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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김지하, 되풀이되는 그의 이상한 취미



2009.6.3.수요일



 


노제가 끝난 후에는, 당연히도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폄하하리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분향소를 철거하는 후안무치한 짓도 모자라, 그의 죽음을 깎아내리는 글들이 도처에 출몰하고 있다.


그러다 이 글을 보았다. 예상은 했으나 차마 보고 싶지는 않았던 글을.


[김지하 칼럼] 나의 이상한 취미
http://www.kwnews.co.kr/view.asp?aid=209052800055&s=1101&b=4


그는 이 칼럼 중에 이런 문장을 넣었다.


시중의 유행어인 `따뜻한 자본주의, `착한 경제는 돈과 마음의 결합이다. 봉하마을에서 악을 악을 쓰는 맑스 신봉자들은 이것을 설명 못한다. 맑스 화폐이론은 철저히 마음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7일간의 국민장, 비극적 숭배열에 의한 명백한 부패와 생명포기라는 비겁성의 은폐, 핵실험과 3개의 미사일 발사 따위가 여기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김지하여, 정녕 이런 짓이 당신의 취미란 말인가?


 



1991년의 4월과 5월을 떠올리면, 화인처럼 뇌리에 새겨진 짙은 피 냄새를 맡곤 한다.


그 해 4월 26일 명지대에서, 당시 1학년이었던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들에게 맞아 죽었다.


이로 인해 전국의 학생들이 분노했고, 29일에는 박승희(전남대), 5월 1일 김영균(안동대), 5월 3일 천세용(경원대)의 분신이 잇따랐다. 자신의 몸을 불태워 노태우 정권의 폭력에 항거할 정도로 당시의 그들이 받은 충격과 분노는 형언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컸던 것이다. 89년 탄생한 <화염병 처벌법>을 필두로 당시의 노태우 정권이 만든 공안 정국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자들을 한 치도 용납하지 않았음이니.


5월 6일에는 박창수(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의문사가 있었다.
8일에는 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이 서강대에서 분신, 18일에는 연세대 앞 굴다리 위에서 이정순이 분신, 보성고 학생인 김철수도 이날 분신하였다.
22일에는 김철수의 선배였던 정상순이 분신하였다.
그리고 25일, 성균관대생이었던 김귀정이 백골단들에 의해 충무로에서 타살당했다.


그 한 달 사이에 무려 십여 명의 젊은 목숨이 스러져 갔다.
그 와중인 5월 5일, 바로 이 글이 나왔다.
지금도 기억난다. 뜨거운 똥물을 삼킨 듯했던 그 지독한 모욕감을.
왜 그들이 죽음을 불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던 일방적 계몽에 대한 구역질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 김지하>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 여기저기서 자제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조촐한 자세로 돌아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정권보다 큰 생명


생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당신들은 민중을 위해서! 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방향이다. 당신들은 민중에게 배우자! 라고 외친다.


그것이 당신들의 공부이다. 민중의 무엇을 위해서인가? 민중이 생명의 보위,그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 해방의 전망은 확고한가? 목적에 대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만약 그것이 기존의 사회주의라면 그 전망은 이미 끝이 났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민족이 패망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 터에 생명포기를 요구할 정도의 목적의 인프레션 따위는 있을 수도 없으며 다만 뼈를 깎는 기다림과 겸허한 모색이 있을 뿐이다. 모색하는 자가 매일매일 북치고 장구칠 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왜 덤비는가?


모색과정에도 위기에 대한 긴급한 행동은 있을 수 있다. 하나 그때의 행동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당신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민중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외쳤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존중, 삶의 지혜를 놔두고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가?


어느 민중이 당신들처럼 그리도 경박스럽게 목숨을 버리던가? 당신들은 흔히 지도라는 말을 쓴다. 또 선동이란 말도 즐겨 쓴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환상적 전망을 가지고 감히 누구를 지도하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는가? 더욱이 죽음을 찬양하고 요구하는가? 제정신인가, 아닌가? 과학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이 과학인가? 그보다도 더 자주 정치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정치인가? 분명히 못 박아 말하지만 정치란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다.


자살 전염 부채질


당신들에겐 분명 그것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학생운동 본연의 순결한 정의감, 그리고 대안적 정열이 요구하는 바대로, 그리고 혼란한 전환기에 대응하는 확률적인 모색의 태도로 전 시민적인 요청에 대답하는 합당한 행동을 선택하라.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전환기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수하기 안성맞춤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 지금 당신들은 조심성이 있고 없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의 스테레오타입마저 이미 이탈했다.


철부지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당신들은 지금 극히 위태롭다. 생명은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인데 하물며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 아래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양인데, 그렇다. 바로 그 대답에 당신들의 병의 뿌리가 있고 문제의 초점이 있다.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 자살특공대,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이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파괴력에서가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충동에서다.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 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 집회와 시위 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선호 속에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했다. 당신들의 구호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의식화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 전에 일본 전학연의 몰락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모순을 어찌할 셈인가? 그런데 한술 더 떠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워 주고 있다. 컴컴하고 기괴한 심리적 원형이 난무한다.


