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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선진 민주주의 좋아하네



2009.6.12.금요일






영국에 살 때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소방서 불자동차 앞에 소방관들이 의자를 꺼내 들고 나와 줄줄이 앉아 있는 것이다. 저 사람들 왜 저러나해서 옆에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1주일째 파업하고 있단다. 그것도 전국적으로.


뭐... 소방관이 파업?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친구한테 물었다. 야 씨바 소방관이 파업하면 불 나면 다 죽는 거 아니냐. 우리 이제 X된 거냐. 그랬더니 열여덟 먹은 이 영국넘 왈... 불 안내게 조심해야지. 저 분들도 먹고 살아야지.


머 이런 경우가 있나 싶어 보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소방관들한테 빵빵거린다. 하하 역시 디지게 욕먹고 있구나... 하는 찰라 차창 밖으로 응원의 메시지. 잘한다 좀 만 더 고생해라 니들은 대우받을 자격 있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언론의 소방관 파업 지지.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 목숨을 거는 그들에게 정부의 처우 개선 절실... 머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도 없는 건 아니지만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밥그릇 챙기려는 같은 말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래도 되는 건가. 우리 같으면, 특히나 요즘 세상 같으면 진작에 공권력 투입되고 경찰하고 소방관하고 서로 물대포로 주거니 받거니 박 터지게 싸울 일 아니냐.


이 넘들의 관용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냐.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 보자. 미국과 영국 등등 다국적 군이 이라크를 침공하던 2003년 초. 런던 시내 한가운데서는 미국의 제국주의 책동과 이에 가담하는 블레어 총리(부시의 개라고 불리던 시절이다)및 영국 정부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행진이 열렸다.



경찰 추산 75만, 주최측 추산 2백만 명이 참여한 이 시위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런던 중심가 전체가 거의 마비되는 상황이었다. 행진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종로에서 경복궁까지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경복궁이라는 게 괜한 말이 아닌 게, 종착점인 하이드 파크 바로 아래에는 여왕이 사는 버킹검 궁이 있고 고 옆쪽에는 수상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우리로 따지면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삼엄한 감시... 가 아니라 친절한 안내 속에 시위대는 차도를 몽땅 점거하고 이동해서 하이드파크에서 대회를 마친 후 해산했다. 그 즈음 해서 이런 식의 크고 작은 시위가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 모른다. 비록 반전시위지만, 전쟁에 나선 블레어와 정부를 타겟으로 하는 반정부 성향이 강한 시위였음은 물론이다.


물론 시위가 금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한승수에 따르면 선진 외국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불법 시위는 강경대응 및 엄단하는 게 당연한 거고, 세상에 우리나라 같이 무른 나라는 없단다. 그것이 법치주의 정신이란다.


그럼 이 나라는 어떤지 함 보자. 아래 동영상은 이라크전 당시 런던 중심가에서 강행된 한 Banned demonstration(정부에 의해 사전에 금지된 시위)을 찍은 장면이다. 강경 진압과 엄정한 법 집행이 어디 있는지 함 찾아 보시면 좋겠다.




현실이 이런데도 네X버에 보면 어떤 초딩이 영국에서는 시위 도중 차도로 넘어가면 총으로 쏴 버린다는데 맞느냐는 질문이 올라오고, 거기 전경 출신이라는 넘이 맞다고 대답한 것도 있다. 모르면 가만 있을 것이지 대통령에서 국무총리, 전경에 이르기까지 이 모양이다.


그래도 시위가 너무 많다 보니 영국 정부도 결국에는 SOCPA 라는 법령을 제정했다. 그 주된 내용은 국회에서 1km 내의 공간에서는 자유로운 시위를 불허한다 는 것이다. 이건 모든 시위를 불허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 안에서만 허가제로 운영한다는 뜻이다. 원칙적으로 6일 전에 신청하도록 되어 있지만 급한 경우 24시간 전에만 신청을 해도 가능하게 배려까지 하고 있다. 우리의 서울광장 격인 전통의 시위 공간 트라팔가 광장은 그나마 여기서 제외된다.


이것만으로도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강력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받게 되자, 새 총리 고든 브라운은 이 법령을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다. 명목은 신고제지만 사실상 모든 시위가 허가제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와는 참으로 하늘과 땅 차이다.


