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딥 블루 씨>에 퐁당 빠뜨려주마! | |||||||||||||||||||||
1999.9.13.월요일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한마디로 <딥 블루 씨(Deep Blue Sea)>는 전형적인 레니 할린표 영화다. 작가주의 비평, 뭐 이런 걸 하려는 건 아니구, 레니 할린 영화의 특징을 이만큼 확실하게, 모두 보여주는 영화도 없다 싶어서 굳이 감독 이름을 들먹거리게 됐다. 한마디로 <딥 블루 씨>는 이 사람의 특징들을 알면 거의 저절로 파악되는 영화라는 애기다. 그럼 레니 할린 영화들의 특징들이 뭔지 얘기해봐야 할텐데, 그건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영화 자체는 어쨌던간에, 최소한 액션 장면으로 본전은 건질 수 있게 해 주는 영화들었다. 왜 헐리우드 제작자들이 핀란드 출신 애송이 감독한테 눈독을 들였는데. 액션 장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서 그런거 아녔나. 게다가 북유럽 출신답게 적당히 표현주의적인 조명으로 멋도 함 부려줄 줄 안다. 트랙킹(tracking), 크레이닝(craning), 스테디캠(Steadicam)을 현란하게 써먹는 카메라 워크도 젊은 애들 감각에 맞는다. 떼돈 들어가는 액션장면을 거의 동물적 감각으로 멋지게 연출해서 관객들 돈 아깝지 않게 해주고, 영화평도 나쁘지 않게 나오게 만들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리 흔하지 않은 감독이라는 얘기다. 본기자가 헐리우드 제작자라도 이런 감독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다. 빅 마우스 먼스터러스 애니멀 슬래셔 무비의 하위 장르인상어 무비를 맡겨도 여전히 그는 시원시원한 액션 장면들을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실험 중 상어한테 팔을 날름 물린 그.. 뚱뚱한.. 이름이 뭐더라.. 하여튼 그 연구원이 헬기로 후송되고,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연구소를 초토화시키는 상어들의 어택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고, 그.. 연구원을 묶여놓은 들것이 대포알처럼 유리에 박혀서 그 두꺼운 유리가 깨져 나가는 장면의 연출은 그 압권 중에서도 초절정 엑스타시다. 그런 쥐어짜는 듯한 긴장감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유리의 첫 조각이 툭 떨어져 연구실 바닥을 구르는 클로우즈업에서 그 긴장감은 극에 달하는데, 예정된 카오스의 화두처럼 던져지는 그 유리 한 조각이 가지는 영화적 위력은 <쉬리> CTX의 287배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우습게 볼 수 없는 이유가 결코 CG, 미니어쳐 폭파 기술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이 헐리우드의 CG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 그 장면을 구성한다고 생각해 보시라. 그 정도의 긴장감 넘치는 화면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는가? 물론 실물상어, CGI상어, 기계상어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만든 기술력 또한 압권이지만, 그 CGI가 실제로 튀어나올듯 위협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장면 구성, 편집 리듬, 카메라 움직임을 설계해내는 연출력이 더 대단한 것이다. 어쨌든 상업적으로 영리한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처럼 머리가 좋아진 상어가 엄청난 수압을 견디고 있던 유리를 깨버리고 나자 연구소는 카오스가 된다. 동시에 영화도 살짝 맛이 가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은 너무 상업적으로 영리하려고만 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영화 가장 많이 참고하고 있는 영화는 <죠스>라기보다는 오히려 <에일리언 2>다. 주인공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머리좋은 괴물의 위협으로부터 탈출구를 찾아 존니 헤메고, 한 명씩 죽어나가고, 결국 남는 넘만 남는다는 전체 줄거리 설정부터 시작해서, 복도의 층수를 적어놓는 글자 - SUB LEVEL 1-A - 의 폰트까지. 본기자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이 영화는 분명히 <에일리언> 시리즈 외전 - 해상편을 만들려다가 실패한 영화다. ( 예전까지는 <바이러스>가 그런 영환줄 알았지만 ). 그럼 어떻게 실패하고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카리스마를 가진 주인공이 없다는 점이다. 