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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1.23.월

좃선싸설까기 전문위원 겸 논설우원 최내현



본지는 이번 호부터 울 동네 생활정보지 좃선벼룩의 우기는 짬뽕 농담 수준의 농썰들을 시리즈로 히떡 디비기하기로 했다. 사실 본지는 민족의 먹고 싸는 것과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들을 고찰하기에도 졸라 바빠죽겠으나, 좃선벼룩이 하도 우끼고 자빠졌길래 21세기 명랑사회를 위해서 할 수 엄씨 본 작업에 착수했다. 좃선벼룩에서는 영광으로 알면 되겠다.

앞으로 시도때도 엄씨, 본지 발행주기에 상관엄씨 문제만 발견되면 튀어나와 좃선벼룩의 농썰을 히떡 디비볼까 한다. 그럼 오늘은 그 첫 편으로 좃선 11월 5일자에 실렸던 연대 송뽕 교수의 시론 < 공인은 검증돼야 함다 >를 함 디비보기로 하자.


 





좃선삐라의 빨갱이 사냥이 드디어 철퇴를 맞았다. 법원이 가처분 결정으로 최장집 교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자 좃선일보는 연일 각종 칼럼과 사설을 동원하며 빨갱이 잡는데 그까짓 명예훼손이 뭐가 중요하냐는 해괴한 논리를 펼쳐대고 있다. 꼴리는 대로 써갈기는 언론자유 보장하라며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다.


사상검증 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 무엇이 좃선을 이처럼 막나가게 만들었나?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내려지기 며칠 전이지만 11월 5일 좃선에 실린 욘대 송뽁 교수의 시론, [공인은 검증돼야 한다]에 그 답이 들어 있다.


함 까발려 보자





- 셰르파 텐징(Tenzing)의 에베레스트 등정, 그 다층적 의미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1953년에 처음으로 등정되었다.


이제는 인간이 달을 밟았을 때 찌찌 먹던 애가 서른이 넘은 아자씨 아줌마들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보다 더 고리짝 에베레스트 초등의 의미는 퇴색했을 지 모르나 당시만 해도 이것은 세기의 사건이었다.


요즘엔 등정기술도 발전되어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 같은 건 다반사로 일어나고,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는 그 곳에 혼자서 텐트 들고 무산소로 올라갔다 오는 미친넘도 나타나고, 허영호 같은 사람은 이쪽으로 올라갔다 저쪽으로 내려가고 하는 각종 괴상한 등반까지 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에베레스트 정상은 인간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곳처럼 보였다.


영국이 에베레스트에 마음을 두고 등반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중엽부터였으니, 우리로 치면 이름도 아득한 조선 철종때부터 시작해서 구한말과 일제를 지나 6.25때서야 끝난 대역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100년의 염원이 달성되었을 때의 흥분은 암스트롱의 달착륙과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야 불행한 전쟁통이어서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당시 여러 나라가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영국등반대에 에베레스트 초등의 영광이 돌아갔다. 초등자는 영국인, 아니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 Hillary, Edmund )와 셰르파 족의 텐징 노르게이(Tenzing Norgay) 두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소수민족 여기기를 동물과 인간의 중간 정도로 여겼으니 텐징보다는 힐러리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에베레스트 초등자가 누구일까요.. 하면 당근 "힐러리 경이요"가 정답이었다. 요즘엔 두 사람을 공동 초등자로 쳐 주지만.


텐징은 그 다음에도 에베레스트를 두 번째로 오르기도 한 철의 사나이였다. 그러나 후일 알콜 중독으로 불우하게 살다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어갔고, 죽음이 임박해서 자기의 유일한 평생 친구였던 힐러리경을 찾았으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말년에는 자기가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것을 후회했다는데, 그의 아들이 등반가의 길을 걸어가자 죽을 때 이렇게 말했다 한다.



"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느냐, 내가 널 위해서 대신 올라가 주지 않았는가 " 라고.


이 아들은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아이맥스 영화 "에베레스트"에 등장, 아버지에 이어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텐징, 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네팔에서 그는 완전 신격화 되었다. 라마교도들은 세계 최고봉 정상에는 신이 살고 있다고 믿었고, 당연히 텐징은 신을 만나고 돌아 온 최초의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텐징은 당시 인도에 대항하는 네팔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처럼 되었다. 그는 위대한 네팔인의 표상이었고, 국민적 영웅, 아니 거의 신처럼 대접받았다.


등반대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도에 도착하자, 인도 사람들도 텐징을 열렬히 환영했다. 네팔에서 텐징은 인도에 대항하는 네팔의 정신적 지주였으나, 이번에는 영국에 대항하는 인도 민족주의의 표상으로 대우받았다.


