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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 박찬호가 노모를 줘패란 말이냐 ?

1999.9.15.수요일
딴지 스포츠전문기자

 찬호 VS 노모


지난 몇 년간 스포츠 관련 뉴스에서 박찬호가 차지한 비중은 엄청났다. 스포츠 신문은 매일 찬호 얼굴로 도배를 하다시피했다. 그런데 여기에 곁다리로 껴서, 오징어에 낑겨 나오는 땅콩처럼 노모 히데오라는 일본인 투수가 마른안주로 심심챦게 등장했다.


뭐 떡대 좋은 양넘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같은 동양계 투수로 우정출연하는 것이었다믄 모르겠되, 문제는 노모가 늘 찬호가 극복해서 이겨야 하는 존재로 나오거나, 은근히 노모가 못 되기를 바라는 투로 다뤄져왔었다는 것이다.



" 노모는 지는 해, 찬호는 뜨는 해 "
" 트레이드시장 : 찬호 팔아라, 노모 사가라 "
" 찬호, 20승-사이영상 후보... 노모, 마이너리그로 추락 "
" 노모는 가고, 찬호는 남아 "


이따구로 대문짝만한 신문 타이틀을 본다면 노모는 황당할 것이다. 노모가 우리한테 잘못한 것이 뭐가 있나? 언제 우리한테 조까라고 씨부렁거린 적이라도 있던가?


노모가 올초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을 때에는 실력만이 살아남는 프로의 세계에서 변신을 거부한 당연한 결과였다 라며 맛이 갈 걸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하며 이제 찬호가 아시아 최고의 투수로 우뚝섰다고 떠들어댔다.


찬호의 매사를 노모와 비교하고 우월할 것을 요구하는 근저에는 일본 놈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 한국 대표 찬호가 일본 대표 노모를 이겨 한국인의 우수성을 보여주자 따위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민족감정이 깔려있다.


울나라에서 스포츠경기가 외국과 연관되면 이건 이제 단순한 경기가 아니다. 어떤 운동선수가 일부러 최선을 다 안하겠느냐만, 선수들은 언론에 의해 갑자기 태극전사, 한국낭자군으로 삼단변신하게되고, 민족 자존심이 한판의 시합에 달린 양 코트에서 쓰러져 죽겠다는 각오로 뛰지 않으면 민족의 배신자가 되는 설정이 성립되어 버린다.


이런 마당에 대한남아의 기상을 떨쳐야 할 찬호가 쪽발이 섬나라에서 넘어온 노모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면 정작 찬호나 노모 본인 또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보는 두 선수의 경쟁에 대한 관점은 어떠한가. 노모는 찬호를 경쟁상대로 생각치도 않을뿐더러, 수준이 낮아 경쟁이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본언론도 찬호와 비교해서 보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 하도 떠들어대니 가쉽꺼리로 한두번 보도된 적은 있지만 찬호가 이기고 노모가 진다고 한민족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게다.


찬호도 울나라 기자들의 졸라 끈질긴 유도신문에도 꾿꾿하게 노모는 베울 것이 많은 좋은 친구이며 그가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해왔으며, 굳이 그와 비교하려 드는 것이 반일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예리하게 되물을 정도로 애시당초 노모랑 경쟁하는 것에는 뜻이 없다.


찬호가 귀국해 장학회를 만들었을 때 노모가 일본에서 일부러 건너와 도운 일이나, 노모가 다져스를 떠났을 때 찬호가 " 노모의 빈 락커가 너무나 허전하다 " 라며 아쉬어 했다는 애기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경쟁을 해야하는 당자자들을 싸울 의사가 전혀 없고, 패배했을 때 괴로워해야 할 일본은 경쟁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누가 이겼는지 판별해줘야 하는 미국은 관심도 없는 것 아닌가. 저능한 언론이 온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약발 잘 듣고, 위험부담없는 민족감정을 아무데다 갖다붙여 독자들을 중세의 우민으로 끌어내리며 신문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국제경기에서 국가간 대립구도를 만들어 내고, 그 대결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속성 자체야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울나라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울나라의 경우 이런 <대결구도 만들기>와 <민족자존심>으로 장사하기가 찬호와 노모의 케이스처럼 경우에 닿지도 않는 상황에서까지 시도때도 없이 언론에 의해 마구잡이로 써먹히고 있다는 거, 이거 정말 울나라 언론의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증거물다.


