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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26. 화요일

Samuel Seong








지난 5월 12일의 2차 지진 이후, 목요일인 21일까지 노숙을 했다. 하루 두 번은 규모 4~5 정도의 지진이 있었는데, 카트만두 분지 내 사망자 대부분은 건물에 깔려서 죽은 이들이라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수요일인 어제(5월 20일) 수색 및 구조작업을 종료하고 투입했던 300명의 해병대원들을 원대복귀 시켰다.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수색 및 구조작업을 끝냈다. 하지만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들은 아직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수실 코일랄라(Sushil Koirala) 네팔 수상도 지난 일요일, 수색 및 구조의 단계는 종료되었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재건의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며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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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athmandu Post>


지금까지는 활용할 자원이 있는 외국의 손을 빌려야 하는 단계였지만, 재건 프로젝트는 상당한 규모의 돈이 오가는 법. 본격적으로 아수라장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 쌀 스캔들


기독교 계통의 구호단체들이 성경을 나눠 주고 있다고 하거나 어린이들을 선교하기 위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던 이들이 어제부터 WFP(World Food Program: 유엔식량계획)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발단은 카트만두 바로 북쪽의 누와콧(Nuwakot)에 WFP가 네팔 적십자사를 통해 배포한 쌀 147톤 중 Sunkhani 지역에 배포된 쌀의 상태가 끔찍하게 좋지 않았던 것이다. <Kathmandu Post> 5월 18일자 '누와콧 지진 피해자들은 먹을 수 없는 쌀을 구조품으로 받았다'(관련기사) 기사에선 쌀이 지역에서 바꿔치기 당했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었다.



"Meanwhile, CPN-UML representative Buddhi Pradhan claimed that many of 50-kg rice sacks were found re-sealed, raising suspicion of irregularities at a state level.“


"한편 네팔 공산당(통합 맑스레닌주의)의 지역대표인 부디 프라드한은 상당수의 50kg 쌀 포대가 다시 봉해진 것을 발견했다며 주 정부 단위에서 상태가 불량한 쌀을 배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0일엔 네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WFP가 배포한 쌀을 먹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기사가 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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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 트위터는 WFP가 배포한 쌀을 먹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실험실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한 트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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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수라장이 벌어지자 세계식량계획에 대한 각종 불만들이 나오게 되는데, 가장 황당한 주장은 WFP가 배포한 쌀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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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가 콜레라의 원인일 수 있다는 트윗


재밌는 것은, 위 트윗에서 링크 건 기사는 쌀을 통해서는 수인성 점염병인 콜레라가 점염되지 않는다는 WFP의 반박 성명이었다.(관련기사) 이쯤되면 정말 아수라장이라 불러도 되는 것 같다.


본 기자도 한 마디 얹어보자면, 해당 지역은 본인이 농사를 지어봤던 곳이다. 이곳의 모습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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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목욕과 빨래를, 다른 쪽에선 설거지를 하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처럼 보이시나?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도. 문제는 저렇게 씻어온 그릇들에선 물 냄새가 심하게 난다. 세제 살 돈이 없어서 모래로 씻기 때문이다. 본인이 2011년에 장출혈로 체내 혈액의 37%를 잃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저런 비위생적 환경이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저 강물, 목욕하고 빨래하고 설거지 한 강물을 그냥 마신다. 그러니 콜레라가 돌 밖에.


이렇게 잠깐만 전후관계 따져보면 뜬금없는 소문임을 바로 알 수 있는데, 누가 왜 이런 소문을 내는 걸까? 이걸 설명하자면 좀 돌아가야 한다.



2. 공정무역


전 세계 NGO/NPO에서 빈곤퇴치 프로그램으로 가장 애용하는 수단은 '공정'이라는 이름이 붙는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공정무역이다. 대체로 공정무역하면 떠오르는 것은 커피다.


네팔도 한국에 공정무역 커피를 공급하는 산지 중 하나다. 하지만 네팔의 커피 역사는 그리 깊지 않다. 커피가 네팔에 처음 소개되었던 것은 1939년으로 버마의 신두 지방에서 히라 기리라는 스님이 가지고 오셨던 신입 작물이 커피였다. 커피 재배를 시작한 것은 1976년, 굴미(Gulmi) 주의 압차우르(Aapchaur)마을이 처음이고, 상품가치가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로스팅 된 커피를 팔기 시작했던 것은 거의 2000년에 들어온 이후다.


