기야 "가가 건강안마지압출장소"라는 정체불명의 회사에게 선두를 내어주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카놋사의 굴욕에 필적할만한 치욕.. (77년)




그러던 중, 79년 그 군웅할거의 어둠이 마침내 종언을 고한다. 가갑손 대인, 가경자 대인 2의 쌍두마차 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리면서, 단숨에 전화번호부 인명부의 권좌를 평정한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니, 그가 바로


"가 갑 선" 대인이다.


그의 선두 등극은 실로 전화번호부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침내 가갑선 대인의 등극 (79년)
그리고 새로 쓰여지는 전화번호부의 역사


사실, 그의 이름 석 자가 전화번호부에 등장했을때, 본 기자는 가갑손 대인을 위해 진심어린 연민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한두해 걸러 가경자 대인에게 지존의 자리를 양보하며 최고지존으로서의 여유마저 보여주었던 그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는 끗발의 소유자인 가갑선 대인을 본의 아니게 접했을 때 느꼈을 그 본의 아닌 허탈함..


아, 그 권력의 무상함이 본 기자의 심금을 울린다.








직업별 전화번호부의 공세에 맞설
지략을 구상중인 가갑선 대인
(전화번호부 역사 기록화 중에서)


허나 가갑손, 가경자, 가경출 대인은 과연 시대를 풍미하던 대인들답게 지금까지의 혼돈스럽던 암투와 반목을 청산하고, 가갑선 대인을 보필하여 인명부를 수호해 내겠다는 도원결의를 맺는다. 과연 호방하다, 그 기개.


그리고 서울의 인구가 1200만명이 넘은 현재까지, 가갑선 대인이 그 엄청난 끗발로 구축해놓은 방어선은 인명부의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한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남아있다.


이들의 아름다운 페어플레이 정신이 후세들에까지 널리 퍼지지 못하고, 민초들의 정당한 목소리에 '잠지털 '등의 뻘소리로 맞서는 더티 플레이가 아직도 이 땅에 횡행한다는 것은 진정 슬픈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 그러나..


미인은 박명이라고 했던가.


너무나 어이없게도 가갑선 대인의 시대는 단 3년간의 천하통일(79년~82년)로 그 막을 내리고 만다. 갑자기 가갑선 대인이 중원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보통신사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로서는, 한번 등극하면 영원히 권좌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가갑선 대인이 전화비를 안 낸 나머지 전화가 아예 끊기지 않았을까하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학계의 지지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어쨌든, 아무도 몰랐겠지만, 82년은 전화 번호부계의 큰 별이 본의 아니게 떨어진 해이자, 동시에 인명별 전화번호부의 역사가 본의 아니게 10년은 후퇴한 비극적인 해였던 것이다.




그리고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전화번호부 인명부는 예전의 그 화려한 명성을 잃고, 도시별, 지역별로 나뉘어진 초라한 몰골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두께 또한, 라면 냄비의 열기에 10초도 안걸려 빵꾸 나 버릴 듯한 얄팍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특히 국내 모든 지존들이 쟁투를 벌였던 서울 지역의 인명부는 무려 25개 구() 단위로 잘게 쪼개져, 가갑선 대인의 후예들이 각 구의 인명부를 본의 아니게 지키고 있는 군웅할거의 형국일 뿐이다.


오호 통재라, 이제는 어디에서도 예전의 영광은 찾을 길이 없다.










떨고 시퍼요..


지존이 본의 아니게 그 힘을 잃으니, 그들에 의해 수호되던 '전화질'의 운명 또한 풍전등화일 수 밖에 없다.


주위를 보라. 극장이고 공연장이고 버스 안이고 지하철이고 시도 때도 가릴 것 없이 귀에서 피날 정도의 볼륨으로 전화벨 소리를 울려 대는것은 다반사요, 고래고래 아무 내용없는 통화 절라 오래 하는 것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오, 슬프다. 난세의 영웅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소인잡배들만이 중원을 어지럽히는가..




그러나 과거 전화번호부를 온 몸으로 지켜냈던 영웅들의 이름 앞에서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질곡의 현재를 바로잡는 일은 과거를 재평가하고 올곧게 세워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전화번호부 주식회사는, 현재 공덕동 본사 열람실에서 잠들어있는 사초들을 토대로 이들의 역사를 바로 쓰는 일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아직도 역사는 잠자고 있다..


또한 그렇게 정리된 한국 전화번호부를 토대로 가갑선 대인을 비롯한 여타 지존들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 사업은, 구체적으로 모든 인명별 전화번호부 첫 페이지 첫 줄에 가갑선 대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헌정, 명시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연도별로 전화번호부를 지켜냈던 영웅들의 이름을 <전화번호부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는 일과, 또한 그것을 집대성하여 그들의 전화번호와 주소지, 그리고 신상명세를 소상히 적은 <전화번호부 수호자 열전>을 만들어 널리 보급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 또한 잊지 말아주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바야흐로, 페어플레이 정신과 개인 정보통신의 정도를 회복하기 위한 그대들의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 도래하였다. 부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읽어내는 지혜를 발휘해 줄 것을 충심으로 기대한다. 이상.



 


- 명랑 개인정보통신 입국을 위해
본의 아니게 이름 석 자 바쳐
인명별 전화번호부를 지켜내신 모든 분들을 기리며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 sixstring@netsg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