종교냐 유물이냐


삶의 행진이 아니라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해방의 몸짓인가? 무엇을 해방할 작정인가? 귀신인가?


절정은 당신들의 그 혼을 분리하는 굿에 있다. 시체가 당신들 것인가? 왜 탈취하려 하는가? 그 시체의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사대부 집안의 그 가족도 없는 종인가? 왜 가족을 무시하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육신을 경멸하고 영혼의 찬란한 해방을 광신하는 고대종교인가? 육신의 물질성만을 주장하는 속류 유물주의인가? 도대체 어느 쪽인가?


도대체 그놈의 굿판에 사제노릇을 하고 있는 중과 신부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악령인가? 성령인가? 저는 살길을 찾으면서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선비인가? 악당인가? 당신들은 지금 굿에서의 이른바 불림을 행하는 모양인데, 불림에는 조건이 있는 법이다.


영매는 자기목적이 없어야 하고 불림의 대상은 귀신이 아니라 신명이어야 한다. 검은 귀신이 아니라 밝은 신명이라고 주장하겠지. 그러나 젊은 벗들! 귀신은 영육분리의 형상이지만 신명은 영육합일, 몸과 함께만 현상한다네! 그래서 신명은 곧 생명이라네. 당신들의 귀신 숭배는 더욱이 급진적 폭력을 동반함으로써 바로 네차예프사건과 인민사원의 집단학살, 그리고 연합적군 모리(삼)그룹의 산장에서의 피의 인민재판을 예고하고 있다. 죽음숭배, 귀신숭배의 결과는 풍수의 표현으로 당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비수터, 울부짖는 터, 갈기갈기 찢어지는 참혹한 종말이다. 어찌할 작정인가?


운동은 이제 끝장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의사굿을 당장 걷어치워라.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 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 행동을 선택하라.


나는 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좋다. 할대로 해 보라.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그래도 지성인이라면, 최소한 내말을 접수라도 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신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대답이 다행히 창조적 통일로 끝났을 때, 그때 우리는 현 정권에 대한 효력 있는 저항을 참색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자중자애하라. 부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폭력과 죽음, 그리고 종말의 서곡이다.


- 조선일보 1991년 5월 5일


그 화려한 구라빨로 김지하가 보고 있던 노태우 정권은, 전환기였을 뿐이다.
그가 젊은 벗들이라 표현한 이들은 박정희 정권의 또 다른 사생아인 공안정국으로 파악하고 있었는데도.


김지하(1941-  )가 누구던가.
1970년 박정희 정권을 비판한 〈오적(五賊)〉의 필화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긴급조치 4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다. 그는 1979년 박정희 사후, 다음 해 석방되었다.



그런 그라면 까마득한 후배들을 당당히 꾸짖고, 제발 좀 죽지 마라 애정 어린 일갈을 토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저 뜨거운 일갈을 다른 곳이 아닌, <조선일보>를 통해 했다.


그래서 윗글은 노태우 당시 정권이 주장한 <김기설 유서 대필 조작 사건>과 서강대 총장 박홍의 어둠의 세력이 분신 배후에 있다는 발언과 어울려 살벌한 공안 정국을 만드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보편타당함을, 생명을 걸고 싸우는 자들에게 포교하며 노태우 정권의 손을 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백보 천보를 양보한다 해도, 김지하는 1991년 5월 25일 백골단들의 강경 진압에 의해 타살당한 김귀정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랬던 그가 2001년 <실천문학>과의 대담 자리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리고 그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이라며 1991년의 그 칼럼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 말에 피가 들끓었을 이들이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1991년의 그는 그 한 편의 글만 기고한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연달아 게재되었던 그의 칼럼들은 어김없이 공안 정국 조성의 용도로 쓰였던 것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당시의 그가 젊은 벗들이라 부른 이들은 20년 대선배에게 칼을 맞았다. 그의 발언 자체에 대해 논하기 이전, 그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했다. 그의 발언이 누구에 의해 어떤 용도로 이용되었는지를.


그러나 그가 어제 날짜로 쓴 칼럼을 보면, 그는 자신의 과오가 무엇인지 지금도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그가 황석영과 죽이 맞아 국수주의 냄새 가득한 아시안 네오·르네상스를 노래하건, 계속해서 생명만을 찬양하건, 이제는 별 관심도 없다. 그가 꽂았던 그 칼의 흉터는 아직도 봄날만 되면 지독한 피비린내를 풍기니까.


그런데 그는 또 한 번 칼을 꽂고 있다.
"시중의 유행어인 `따뜻한 자본주의, `착한 경제는 돈과 마음의 결합이다. 봉하마을에서 악을 악을 쓰는 맑스 신봉자들은 이것을 설명 못한다. 맑스 화폐이론은 철저히 마음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7일간의 국민장, 비극적 숭배열에 의한 명백한 부패와 생명포기라는 비겁성의 은폐, 핵실험과 3개의 미사일 발사 따위가 여기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그 화려한 구라로.


