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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1.23.월

NY 특파원 이주현







효녀심청, 억순이, 백설공주, 똑순이, 그리고 무엇보다 배고푸고 괴롭고 슬퍼도 나는 안울어... 캔디, 캔디..

5년전 달랑 300불 들고 혼자 미국에 와, 막일에서부터 시작, 접시닦이, 호스티스, 짐 나르기, 식당 종업원, 댄서... 불법으로 일하면서 욕도 무진장 얻어 먹고, 도둑질도 하고... 그렇게 그렇게 이를 악다물고 일해


지금은 NYU 석사를 따고, 레스토랑 경영 전문가, 식당 웨이츄레스 전문가, 짐 나르기 전문가, 밥 안먹구 일 막하기 전문가, 온몸 상처투성이인 인간 상처 디스플레이, 꼴같지 않게 무용가, 안무가, 공연예술 행정가, 공연기획 전문가가 되어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공연기획사 Dancing in the Streets, Inc.에서 무용공연 코디네이터로서 일하고 있는 뉴욕 특파원 이주현, 인사드립니다. 꾸벅.


총수님이 기사보내기 앞서 자신의 스토리부터 시작하는게 좋겠다고 하셔서 5년전 정말 빈손으로 처음 뉴욕에 와,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몇회 나눠서 할까 해요. 잼없어도 잼있다고 격려해주세요. 꾸벅..




 


5. 이젠 두렵지 않다..


AAAA (Asian American Arts Alliance)에서의 경험은 내게 자신감과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졸업 후 도저히 어떻게 해야 예술행정가가 될 수 있을 지 길이 보이지 않아 미래가 불안하고 스트레스만 늘어가던 내게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닥치는 대로 경험을 쌓는 것" 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저 공부 욕심이 많기만 했던 철부지 학생이 비로소 미국에서 사회인으로 미국인들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겠다는 그런 자신감 말이다. 그때가 대학원 졸업후인 95년 초겨울이었다.


AAAA(Asian American Arts Alliance)에서 무보수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항상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했다. 그저 물건을 나르거나 트리를 장식하거나 청소를 하는 일과는 다르게 내가 하는 일 하나 하나가 바로 나의 경력으로 쌓일 것을 생각하니 모든 일이 내일만 같았다. 당연히 신이 났다. 불평을 안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일이든 내 일처럼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 덕분인지 나는 점차 이곳 뉴욕의 아시안-어메리칸들이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AAAA에서 인턴으로 있으면서 또 다른 비영리 여성기업인협회 (Asian Women In Business)라는 곳에서도 파트타임으로, 이번에는 시간당 10불씩이나.. 받으며 프로그램 어소시에트(Program Associate)로 일 할 기회도 생겼다.


이 회사는 뉴욕에 있는 소수민족 아시안여성에게 비지니스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단체였는데, AWIB를 대표하는 한국인 중개자로서 한국교포들을 상대하는 일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비지니스 미팅을 가질 기회가 많아졌고 여러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일주일에 이틀은 AAAA에서 삼일은 AWIB에서 파트타임으로 9-5 낮 시간 일을 했고, 회사일이 끝나면 곧 식당과 짐을 나르는 일터로 향했다. 그 당시 나는 무조건 배워야겠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회사에서 전화를 받을 때나, 고객과 대화를 할 때나, 회의를 할 때나 항상 눈을 부릅뜨고 무엇이든 배우고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너무나도 배울 것이 많았다.


한국에서 아무런 사회경험이 없이 이곳에 와서, 처음에는 미국인회사에서 하다 못해 전화받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워울 수 없었고 또 타자를 정확하고 빨리 치는 능력까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가 않았다.


이렇게 여러 기관에서 경력을 쌓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되었고 나를 알아보는 아시안계 미국인들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기획했던 포스터..


이렇게 알게 된 사람 중 하나의 소개로 1996년, < Shiah Lally & Imada, Strategic Planning & Communications > 이라는 마케팅회사에서 진짜 회사의 일을 처음으로 맡게 되었다.


