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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 오딧세이 AV편] 6화(번외편) : 노란 국물 


2009.06.09.화요일


누가 ~라고 하던데, 내가 누구한테서 들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하는 투로 시작되는 카더라 통신에 우리는 익숙하다. 이는 필시 통신수단의 발전이 더뎌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시절의 유습일 것이다.


밤중에 인쇄소로 들이닥쳐 신문기사에 검은 칠을 하는 걸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었던 시절에는 때로 카더라로 전해지는 입소문이 말하기 어려운 진실을 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유사 이래로 요즘만큼 커뮤니케이션이 쉬운 때가 없었다(Communications never been as easy as today) 라고. 어이쿠, 쓰고 나서 아차 싶다. 그렇게 말해놓고선 나도 하마터면 익명의 카더라와 함께 자기모순 속으로 좌초할 뻔 했구나. 뜨끔해서 부랴부랴 출전을 밝혀본다. 최근에 신보를 낸 Pet Shop Boys의 2002년도 앨범, Release의 수록곡 e-mail의 가사 첫머리란다.  



아무튼 커뮤니케이션이 유사 이래로 가장 쉬운 시절인 오늘날, "그게 누구였더라? 이렇게 말했던 사람이" 하는 식의 카더라 인용법은 일종의 수사학적인 기교로 쓰이면 족하다. 소위 말하는 전근대적인 방식인 것이다. 물 밖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었고 정보의 전달과 유통이 활자와 구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절엔 카더라 가 활개 칠 수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 하나가 "야! 내가 미국에 갔다 왔는데 거기 가서 보니까 빌어먹고 사는 빈민촌 여자 허벅지가 내 허리보다 더 두껍더라" 고 말하면 다들 "우와!" 하고 입을 벌리고 들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을 사고 앨범 부클릿 속에 자칭 팝 칼럼리스트라는 양반이 끄적거린, 출처도 신빙성도 불분명한 추천사를 경전처럼 외웠고 신문에서는 외신보도에 의하면 이라는 이 한 줄을 전가의 보도처럼 아주 유용히 써먹던 시절이었다.


아,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나? 그래도 그 무수한 카더라 들과 입을 헤에 벌리고 거기에 혹하던 시절을 너무 나무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때의 시대적 패턴과 사회적 환경이라는 게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보의 전달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추월하고 정보의 양이 기억의 한계를 초월하려드는 웹의 시대. 이제 누군가 중앙에서 정보의 전달과 확산을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네트워크의 시대. 그때 그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오늘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카더라 통신 같은 전근대적인 소통 방식이 죽지 않고 뿌리 내린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 매체의 발전은 이룩했을 지라도 여전히 남몰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게 만드는 카더라 권하는 사회에서 사는 경우. 장자연 사건에 대해서, 삼성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 대선을 앞두고 BBK와 당선이 유력시 되는 유명 후보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여전히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게 된다. 하이엔드급 컴퓨터가 눈앞에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지뢰 찾기만 하도록 감시할 때 느끼게 되는 기분이 이런 것이리라. 웹이라는 21세기적 소통매체를 가지고도 ~카더라, 아니면 말고 하는 20세기적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억울함. 이럴 때 웹과 사회를 부유하는 카더라 통신은 오히려 진실을 담는 훌륭한 방식이 되기도 한다. 29년전 광주의 5월이 피로 물들고 난 뒤, 사람들은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지는 믿기 어려운 카더라 통신을 확인하기 위해 소리죽여 입이 무거운 친구의 사랑방이나 성당으로 모여들었고, 외국인 기자가 찍었다는 비디오 테잎을 돌려보며 치를 떨었다.
 
그런데 반대로 공부한다는 아들놈에게 열심히 공부 하라고 하이엔드급 컴퓨터를 사줬더니 이 녀석이 그걸 야동머신으로 줄기차게 활용한다면? 그게 바로 두 번째 경우다. 웹과 네트워크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이 21세기적 매체를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20세기적 소통방식의 연장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웹이라는 21세기적 매체를 20세기적 카더라 통신의 장 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가 전자의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게 지금 대한민국 웹의 현실이다. 웹을 부유하는 근거 없는 괴담과 호사가들의 구미에 어울리는 추측성 기사들, 출전 없는 누구누구 파문!. 그리고 여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저 호적에 잉크 안 마른 초딩들이 주 수요라며 덮어두기엔 찔리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이런 카더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바로 AV 계다. 호기심을 가진 이들은 많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파고드는 이들은 더욱 없다. 그러다 보니 쉽게 관심을 끌고 진실을 담은 사실 보다는 호사가들이 믿고 싶어 하는 소문 들이 쉽게 양산되고 급속도로 퍼져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 널리 퍼진 AV 관련된 카더라 들을 보면 아, 구전 설화란 이렇게 만들어 지는구나 싶을 정도로 극적이다.


