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토 논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2009.6.9.화요일

정부여당과 조갑제, 김동길 등 극우 인사들이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는 이야기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걸 보면서 혹시라도 그런가 보다 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 하니 한 마디 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단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아니라 역사에 전례가 없는 대통령의 투신자살 사건이다. 그것도 정치 보복에 따른 표적 수사와, 불법의 혐의가 다분한 수사기관의 정보 누출, 그에 편승한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모든 배경이 정치적이라는 건 삼척동자가 봐도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집안 어른이 자연사하기라도 한 것처럼 숙연하게 애도만 하고 넘어가라는 수작은 대체 머냐. 그것도 죽음을 슬퍼하는 쪽에서 하는 말도 아니고 가해자 입장에 있는 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적반하장도 이런 경우는 없다. 노무현이 언제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정치적으로 이용될까 봐 두렵다’ 는 말이라도 했나.

그리고 다들 헷갈리는 것 같은데, 그가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 고 한 유서는 국민에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두고 가는 것이다. 내용과 말투를 보면 알 수 있잖은가.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한번도 반말로, 명령조로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유가족은 원망하면 고통만 깊어진다. 하지만 국민은 원망하고 나아가 깨닫고 행동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이룬다. 아니냐.

그의 죽음을 이순신이나 김구와 비교하는 사람도 많지만 본 위원은 그보다 고종황제의 죽음이 떠 오른다. 물론 우리 손으로 뽑은 민주 공화국의 대통령 노무현과, 봉건 군주로서 국권 상실에 큰 책임이 있는 고종은 그 가치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우리 국민들이 죽음을 받아들인 정서와, 죽음 이후에 벌어진 상황의 의미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고종은 1919년 1월 22일, 국권을 잃은 약 10년 후에 서거했고 전국적으로 일제의 독살설이 떠돌았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 시점에서 밝힐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그렇게 믿었다. 설사 직접적인 독살이 아니더라도, 나라를 잃은 황제로 살아가는 한과 고뇌를 그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헤아리게 된 국민들의 마음은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찼다. 그러다 보니 조선총독부가 고종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하지 않을까 긴장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두 달여 후, 역사적인 3.1 운동이 벌어지고 사회는 ‘혼란’에 휩싸이고 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고종의 넋이 있었다면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했겠지만, 그렇다고 누구처럼 ‘천국에서의 유언’ 따위나 보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왕 버린 나라, 혼란 일으키지 말고 생업으로 돌아가서 공구와 핸들, 아니 도리깨와 소달구지나 다시 잡으라고 했을까.

지금 우리 국민의 가슴속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의 죽음으로서 우리 국민들은 그가 가진 민주적, 역사적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고종을 잃음으로써 우리가 나라를 잃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되새긴 옛날 그때와 비슷한 심정이다.

역사의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종은 덕수궁에서 서거했고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대한문 앞으로 구름같이 모여들어 통곡했다. 전경 버스가 없던 시절이니 막지는 못했지만 이때는 일본 경찰들이 감시했다. 민족은 다르지만 ‘일부 폭력 소요 세력’에 의한 ‘변질’을 두려워하는 맘은 그넘이나 저넘이나 매일반이었으리라.

그때 만약 우리가, 돌아간 황제의 죽음을 ‘순수히’ 추모하자는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 넘어갔더라면, 조용히 슬퍼만 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다면 과연 3.1 운동이 있었을까. 3.1 운동이 없었다면 해방 후 우리는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독립을 위해 노력했노라고 후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의 방식은 그때와는 달라져야 할지 모르지만, 처한 입장은 별다를 바 없다. 조선왕조 5백 년 역사보다 더 소중한, 우리가 오랫동안 피와 땀을 흘려 쌓아온 민주주의가 지금 후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완성하려 노력했던 인물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 이 상황에서, 맘 속으로는 추모도 하지 않으면서 망자에 대한 예의를 읊조리는 파렴치한 자들의 연극에 넘어가진 말자.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희대의 정치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용’되어야 한다. 아님 그의 죽음은 그저 우울한 비극으로 끝날 뿐이다.

딴지 논설위원 파토 (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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