미국 최대의 서커스단체인 " Ringling Bros. and Barnum & Bailey Circus "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서, 한국인과 중국인 단체를 대상으로 매표를 책임지는 일을 했는데, 비록 4개월의 한시적 임무였지만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미장원에 갔다. 옷도 3rd Avenue, 28th Street에 있는 Thrift Shop이란 곳에서 헌 옷이긴 하지만 정장으로 한 벌 빼입었다. 그래봐야 15불이었지만... 이 회사에서 나는 "아시안 가족의 밤"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인교포들과 중국인교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그 이후에도 각종 청량제품과 쵸커릿 등을 선전하기 위해 뉴욕 메리얏트 호텔(New York Marriott Marquis)에서 열리는 Food & Trade Show에서 "M & M Mars" 담당으로 나가 쵸코렛판매에 열을 올렸던 것도 기억이 난다.


( 이 호텔은 과거 내가 막일을 할 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와서 밤늦게 부스 박스를 설치하고 했던 곳인데, 그런 일을 알았던 친구들이 부스 철거작업에 들어와 아는 척을 할 때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그들처럼 철거작업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깔끔하게 차려입고 그들 작업을 지켜보고만 있자니 어색했다... 익숙치 않아서...)


이렇게 나는 비영리단체에서 마냥 공짜로 일을 해주던 사람에서 프로젝트 당 계약을 해서 돈을 받고 일하는 Self-contractor로서의 경험을 쌓아 가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미래를 불안해하기만 하고 어떤 일부터 해야할 줄 몰라 막연해 하기만 하는.. 그런 유학생이 아니었다. 비록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아무 곳이나 맘에 드는 곳에 취직할 만큼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니었지만... 돈도 없고 몸이 힘든 건 불과 1년전과 마찬가지였지만  당시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미국 주류사회가..


 


6. 뉴욕 대형식당에서의 경험..


96년 7월, 미국 노스 케롤라이나, 듀크대학에서 열렸던 "American Dance Festival"에 "행정 인턴"으로 뽑혀 90일간의 일정을 끝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경험을 쌓기 위해 반드시 가고 싶은 곳이었고, 그러자면 3개월을 떠나 있어야 했기에 AAAA 등 몇 군데서 했던 일들을 모두 그만 두고 갔었기에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완전 백수였다. 새로운 Job을 구해야 했었다.


그때까지 신분때문에 계속 작은 식당에서만 일을 해오던 나는 좀더 큰 식당( 내가 자신있게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또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했기 때문에..)에서 일하고 싶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뉴욕에 온지 3년만에 말로만 듣던 Rockefeller Center, Central Park, 42nd Street 등등을 처음으로 가보았다. 나는 당시 뉴욕에 3년을 살면서 자유의 여신상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집, 학교, 일터만 뱅뱅 돌았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소위 뉴욕의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뉴욕에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가... 공부하고 먹고 살기 위해 바둥대는 것하고는 정말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그런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공원에서 강아지와 노는 모습도 내겐 생소했다.. 빌어먹을..


뜨거운 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뉴욕의 42번가 Theatre District를 오르낙 내리락하며 식당이란 식당은 다 기웃거리며 일자리를 찾아다니던 7월 중순 어느 날, 43가 브로드웨이에 새로 오픈한 "Stardust, Dine-O-Mat"이란 1950년대 풍의 Theme 레스토랑에 드디어 호스티스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호스티스 - 미국 어느 곳이든, 특히 큰 규모로 잘 꾸며 놓은 식당에는 대부분 호스트 또는 호스티스들이 있다. 식당에서의 호스티스의 주임무는 손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 항상 웃으면서 친절히 맞아 자리로 안내를 해주는 일이다. 아무 자리나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웨이터들이 맡은 섹션에 공정하게 손님을 배분해야 나중에 웨이터나 웨이츄리스로부터 말을 안 듣는다. 이 일은 보통 8-10시간을 서서 일을 하므로 발이 퉁퉁 붓곤 한다. 화장실에 가서 신발 벗고 자주 발을 주물러 줘야 한다.. ( 식당에서 일을 구할 경우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가는 것이 좋다. 바쁜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을 피해서 가는 것은 상식.)