일전에 제목으로 AV 배우 십여명이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 한줄 코멘트를 해놓은 글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사실 AV 배우들의 인터뷰를 직접 모은 1차 사료도 아니라 1차 사료들을 토대로 누군가 다시 윤색한 2차 저작물이다. <내가 유키 마이코 였다면 AV에 대해서 강간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게 해준 고마운 존재 라고 생각할 거 같다.> 이런 식으로. 그게 시간이 지나자 "출전이 2ch이다", "아니다 일본에서 나온 무슨 AV 배우들 인터뷰 모은 책을 엑기스 한 거다" 하고 주석이 붙더니 듣도 보도 못한 이름(뭐? 진나이 미레파? 이런 이름을 가진 배우도 있었어?)까지 추가되어 근 20여명의 코멘트 모음인양 살을 찌워서는 여기 저기서 진실인양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단지 그것 뿐이랴?  
 
"아사카와 란이 은퇴해서 지금은 캐나다에서 유학중이다.
내가 지금 벤쿠버에 있는데 우리 학교에 다닌다.
사실은 아무도 몰랐는데 나랑 친하게 지내는 형이 눈치를 채고 나한테 알려줬다.
내가 확인해 봤다. 다음에 사진 찍어서 올리겠다."


"나가세 아이는 똥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그것 때문에 AV 배우가 되었다.
사실 그녀는 정영희 라는 이름을 가진 재일교포였다.
그것 때문에 차별과 가난에 시달렸다가 결국 AV 배우가 되었다.
이 사실을 모 TV프로그램에 나와서 울면서 고백했다.
내가 일본 유학중일 때 그거 봤다."


그래도 한국 AV 사상 최고의 카더라 통신이라면 단연 노란국물 이 아닐까? 때는 90년대 말. 56k 고속 모뎀 내장이라는 요 한 줄이 세진 진돗개 컴퓨터의 제원에 당당하게 기재되어 있던 시절. 인포샵에서 사진 몇 장 받다보면 전화요금이 십만원을 넘겨 집에서 아부지에게 죽일 놈 살릴 놈 소리를 들어가며 맞았던 시절. 쌈장 이기석이 나오는 한국통신 ADSL광고를 보고 그래, 바로 저거야! 라고 외치던 시절. 그걸 보고 핥짝 거리며 전화국에 전화해보면 사실 광고는 훼이크고, 지금 워낙에 밀려서 내년에나 개통된다던 그 시절. 딴지일보가 아직 김어준 총수의 1인 기업이었던 그 시절. 대한민국 웹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엽기코드라는 떡밥을 투척한 사건이 일어났다.


 노.란.국.물


직장과 학교 가정..은 빼고 웹을 사용하는 이들끼리 만나면 일상적으로 나누는 인사가 "노란국물 봤어?" 였을 만큼 화제의 중심에 섰던 동영상 한편. ADSL도 변변찮았던 시절, 대체 뭣 때문에 사람들이 모뎀으로 기를 쓰고 노란국물을 찾아서 보고 대화에 끼려고들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 동양인 여자가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먹은 것을 게워내고 토사물을 다시 들이키는 동영상 한편에 왜들 그렇게 관심이 뜨거웠는지. 뭐 사람들은 믿지 않으시겠지만 그때는 나도 심약하고 순수한 청춘이었던 고로 말로만 전해들은 노란국물에 식겁해서 영상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심약하고 순수한 청춘이어서가 아니라 분코 카나자와 보고 딸잡기도 하루가 너무 짧아 엽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아예 없었던 거다. 영상을 다보고 이제 사람들은 실컷 욕지기를 하며 대화에 끼어들고, 자기가 유행에 처지지 않는 사람임을 확인한 뒤 그래도 그런 엽기 쪽에는 취미가 없는 정상인임을 확인하려고 "찍은 놈 미친새끼", "여자가 불쌍하다" 라는 말을 열심히 뱉어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노란국물을 지배하는 카더라가 생겼는데 이른바 최면설이다.


"저 여자가 맨 정신으로 찍은게 아니라 상금을 걸고 최면술사가 조건을 걸었는데 거기에 응했다더라. 그래서 최면에 걸린 상태로 저걸 찍었고 나중에 자기가 그걸 보고 스스로도 충격에 빠져 자살했다더라"


이것도 엄연한 카더라 이거늘 아주 당연히 진실인양 당시엔 유통되고 있었다. 그래도 봐주자. 웹이 기지개를 키던 시절 십 년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지금 광랜과 웹하드가 자리잡고 국내에 AV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9년. 일본의 대표적인 AV 레이블 DOGMA에서 출시하는 이루마치오(강제구강성교)와 게로(토사를 뜻하는 일본어 의태어)를 접하는게 더 이상 국내에서도 어려운 일이 아닌 지금, 노란국물은 어떻게 기억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그때 그 카더라는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 정황상 그것도 분명 AV 어느 한편의 클립 이었을텐데 지금쯤은 최면술사 이야기는 그냥 우스개 취급당하고 있을것이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다.


