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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8.17.월

딴지총수



터키의 중부, 기암괴석으로 뒤덮힌 카파도키아라는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곳에서 연결되는 버스 시간이 좀 남았길래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을 둘러보러 나섰다.

 잘 모르는 곳에선 그 동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마을전체의 생김새 파악하는 것부터 의례 시작하는 지라 그 마을을 감싸고 있던 언덕배기를 좁다란 계단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사이 몰려 나와 신기한 듯 나를 따라 올라오던 동네 아새끼들을 똥꼬에 달고 꼭대기라고 생각되는 곳에 이르니 다 허물어져 가는 성곽이 있었다.

그냥 그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는 것으로 그 마을 탐사를 끝내려는데 갑자기 저쪽 먼 하늘이 뿌옇게 변하는 것이었다. 동네 꼬맹이들은 갑자기 호들갑을 떨더니 다들 허겁지겁 뛰어 내려가버렸다.

첨엔 뭔가 했는데 가만 보니 모래 소용돌이 같았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수천년전 화산 폭발로 모래와 바위산으로 이뤄진 사막에 가까운 곳인데 마침 일종의 사막회오리가 몰려 오는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것인지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5분도 못돼 먼지가 바로 눈 앞까지 닥쳤다. 그 바람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건 당연했고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성곽주변에 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그 큰 가지들이 뚝뚝 부러져 날아갈 정도였다. 이러다 똥꼬에 날아온 나무가지라도 꽂히면 대형사고다 싶어서 다급히 몸 숨길 곳을 찾았는데, 그때 내 눈에 무너진 성곽 한귀퉁이에 문짝이 띄였고 그 곳으로 급히 뛰어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10대 소년이 하나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꼭 이렇게 쳐다봤었다...


그 아인 첨엔 나를 똥꼬 섬뜩하게 째려봤다. 그러다 내가 씨이익~ 웃어보였더니, 자기도 입이 찢어지게 웃는다. 말이 통할 리가 없으니 손짓 발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나이가 15살이란 것과 쿠르드족이란 것도 알게되었다.

그때가 93년이었는데, 당시 터키군대가 터키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을 헬기를 동원해 대규모 학살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던지라 쿠르드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학살이란 단어가 기억나 섬찟한 기분과 함께 주체못할 호기심이 발동했다.

손짓 발짓 똥꼬짓까지 해가며 대충 파악한 사정은 쿠르드족 박해를 피해 부모와 헤어져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낮에는 여기 성곽에 숨어있고 밤에 내려가 먹을 걸 가져 온다는 정도...






쿠르드족 소년들...


문뜩 배고프겠다는 생각이 나서 가지고 있던 빵이랑 음료수를 꺼내 권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무척 배가 고팠는지 말도 없이 내 이틀치 식량 전부를 순식간에 먹어치었다.
씨바..

다 먹어치우자 다시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닥에다 그림도 그리고 펄쩍펄쩍 뛰면서 포즈도 취하고 소리도 지르고 했지만... 그리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나도 벼라별 포즈를 다 취해봤지만... 손발짓과 똥꼬짓에도 한계가 있었다.

도대체가 정리가 안되고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버스 시간이 다 됐고, 내려가야 했다. 그때 그 아이가 지어보였던 슬프고 참담한  표정...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일어서서 가야한다고 하자 그 얘는 나를 한참이나 끌어안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난 " 그래 뭔 소린지 몰라도 너두 임마.. " 하고는 일어섰다. 같이 가자고도 해봤지만 도리도리 고개짓을 했다.

박해를 피해 목숨 걸고 도망다니는 한 쿠드드 소년과 사막 회오리를 피해 언제 무너졌는지 알수 없는 터키의 한 성곽으로 뛰어든 동양 여행자와의 우연한 조우는 그렇게 30분만에 끝이 났다. 마을로 내려가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 한참을 손을 흔들다 성곽 뒤쪽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던 그 아이는 아직도 살아 있을까...