호스티스로 일 자리를 구하던 그날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 매니저에게 " I am looking for a job, Do you have anything available? I can do everything. " 라고 말을 건넸다. 너무나 큰 식당이어서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친절히 신청서를 건내주며 작성하라고 했다. 식당 구석테이블에 앉아서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신청서를 작성하고 메니저에게 건내주었다.


신청서에는 식당에서 얼마동안 일을 했는지에 관한 경력을 묻는 난이 있었고, 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은지 등등과 학력을 물어보는 난이 있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워낙 많은 배우지망생들이 식당종업원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혹 공연이 있을 때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펑크를 내거나 다른 종업원과 시간대를 바꾸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식당에서 정한 시간만큼 다 일할 수 있는냐 없느냐는 것을 묻는 난이 있었다.


미국인에게도 뉴욕의 거대한 식당에서 일자리를 잡는 것은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일이다. 하물며 나같은 동양인 유학생에게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든 일이다.


식당일이라고 아무 경력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오산이다. 유명한 식당일수록 종업원 인사처리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식당경력도 웬만큼 쌓인 사람만 쓰고 외모도 따진다. 나 같은 동양인이나 흑인, 멕시칸들에게는 식당의 막일 이외에는 웬만해선 기회가 오지 않는다. 적어도 뉴욕에서는.


더구나 면접을 볼 때, 트레이닝을 받는데 이것이 완전 실전이라 순발력이 없으면 트레이너가 바로 잘라버린다. 또 뉴욕의 대형식당은 모든 것이 다 컴퓨터화 되어있어 음식 오더에 필요한 여러 컴퓨터시스템을 모르면 그 또한 결격사유가 되었다. 또 1차 합격이 되더라도 처음 일주일간은 음식을 나르는 서버로 일을 하며 어떤 음식이 어떤 모양새로 나가는지 익히는 주간을 거친 후 마지막 필기 시험을 통과해야 종업원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비로소 주어진다. 절대 쉽지 않다.


나는 처음에 미국 음식들의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음식이 조리되는 것을 몰라 혹 손님이 물어볼 경우 답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웨이츄리스가 아니라 호스티스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계란 음식 주문 하나 받는데도 계란을 반숙으로 해달라, 서니 사이드 업으로 해달라, 노른자 빼고 흰자로만 해달라, 기름에 볶지 말고 포우취드(Poached egg: 뜨거운 물속에 계란을 깨어 넣어 그대로 익힌 것) 에그로 해달라, 스크램블 에그, 에그 베니딕트(Egg Venedict) 등등에 곁들이는 빵의 종류도 흰빵, 밀빵, 라이빵 등등에 토스트를 하냐 안 하냐, 홈 프라이로 하냐 아니면 프렌치 후라이로 하냐, 음료수는 또 커피를 마실것인지 홍차를 마실 것인지, 쥬스는 대자 아니면 소자... 음식 하나 시키는데 물어 봐야하는 질문도 많고 정말 처음에는 음식 메뉴판만 외우는데 거의 한달 가량을 고생하게 된다.

혹 뉴욕에서 뮤지컬 "Cats"를 보신 분은 기억하실 지 모르겠다. 켓츠를 공연하는 극장 이름이 "Winter Garden Theatre"이고 나는 그 극장 바로 옆에 있는 "Ellen Stardust"라는 다이너와 43가 브로드웨이에 있는 "Stardust Dine-O-Mat" 식당에서 번갈아 가며 종업원으로서 호스티스로서 일을 했었다. 두 곳 모두 뉴욕에서만 5개의 대형식당의 가지고 있는 유명한 부자의 소유였다.


