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벤치마크] 빠루타 프로젝트 제 2 탄
-<술과 섹스의 상관관계 실험실>

 

2007. 5. 9일 수요일

 

 

 

 

 

 

 

 

 

 

 대학 졸업 후 처음 맞은 가을에 만나던 y와는 딱 한번 섹스를 한 사이였다.

 

그나마 설레는 자극들은 고스란히 취기에 바쳐버리고 오바스러운 몸짓과 포르노 괴성을 모텔 방 한 가득 채워 넣다 새벽을 맞이했다. 알코올에 수장 당한 첫날밤이 못내 아쉬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중, y는 내게 신선한 제안을 했다.

 

“전부터 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만나서 차 마시고 밥 먹고 맥주 한잔 하는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모텔 앞에서 만나 인사만 짧게 나눈 뒤 긴박하게 입장하는 거야. 어때?”

 

y의 예상대로 스파이 비밀 접선 같은 만남은 생각보다 긴장감이 있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종로의 뒷골목에서 만난 우리는 막 경찰을 따돌린 킬러처럼 급히 모텔로 들어서고. 그리고 그는 서서히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는데. 오 마이 갓. 옷은커녕 스타킹 한 짝도 벗지 못한 채 온 몸이 굳어오는 게 아닌가! 이 남자랑 처음도 아니잖아?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떠돌고 그러느라 주저하는 몸짓은 금방 들키기 마련. 기껏 하고 나온 샤워도 소용없게 가슴 사이고 땀이 흐르고 있다. 나는 점점 패닉 상태에 빠지고, 이런 낭패가. 마주보는 이 남자의 얼굴이 낯설어 미치겠다.

 

그랬다. 범인은 바로 맨정신. 어느 대학 축제 무대에 올라 나는 맨정신이 싫다는 첫마디와 함께 캔맥주를 완샷으로 털어 넣던 전인권의 기분을 이제야 알겠다. 나는 침대 위의 전인권이었다.

 

모텔에서 나와 길거리 떡볶이를 입속으로 쑤셔 넣었다. Y는 싸구려 냅킨으로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다정을 떨었지만 나는 최악의 섹스 1위에 등극하고도 남을 이 날의 어처구니없는 섹스에 대해 곱씹느라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술 먹고 섹스하는 게 별로다. 적당한 취기는 섹스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정신은 놓지 않되 옷은 벗어재낄 수 있는 그 ‘적당한’ 음주량이란 걸 측정하기란 몹시 애매하다. 그래서 술의 힘을 빌어 개최된 대부분의 명랑 운동회는 최악의 경우 선수의 사이즈(!)도 모른 채 사방에 널부러진 속옷들의 무정부적 상태만을 확인하고 만다. 그것도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여자나 남자나 술을 마시면 평소 실력의 반의반도 발휘 못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래서 나는 이기지도 못할 술을 디립다 시켜놓고 차가 끊길 때까지 삐대다가 택시비를 합치면 방값이라는 시덥잖은 영화 대사나 따라하고 술 깰 때까지 잠시 쉬었다가네 손만잡네 어쩌네 하는 뻔한 뻥을 치는 이 모든 과정들은 이제는 좀 생략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랬던 내가. 드디어 맞이한 맨정신 섹스를 하는 내내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라도 한 캔 구겨먹고 올껄…’하는 후회를 했더란 말이다.

 

오랜 섹스를 나눈 연인사이라면 아침 댓바람부터 밥상을 물리고도 남겠지만, 솔직히 그런 사이의 섹스란 마치 금슬 좋은 부부의 섹스처럼 설렘이나 자극보다는 편안함, 어쩌면 식상함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초반의 설렘과 자극을 알콜에 바쳐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을까. 하지만 그 안타까움도 맨정신이 주는 뻘쭘함이라는 괴물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처음과 몇 번의 섹스까지는 약간의 알콜을 섭취한 후에라야 옷을 벗을 수 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맨정신으론 도저히 부끄러움인지 뭔지 알수 없는 긴장감에 섹스 자체를 즐길래야 즐길 수가 없단 말이다.

 

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술과 섹스에 대한 그 경험은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으며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과연 이번 테스트에서 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아무리 화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가라오케에 데려가서 폭탄주 타주고 춤추며 노래하게 해주면 금세 풀어지는 나. 제이앤비제트와 집에서 씻어 온 잘 익은 포도송이를 고이 넣은 가방을 매고 편의점에 들러 카나페와 크래미를 산 뒤 발걸음도 신나게 모텔로 향했다.