뭔가를 설명해 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하다가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자 그저 눈빛으로 그 안타까움을 전했던 그 아이... 별 말도 나누지를 못했고, 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터키군이 목을 잘라낸 쿠르드족 시체 사진을 볼때마다 어김없이 그 소년이 떠오른다...

그 소년이 그렇게 안타깝게 나를 쳐다보며,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지금도 미안하고 아쉽고, 한편으론 죄스럽기까지 해서 이렇게 쿠르드족 이야기를 해본다..



쿠르드족은 독립국가 없는 민족 중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이다.

약 2천만명이나 되는 인구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러이사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아르메니아인들도 비슷한 사정이지만 적어도 쿠르드족처럼 사는 곳마다에서 박해받고 있지는 않다.






쿠르드족 반군 여성 전사


2천만명 중 약 천만명 정도가 터키 동부와 이라크 북부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다수이면서 독립 국가가 없는 민족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그들 스스로의 내부의 분열상이 심각하고 또 그러한 분열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주변 강대국의 교활한 힘싸움이 그들의 독립을 막고 있다.

사실 작금의 중동 문제의 뿌리는 쿠르드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천년의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힘없이 떠돌기만 했던 그들이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세계 정치사에 재등장하는 시기는 60년대였다.

현재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보유한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은 60년대부터 끊임없이 이라크에 대한 분리독립 투쟁을 벌였는데, 75년 노선의 차이로 친이라크계인 쿠르드민주당(KDP)과 친이란계인 쿠르드애국동맹(PUK)으로 그 세력이 갈라지게 된다.

이 두 계파는 그들 자치구를 통과하는 이라크 송유관에 대한 세금문제와 지들끼리의 헤게모니 쟁탈을 위해 90년대에 들어서 끊임없이 유혈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전투가 바로 작금의 중동사태의 복잡함과 내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이 쟁탈전을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 무기를 지원하는 이란과 그것을 막으려는 이라크, 그리고 이라크를 견제하려는 주변국과 미국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이 전투는 단순한 내부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내전차원을 넘어 국제적인 외교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폭격도 그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쿠르드족이었다.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이러한 반면 이와 별도로 터키내에서도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독자적인 쿠르드 독립세력, 쿠르드노동당(PKK)이 있는데 이들을 진압하러 터키에서는 지난 60여년간 지속적으로 쿠르드반군 소탕작전을 펼쳐왔다.

필자가 만났던 그 소년은 바로 이 소탕작전을 피해 도망온 것이었다. 그 소년은 터기내륙으로 도망쳤던 것이고 반대 방향, 즉 이라크쪽으로 도망갔던 터키 쿠르드족은, 같은 민족이지만 친이라크, 친터키 계열인 쿠르드민주당(KDP)이 터키군과 합동으로 펼치는 소탕 작전에 많이들 죽었다..

쿠르드족에 자국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이라크 정부는, 터키군이 국경을 넘어 자국에 들어와 터키 반군 쿠르드노동당(PKK)을 소탕하는 것을 묵인했었다. 정상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인접국가의  침략행위가 묵인되는 것을 봐도 쿠르드 사태가 얼마나 복잡한 국제 외교적 역학 관계 내에 있는지 알수 있다.






수갑차고 끌려가는 13세 쿠르드소년..


지난해에는 이러한 박해를 견디지 못한 쿠르드 난민들이, 통합 유럽으로 가는 사전 조치중 하나인 국경 상호개방 및 통제철폐를 내용으로 하는 <솅겐협약>이 체결된 후 터키를 탈출, 대거 이탈리아로 유입되었었다.

이들에 대해 유럽 각국은 자기들은 쿠르드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다들 발을 뺐고...

나라없는 설움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 소년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 이젠 우리도 손바닥만한 땅떵어리에서 벗어나
관심을 좀더 넓게 가져야 할때라고 믿는 딴지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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