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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 김동길의 비극, "이게 뭡니까?"


 


2009.6.1. 월요일




요 며칠 조갑제와 나란히 거론되었던 인물, 김동길(1928- ).


조갑제닷컴과 이름조차 형제스러운 김동길닷컴에 문제가 된 글에 대한 해명글이 올라와 있다 해서 가 보았더니, 서버 다운 상태더라. 그래도 개인적인 호기심을 갖고 있던 인물인지라 뭐라 말했는지 궁금해 서핑을 하여 다음 아고라에서 문제의 글 전문을 찾아냈다.


<지금은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 야의 모든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어떤 “은퇴” 정치인은 자신의 반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청와대도 슬픔에 잠겼다고 들었습니다. 가게를 지키고 앉았던 사람들도, 길을 가던 사람들도 모두 슬픔을 금치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라의 임금님이, 예컨대 고종황제께서 붕어하셨을 때에도, 그 시대에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백성이 이렇게까지 슬퍼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장군이 현직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생각이 부족한 어느 한 측근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궁정동의 그 때 그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큰 충격이기는 했지만 오늘과 같은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모든 언론매체가 왜 이렇게도 야단법석입니까.
노무현 씨가 산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설마 국민에게 자살을 미화시키거나 권장하는 뜻은 아니겠지요.


내가 4월에 띠운 홈페이지 어느 칼럼에서 "노무현 씨는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하여 이 노인을 매도하며, 마치 내가 노 씨 자살의 방조자인 것처럼 죽이고 싶어 하는 “노사모님들”의 거센 항의의 글이 쇄도하여 나의 홈페이지는 한참 다운이 되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나는 내 글을 써서 매일 올리기만 하지 내 글에 대한 댓글이 천이건 만이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하도 험하게들 나오니까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은 “테러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혼자서는 절대 집을 나가지 말고, 밤에는 더욱이 외출 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 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늙어서 반드시 요를 깔고 누워서 앓다가 죽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 테러 맞아 죽으면 영광이지.”


아직은 단 한 번도 테러를 맞은 일이 없지만 앞으로도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다가 폭도들의 손에 매 맞아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위기에 처해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이가 몇인데요. 여든 둘입니다.


사법부는 노 씨에 대한 모든 수사는 이것으로 종결한다고 하니 이건 또 어찌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된 검찰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는 속셈입니까. 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있는 것은 감정과 동정뿐입니까.


“검찰이 노무현을 잡았다.” - 이렇게 몰고 가고 싶은 자들이 있습니까. 천만의 말씀!
노무현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입니다.
이 비극의 책임은 노 씨 자신에게 있습니다
.


과연 현재의 그다운 글이다.


 




김동길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이나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까지 치른 인물이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를 진보 사상을 가진 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당시의 그는, 한국에서는 굉장히 드문 순혈의 <보수주의자>에 가까웠다.


보수(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현재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전통, 역사, 관습, 사회 조직을 지키려는 주의라고 하지만, 사상사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와 사회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었던 버크나 토크빌을 그 연원으로 본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정치사상적으로 본 보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정도로 보면 되겠다. 진보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결함에 주목해 사회민주주의 같은 대안적 체제를 지향한다 정도로 보면 되는 것처럼.


자유민주주의 옹호라는 측면에서 보면, 박정희 정권 하의 김동길은 당당한 진짜 보수였다. 서슬 퍼런 그 시절에 유신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 당당히 소신을 밝히며 감옥까지 간 사람이니.


그랬던 그가 1980년대 중반 조선일보의 논설고문을 지내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더니, 1991년 정계에 뛰어들어 1993년 정주영의 국민당 대표직을 승계하고, 1995년에 자민련 선대위원장을 거쳐, 다음 해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묘하게 변해 버렸다. 은퇴 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햇볕 정책을 극렬히 비판하며, 박정희 정권 아래 그 자신이 당했던 용공의 그물을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그대로 덮어씌웠던 것이다.


2002년의 그는 친일 인사로 발표된 이들을 공개적으로 옹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라가 왜 이 꼴이 되어 가는가. 민족지도자를 민족반역자로 모는 사람들이 더 민족을 반역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이러한 극적인 변화 - 김동길을 진보라 여겼던 사람들에게는 - 는, 사실 한국 사회의 보수가 보수로써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 과정을 거친 결과다.


사전적 정의로 본 보수는, 현재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전통, 역사, 관습, 사회 조직을 지키려는 주의라 말하였다. 정치사상적 의미로 본 보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한다 했고.


한국의 순혈 보수들에게는 비극적이게도,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잃지 않았던 체제유지세력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일제와 미군정, 분단국가 성립을 자초해 정통성이 부족했던 이승만 정권과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탄탄히 자리 잡은 수구 세력이며 정치사상적으로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에 가까운 파시스트들이다.

이들은 1995년 무렵, 5ㆍ16은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며 원조 보수론을 들고 나온 자민련을 필두로 보수 원조 논쟁을 벌이며 자신들의 정치사상을 파시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교묘하게 위장했다. 그러나 위장은 본질을 바꾸지 못하는 바, 그들은 사전적 정의로는 보수이되, 정치사상적 정의로는 여전히 극우 파시즘에 가깝다. 


더구나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순혈 보수들은 결코 극좌 내지 진보의 탈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득권층인 한국의 가짜 보수가 극좌 내지 진보의 낙인을 찍을 때 항상 이용하는 용공의 딱지가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1928년생인 김동길은 평안남도 맹산 출신이다. 그의 부친은 맹산 월남면의 면장이었고, 일제시대의 면장이란 당연히도 친일 부역자였기에 인민위원회가 성립된 해방 이후의 북에서 김동길 일가는 많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평양고보 졸업 후, 38선을 넘은 김동길은 연세대 졸업과 미국 유학을 거치며 정치사상적으로는 순혈 보수가 되었지만... 그의 뇌리에는 예민하던 20대 시절에 각인된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뿌리 깊이 박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사적 배경은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보수에서 극우로 탈바꿈한 이문열과 거의 비슷하다.


이데올로기의 질곡이란 이렇듯 끈질기고도 원초적인 것이라, 한국에서 보수로 살기 위해서는 정치사상적 보수조차, 극우 파시스트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 충돌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난데없고도 어이없는 아래의 발언은 위와 같은 기나긴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촛불난동을 보면 간첩과 간첩에 포섭된 사람들의 놀음입니다. 이게 뭡니까?
간첩을 알고도 잡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촛불난동을 보면 간첩과 간첩에 포섭된 사람들의 놀음입니다. 소고기가 중국산이었다면 촛불시위 했겠습니까?
노무현 배후에는 김대중이 있고... 석달 열흘을 시위하는... 이게 뭡니까?
이명박 대통령, 촛불도 못 끄면 산불은 어떻게 끕니까? 정신 차리고 권력 잡은 사람이 노무현 단죄해야 합니다.


- 2009년 4월 27일, 국민행동본부가 주최한 국민궐기대회에서 한 김동길의 연설 중


사회적 시각에서 보면, 진보가 바로 서기 위해서도 보수는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보수가 있되, 그들은 정치사상적 보수가 아니라 사전적 보수이다. 전후(戰後) 세대로 태어난 한국의 순혈 보수들은 부디 이문열과 김동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때 유행어까지 되었던 김동길의 말버릇, "이게 뭡니까?"가 위의 연설문에 보여 참으로 씁쓸하다. 그의 책을 보며 링컨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그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다.


"젊은 날, 그렇게 반대했던 파시스트가 되시다니... 이게 뭡니까?"



신독(kangbik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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