네팔에서 제대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은 Phul Kumar Lama라는 양반인데, 그가 이끄는 팀들이 커피 재배부터 해외 판매에 이르는 코스를 개발하기 시작한지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하지만 그들이 농민들에게 커피 재배를 권하는 방법은 20년 전과 그닥 변한 것이 없다.



"1 로빠니(Lopani, 북인도 및 네팔의 토지 단위중 하나로 508.72 평방미터)의 땅에 커피를 심으면 매월 1 2,000~15,000 루피(119~149 USD)를 벌 수 있어요!“



네팔의 대졸 초임과 비슷한 돈을 깡촌에서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저 돈을 농민들이 벌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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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들이 학교를 갈 수 있다.


문제는 커피를 상품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아주 아주 많다.


인도나 네팔이나 대부분의 농민들은 대지주의 땅을 소작하는 소작농이다. 이들이 지주에게 소작료를 내고, 비료 값, 농기계 대여료, 농약 값까지 물고 나면 정말 남는 게 없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그ㄱ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이다. 인도의 경우 잎담배인 비디를 주로 아이들이 생산한다. 이는 인도의 대표적인 아동 노동 착취 사례로 꼽히지만 동시에 한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가용 수입의 출처이기도 하다.

 

네팔은 어떨까? 네팔의 경우엔 인도의 비디처럼 아동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수단마저 없다. 그러니 더욱 생산에 매달릴 수밖에.


이런 구조에서는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다. 커피 같은 새로운 작물을 경작하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배워야 하는데, 농민들은 이를 배울 시간 자체가 없다. 농사 지은 것을 수확해 팔아도 1년을 먹고 살기 힘든 지경이니, 새로운 작물의 경작법을 배울 수 있다 해도 다른 일을 다 끝낸 이후에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작법을 배워 적용한다? 무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생에 악업을 많이 쌓아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 딸로 태어났으니 현생에 상층 카스트들을 잘 받아 모시고 좋은 일 많이 하면 다음 생에 좀 더 낫게 태어날 것이다'는 내용을 주리줄창 교육 받은 농민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쉽게 믿지 못한다.


정말 고군분투해서 커피를 수확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말한 대로 제 값을 받고 파는 상품이 되기 위해선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또 이게 쉽지 않다.


커피 생산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생두의 품질관리다. 그러나 좋은 것을 만들어봐야 뺏기는 것이 일상이었던 네팔 농부들에겐 '좋은 것을 만들어서 팔아야 돈을 번다'는 것도 새롭게 배워야 하는 내용 중 하나라는 점이다.


그러니 품질 관리가 되질 않는다. 생두가 무게 단위로 판매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비슷하게 생긴 넘을 다 집어 넣는 경우도 생긴다. 원두를 샀는데 염소 똥이 들어가 있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기는 이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품질 관리를 빡세게 하면, 80%를 챙겨가는 지주들과 다를 바 없다며 경작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공정무역 커피가 생산되고 있는 지역들은 대부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들이며, 토지 소유구조가 대단히 왜곡되어 있는 나라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본토에선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모택동 주석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게릴라들의 무장투쟁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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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못 쓰는 농민들. 이들은 어느 정도 가난할 것 같은가?


그런데 이 마오주의 게릴라들은 공정무역을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온정에 인민이 기대는 것으로 본다. 호의적일 리가 없다(지들은 지네 인민들 먹고 사는 문제 해결할 능력이라곤 눈꼽 위의 먼지만도 없는 것들이).


공정무역 커피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빚 갚기 시작한 농부들의 마을이 이들 게릴라들에 의해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고 농부들의 손목이 날아가는 거, 지구 곳곳에서 꽤 많이 벌어지는 일이다.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은 '닥쳐라 세계화'에서 필리핀의 신인민군과 공정무역의 갈등을 언급했지만, 똑같은 이념을 가진 이들이 똑같은 짓을 네팔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정리하자.


네팔 정가의 3등은 마오바디라 불리는 네팔 마오주의 통합공산당(UCP-M)이다. 이들은 농민들이(외세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되는 것을 치떨리게 싫어한다. 공산당이라면 억압받는 계급의 유일한 해방자여야 하는데, 당장 돈 만들어주는 그룹이 등장하면 자기 먹을 판이 없어지니까 그렇다.


그리고 네팔 정치권에서 지주들이 지지하는 곳은 네팔 국민회의(Nepalese Congress)이며 현재 집권당이다. 지주들인들 네팔 농민들의 삶이 극적으로 개선되길 바랄 것 같은가? 대학 교육을 마친 대도시의 노동자가 한 달에 받는 돈을 농민들이 벌기 시작하면 소작은 누가하고 소는 누가 키우라고?