이 동네에서는 힐러리는 저 밑에 축 뻗어 있었고 텐징 혼자 정상에 올라갔다는 설이 그럴 듯하게 유포되기까지 했다. 네팔에서와 마찬가지로 텐징은 인도인의 우수성을 드러내 주는 귀감이자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렇게 양쪽에서 영웅시된 것은 당시 네팔과 인도 사이의 경계가 불확실하고, 많은 사람들이 양쪽을 넘나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영국에서의 두 사람


드디어 등반대가 영국에 도착하자 이번엔 언론의 포커스는 힐러리에게만 집중되었다.


텐징은 영웅은커녕, "힘만 세고 단순 무식한 놈"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그의 말투, 옷차림 등은 지구 한귀퉁이 소수민족의 촌스러움의 전형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텐징은 등반대에서 받은 손목시계를 한 손에, 인도에서 선물받은 손목시계를 다른 손에 차고 다녔다. 손목시계는 하나만 차는 것이라는 서구의 일반적 관념이 그에게는 없었거니와, 둘 다 중요한 거니까 하나라도 안 차면 예의가 아닌 것도 같고 해서였다.


그 사진을 실은 당시 영국 신문들은 영국인들이 텐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준다.


어쨌거나 간단하게 줄이면...


텐징은 박찬호나 박세리 합친 거 백배쯤 되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다가,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영웅시되었다가, 불과 며칠만에 영국인 영웅의 똘마니 신세로 전락했다. 네팔에선 인도놈들보다 우월한 네팔인으로, 인도에선 영국놈들보다 우월한 인도인으로, 그리고 영국에선 똘마니로....


이 얘기를 왜 하냐면, 한 인간의 행위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해석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거다.





- 송뽕 교수와 좃선일보의 오만


좃선삐라 11월호의 기사가 왜 엉터리 구라인지는 이미 본지에서 다루어졌으므로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좃선이 이후에 내세우는 논리는 대충 [사상검증 하자는데 뭐가 문제냐] 그리고 [민주주의 보장하라] 이 두가지이다. 참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귓가에 남아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어느새 민주투사가 되었다.


요 두 가지 문제가 적나라하게 다루어진 게 송뽁교수의 글이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자.







최근 정치학회 집행부가 낸 최장집 교수에 대한 일방적 지지와, 관계 언론에 대한 일방적 매도 성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의구심과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스스로 한국 [최대 학회]임을 자임하면서, 그 자부에 걸맞는 사리분별을 못하고, 재야단체에서나 함직한 류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학회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나 다름없다. 더구나 당사자가 [같은 학회 동료회원] 임을 내세워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는 행위는 도대체 학자의 길이 무엇인지조차 망각한 듯한 느낌마저 준다.

나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별 것도 없으면서 권위 세우는 선생들을 제일 싫어했다. 지금도 뻑하면 선후배가 어쩌고 나이가 어쩌고 하면서 위계질서나 잡으려는 인간들을 제일 싫어한다. 그런데 송교수가 그런 부류에 드는 것 같은 냄새가 난다. 뭐 그거야 내 개인 취향이니 접어두자.


송교수는 학자란 모름지기 점잖게 목소리 깔고 거들먹거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재야단체나 함직한> 행동이 못마땅한 것 같다. 혹은, 학자는 <일방적>인 의견을 피력하면 경솔한 것이고 " 이건 옳은 것 같지만 저것도 옳은 거 같고...." 하면서 양비양시론을 펼쳐야 학자다운 거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좃선삐라가 오죽 심했으면 그 보수적인 정치학회가 그렇게까지 나왔겠는가.


 







개인 최장집 교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왈가왈부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 학자에게는 학문의 자유가 있고, 사상의 자유가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지금이 아니라도, 심지어는 극한적 대치상황의 냉전시대조차도 그러했다. 그 명명백백한 사실은 비단 정치학회가 거론하지 않아도 누구나 주지하고 있는 것이다.

옳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학자에게만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다 있어야 한다. 학자는 대개 보통 사람보다 그 폭이 더 넓게 허용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지만 말이다.