봉하마을에 모인 이들 중에 아직도 맑스를 신봉하고 있을 이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는 봉하마을에 있는 모든 이들을 맑스 신봉자로 만들어 빨갱이 딱지를 붙여 주었을 뿐 아니라, 국민장이 부패와 비겁을 은폐했다고 말하고 있다. 저 <조갑제닷컴>이나 할 짓을 이제는 김지하가 직접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를 좋게 보고자 하는 이들은 아직 있다.


김지하와 촛불을 향한 조선일보의 동상이몽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52


미디어스는 이 글에서 김지하가 촛불을 비판만 하지는 않았다고 그를 변명해 주었다.
그러나 김지하가 "시위꾼들은 순수한 촛불을 화적 떼의 횃불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김지하는 이제 자신이 91년 모욕했던 그들을 화적 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에 관련한 김지하의 진짜 내심은 프레시안의 이 글에서 볼 수 있다.


좌익에 묻는다 -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당파(鐺把) <3>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1006164820&Section=04


이 글은 당연히도 <조선일보>에 또 한 번 크게 실렸다.
그는 이 땅의 진보 내지 좌익들을 이렇게 바라본다.


그들은 감옥에 간 나를 철두철미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자, 불굴의 혁명투사로 만들어 그 비극적 명성으로 저희들의 탈권 기획을 성사시키려 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형당하도록 만들어 국제적인 선전전에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저희 말을 안 듣자, 배신자, 변절자로 몰아 모략중상을 상시화했다.


그랬던가? 시인 김지하의 석방을 위해 그토록 동분서주했던 이들은 그럼 모두 진보도, 좌익도 아니었겠구나. 91년 이후 그를 배신자, 변절자로 부른 것은 오직 모략이요, 중상이었을 뿐이구나.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하였다.


저희 선배 김지하가 7년 독방살이로 미치광이가 되어 출옥 후 10여 차례나 정신 병원을 드나드는데도 무슨 보상이니 위문이니 관심은커녕 다 한 번 얼굴 내미는 놈도 없고 다 한 번 겉치레 인사 여쭈는 년도 못 봤다.
핑계는 있다.
연쇄 분신자살 때 자살하지 말라고 조선일보에 성토문 썼다는 것. 생명 사상 전파해서 배신자라는 거다.
이젠 저희들이 몽땅 생명과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주제에 말이다.


이 말을 보고야 분명히 알았다.
김지하가 2001년에 한 소위 사과는 진심이 아니라, 그저 구라였을 뿐이라는 것을.
그는 그 잘난 생명 사상을 전파해서 배신자가 된 것이 아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모르며 말했기 때문에 배신자가 된 것이다.


그는 <보수주의자>에서 <파시스트>로 변신한 김동길처럼 이데올로기에 얼룩진 개인사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가 진보 내지 좌익에게 갖고 있는 비판 의식의 근원은, 그의 말대로라면 기가 막히게도 자신을 모른 체한 것에 섭섭한 나머지 삐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의 배신을 덮어 주지도 않고, 그를 찾지도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보상도 위문도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라니.
차라리 생명 사상은 좌익과 상극이라고나 말하지.
차라리 자신의 민주주의 사상은 맑시즘과는 공존할 수 없다고나 말할 것이지.


김지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윗글에서 자신의 사상적 지향을 몽양계 중도 진보라 표현하였다.
그래서 그는 좌익도 비판하고 우익도 비판하고, 진보도 비판하고 보수도 비판한다.
자신이 보기에 아니다 싶으면 언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글쟁이는 자유로워야 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그대로 말하고는, 그런 스스로를 가리켜 자랑스레 중도라 말하고 있다.


나는 그가 몽양 여운형(1886 - 1947)의 삶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몽양은 해방정국의 혼란 당시 좌우를 오가며 합작과 통일을 추진하다 좌우익 모두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끝내 우익단체의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등 역사적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정국을 주도했던 해방 초기의 여운형은 조선인민당의 창당 연설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해방된 오늘, 지주와 자본가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손을 들어 보시오.
지식인, 사무원, 소시민만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손을 들어 보시오.
농민, 노동자들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우기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손을 들어 보시오.
손을 드는 사람이 없군요.
그렇습니다. 일제 통치기간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 반동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건국사업에 매진해야 됩니다.


김지하는 알아야 한다.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것이 <중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 비판들은 결국 한쪽만 편드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몽양이 가장 빛났을 때는 그들 모두를 비판했을 때가 아니라, 그들 모두를 추슬러 함께가려 했을 때라는 것을.
그리고 그 모두에는 결코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 반동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을 모르는 김지하는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 반동들의 요긴한 카드로만 계속 이용될 것이고, 김동길처럼 촛불 배후에 간첩이 있다고 말하는 파시스트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2001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비록 속내는 그와 달랐을지라도.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리고 그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유구무언”이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
해마다 봄이 되면 자욱한 피 냄새를 떠올리며 당신이 퍼부은 똥물의 구역질을 기억하니까.
당신 입으로 유구무언이라 했잖은가.
무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어디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지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해 달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줄 셈인가?



 


신독(kangbik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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