도대체 우짜자는 건가. 찬호가 노모의 아구창을 날려버리고, 마빡을 들이받아야 만족하겠는가.


 노모..


그렇다면, 우리에게 졸라 머쩍은 놈이 되버린 노모는 과연 어떤 인간인가? 현재까지의 기록만으로도 그는 격찬을 받아 마땅한 훌륭한 야구 선수이다.


화려한 아마야구전적을 가지고 90년에 일본프로야구 긴떼스에 입단한 노모는 그해 다승, 방어율, 탈삼진, 승률 부분에서 타이틀을 거머쥐며 신인왕과 MVP를 수상했고 내리 4년간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해 일본야구 최고의 투수로 떠올랐다.


무리한 투구로 94년에 잠시 주춤한 노모는 95년에 일본에서 보장된 돈과 명예, 장미빛 미래를 뒤로하고 세계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미국으로 떠난다. 오늘날 사사키, 이치로 등 일본 최고스타들의 연봉수준은 4억엔(50억)에 달할 정도로 일본야구시장 자체도 대단하다.


일본에서 성공한 스타였던 노모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닌 것이다. 야구 자체에 대한 정열과 대단한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했던 결정이었던 것이다.


성공을 반신반의 하던 일본과 미국의 관계자들은 노모의 일명 토네이도 돌풍에 모두 깜짝 놀라고 만다. 전반기에만 6승1패, 방어율 1.21, 탈삼진 109개를 잡으며 동양인 최초로 올스타전에 출전한 노모는 그해 탈삼진과 피안타율부분에서 타이틀을 획득하고 미국에서도 신인왕을 거머쥐게 된다.


96년에는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쿠어스필드에서 메이져리그 사상 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역시 메이져리그 사상 최단기간 500 탈삼진 기록을 세우는 등 이미 일본과 미국의 양쪽 야구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노모의 활약이 찬호를 비롯한 우리 동양계 선수들의 빅리그 진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많은 구름관중을 끌고 다니며 다져스에 승리를 안겨다준 노모였지만 영어 배우기를 거부하고 팀에 고분하지 않았던 그는 성적이 조금 부진하자 버림을 받고 만다.


계속된 성적 부진으로 뉴욕메츠에서 시카고 컵스로 밀워키 브루어스로 밀려난다. 사실 성적 부진이라고는 하지만 제일 안 좋았던 98년도에도 방어율이 4.92 였을 정도로 오늘날 메이저리그 최저수준의 연봉(20만불)을 받을 만큼 최악은 아니었다.


찬호의 올해 방어율이 5점대 후반이지만 내년도 연봉이 400만불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의 남다른 자존심과 고집에다 동양인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해져서 빚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라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노모의 집념과 고집은 유명하다.  93년에 일본야구 초유의 4년 연속 다승왕을 노리던 노모는 타자가 친 공에 맞아 두개골 골절이라는 부상을 입고 만다.


다승선두와는 1승차, 경기출장을 강행한 노모는 부상의 영향으로 사사구를 9개나 허용하면서도 7이닝까지 144개의 공을 던지며 3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차지한다.


4일 뒤 다시 출장한 노모는 182개의 공을 연장 10회까지 던지고 승리한다. 다시 4일 뒤 시즌 마지막 시합에서 연장 11회까지 177개의 공을 던지고 승리해 결국 다승 공동 1위를 쟁취하고 만다. 9일간 무려 503개의 공을 던졌던 셈이다.


