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조승희, 혹은 Seung-Hui cho

2007.4.27. 금요일

미국에서 초유의 총기난사 사태가 발생한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아시아계 -> 중국인 -> 한국인의 수순으로 전모가 드러날 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한국인들의 반응과, 총기문화, 외톨이, 인종차별과 같은 원인규명에서부터, 한국의 지나친 사과를 부담스러워 하고, "너희 탓이 아니다.”라고 되려 한국을 ‘위로’(?)해주었던 미국의 반응이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미국은 한국의 조문단 방미추진과, 각계각층에서 터져 나온 송구스러움에 대해서 이것은 ‘미국인의 일’이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아 씨바 역시 선진국’이라는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특히 살아남은 학생들이 살인자의 추모비를 세우고, 나는 너를 용서한다.라고 글을 남겼을 때, 그것은 절정에 달했다.(현재 추모비는 없어졌다) 비록 9/11테러이후 머리에 수건 두른 사람만 보면 경기를 일으켰던 선례가 있긴 하지만, 이번 사건을 맞이하는 미국의 반응은 전문가스러운 의연함까지 엿 보인다.

4월19일 목요일 조선닷컴의 메인로고

사실, 미국이 사건 이후에 취해왔던 조치들은 매우 신속한 봉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과도한 미안함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조씨가 테러를 위해 미국에 입국했고, 사건이후 대한독립만세라도 외쳤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 시민이 저지른, 매우 미국스러운 총기 난사사건이 아닌가. 만약 백인이 아닌 누군가가 일으킨 범죄나 테러에 대해서 각국이 일일이 미국에 조문단을 보내고, 우리 탓이라 말한다면, 미국은 주권국가로서 자국민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소위 미국적 가치에 의한 사회통합 역시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물론 이토록 능숙한 다민족사회의 처리방식이, 미국은 차별 없는 나라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각종 경제적, 사회적인 지표들은 미국이 주창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소수자보호의 슬로건이 상당히 헛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백인가정의 평균소득이 흑인보다는 3분의 2만큼, 히스패닉의 40%만큼 더 높다는 미 인구조사국의 2006년 통계치 처럼, 인종의 위계가 계급으로 재편되는 현실을 훌륭하게 가려주는 엄폐막으로, 즉 부(富)란 것이 어디까지나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형성되거나, 소멸하는 것이라는 미국식 가치의 설파에 악용당하는 모습을 보면, 미국의 훌륭한 반응들의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총에 맞아죽은 이들이 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공화당의원들과 NRA(전미 총기협회)의 발언. 마치 면도날 잭이 설치는 영국에서 대영제국도검협회가 잠재적 희생자인 빈민가여성들은 투 핸드 소드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말하거나, 유영철 사건이 이후 모든 이들이 호신용 오함마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이 주장들의 이면에는, 죽음이라는 인간 최고의 비극 역시 더 이상 미국이라는 견고한 시스템에 큰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정부가 고 김선일씨의 울부짖음과 고 허세욱씨의 분신에 침묵하는 것으로 대응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범행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총기모델인
오스트리아의 Glock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발 빠른 반응들에는 납득 가능한 합리성이 존재한다. 자신들에게 총알을 퍼부은 그를 일 년은커녕, 일주일이 겨우 지난 시점에서 용서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트라우마로 남겨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혹은 이렇게 같다 붙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식 낙관의 한 단면이다. 게다가 원주민의 90%이상이 몰살당하고 그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들어 채워진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라는 것을 생각할 때, 소수의 행위를 그 집단 전체의 문제로 비화시키지 않는 Cool함은, 국가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정치적 테크닉이다.

한편 우리가 조승희 사건에 대해서 보이고 있는 반응들은 부끄러워하거나, 부인하거나의 두 갈래였다. 물론 미국의 응답에서 얻은 안도감 덕분에 한층 시들해지긴 했지만, 그것과 관련한 갖가지 논쟁들, 예컨대 32일간의 금식기도를 제안한 주미대사와 그를 인터뷰를 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의 자질, 범행을 단행하게 만들었던 동기에 대한 추측이나, 미국 이민자들의 삶과 교육열, 그리고 작게나마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계속되고 있다.

