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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14.월

딴지레저부기자



 혹시 빤스까지 훌러당 벗고 어딘가를 향해 뛰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뛰어본 적이 있는 남자분이라면, 시원한 바람이 경쾌하게 달랑거리며 사타구니를 연속적으로 터치하는 뽕알 사이를 스치우고 지나갈 때의 아스라한 기분을 아시리라.

여자분이라면?

누군가 답답한 뽕브라를 벗어던지고, 달랑거렸던 남자들과는 다르게  일레귤러하게 덜렁거리며 백주대낮에 거침없는 환상의 질주를 한다면... 여자 분들의 그때 기분을 남자인 본기자가 알리가 없지만, 만약 본기자가 그런 스펙타끄르한 장관을 목격했다면 가슴이 무쟈게 벅차겠다.

만약 훌러덩 벗고 뛸 때의 기분을 상상하기 힘드시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디 실험할 때도 마땅챦으니, 대신 이렇게 한번 해보시라.

식사할때, 깨끗하게 손을 씻은 다음 숟가락 젓가락을 전혀 사용하지 말고, 손바닥을 오므려 국을 떠먹고 반찬은 당연히 손가락으로 집어먹고 밥은 손으로 적당히 떼내서 뭉쳐서 잡숴보시라. 첨에는 이상하겠지만, 조금만 해보면 뭐랄까.. 현대인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남아 있는 원시적인 야성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사람들 없을때 혼자 시도해야지, 행여 이런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였다간 향후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매우 어려워 진다. 혹 할머님이나 어머님이 계실 때 이런 실험을 시도했다가는 바로 주걱으로 조디 부위를 강타당하기 싶상이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여하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들 - 옷을 입고,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 같은 -  중 상당수는 자신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모종의 결단을 내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라고 배웠기에 또 그것이 편리하기에 그게 왜 그래야 하는지 의심 한번 해본 적 없을 정도로 그 이유를 잊고서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결정도 아닌 것을, 오래 전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규칙들을 아무런 고민없이 따르는데에는 흔히 말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회화 과정은 여러 사람들이 조화롭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그 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형태로 교육시키고 만들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항상 옳다는 것과는 별개이다. 그 과정이 필요한 만큼의 폐해도 따르기 마련이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강제적이며 경직되면 결국 그런 사회화 과정을 거친 사회 구성원의 몰개성화와 창조성 결여를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바로 우리나라가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유행에 민감한 나라도 없다. 뭔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온거리가 그 유행으로 물결친다. 한번 유행하면 집단적이고 대규모로 유행한다. 청바지가 그랬고, 이스트팩이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나라처럼 유행의 사이클이 짧은 곳도 없다. 모든 이들이 그 유행에 동참했다 싶을때 순식각엔 그 유행은 사그러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튀고 싶기에 유행이 시작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유행에 따르기 시작하면 그 유행에 참여하지 않아서 튀는 것이 두려워 유행에 동참하며, 마지막에는 더 이상 튀지 않아서 일시에 유행이 끝난다.

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튀는 것이 자신만의 기호(記號)와 취향을 표현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면 그건 문제다. 그런 튐은 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몰개성은 우리사회의 사회화 과정이 너무도 경직되어 있고 획일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국민학생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언제나 그 대답이 너도 나도 비슷비슷한 그런 사회화, 잘하는 과목을 격려하고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과목을 보충수업하는데 집중하는 사회화, 좋은 대학의 입학이 모든 사회화의 종착점이 되는 그런 사회화...

이러한 경직되고 획일적인 사회화는 결국 우리 사회의 사고와 포용력의 크기를 존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역동적이고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도대체 조또 뭔 소리를 할라고 이런 썰을 푸느냐..

우리나라에는 누드비치가 없다. 왜 없느냐. 훌러덩 벗고 해변가를 거니는 사람들을,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뭐.. 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만큼 사회적 포용력의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 사회의 포용력의 크기가 그렇게 작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니 미풍양속이니 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자신의 자지크기 혹은 가슴크기가 남들과 비교되는 것이 싫어서.. 라는 이유도 있긴 하겠다.






짱께 누드족..


동양에는 없을 것 같은 누드비치가 일본이야 워낙 벗는 거 조아하는 넘들이니까 글타치고, 중국에도, 홍콩에도,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에도 있다 한다. 놀랍지 않은가.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은 티벳에도 강변축제시 누드축제가 있다 한다. 서구쪽으로는 없는 나라가 없다고 보면 된다. 구미나 미주 대륙의 누드비치 리스트를 뽑을라치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양넘들은 이 누드족들을 Naturist라고 부른다.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비인간화 시킨다는 그러니까 원시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한다는 자연숭배.. 대충 뭐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Naturist 협회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들의 행위는 당연히 스트리킹하고는 차원이 다른, 나름의 철학을 가진 행동양식이다.






쇼핑한다니까..


그런 생각있는 홀딱벗음이기에 이 누드비치에는 나름의 규칙과 에티켓이 있다.

우선 누드비치에 갔다고 해서 모두 옷을 훌러덩 벗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드비치에서 옷을 벗느냐 그냥 입고 있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그 사람이 선택할 사항이다.

또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힐끗 힐끗 쳐다보는 것은  실례다. 하긴 카메라를 들이대도 씩 웃으며 포즈를 취할 정도로 벗는 것에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대부분인 곳이 누드비치이긴 하지만.

라디오를 크게 틀거나 하는 것도 실례다. 일반 해변에서는 상관없지만, 그런 문명이 싫은 사람들이 모인 곳인지라 그렇다. 이건 나라마다 해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 왼쪽아줌마 히쁘..

또한 함부로 꼴려 자지를 세우면 안된다.

사실 30분이라도 누드비치에 가보면 금방 깨닫겠지만, 모두들 훌러덩 벗고서 수영도 하고, 공도 차고, 테니스도 치고, 배구도 하고, 쇼핑도 하며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너무도 자연스러워 도대체가 꼴리지가 않는다.

꼴림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보일랑 말랑한 비키니를 입고 요염하게 모래위에 디비져 있는 일반 해변가의 여성이, 훌러덩 벗고서 햇볕에 그을린 저통을 일레귤러하게 덜렁 거리며 해변가를 뛰어다니는 여성보다 약 백배는 더 야하다.





더구나 이런 Narturist 비치는 홀딱벗은 부모가 홀딱벗은 아새끼들까지 데리고 와서 아주 가족단위로 벗고 설치는 경우가 많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정말 다 모인다...

도저히 음란할래야 할 수가 없는 분위기 인 것이다. 그런 누드비치에 하루만 가 있으면 누드비치에 대한 왜곡된 선입관이 싸그리 고쳐질 것이다.

 


여기서, 본기자는 우리나라에도 누드비치가 생겨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Narturist 그들의 주장에 100% 동조하기 때문은 아니다. 결코 여성들의 저탱이를 맘껏 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래 씨바.. 그건 조금은 있다...

울나라도 이제 제발 그 정도의 파격은 표시도 안나게 너끈히 흡수낼 수 있는 넙대대한 포용력의 나라였으면 정말 좋겠기 때문이다. 내가 동조하지 않는 것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 다양한 가치와 생각들이 주류와 틀리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사장되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고 창조적인 기운이 넘치는 사회 아니던가.

배꼽티를 단속하는 우리나라에 절망감을 느낀다.

배꼽티 입는다고 우리나라 안 망한다.
누드비치 있다고 우리 정신세계 파괴 안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누드비치를 만들자 ! 




 


- 딴지레저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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