단지 유명한 배우를 쓰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에일리언 1>에서 리플리가 그랬듯이 끝까지 누가 살아남을 지 모르게 해서 서스펜스를 높여보자는 생각인 것 같은데, 사실 고조되는건 서스펜스가 아니라 산만함이다. 상어 무비의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범인 맞추기 퀴즈가 아니라 사악한 상어에 맞서 나 대신 싸워줄 강인한 주인공 아닌가. 욕심이 너무 과했다. LL Cool J가 연기하는 주방장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신앙심 강한 흑인 "형제brother"(극중 이름 마저도 Preacher)를 주연급으로 써서 흑인관객들도 잡고, 무거운 영화에 유머로 기름칠도 해보자는 작전이 훤히 보인다. 하지만 이 캐릭터, 그런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떨어져 따로 다니면서 안웃긴 유며행각을 벌임으로써 긴장감만 떨어뜨린다. 서스펜스면 서스펜스, 유머면 유머 한가지라도 잘 해보자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건 역시 상업적 욕심이다. 하지만 이 욕심이, <아마게똥>처럼 미국넘이 최고여!를 주제로 잡는 대신, 자본주의 vs 휴머니즘을 주제로 잡고, 여기에 맹목적인 테크놀러지 발달에 대한 경고같은 메시지를 살짝 집어넣음으로써, 평론가들의 호평도 끌어내보자는(최소한 혹평은 피해보자는) 경지에까지 도달하면, 슬슬 경외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상어 전기구이 작전을 핑계로 수잔 박사(새프런 버로우스 분)의 쭉쭉빵빵한 몸매를 여러 각도로 구경시켜주는 명장면이 등장하면, 우리는 레니 할린의 그 투철한 서비스 정신에 그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스펜스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아이디어는 대단하지만 에피소드식으로 나열될 뿐인 액션 장면들, 나름대로 웅장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관객의 감정에 쓸따리없는 개입을 감행하는 존 윌리엄스적인 오케스트 음악(수잔 박사가 치매 연구결과를 되찾으러 상어소굴로 들어가는 영웅적 장면에서 깔리는 장엄무쌍한 음악에 본기자, 웃겨서 눈물이 날뻔 하였도다), 다리우스 콘쥐적인 질감이 멋지기는 하지만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장면구성.. 모두가 그렇게 만들어진 영리한 (또는 영악한 )상업적 장치들인 것이다. 이런 영화야말로, 유명한 감독이 만든 눈물나게 지루한 영화와 함께 평론가들을 가장 괴롭히는 영화다. 칭찬하자니 무식해 보일것 같구, 씹자니 사람들이 재밌다구 할 것 같구, 어떻게 보면 뭔가 있어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 우짤꼬..
경비행기마저도 747처럼 웅장해 보이게 만드는 연출력과 액션 장면에서의 박진감, 등장인물들을 끊임없이 꼬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아이디어, 마치 우주정거장 같은 느낌을 주는 연구소 세트 디자인 같은 것들은 웬만큼 괜찮은 영화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더불어, 애인 손 함 꼬-옥 잡고 영화 보는게 당면과제인 분들도 아마 괜찮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사려된다. 상어들의 가죽 질감, 조명의 일치나 자연스러운 움직임 같은 건 물론 말할 것도 없겠구. 그리고 말하고자하는 바가 뚜렷한 잘 쓰여진(치밀한과는 다른 의미로) 시나리오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비슷한 허망함을 느낄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예의 그 레니 할린표 영화들처럼 극장밖으로 들고 나갈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영화니깐. 따라서, 마지막 장면, 그 심한 일들을 겪고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읊조리는"아, 난 이 직장 때려칠껴" (Im gonna quit this job)라는 한마디는, 이 영화의 결말로서 가장 어울리는 대사다. 심각할 것 없다.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직장을 때려치면 그만이고, 관객들은 웃으며 극장을 떠나면 그만이다.
하긴, 제임스 캐머론도 아닌 레니 할린에게 그 이상의 뭔가를 더 바라는 것도 실례겠다. 이그 이상의 것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그의 최고의 약점이자 최고의 강점이니까 말이다. 그 점을 깔끔하게 느낄 수 있다면 <딥 블루 씨>를 짜릿하고 즐겁게 볼 관객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고, 그 점을 허무하게 느낀다면 본기자에 이어 <딥 블루 씨>가 낳은 또 한명의 아쉬운 관객이 될 것이고.
- 딴지 말초 영화부 부장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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