종종 그 용법이나 범위에 있어서 무지막지한 혼란을 야기하는 우리라는 단어는 한국사회가 조승희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과연 조승희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배경에 깔려있는 것 왜 하필이면 제임스도, 나까무라도 아닌 조승희인가. 와 같은 물음들이 가상의 혈통계보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전 국민을 근친혼의 후예로 만들어 버리는 민족 혹은 우리로 수렴한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들의 오바질을 성토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자조는 몇몇 식견 있는 회의론자들에 의해 이미 이루어졌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토록 껌뻑 죽는 선진화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인터넷 곳곳에서 불체자(미등록 노동자)에 대한 비난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이들은 잠정적인 범죄자들이며,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불체자 보호가 웬 말이냐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글의 내용을 보고 있으면, 그 글들의 주체는 일용직 건설근로자를 비롯하여 이른바 3D업종에 종사하는 서민계층들로 보인다. 범죄문제는 사실 구실에 불과한 것 같으니 제쳐두더라도, 먹고사는 문제만 따져봤을 때도 그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일각에서는 경제규모11위의 대국이 되었으니, (못사는) 다른 나라들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며, 우리도 소싯적에는 날품 팔아서 외화 벌었다는 류의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쌀 밥 먹었다고 자랑하는 대남방송에 혹하지 않을 수준에서 멈춰있는 이들에게 관용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치스럽다.

그러나 분노가 정당하다고 해서 방향이 삑사리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소위 승리에 목말라 있는 이들에게는 쉬워 보이는 상대가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러나 한국 국대가 피파랭킹 최하위국가에 백날 이겨도 축구 강국이 못 되는 것처럼, 사실은 사회의 몫이 되어야할 문제들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는 것은 근본적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더불어 축구와는 달리, 삶의 문제는 깔끔하게 승/패로 해결되지 않는 복잡하고, 절실한 것들로 가득하다. 이런 식의 해법은 꿈틀을 넘어서 이번사건에 버금가는 경을 치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통할 수 있는 인종구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것이 급변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 작년에 결혼한 8쌍 의 커플 중 1쌍이 국제결혼이며, 농촌지역에는 40%가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흔히 우리라고 부르던 사람들과는 어딘가 다른 이들이 함께 살을 부비고 살며, 아이까지 낳는다. 조금 있으면 이 아이들이 자라서,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쯤 되면 불쌍한 동남 아시아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단계를 넘어서는 문제다. 이미 태어나면서 한국국적을 취득했고, 한국에서 자라날 이들과의 공존은 좋건, 싫건 피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다.

물론 정식으로 국적을 취득한 이들과 불체자의 문제를 함께 취급하는 것을 문제 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과연 우리가 그 둘의 차이를 구분해낼 만한 혜안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뭔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신분증명을 요구 받거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미치거나, 자살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한가득 독을 품은 채로 의기소침하게 살아 가거나와 같은 극단적 선택지들만이 펼쳐질 것이다.

가뜩이나 다이나믹한 코리아를 더더욱 밑도 끝도 없는 곳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외국인을, 혹은 외국인처럼 생긴 내국인을 대우하는 방식도 선진화할 방법을 찾아야한다. 한미FTA를 추진할 때 찬성론자들이 내세운 논리 중에 하나는 개방 안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러나 미국과의 교류를 통해 받아들여야 할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우겨대는 영·미식 경제제도가 아니라, 다민족, 다문화사회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물론 미국의 제도와 인식 틀 자체가 완전무결하다고 말 할 수는 없으며, 위에서 말 한대로 차별의 양상이 고스란히 남아있긴 하지만, 최소한 한명의 외국인이, 한명의 혼혈인이, 한명의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일을 가지고 그 집단 모두를 쓸어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벗어나야 한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못나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이런 일을 겪어보지도, 겪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역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한민족이라는 혈통의 신화는 사방에서 물어뜯기고 있음에도 여전히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분단된 남과 북을 이어주는 가장 주요한 매개다. 끝임 없는 삑싸리와 오,남용에도 불구하고 민족이 가지는 통합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민족이란 단어를 자기네 쪽의 색으로 칠하려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그러나 더 이상 민족의 묶어주는 힘을 즐기고 있기에는 묶음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이들이 한국인으로의 삶을 살고 싶은지는 개개인에게 맡기더라도, 최소한 이들을 한국사회에 안착시킬 수 있는 시스템과, 인식의 변화는 필요하지 않을까? 개방이 필요한 것은 사실 경제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이 아닐까?

조승희가 머나먼 미국에서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들은 어쩌면 너무나도 진부하지만,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것들인 것 같다.

딴지를 수습하러 왔으나 정작 본인도 수습을 못하고 있는 수습기자
쿠르세(curse13@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