 

얼음이 없다는 것을 빼면 그럴싸한 상차림.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실험의 정확성을 위해서 최대한 자제했다. 라고 믿었다. 잔 수를 세지 않는 평소와는 다르게 잔 수를 세어가며.. 하지만 어라, 취기가 좀 돈다싶어 고만둔 마지막 세 번째 잔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 키스를 나누며 페니스를 감싸쥐었다. 평소보다 뜨거운 느낌이 전해왔지만 아직은 말랑한 느낌. 80% 정도의 발기 상태. 곧바로 오럴을 시작했는데 30초도 안되서 100% 발기가 되었고 본격적인 삽입섹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100% 발기 상태의 페니스가 몸 안에 들어오는 순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찰나의 짜릿함이 평소보다 확실히 덜했다. 이미 술기운이 온 몸을 감싸서 감각이 무뎌지고 만 것. 젠장..하반신 마비됐나. 몸짓만 과장될 뿐 쉽게 시작된 흥분은 크라이맥스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고상태를 맴돌았으니. 강직도나 발기 지속 시간, 모든 것은 술기운이 약간 돈 다른 때와 다름 없었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나였다.

 

결국 나는 완전한 오르가슴에 이르지 못했는데, 한껏 부풀어졌으나 속은 허한 공갈빵 같은 나의 반응에 그 또한 만족도가 떨어졌고. 원래 사정을 컨트롤하는 남자이니만큼 40분 정도 더 오럴을 나누면서 섹스를 한 끝에 사정했다. 오선생을 제대로 못 만났으니만큼 확실히 만족도가 떨어지는 섹스였다.

 

 

여행지나 모텔에서 밤새 데이트를 즐길 때면 항상 캔맥주 두 개 정도는 음료로 준비할 정도로 애주가 커플이지만 섹스를 하기 위한 밤엔 절대로 과음을 하지 않는 철칙 또한 있다. 하지만 이 맥주라는 것이 순간 뻑~하고 암전되버리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달아오르는 새색시 같은 종목 아니던가. 살짝 신체에 변화가 올 정도의 취기를 맥주로 느끼기 시작했을 땐 이미 발그레한 두 볼과 함께 불룩해진 아랫배를 감당해야 했다. 사실 우리 사이에 똥배 정도 애교고 트름이야 선수들끼리 알아서 소프트한 키스로 조절하면서 초 민망한 상황을 안 만들면 그만인데, 깐죽이 4인방보다 얄미운 방해꾼이 등장했으니. 다름 아닌 요의! 그리고 트름!

 

삽입 섹스를 시작하고 피스톤 운동에 리듬을 타기 시작하자마자 분위기를 확 깨게 됐다. 쌀 것 같은 이 느낌은 흥분 시 느껴지는 사정감인지 요의인지 분간이 안가잖아. 엉엉. 자기야 나 쌀거같애~ 삼류 에로비디오 대사 같은 소리를 해야했지만 이부자리에 소변을 볼 수는 없는 법. 집중도 못하고 결국 중간에 화장실로 도망치는 홀랑 깨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맥주는 주량 불문 한 캔 이상 안되요 여러분! 그 역시 더부룩한 배와 올라오는 트름 때문에, 무엇보다 산만한 파트너 때문에 평소보다 즐겁지 못했다고. 흑흑.

 

 


우리 커플은 반주로는 한 병, 간단한 술자리에서는 세 병을 넘기지 않기로 약속했다. 물론 매번 넘기지만. 이날 저녁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와 함께 정확성을 기해야하는 테스트이니만큼 각각 한 병씩을 마셨다. 섹스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부르지 않은 안주와 취하지 않을 정도의 술을 마시고 실험에 임했지만 생각 밖으로 만족도가 맨정신 섹스 때보다 덜했던 폭탄주와 맥주의 경우를 생각하며 최대한 간단하게 조절했다고나 할까.