10년이 지나 노란국물은 거의 홍콩 할매나 빨간 마스크에 달하는 설화적 괴담으로 자리 잡아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여기에 잠깐 어느 순진한 네이버 초딩의 친절한 답변을 옮겨 적어본다.


정말 죄송합니다...보지마세요!!!!!!!!!!!!!!!!!!!!!!!!!!!!!!!!!!!!!!!!!


네 말씀드리죠 [안보시는걸 추천해드림]
한 최면술사가 어떤여인에게 부탁을합니다
노란국물과 여러가지 국물시리즈를 만들면 거액의 돈을 준다고.
하얀국물 빨,간국물 노란국물 갈색국물 또여러가지있는데
이걸완성시키면 거액으돈을 준다고약속햇죠
하지만 최면을걸어 그여자가 손을집어너서
막토하게하고 먹고 토하고 먹고하는거에요


[정신적인 충격 불안 증상을 보일수잇으니 안보시는걸]
그여인이 돈도못받고 인터넷을쳐보자  자신의 토하고먹는걸 찍은동영상이 인터넷에벌써 널려잇는걸보고 유서와함께 자살햇다는이야기입니다.  [실화] 즉보지안는게 좋다고생각합니다.


이를 기본 골격으로 묘하게 더 디테일한  후속편도 존재한다. 흡사 영화 <링> 의 설정을 빼다 박은 듯 하다.


저기요.... 제발국물씨리즈다보지마세요!!!!!!
그중에서노란국물은제일불쌍합니다.... 노람국물찍은언니는 최면술사가 그냥 먹다토하면
60억을준다해서 일본에서왔는뎅...... 최면에걸려 먹다토하고먹고토하고


반복을해서 최면이풀리고나서 보니까최면술사는도망가있었데요...
한시라도 이글을올리세요 아니면언니의혼이나타나서저주를 건데요...
아참!그리고 그언니가죽으면서 유언장?을남겼는뎅...


        내용보여드릴게요...


나는최면에걸려... 이일을저질렀으며......
이동영상을본사람,최면술사모두저주할거야!
고인의 명복을빔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라고적혀있어데요 .....
아참!!그리고이글안적으면새벽3시에집에찾아온데요 ㅠㅠ 제발다른곳에도적어주시길


 그리고 언니한테 고인에명복을빕니다..........ㅠㅠ

이건 거의 민속학이나 신화 연구자들이 케이스 스터디로 삼아도 될 정도로 아주 이야기가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노란국물 출연자의 본래 모습이라면서 아무 연관도 없는 일본 영화배우 다나카 레나(田中麗奈)의 사진을 첨부해 추모사 까지 올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철썩같이 믿고 있는 분위기



그럼 대체 10년사이 대한민국 웹을 떠돌고 있는 카더라 노란국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는 95년 V&R이라는 분변애호(糞便愛好)에 특화된 AV 레이블에서 1995년 2월 출시한 비디오 게로게로(ゲロゲロ : 구토를 뜻하는 일본어 의태어)라는 비디오다. 분변애호물을 전문적으로 찍은 아다치 카오루(安達かおる)감독의 연출로 먹고, 토하고 또먹고(食って吐いて、また食って)라는 부제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내용이다. 그리고 문제의 여자 출연자는 당연히 다나카 레나가 아니라 야츠키 레이코(夜月玲子)라는 이름의 전문 AV배우다.



표지사진



일본의 한 성인 동영상 VOD 서비스에 등록된  <노란국물>


출시된 때가 VHS세대였으며 인터넷이 잘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였다는 점, 야츠키레이코는 출연작 자체가 굉장히 드물고 마이너한 영역에서 활동했다는 점 때문에 국내에 노란국물의 정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AV 속의 한 장면일 것이다는 심증만 있었으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어 침묵해야 했던 이들에게 고한다. 이제 명절 때 보는 초딩 조카가 무서운 얘기 하나 해드릴까여? 노란국물 이라고 어떤 여자가 최면 걸려서.. 라고 말하면 차분하고, 친절하게, 또박또박, 진실을 알려주자. 물론 그 이후의 전개는 다들 알아서 하시라.







충용무쌍의 본좌 오딧세이 AV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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