다만 냉전시대에도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있었다는 말은 도대체 수긍이 가지 않는다. 물론 빨갱이 때려잡는 사상의 자유는 마음껏 누릴 수 있었지만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지금이 아니라도>라는 어구도 어째 좀 이상하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운용 방식이지 사상이 언제 구자유적이고 신자유적인 적이 있었나? 19세기 소위 "자유방임" 시대라고 사상이 자유방임되진 않았었다. 유럽에서도 빨갱이 때려잡는 게 자유방임 국가의 주요한 임무였다. 이때의 <자유>란 것은 국가에 의해서 허용된 일정한 방향 내에서의 자유였지, 문자 그대로의 자유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전체 문맥과는 상관없는 얘기다. 괜히 꼬투리 한 번 잡아봤다.


 







문제는 주요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앉은 공인 최장집 교수이고, 그 교수의 공인으로서의 검증이다. 이 검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처럼 주요 인사에 대한 검증제도가 없는 나라에서는 누군가가 나서 그 소임을 수행해야 한다. 그 소임을 특정 언론이 했다면 그 언론의 검증이 정확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시비는 있어도, 그 검증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성토나 규탄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감정적이고 비지성적일 뿐 아니라, 흔히 보는 매카시 수법의 하나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조금씩 해괴해지기 시작한다. 아니, 누가 좃선일보에게 검증할 수 있다는 자격을 줬는가? 우리같이 검증기관이 없는 나라에서 검증은 국민이 한다. 여론으로 한다. 언론기관은 그 여론을 불러일으키거나 잠재우거나 하는, 일종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좃선도 그렇고 똥아도 그렇고 다른 모든 언론기관이 다 그렇다. 언론기관이 아니라도 괜찮다.


김종피리 총리의 경우는 딴나라당이 검증해보자고 했다가 여론의 호응을 못 얻어서 흐지부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왜곡보도 문제는 차치하고, 좃선일보사가 "검증"을 해버린 것은 인정할 수 없지만, 검증 한 번 해 보자고 "제안"한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어법을 보자. 검증을 좃선일보사가 <했다면>, 검증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성토나 규탄은 <절대로 해서도 안되고 할수도 없는> 것이라 한다. 즉 다른 사람은 좃선일보에 대해서 찬성/반대 의사표시는 할 수 있을지언정, 감히 검증하겠다고 나선 사람을 검증해보자고 덤비는 건 싸가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좃선일보가 검증할 자격이 있는 집단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어쩌고 저쩌고 궁시렁 거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입만 뻥끗하면 애매한 사람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좃선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지극히 감성적이고 비지성적인> <매카시적인> <절대로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것이란다. 씨바...


좋다. 누가 지극히 감성적이고 비지성적이고 매카시적인지 함 해보자. 최교수를 이미 검증했다고 박박 우기는 좃선은 과연 사상검증을 할 위치에 있고 그럴 역량이 있는가. 혹 색맹이 색약 검사하겠다고 나서는 꼴 아닌가.


 







지금까지 시비가 되어온 최장집 교수의 글은 개인 학자 최장집 교수의 글이 아니라 공직자 최장집 교수의 글이다. 공직자 최 교수의 글은 많은 부분에서 수정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최교수가 수정주의자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그런 의구심이 글의 행간에서 강하게 풍겨진다는 것이다. 최 교수 본인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는 글로써 말한다. 그 글이 그런 인상을 주고, 그런 함의를 느끼게 한다면, 이는 읽는 사람 잘못이 아니라 쓴 사람 잘못인 것이다.

드디어 나왔다. 이것이 좃선식 논리의 에센스이며 정수다. 당신이 최교수를 검증한다고 했는가. 이제부터 나는 당신을 검증한다. 나는 지금 팔 걷어 붙였다.


최교수가 수정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송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최교수는 수정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다층적으로 보자고 하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수정주의는 한국전쟁을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보자는 점에서 장점을 가지지만 친북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았다. 최장집교수 논문의 핵심은 수정주의를 비판하고,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옳지만 그 과정에서 김일성의 책임을 면제해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즉, 좃선 일당들이 주장하는 "김일성 찬양"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모든 학문은 논쟁의 구도 속에서 탄생한다. 사회과학적 분석이라는 수정주의의 장점을 취하고 친북적이라는 단점을 버렸기 때문에 수정주의의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다.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고 수정주의를 어설프게 알면, 아무리 꼼꼼히 논문을 읽어봤자 헛다리짚기다.


뭐 어쨌거나, 수정주의라고 해석하는 건 송교수 자유다. 학문 자유를 인정하자. 근데 천하에 요절복통할 문장은 그 다음이다.



< 그 글이 그런 인상을 준다면 이는 읽는 사람 잘못이 아니라 쓴 사람 잘못이다 >


말도 안 되는 어거지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나는 당신이 좃선의 똘마니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 인상을 준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당신 잘못이다. 자, 반박해 보시라.


