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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문화다양성을 위해 투쟁해온 영화인의 전향선언


2009.6.9.화요일


편집자 주 : 한국영화위기론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몇 안되는 영화잡지들에서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고, 일간지에서도 종종 이 문제를 다루곤 했다.(이들 잡지의 상당수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극심한 불황 속 어느 산업 하나 멀쩡한 게 없는 현실에서 영화계의 볼멘 소리가 양치기 소년의 징징대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워낭소리>, <과속스캔들>의 뜬금 없는 흥행과 <박쥐>의 깐느 영화제 수상, <마더>의 쾌속흥행은 일반관객들로 하여금 한국영화위기론을 참으로 생경하게 느껴지도록 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심찮게 들려오는 영화계의 전언은 이같은 일반의 인식과 상당한 온도차를 보인다. 거창한 산업적 논리를 따져보기 이전에 실제 현업종사자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나는 영화인이다. 나는 영화인이었다. 나는 반대하기를 즐겼다. 우리는 지난 십년간 좋은 영화를 만들어왔고(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내가 참가한 영화와 그 영화의 스탭들에게 누가 될 수 있으므로 작품명은 밝히지 않겠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렇게 영화를 잘 만들고 있는데도 무자비한 시장 논리에 따라, 혹은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 스크린쿼터를 축소시키려는 정부의 시도에 쉴새 없이 반대했다. 우리는 아주 떳떳이 거리로 나섰었고, 독립투사처럼 의기양양 했었다. 극장에 1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게 확실한 아저씨가 조폭 쓰레기 영화 운운하는 글을 올리거나, 회사에서 세금 아끼려고 리스해준 외제차 타고 다니는 연예인 형, 누나들이 공격을 당해도 우린 다 막아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린 옳은 일을 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우리는 한미 FTA 싸움의 선두에 있었다. 우리는 미국 쇠고기를 반대했다. 그곳에 깃발이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이 영화인들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문화 다양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파괴하는 모든 것들을 반대했다.(고 생각했었다.)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는 영화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된 지 3년하고 3개월이 지났다. 한국영화는 많이 불황이다. 딱히 스크린쿼터 축소 탓도 아닌 것 같다. 경기가 안좋다. 부가판권 시장이 무너졌다. 시장 독점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다. 뭐가 안좋다. 뭐가 좋다. 나한테 좌빨이라는 딱지만 안 붙이면 그 이유를 뭐라 하든 상관없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 나한테 일자리만 주면 좋은 거고 일 없으면 조금 안 좋은 거다.


요즘 동료들의 장례식장과 결혼식장에 가면 촬영 때문에 못 오는 사람 없이 모두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반가운 감정과, 나만 경쟁에서 뒤쳐져 실업자 신세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어려우니까, 그럴수록 가서 위로해주고 축하해주고 그래야 된다. 그리고 자꾸 서로 얼굴을 비춰야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전체가 잊혀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속칭 딴따라라고 부르는 사회통념과 달리 영화계에는 가방끈 좀 길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렇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다. 그만큼 공부시켜놨는데도 정신 못차리고 부모님 속 썩이는 넘들 쳐무시당해도 싸다. 맘대로 비웃어도 된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지 종합소득세 신고도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뭐가 대단한가. 뭐가 문화다양성인가. 한국영화 잘 만들었으면 얼마나 잘 만들었나. 그딴 영화들이 문화 다양성이냐고. 이렇게 말이다.


아주 잠깐. 이 문화다양성이라는 아주 중차대한 명제가 허위위식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예부터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이 나라에서 아무리 딴따라 집단이지만 우리 밥그릇을 지키겠다고 고매하신 감독님들과 영화사 사장님들이 삭발을 하기에는 민망했던지라, 미국을 정서적으로 싫어하는 국제 연대에 동참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했던 것이었을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긴 농민 아저씨들도 우리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나왔소라고 하지 않고, 식량주권과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해서 거리에 나왔었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영화계의 존경받는 리더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가방끈 길고 반대하기 좋아하는 부모님 속썩이는 영화청년들은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뭐, 데모만 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데모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고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마터면 영화 스탭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당치도 않은 생각을 할 뻔하기도 했으니.


우리는 무엇보다 영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고귀하게 생각했다. 나처럼 불순하게 영화를 해서 먹고 사는 방법을 개발해보겠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런 친구들조차도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일 자체는 아주 신성시 했다. 내가 오버하는게 아니라 헐리웃이나 일본 다녀온 친구들 얘기 들어보니 거기서도 그런 정서는 존재한단다. 한마디로 예술한다는 거지.