영국의 민주주의가 어떤지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더 보자. 지난 5월 19일, 영국 경찰청에서는 43일간 영국 국회앞 광장(SOCPA에도 불구하고...)에서 계속되는 스리랑카 민주화 촉구 시위에 대해, 현재까지 근 8백만 파운드(160억)의 경찰 비용이 소요되었다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대해 총리인 고든 브라운의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나는 이 시위를 지지한다. 우리의 민주주의의 발판은 국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만 유지된다. 이런 시위를 비용을 이유로 억누르면 민주주의의 뿌리가 흔들린다"


먼가 느껴지는 거 없냐.


반면 아래는 몇 년 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있었던 폭동이다. 4분 30초 쯤으로 가면 왜 이 나라들의 시위가 때로 강경 진압이 필요한지, 이명박 한승수가 뭘 두고 한 말인지 알 수 있다. 길거리에 주차된 애꿎은 차 뒤집어 엎고 불태우고, 가정집 유리창 깨고 약탈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온다. 명분 있는 시위가 이런 마구잡이 폭동으로 변하곤 하는 게 선진국의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그때는 진짜 강경 진압이다.


근데 우리 촛불 집회가 이랬으며, 노무현 추모 행렬이 이런 거였냐.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참 우스운 나라다. 그렇게 선진국을 따라 하자고 수십 년 전부터 떠들어대면서도 사실은 선진국에서 뭘 어떻게 하고 사는지 하나도 모른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X도 모르면서 떠들어대니 나머지는 어떻겠냐.


몇 년 전에 담배 꽁초를 길에 버리는 사람을 보고 경악하는 외국인 모습을 담은 공익광고를 본 적 있다. 그 광고를 본 외국인이 있다면 아마 진짜 경악했을 거다. 길거리가 우리나라같이 깨끗한 나라 세상에 드물다. 담배꽁초도 다 아무데나 버리고 벌금도 안 내는 선진국이 태반이다. 그런 행동의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 하는 거다.


에스컬레이터도 선진국에서는 안전을 위해서 두줄 선다는데 아니다. 영국같이 한줄 서는 나라도 있고 일본처럼 두 줄 서는 나라도 있다. 그럼 이건 우리가 그냥 판단해서 선택하면 되는 거지 머 선진국이 이래서 어쩌고 저쩌고, 정당성을 그런 데서 찾아 댈 이유가 없는 거다.


그리고 우리나라 시위 문화, 세계 최정상이다. 약탈 방화 절대 없는 비폭력과 질서 의식, 가히 세계 최고다. 근데도 우리는 그런 사실도 잘 모르고, 정부는 그걸 이용해서 법치가 어쩌고 선진국이 어쩌고 하면서 폭력 진압하고 원천 봉쇄한다.


선진국하고 우리나라의 차이는 무식한 정부에서 떠들어대는 그런 나부랭이에 있는 게 아니다. 대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얼마냐 되어 있냐에 있는 거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평등, 생존권 같은 대의를 위해서는 불편하고 돈이 들어도, 손실이 생겨도 참는다. 기차가 멈춰도, 소방관이 파업해도 봐 줄뿐더러 오히려 격려한다. (미국의 강경 진압 예를 드는 넘들이 있는데 그것도 과장 투성이고, 무엇보다도 미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착각 이제 좀 버리자. 순 엉터리 대통령 선거 제도에, 인종계급지역차별 천지에, 가난한 사람은 아프면 혼자 죽어야 하는 의료제도에, 현직 대통령이 백주 대로에서 총 맞아 죽는 나라가 미국이다)


법은 오로지 대의, 즉 헌법의 정신에 부합될 때만 의미가 있는 거다. 헌법을 무시하면서 법치를 외치는 넘은 언젠가 그 대의에 의해 무너지게 되어있다. 엊그제 6.10 기념식에서 이명박이 민주주의가 어쩌고 몇 마디 했더라마는, 사실은 6.10 도 인정 안 할 넘들이 기념식은 해서 머 하냐. 이게 성숙한 민주주의라니 삽질도 이 정도면 포크레인 급이다.


잘들 해 봐라. 얼마나 가나.



6.10 범국민대회 경찰의 진압장면 (민중의 소리)



딴지 국제부 대기자 브라이-얀(briyy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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