올해 시카고 컵스에서 옵션포함 280만불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좀더 뛰다 오라는 지시에 반발해 당장 메이져리그에서 뛰게 해준다는 조건 하나로 최소 연봉의 수모를 감내하고 밀워키로 옮긴 것을 보아도 그의 고집을 알 수 있다.


야구생각만 하고, 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는 노모이지만 막상 승리나 영광의 순간에도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짤막하게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정도로 그만이다. 올해 다시 부활한 노모는 고난과 수모를 참아가며, 주위의 호들갑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엽까지..


원래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 수록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존심을 내세우기 마련이다. 찬호가 잘 하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그 기쁨을 우리끼리 배가시키기 위해 민족자존심씩이나 동원하는 것은 오바질도 이만저만 오바질이 아니다. 도대체 누가 너거뜰 언론더러 민족의 자존심을 그렇게 아무데나 팔아묵도록 허락했나. 언론들 장사속에 민족자존심이 그렇게 상품이 되어 팔려다닌다는 자체가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남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야구귀재들이 펼치는 멋진 플레이 자체를 즐기고 있을 때, 우리 언론은 그 안에 힘겹게 낑겨서 잘해볼라고 노력하고 있는 몇 안되는 같은 동양계 선수 하나를 적으로 만들어 그 선수보다 잘했다느니, 더 잘할 거라니하며 밴댕이 소갈딱지를 만방에 자랑하고 자빠져있으니 부끄럽다, 부끄러워.


뱀 다리를 하나 붙이자면,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며 우리를 신나게 하고 있는 이승엽선수가 <아시아 신기록>을 세워야 하느니, 할거라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야구에 언제부터 아시아 기록이라는 것이 있었나? 기록이라는 것은 그것이 만들어진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00미터밖에 안되는 거리를 달려도 뒷바람이 기준속도를 넘어가면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 소위 기록이다. 아시아 리그라는 단일 조건이 없는데 어떻게 아시아 기록이 있을 수 있나?


작년에 맥과이어가 62호 홈런을 쳤을 때, 미국의 언론들이 세계기록을 갱신했다라고 하던가. 단지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갱신했다라고 했을 뿐이다.


이승엽이 60개를 친들 우리 언론 말고 누가 있지도 않은 아시아 기록 이라고 인정해준다는 말인가? KBO가 인증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님 아시아를 총괄하는 국제프로야구위원회가 있어 증빙을 한다는 건가. 오해는 마시라. 본기자도 이승엽이 홈런을 하나라도 더 쳤으면 좋겠고, 그가 홈런을 칠때마다 속이 시원하다. 그리고, 흥미꺼리로 일본의 기록과 비교해 보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극일의 정신으로 해내리라 믿는다라며 현란한 도표로 매일 카운트다운을 해대고, 마치 왕정치의 기록을 깨는 것이 일본을 이기는 일이라도 되는 듯이 소란을 피우는 것은 찬호의 경우처럼 싸구려 민족감정 부추기기를 통한 언론장사에 불과하다. 노모 자리에 왕정치를 앉히고, 찬호대신 승엽이를 올려놓고는 온국민을 성립되지도 않는 경쟁구도 속에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근거 없는 추측기사도, 침소봉대식의 선정적 기사도 어느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장사 함 해보려고 호객행위하자면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게 그런 호들갑과 오바질이니까.


그러나 민족감정을 돈벌이에 이용해 먹는 수작들은 이제 제발 그만들 둬라. 그런 짓꺼리는 독자들의 의식을, 혼자치는 딸딸이 수준의 유치하고 저열한 민족주의 테두리에 안에 몰아 넣는 것일뿐 아니라, 그렇게 민족을 떠리로 팔아먹는 것이야 말로 우리 스스로의 자존을 좀먹는 행위다.


민족, 이거 아무데나 팔지 말란 말이다. 씨바들아. 




 


- 딴지 스포츠 전문기자 전지운 ( baram93@chol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