나는 지식인들이 혹은 진보적이라는 영화인들이 문화다양성 얘기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 대체 그 문화다양성이라는 게 왜 필요한 건지 실증적으로 증명도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돈도 안되는 그런 가치들이 우리를 굶게 해왔고, 심지어 이제는 우리를 말려 죽이는 건 아니냐는 거다. 아, 그때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다. 옛날 **맹 같은 집단들이 집회 때 하던 식으로 빨간 마스크 쓰고 집회장에 나타나 전단지를 뿌리며 문화다양성이라니 그런 몰계급적인 이야기는 집어치우시오. 우리는 지금 우리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투쟁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문화다양성 보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그랬으면, 영화 스탭들의 계급의식이 향상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최소한 경제관념은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으면, 나는 내 영화인생의 가장 활발했던 시기를 사장님들과 감독님들한테 찍힌 죄로 실업자 신세로 지내야 했을 수도 있다.


자신들이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경제관념을 둔화시켰고 오랜시간 동안 영화를 저비용 고효율의 도박산업으로 존재하게 했다. 그 좋았던 시기동안 우리는 먹고살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본을 투입해서 1년 이내에 이정도로 빠른 결과를 볼 수 있는 산업은 현재 한국에는 부동산업밖에는 없다. 영화는 이제 아니니까.


문화다양성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내건 스크린쿼터 투쟁은 몇 가지 문제를 야기시켰다.

첫째는, 이것이 먹고 살기 위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중요한 측면을 은폐시킴으로써 그리고 명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논의 자체를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영화인들을 계급적으로 각성시킬 수 있는 계기를 봉쇄시켰다는 것이다.

둘째는, 영화산업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 정부와 자본가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자본의 논리에 자본의 논리로 맞서서는 안된다는 그람시를 공부하다가 만 것같은 그런 생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그 공을 논하지는 않고 과만 논하기로 하겠다. 아마, 스크린쿼터를 지속하면 어떤 경제적 효과가 있을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 같은 거 관료들 코에 흔들어대고 면박주고 그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대체 미국 싫어하는 프랑스인들의 성명서 따위가 이 세상에서 어떤 물리적 권위를 갖는지 정말 모르겠다. 어리석은 건지, 순진한 건지.


한국영화가 어려워지니 별 미친놈이 다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안 읽을 분들을 위해 약간 정신이 박힌 듯한 소리를 지금부터 해야겠다.


일단, 정신이 확 차려지는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 나처럼 미친놈이 나 한명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영화인의 대부분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으며 20대 초반에서 40대까지의 고등교육을 받은 신체건강한 실업자들이다. 이들중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마트나, 대리운전, 혹은 정상적인 시기에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놀고 있다. 그들은 예술과 도덕적 명분이라는 허위의식을 점점 깨가고, 사회 불안 세력으로서 꾸준히 성장해나가고 있다. 이들 사회 불안 세력은 전통적 좌파나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비전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년 60개가 넘는 연극영화과로부터 배출되는 예비실업자들도 있다. 그들은 시한폭탄이다.
사실은, 그랬으면 좋겠다. 애들이 왜 이렇게 착한건지. 아직도 다들 영화를 너무 사랑하고, 자신들이 다시 일하게 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사회 불안 세력이 성장하는 말든, 영화산업은 꾸준히 붕괴되고 있다. 부가판권이 문제라고들 한다. 캠페인도 하고,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도 정착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당장 지하철역에만 나가면 불법복제 dvd를 버젓이 팔고 있다. 확 불싸질러 버리고 싶어도 뒤에 조폭이 있는지 경찰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한 번 째려보고 내 갈길을 가게 된다. 근데 이것만 해결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 한 편 찍어도 제작사에 돌아오는 돈이 별로 없다. 극장 부율 문제가 여전히 해결이 안되고 있다. 특정 기업의 독점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있다.


그 외에도 문제는 많은데 나는 영화계에서 아랫것들에 속해서 고급정보들을 모른다. 내가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리는 결론은 아래와 같다. 딴지는 안 걸었으면 좋겠다. 이건 내 먹고살기 위한 행동지침 마련을 위한 판단이지 독자의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한 정보제공은 아니다.


사실, 지금 미디어 환경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부가판권 문제를 과거 비디오에서 dvd시대로 넘어가던 시기와 유사하게 바라봐서는 안되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케이블TV가 생기던 시기와 IPTV와 DMB의 시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과거에는 영화라는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확신이 없다. 돈을 들고 있는 기업들은 어디에 돈을 써야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생각만 하고 있다. 여기다가 어떤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하는 영화쟁이들이 어떻게 돈을 타올 수 있겠는가. 나? 내가 그걸 알면 이런 글을 쓰고 있겠는가?