사진에서 본 지명수배자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내가 지나가다 봤다. 그 인간을 쫓아가서 안 죽을 정도로만 졸라 두들겨 팼다. 근데 알고보니 엉뚱한 놈이었다. 하지만 나는 잘못이 없다. "그렇게 생긴 넘 잘못이다!!" 빨갱이 마녀사냥의 논리다. 지금까지 좃선이 써 먹어 온 수법이 그렇다.


당신 빨갱이처럼 보인다. 그럼 진짜 빨갱이임에 틀림없다. 빨갱이같은 잘못을 했으니까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다. 요런 식으로 박박 우기면 아무나 빨갱이 만들기 쉽다.  


다시 논설로 되돌아가자. 송교수의 논리가 이거다.



" 당신 수정주의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이니까 당신은 수정주의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당신 빨갱이다. 내가 이렇게 검증했으니 안 그렇다는 증거를 대라. "


" 김정일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를 설득해 보라 "던 어떤 할아버지의 망발이 생각나지 않는가.


텐징을 이야기 한 것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한 인간은 사회 안에서 다면적 의미를 가진다. 어떤 사람에게 김대중은 나쁜넘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 김데중은 선생님이고 또 어떤 이에겐 별 의미가 없다. 민주사회니까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자. 다양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저 사람의 생각은 내 관점에서는 틀렸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최장집이 빨갱이라고 생각하는가. 좋다. 나는 당신의 생각이 맞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하지만!


똑같이 당신도 나를 인정하는 한에서만 그렇다. 당신 눈에 빨갱이로 보이니까 그 책임이 최교수에게 있다고? 그런 검증을 하는 좃선의 무자격을 탓하는 것이 <절대로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거라고? 그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좃선이 언론자유와 다양성을 부르짖는가?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 남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자신의 목소리도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나는 다원주의를 찬양하지만, 다원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다원주의는 경멸한다.


그래서 나는 극우적 인간들을 경멸한다. 도망갈 데가 없으니까 민주적 다원주의라는 명분 뒤로 숨는 극우주의자들은 한층 더 경멸한다. 말로만 민주주의를 떠들면 민주주의자가 되는 게 아니다. 어디 가서 당신들만의 천국을 차려라. 민주주의에서 당신들은 설 곳이 없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음 문단이다.







더구나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리게 했다는 구절은 누가 읽어도 일단은 눈을 한번 멈추게 하고, 생각을 한번 가다듬게 하는 구절이다. 물론 글 전체로 봐서는 문제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말에 [역사적 결단]이라는 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 뜻이 합의된 말이다. 그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결정]이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강한 긍정성을 지닌 말이다. 우리는 이완용의 행동을 역사적 결단이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김일성의 전면전 결정에도 이 용어를 갖다붙일 수가 없는 것이다.

좃선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놈의 "역사적 결단" 이라는 문구다. 이 문제는 얘기해 봤자 입만 아프니 간단히 넘어가련다. 한 가지만 지적하면, 모든 단어의 뜻은 하늘에서 떨어진 절대적이고 불변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쓰인 문맥이 결정한다.


" 김일성은 자기 힘을 과신하고 전쟁이라는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역사적 결단을 내렸는데... 그건 오판이었다 "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안 되는가. 그리고 송교수는 자기 입으로도 <글 전체로 보면 문제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근데 왜 문제삼는가? 꼬투리 잡으려고?


칼럼의 뒷부분은 생략한다. 두 문단이 더 있지만, 최장집이 용어 선택을 잘못했다는 것과, 학회도 그러면 못쓴다는 말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저 역사적 문구, <내 눈에 그렇게 보이니까 당신한테 책임이 있다>는 말이 사상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오만함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무지한 것 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무지한 자가 오만한 것 까지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


다원주의를 떠드는 자들은 최소한 다원주의를 실천하는 인간이어야 한다.


그건 마치 골초가 금연운동하면 아무도 안 듣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차라리 다원주의 어쩌고 하지 않고 당당하게 누구처럼 " 지금은 북한과 대치상황이라 다원주의를 허용하지 못한다 "고 나온다면 그건 인정해 주겠다. 최소한 논리의 일관성은 있으므로.


하지만 독선과 오만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이 다원주의를 이야기하면, 그는 다원주의의 한 구성요소가 아니라 그 적일 뿐이다. 그런 인간들이 다른 사람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좋다. 나도 당신들을 검증하겠다. 검증 될 때까지.


씨바. 함 해보자.



 


- 좃선싸설까기 전문위원 겸 논설우원
최내현 ( asever@mai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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