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햇빛고을 추천0 비추천0




[근조]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2009.6.1.월요일



 


"공터에 홀로 있다 가신 님, 광주가 모시겠습니다."


머나먼 아프리카 땅입니다. 노통 가신 지 벌써 엿새째, 내 마음은 이미 봉하에, 서울 광장에 가 있건만, 찾아가 뵙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서럽고 슬픕니다.


나의 희망이며 나의 사랑이었던, 노.무.현. 이름 석자...


영면하시기전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곳 아프리카 어느 구석 후미진 곳에 교민들을 위해 마련된 분향소에 아내와 함께 님을 송별하러 갔습니다.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어색한 양복을 정성껏 챙겨입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드렸습니다. 큰 절 올려 드린 뒤, 방명록에 님을 그리워하는 문구 하나 썼습니다.


"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큰 절 올려 드릴 때,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꾸욱 참고 눌렀습니다. 아니 엿새 동안 몇 번이고 솟구치려는 눈물이었으나 나오지 않도록 두 눈 크게 뜨고 짓눌러 막았습니다. 눈물을 모두 분노로 승화시켜 채곡채곡 채워두고 싶어서입니다. 눈물이 마르면 내 안의 분노도 사라질까 두려워서였습니다. 극한의 분노로 온몸이 채워질 때까지 울지 않으려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은 나에게 두 번째 예수입니다. 나에게 유일하신 분, 첫 번째 예수는 낮은 곳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손을 잡으시고 차별받는 자들을 품으러 오신 분이십니다. 님도 그러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가 되시어 똑같이 우리를 품으러 다가오셨습니다. 또한 님은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저의 고향이 광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바보같던 부산에서의 그 "공터의 연설"을..



님은 왜 그때 홀로 거기에 서셨던 것입니까. 모두가 떠난 자리, 아무도 듣지 않던 연설, 그럼에도 우렁찼던 님의 목소리. 하지만 님의 공터의 외침에서 저는 가슴 한편이 찢어지던 님의 고독을 읽었습니다. 저는 잘 압니다. 님이 왜 그 공터에 홀로 서야 했는지 말입니다. 바로 광주, 우리를 품고자함이었습니다. 아니 이 땅의 소외된 자와 약자를 품기 위해 님은 그렇게 고향의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님은 "농부가 밭을 탓해선 안된다"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에게는 님의 그 말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신 예수의 기도인듯 들렸습니다. 하여 님은 다시 한번 나에게 두 번째 예수이신 것입니다.


큰 빚을 진 광주는 님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빚을 갚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광주는 채무 관계가 정리된 듯, 님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님은 또 다시 광주에 말할 수 없이 큰 부끄러움과 빚을 안겨주고 가셨습니다. 님이 죽으신 이유는 본질상 또 다시 광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님은 부엉이 바위, 벼랑 끝에 홀로 서 계셨습니다. 모두가 님을 떠나고 세상이 님을 등지어 다시 한번 그 "공터"에서 덩그러니 혼자가 되셨습니다. 이번에는 광주마저도 거기에 없었습니다. 님의 편을 드는 척 하던 모든 자들마저 님을 등지고 오히려 마음 껏 저주하고 조롱했습니다. 모든 자들이 님을 그렇게 벼랑으로 몰아 거기 홀로 서게 했습니다. 님을 따르는 무리는 이제 한 줌 뿐이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님은 거기에 외로이 홀로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님은 그곳에서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가장 우렁찬 최후의 연설로 모든 자를 깨어나게 하고, 모든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첫번째 예수가 그랬듯이, 님은 수치를 주려했던 위선자들을 오히려 수치스럽게 하고, 그들을 고발하여 거짓을 발가벗기고, 진리와 정의를 밝히 드러내고, 돌같은 죽은 백성의 양심을 깨우기 위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과 모든 계층이었습니다. 철천지 원수이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를 살해하는 음모에 하루 밤 사이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 권력가들에게 예수는 혁명을 꿈꾸는 정치범이었습니다. 종교적 사제들에게 그는 유대교의 전통을 깨는 이단이었습니다. 부자를 질타한 설교를 듣던 부유한 기득권에게는 그는 너무도 불편한 존재였씁니다.


그러나 예수는 혁명가도 이단아도 아닌, 그저 민중을 사랑하고 백성의 친구가 되고 소외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천국의 소유권을 보장해주었을 뿐입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놓으라하고, 전통과 죽은 율법으로 민중을 종교적으로 억압하지말며, 인간에 대한 차별, 지역의 차별을 철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정치적 관점에서 예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형" 당했습니다. 정치적, 종교적, 지역적 기득권과 견고한 권력의 카르텔에 도전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한 죄목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는 당시의 "광주"를 품고 껴안아 준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내놓아야 했습니다.


예수가 그렇게 죽음을 당할 때, 예루살렘의 모든 세력이 하나가 되어 그를 사냥했고 당시의 권력가는 여론을 조장하여 군중들의 "십자가! 십자가!" 구호를 이끌어 내어 마지막엔 제자들까지 모조리 배반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홀로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대통령,


사무치도록 그리운 나의 대통령, 노무현님...


님이 바로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노무현, 당신께서 두번째 예수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님의 죽음이 바로 예수의 정치적 죽음의 반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님은 홀로 지역주의, 비인권적 전통, 기득권과 독점 세력, 그리고 온갖 부조리한 제도와 거대한 종교 권력에 맞서 싸우다 한 줌의 재로 자신을 불살랐습니다. 모든 이가 그 싸움을 피하고 비겁하게 변절하거나 사라졌을 때, 님은 마지막까지 홀로 싸우다 외로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광주는 그래서 님에게 너무도 큰 빚을 졌습니다. 님이 품어주셨던 이 땅의 모든 광주, 무정하기만 했던 모든 이들이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바로 우리 때문에 님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광주는 영원히 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빚진 자의 몫으로 남은 숙제를 기꺼이 떠 안을 것입니다. 님의 뼈가루는 봉하에 묻히겠지만, 광주가 님을 영원히 모실 것입니다.


공터에 홀로 섰던 님, 그리고 벼랑 위에 마지막 순간 홀로 계셨던 님, 이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버렸으나 모든 것을 얻으셨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님이 남기고 가신 한줌의 재가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 분명코 거짓 세력을 몰아내고, 영남을 깨우쳐 호남과 화해하고, 님이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 들꽃이 만발한 봄이 오게 할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울지 않겠습니다. 온 몸에 차오른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 내어 님의 한을 다 풀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영면하소서, 님이시여.


"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멀리 남아프리카 땅에서
님을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며
햇빛고을(myshalom@nate.com  )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