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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망자는 서울 하늘에 흩뿌려지고



2009.6.1.월요일



 


봉하마을에서 2 3일을 보내고 돌아오니 사실 몸도 마음도 탈진 상태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영결식에 안 갈 수는 없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나 머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마지막 의리를 보이기 위해서다.


 


서울광장으로 갈까 경복궁으로 갈까 고민을 했다. 서울광장에 일찍 자리를 잡고 앉으면 공연 보기도 그렇고 여러모로 편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진짜로 장례식에 간다는 느낌이라면 경복궁쪽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결식장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금방 나온 운구차를 따라 노제 장소인 광장까지 걸어가게 되지 않나.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


 


경복궁 앞에 도착하자 삼엄한 경비. 좁은 인도만 남겨 두고 경복궁 앞쪽 차도와 공간은 모두 경찰이 막아서서 안쪽이 보이지도 않는다. 하긴 저 안에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 일당이 다 모여 있으니, 이렇게 안 할 수 없겠지.


 



 


큰 길이 다 막혀 있어 골목길을 따라 세종문화회관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제대로 차려 입은 진짜 전경들이 갑자기 떼를 지어 경복궁 쪽으로 달려간다. 아무 긴급 상황도 없었으니 이건 그저 무력 시위다.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유사시에는 너희들을 칠 지도 모른다. 그러니 허튼 생각 하지 마라.. 이런 무언의 압력을 주는 게다.


 


무섭기는커녕 가소롭고 역겹다. 하지만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의 한 공터. 전경은 한 명도 안 보이고 그저 헬멧과 방패들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공터에는 일종의 진공 상태가 형성이 되고, 아무도 그 속으로 들어서려 하지 않는다. 무슨 제갈량의 공성의 계교.


 


이렇게 군중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넘들이, 막상 시민의 뜻은 살피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둘은 꽤나 다른 영역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머리와 가슴. 이 두 개가 끊어져 버린 결과가 바로 저런 잔머리다.


 



 


정부청사 뒤쪽 멀리 붙은 스크린. 대형 스크린으로 영결식 장면을 볼 수 있다고 전철역 안에 써 붙여 놨더니, 막상 나와 보니 고작 이거다. 게다가 영상만 나오고 소리는 나오지도 않았다.


 


음악과 연설은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좀 떨어져 있는 서울광장은 그렇다 쳐도, 이명박이 가깝게 있는 이 쪽은 그래서는 곤란하겠지. 또다시 잔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 하다. 조금이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가 들렸으면 하는 맘에 가지고 있던 DMB를 크게 틀었다.


 



 


하지만 경찰이라고 사람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 순간 각자의 머리 속에서는 어떤 생각들이 들고 있을까.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표정에서 느낄 수는 있다. 우리나 별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막상 무슨 일이라도 생길라치면 금방 시민의 반대편에 설 그들. 인간의 진실은 단순하지만 세상의 현실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 둘을 조화시키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며칠 전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르셀로나가 맨유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후, 이를 자축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에 의해 폭동이 발생했다. 차와 상점이 불타고 사람들이 다쳤다. 고작 축구 이긴 것 때문에 그 난리가 나는 곳이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이다.


 


하지만 이 순하고 젊잖은 국민들을 보라. 다른 나라였다면 경복궁에 성난 군중이 난입하여 대통령을 끌어 내고, 조선일보 건물이 불에 탔을 지도 모를 그런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여기 이렇게 모여 망자를 추모하고, 기껏해야 촛불을 드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이명박과 한승수는 얼마 전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며 우리 촛불을 개탄했다더라. 그러게.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 다행인 줄 알아야지...


 



 


세종문화회관 계단의 썰렁한 벽면에 누군가가 붙여놓은 살신성인’. 이 흔하고 짧은 사자성어가 오늘 이 자리에서는 긴 만장이나 대자보이상의 내공이 실린다. 그러나 내공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제 아무리 내공이 심후한 자라고 해도 결국은 장이나 권을 뻗어야만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거다.