 

결론을 말하자면, 술은 역시 깔끔한 소주다. 한쪽만 마시면 소주 요놈이 사랑으로도 감당 못할 냄새를 솔솔 풍기지만, 둘이 똑같이 마셨으니 문제없고~. 또한 안주는 역시 신선한 회다. 회에 환장하다 못해 어부의 딸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아예 직접 잡아  먹기로 마음먹은 뒤 주말 낚시에 버닝하고 있는 요즘. 50센치짜리 우럭을 잡아 올려 월간 낚시의 표지 모델이 되기를 꿈꾸며 힘차게 낚시대를 휘두르다- 매번 쓰레기만 건져 올리지만- 삼천포의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전어 한접시에 기울이는 소주 한 잔. 캬. 지금 또 침이 꼴깍 넘어가는 걸 보니, 이날은 섹스 전부터 이미 분위기에 압도당했는지도 모르겠다.

 

모텔을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고 전희 단계 없이 바로 삽입했다. 초반의 적극적인 반응에 자극을 받았는지 내가 오르가슴을 느낀 뒤 사정하길 유도했는데도 그는 체위를 바꾸어 섹스를 5분 이상 지속했다. 그리고 두 번째 오르가슴을 함께 느끼면서 만족스러운 섹스를 끝냈다.

 

 


잭 니콜슨, 잭 스패로우, 잭 다니엘. 이렇게 잭이라면 환장하는 내가 콜라와 함께 잭을 마실수 없게 되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선택하는 것이 바로 앱솔루트와 오렌지주스.

 

이건 나의 경우지만 맥주나 동동주 같은 곡류 발효주를 마시면 취할 때도 좀 은근하고 끈적하며 몽롱하게, 또 뒤끝도 좀 길게 가는 듯한데 보드카나 위스키 같은 증류주를 마시면 마실 때도 쌈빡하게 기분이 업 되면서 뒤끝도 없다. 잘 설명이 안되는데 마음은 들뜨면서 머리는 차분해지는? 하여간 묘하고 즐거운 음주라고 하자.

 

음주 후 이어진 섹스에서도 주종따라 느꼈던 기분이 비슷하게 유지되는 것 같다. 복숭아 향이 첨가되었다지만 스트레이트로 마셔보니 잘 모르겠길래 하던대로 오렌지주스를 섞어 언더락 잔으로 세잔 정도 마시니 알딸딸. 섹스를 할 때도 정신은 또렷하지만 심장이 좀 뜨거워진 느낌이랄까, 섹스의 과정이나 시간 등은 평상시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의 패턴과 비슷했지만 시각과 촉각 등 모든 감각들이 정확하게 전달되었으며 과장되거나 무뎌지는 느낌 없이 교감할 수 있었다.

 


날씨가 추워봤자 옷 안 사 입고 술 사먹는 인간으로써 지금까지 쓴 테스트일지만 봐도 이런 말 하는 것이 별로 신빙성 없게 느껴지겠지만.. 와인은 정말 사랑의 묘약이 아닐까. 휏휏. 월풀에 몸을 담그고 조명을 낮춘 뒤 까망베르 슬라이스 치즈로 구색을 맞추고 와인을 마셨다.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 놓고 병을 담가두는 센스.

 

와인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2년 전 겨울 내내 와인만 마시던 때의 기억으로 나의 와인 취향은 단맛이 강한 것보다는 앞니를 혀로 닦았을 때 뽀드득 거릴 정도로 탄닌 성분이 강한 레드와인이나 스파클링이 거의 없는 화이트와인 쪽. 사실 화이트 와인은 별로 마셔본 적이 없고 이번에 마신 와인은 처음이었는데 깔끔하고 깊은 맛에 은은한 향이 남아 로맨틱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제격이었다.

 

와인은 알코올향이 거의 없는 것 또한 강점이다. 오히려 밀착된 거리를 점점 더 좁힐 수 있게 해줄 달콤함이 있을 뿐이다. 부드러운 애무와 서두르지 않는 전희 단계를 거치고 발기상태를 유지하면서 삽입까지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몰아치는 섹스 타입의 내가 오랜만에 느린 템포의 섹스를 나눴기 때문인가. 거창하지만 심장을 관통하는 따듯한 섹스의 느낌. 테스트 기간 중 짜릿함과 숨 가쁜 자극이 강했던 다른 때보다도 훨씬 특별하게 기억될 거 같다.

 

 

 

 

 

 

 

 

 

 

 

 

 

 


딴지 공식지정 빠루타요원
앨리스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