워낙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많은 지역이라 손님을 유치하는데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브로드웨이 지역의 식당이다. 캣츠 뮤지컬극장 바로 옆에 있던 우리식당은 종업원의 90%가 배우지망생들이었고 오후 5시 반부터 12시까지 즉 뮤지컬이 시작하기 전과 뮤지컬이 끝난 후 미국 `50-`60년대의 히트곡들을 부르며 손님을 유치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손님 받으랴, 주문 받으랴, 노래 부르랴, 춤추랴 보는 사람은 즐거울지 몰라도 매일 똑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종업원들은 즐거울리가 없었다. 그러나 행여 어느 연예계 매니저의 눈에 띄어 발탁이라도 될까 싶어 다들 열심히들 노래를 불렀다.


저녁 "pre theatre crowd" 손님들이 나가고 나면 한동안은 식당이 조용해진다. 다시 뮤지컬이 끝나 손님이 들이닥칠 때까지는 항상 두세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럴 때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참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창밖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찾아와 인사를 건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참.. 외롭게 만들었었다.


그 당시 거의 4년째 어느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기에... 부모님은 저 멀리 바다 건너 계셨고.. 이 곳에는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특히 미국이나 한국의 명절이면 더욱 처량했다... 아무리 언어가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넘쳐도 이 외로움만은 어떻게 하기 힘들었다...


 


여하간 난 그 식당에서 2년을 일했다. 그리고 그 식당의 호스티스 중 가장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호스티스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웨이터들이 맡은 테이블에 공정하게 손님을 배정하는 것이었는데 난 항상 도표를 그려 모두가 불만이 없도록 하였기에 그런 것도 있었고, 또 우연챦게 시험삼아 만들어 본 스프를 손님들이 좋아해 새끼 주방장 역할까지 하기 시작해서 그랬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식당일을 했고, 또 기회가 닿는대로 요리도 배우고 무슨 일이든 공정하게 처리하려 했기에 뉴욕의 식당계에서 꽤 유명해졌고 여기저기서 식당이나 바의 매니저로 와달라는 제의도 제법 받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 알코올 중독자였던 웨이터에게 손님들 앞에서 얻어 맞고 코피가 터진 적도 있었고... 참... 힘든 일도 많았다.


일단 식당에서 인정을 받게 되자 그 다음 내게 찾아왔던 기회는 각종 이벤트에서 웨이트 스텝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뉴욕에서는 하루 수백가지의 행사들이 열리는데 각종 기업관련 이벤트, 영화 오프닝, 패션쇼, 어느 기업에 새로 부임한 누구누구 인사 행사 등등 수많은 행사들이 하루에도 수백군데에서 열린다.


이런 행사에서 음식나르고 테이블 세팅을 하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는데 이런 일 역시 아무나 시키지를 않는다. 경력을 중요시 했다. 그런 이벤트에서 영화배우들도 제법 많이 봤는데 특히 내가 좋아했던 헤리슨포드를 봤을 때는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 "Dancing in the streets"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주말에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Coordinator로서 파트타임 근무를 하고 있는데, 불과 일년 전 만해도 음식을 나르는 웨이트스텝으로 일을 했던 똑같은 이벤트에서 이제는 그 사람들을 지휘 운영하는 위치로 바뀌고 나니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워낙 종업원의 고충을 훤히 알고 있는 나이기에 식당에 가거나 아니면 이런 이벤트에 손님으로 가게 될 때면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자신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식기를 날라주는 웨이트 스텝들은 내가 벌떡 일어나 도와주곤 하면 웃으며 나를 무슨 착한사람처럼 대해주지만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워낙 그런 일들을 해오다 보니 버릇이 돼서 접시를 들고 오면.. 아.. 저거 내가 받아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고 손이 저절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또 어느 식당을 가던지 웬만한 것들은 웨이터를 부르지 않고 내가 직접 가서 물도 가져다 먹고 하는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나와 함께 합석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대형 식당에서의 경력은 내게 미국의 조직사회에 본격적으로 발들여 놓기 전 무척 귀중한 경험이 되어주었다. AAAA에서의 경험이 내게 자신감을 불러넣어 주었다면 식당에서의 경험은 내게 확신을 주었다.


나는 이제 미국의 주류사회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 to be continued..


- NY 특파원 이주현 ( Jewrhee@ao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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