 


우리들이 택해야 할 장과 권이 폭력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무엇이 되어야 하나.


 



 


오랜 기다림 끝에 운구차가 천천히 나온다. 저 속에 노무현이 시신이 되어 누워 있다. 봉하마을에 갔었지만, 입관을 하고 또 그 며칠간 시신을 안치해 둔 마을회관 바로 옆을 걸어 다녔지만, 진짜 실감이 나는 것은 이 순간이다.


 


저 속에 그가 누워있다.

 




 


 



 


운구차를 따라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군중의 행렬 속에서 우리는 조선과 동아의 거대한 스크린 두 개에 의지한다. 불쾌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조중동이 밉다고 보지 않고 외면해 버릴 건가.


 


사람들은 주류의 진짜 힘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우리나라의 중심부에 저 스크린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 그들 자신이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의 장례식을 생중계하며, 또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자들. 그것이 바로 주류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아직은.


 



 



 


운구차를 따르는 만장의 행렬. 전통적인 대나무 대신 정부의 명령에 의해 PVC 파이프로 만들어진, 반쪽 짜리 만장. 만장의 대나무가 죽창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노무현의 노()창 자루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보다.


 


하지만 고인이 우리에게 던져준 창은 죽창도, 쇠파이프도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PVC 아니라 종이로 만든 깃대를 들라고 한들, 결국 그 창 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오른쪽에 청로대왕 노무현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제왕이 되기를 스스로 거부한 대통령. 그런 그이기에 오히려 대왕이라는 명칭을 붙여 줄 수 있다.


 



 


높이 흩뿌려지던 수많은 종이 조각들. 저 하얀 조각들이 고인의 뼈가루로 느껴진 것은 나 혼자였을까. 그 바위 위에서 뛰어 내릴 때는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혼자였지만, 오늘 여기서는 기다리고 서 있는 수십만 명의 가슴 위로 뛰어 내린다.


 


그의 영혼이 있어서 오늘 이 모습을 지켜 보고 있다면. 그래서 그 깊은 한과 고독을 풀어 낼 수 있다면.


 



 


서울역까지 만장을 들고 가려는 국민들이 긴 행렬을 이루어 차례를 기다린다. 이 더위에, 이 인파 속에서 불평 한 마디 없이 힘든 일을 자처하는 그들. 전임 대통령의 죽음을 가족의 죽음처럼 대하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지금 권좌의 뒷길 또한 그리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3회에 걸친 필자의 현장 보고 기사를 끝낸다. 마음 같아선 연화장도 가고 봉화마을도 다시 가고 싶었지만, 몸도 마음도 이미 파김치가 된 상태라 더 이상 쫓아 갈 수 없었다. 여기까지 한 것으로, 일단 망자에 대한 당장의 의리는 지킨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정신 없이 지나간 지난 1주일이었다. 그 동안 총 네 편의 글을 썼지만, 기사 작성을 위해서도 현장 보도를 위해서도, 딴지일보를 위해서도 아니라 실은 나 자신을 위해서 쓴 글들이었다. 내 자신의 죄책감과 슬픔, 분노, 무력감을 채우기 위해 쓴 글들이었다.


 


이제 한 숨 돌리고, 이 모든 일을 지나면서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총 정리해서 마지막으로 한편 더 쓰려 한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노무현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을 넘어야만이 진정 나를 위하고 또 고인을 위할 수 있다. 그것을 넘어서야만, 이 슬픔이 언젠가 상처가 아닌 추억으로 승화될 수 있다.


 


고인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우리 국민을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그의 죽음을 밟고 또 다른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음 편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배경음악은 조경옥씨의 앨범 ‘잘 지내시나요’ 중 타이틀곡입니다.


음원 사용을 흔쾌히 허락하신 조경옥씨와 작사/작곡자 김혜능씨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딴지 논설위원 


파토 (patoworl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