이 와중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삽질은 눈부실 정도다. 사실 우리가 문화다양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영화진흥위원회의 다양한 사업들(독립영화 제작지원, 독립영화 상영관 지원 등등) 때문이다. 물론 이 정책들의 핵심에 스크린 쿼터가 있다. 사실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싸우기도 귀찮지만 싸우기 전에 고매하신 정부에서 알아서 민족문화중흥을 위해 지키고 계셔야 하는 거지 우리같은 일용직들이 싸워서 지킬 일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여태까지는 잘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앞장서서 이윤을 창출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는 거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홈런타자는 따로 있다느니 선택과 집중이라느니 그런 소리를 하면서 다양성 관련 사업들을 없애고 있다. 이윤 창출 하겠단다. 백날 해봐라. 돈이 될만한 거는 영진위에서 손 안 되도 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업이 바보인가? 그런 프로젝트는 당연히 영진위가 숟가락 얹을 기회도 안 줄 거다. 자기들 정책 생색낼 때는 꼴랑 몇 천만원 지원해준 영화들 해외에서 상타는 거로 홍보하면서 정작 그런 정책들을 버리고 대박 성과 하나 올리겠다고 눈이 벌개져 있는 꼴이라니.


그래서, 내가 그렇게 미워하는 문화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자멸해가고 있는 거다. 통쾌해 할 까 하다가 문화다양성이 없어지기 전에 그게 대체 뭐였는지 생각해본다.


한때 문학의 위기가 도래했었다. 그땐 참 책도 열심히 읽었드랬다. 문학계에 어려운 시절이 분명 있었다. 글들은 열심히 쓰셨겠지만, 제도적으로 어떤 뒷받침이, 혹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출판계는 비교적 호황이다. 근데, 이제는 정말 한국문학이 아름답던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같다. 요즘 소설 웃기지도 않는다. 나한테 욕 대지게 해도 어쩔 수없다. 영화하는 넘들은 원래 글쟁이들하고 사이 안 좋다.

음악의 위기가 도래했었다. 음, ... 아휴, 말하기도 싫다.

다양성이라는 것은 그것이 있던 사람들에게만 좋은 추억이다. 그런 것을 모르고 자란 세대에게는 그런 게 없어도 별 상관은 없다. 요즘 슈퍼주니어하고 소녀시대땜에 놀라운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가수를 좋아해도 노래는 싫어할 수 있다는. 에휴.
아마도, 이제 곧 배우는 좋아하는데 영화는 싫어하는 시기도 올 수 있겠다.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것은 큰 문제이긴 하다. 여전히 많은 실업자가 배출되고 있고, 정신 못차리는 예술가들의 배를 쫄쫄 굶겨 이윤을 창출하는 문화산업의 선봉대가 될 때까지 다 솎아낸 다음에 그 때까지 살아 있으면, 다시 영화라는 게 만들어지긴 할 것이다. 뭐, 5년만  참으면 어떻게 되긴 될거다. 한국영화가 안 만들어질 거라는 협박을 하긴 민망하다. 산업이라는 건 의외로 질긴 측면이 있더라. 영화는 영화인들만 만드는 게 아니다. 당장 자신의 직장이 영화와 어떤 식으로 관련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게 큰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너무 거대해서 완전히 망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잘 참든가 영화 안 할 친구들은 빨리 정신차리고 취직하거나 사업해서 결혼도 하고 애기들 영어유치원도 보내고 잘 살게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다시 살아난 영화가 진정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를 구현하는 그런 영화일거란 무리한 기대만 하지 말아주면 고맙겠다. 영화인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도 인간이다. 한번 자본이라는 개에 물리면 평생 그녀석 눈을 못 쳐다보게 될거다. 미안한 얘긴데, 정말 미안한 얘긴데, 문화 다양성을 사랑하시는 분들한테 미안한 얘긴데, 그거 사라지는 거 어떻게 지켜낼 도리가 없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켜줄 줄 알았는데 명박이가 임명한 인촌이가 임명한 한섭이가 난리치는 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나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영화산업이 몰락하는 건 자본주의 운동과 미디어 산업 재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걸 누구 탓으로 돌리는 건 미련한 짓이다. 하지만 문화 다양성, 내가 그 단어만 들어도 두드러기 날 것 같은 문화 다양성이 사라지는 건, 자기들이 할 일이 뭔지도 모르는 관료들 탓이다. 그래, 너희들이 싫어하는 좌빨 영화인들이 그렇게 하면... 아마 다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잘 하는 짓이다. 축하한다. 나도 내 오래된 원수, 문화 다양성이 사라진 덕에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구나. 근데 나는 좌빨도 아닌데 왜 취직 안 시켜 주는거야. 올해도 작년처럼 촛불집회나 나가야겠다.


앙고라(nugurila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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