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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논평] 영결식의 결정적 장면들

 

 

 

2009. 6. 1. 월요일

 

애초 영결식은 보지 않으려 했었다. 노제가 진짜니까. 물론 노제가 진짜다. 그러나 영결식은 그 나름, 대단히 드라마틱했다. 심지어는 역사가 극적으로 움직인 순간도 있었다. 지금부터 그렇게 결정적이었던 장면 몇 가지, 짚어 보자.

 

 

 

 

 

그 첫 번째. 많은 이들이 이명박의 미소를 문제 삼는다. 물론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장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헌화 직전, 또 한 번은 문재인과 대화 중. 청와대에선 "한 전 총리와 문 전 실장 등 유족 측 주요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응수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웃긴다. 어떤 상황이든 전직 대통령 영결식에서 현직 대통령이 웃는 건, 예의가 아니지. 더구나 헌화 직전의 미소에 대한 해명은 없다. 뭐 그건 갖다 붙일 말이 도저히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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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표정을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기뻐하는 표정으로 해석하는 시각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 정도 바보는 없다. 실제 속내가 어떠하든, 지상파 3사가 동시에 전국 생방송하는 와중에 더구나 카메라가 집중되는 자신의 헌화 직전, 일부러 그런 표정을 드러내는 바보는 없다. 그동안의 이명박 표정을 유심히 관찰해 온 사람들은 알게다. 그건 스스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할 때, 저도 모르게 무심결에 짓게 되는 어색하고 어정쩡한 얼굴이란 걸. 오히려 뭔가 생각이 있을 땐 표정이 굳는다. 그러니까 그 표정이 드러내는 건, 그 순간 그가 멍때렸다는 사실 뿐이다.

 

그들의 진짜 속내가 드러나고 만 순간은, 그 표정이 아니라 부인을 통해서다. 본지 웬만해선 어떤 대통령의 부인이든, 부인은 언급 않는다. 그녀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연히 자신의 남편이, 정치인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케이스는 다르다. 서거와 관련한 이명박과 그를 둘러싼 이들의 진짜 정서가 무엇인지를, 아무런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낸, 유일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한 순간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1) 첫 번째 장면은 두 사람이 헌화를 위해 걸어 나오는 와중에 포착된다. 유가족 분양 후 “다음은 대통령 내외분께서 헌화 및 분향을 하시겠습니다. 이어서...” 라는 멘트 직후 백원우 사건이 발생한다. 

 

본지가 주목하는 장면은, 백원우 돌발사태가 경호관에 의해 제압되자 그걸 흘낏 쳐다본 직후 부인이 순간적으로 짓는 표정이다. 프레임을 쪼개 봐도 0.1초 내외의 찰나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그 순간, 분명히, 피식 웃는다. 그렇다, 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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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후 장내 혼란이 약 30여초 간 이어졌고 두 사람이 절을 한 후에도 계속 고성이 오가자, 송지헌씨는 “ 잠시... 경건한 영결식을 위해 자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멘트를 하고 둘은 계속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부인이 남편에게 고개를 돌려 이렇게 말한다. (입모양을 통해 명확하게 읽힌다.) 

 

“무시해버려. 무시.”

 

 

 



 

 

 

긴 말 필요 없다. 공개적으로 한 번도 들킨 적 없던, 있는 그대로의 그들 바닥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그녀의 격을 이야기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아무런 연출없이 드러난 순간적인 반응들이야말로 그들의 진심을 여실히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하여 개인적으로는, 이 두 장면이 영결식 전체를 통 털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2.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순간. DJ의 오열. 생사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그야말로 온 몸으로 다 겪어낸, 여든을 넘긴 그 노정객이 마치 여덟 살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우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는 언제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정치인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약점일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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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김영삼에게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조차, 지지자들이 통곡하고 자신은 물론 자신을 지지했던 모든 이들의 꿈까지 접어야 했던 그 순간에도, 잠시 울먹인 게 전부였다. 그런 그가 처절하게 통곡했다. 서거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비통한 눈물을, 함께 흘렸던 순간이다.

 

그러나 그 장면을 가장 인상적 순간으로 꼽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순간은, 그 동안 그 누구의 그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불가능했던 그리고 아마도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불가능했을,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분열과 상처를 일거에 치유하고 다시 하나로 정서적 통합시킨, 절대 순간이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데, 민주당 지지율은 그 장면 하나로 복원되기 시작할 게다. 역사는, 바로 그 순간, 어떤 갈림길을 지나친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가 막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그 죽음을 그렇게 자신의 오장육부가 뒤틀리 듯 통곡함으로써, 그 둘이 그렇게 가장 비극적 방식으로 재회함으로써, 그들 각자를 지지했던 수많은 이들이 각자 서로에게 지난 몇 년간 품어왔던 분노와 서운함과 배신감을 한 순간에 증발시키고 말았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르고서야 말이다. 진정, 이 우주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다만 지금 현재의 민주당이 과연 그 거대한 에너지를 받아낼 역량이 되긴 하느냐 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겠다. 그건 두고 볼일이다. 그리고 이로써 다음 대선은, 두 死자 간의 대결로 결정되었다. 박정희와 노무현 사이의. 남은 문제는, 노무현의 적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 그리고 이로써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다시 한 번 노무현을 - 이명박이 아니라 - 상대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이 되었고.

 

부록으로, 바로 그 순간 사람들 틈새로 절묘하게 잡힌 이명박의 표정. 앞에서 미소 지었다며 비난받은 순간들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이, 진짜 그다.

 



 

 

 

3.

 

나머지 몇 순간들.

 

1) 백원우, 최소한 몇 십만을, 병원에 가야 할 수준의 잠재적 우울증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을 애통하게 지켜보던 자국민 몇 백만을, 흐뭇하게 웃도록 만든 이는 세계사에 그가 유일무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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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상적인 순간이 아니라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문재인이다. 서거를 공식발표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백원우 돌발사건으로 이명박에게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하는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단 한 번도 경우에 어긋남이 없었다. 참으로 대단하다. 고인이 "노무현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 했던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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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교의식 다 끝난 후, 송지헌씨가 “다음은 고인의 생전 활동 모습 등을 영상으로 시청하시겠습니다”라 멘트하면서 화면은 후방 풀샷으로 잠시 바뀐다. 이때 비친, 뒤쪽에서 세 번째 줄 오른 쪽에서 네 번째 앉은 남자, 뒤적뒤적 신문 읽고 있다. 그 상황에서도. 도인일세. 이 양반 누군지 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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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영삼, 이 분은 참 아무데서나 잘 주무신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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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틈새논평 담당, 딴지총수(ouj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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