즉, 1등과 3등하는 정당의 핵심지지층은 농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과정, 특히 그것이 외국에 의해 진행되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농민들이(외세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되면 둘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잖는가?



3. Overhead Cost(간접비용)


본 기자에게 보조 배터리를 배달했던 모 기자는 7년 전에 인도를 거쳐 네팔로 여행 온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찾아다니면서 기사를 건지던데, 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건물들이 무너진 것 이외엔 7년 전에 본 것과 달라진 게 없었다."



이곳에 오래 있었던 본인이야 여기 대형 마트가 몇 개가 생겼고, 복합상영관이 몇 개가 생겼는데 뭔 소리냐고 했지만, 새로 지은 건물 대부분이 이미 무너졌거나 혹은 철거해야 할 정도로 망가졌으니 겉보기에는 달라 진 것이많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렇다보니 복구와 재건의 목표라는 게 참 애매하다. GDP의 15%를 차지하던 관광산업이 붕괴될 판인데 집과 학교만 복구한다고 해서 재건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아니,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오늘도 규모 4이상인 여진이 두 번 지나갔는데 누가 관광하러 올까?


분위기를 봐선 인도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는 것 같다. 특히 네팔 카지노위원회를 장악했던 마오바디들을 쫓아내기 위해 작년 4월에 문을 닫게 했던 카지노도 다시 개장하게 할 것 같긴 하지만, 여진이 끝나기 전에 와서 돈 뿌릴만한 도박 중독자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카지노가 있는 인도 씨킴은 지진 피해도 없는 곳이고 역시 다수의 카지노가 성업 중인 스리랑카 콜롬보도 마찬가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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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회의, 문서 등의 간접비로 얼마나 쓰고 있는지 알려달라"

 

사실 뜬금없이 Overhead Cost를 언급하는 이런 이야기 하는 양반들, 속내는 생뚱맞은 거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들은 피해를 입은 산간지역의 농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네팔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복구 기금은 약 2조원, 그 중에서 10%가 이제 모였다. 이 돈 어떻게 좀 해보자는 거다. 영수증 내놓으라고 빡빡하게 구는 사람들 없는 편한 돈 좀 만져보자는 거. 외국의 당신들께선 돈만 내놓으시고 복구는 우리가 알아서 다 할테니까 구경만 하시라는 것.


최근에 많이 돌고 있는 카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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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툰 자체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구조 및 복구로 투입되는 기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네팔인들의 고난에 연민을 느끼는 이들,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 연대하겠다는 정말 말 그대로 서민들이 한 푼 두 푼씩 내놓은 것, 혹은 그 서민들이 받은 급여에서 떼어진 세금이다. 아니, 뭣보다 Made in Nepal이 몇 가지나 된다고?


인건비와 교육비, 그리고 각종 물류비용들을 통칭하는 Overhead 비용, 상당히 크게 발생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거다. 서툴더라도 네팔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네팔에 와 본 사람이고, 겨울에는 하루에 전기 10시간이 안 들어오는 곳에 사람을 보내서 교육훈련 시키려면 그 사회의 최저임금 이상과 위험수당은 붙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거기다 500km를 20시간 달리는 것이 보통인 곳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선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로컬버스 이용할 수는 없잖는가? 버스는 고사하고 임대하는데 몇 백만 원 들어가는 헬기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걸?


위 트윗처럼 딴 속내를 가진 이들이 Overhead Cost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그 집행 내역이 정당한가 아닌가만 묻는 게 아니다. 자신들의 다른 아젠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네팔이라고 해서 기레기 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메이저 급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는 오피니언 정도에서 이 속내를 상당히 감추고 이야기를 꺼낸다. 네팔의 경제 월간지인 <Business Age>에서 부패를 하나의 제도로 인정하자는 농담을 칼럼으로 다룬 적이 있을 정도로 만성화된 부정부패에 대한 외국의 우려를 인정한다는 이야기부터 꺼내는 게 그쪽이니까.


이거 해결책은 사실 몇 가지 없다. 영수증 내놓는 곳들 중에서 현지 집행 비중이 가능한 한 높은 곳을 골라서 돈을 보내는 것. 혹은 네팔 정부 기금으로 들어가는 돈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 돈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확인해보는 것. 그리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같은 시인의 수사는 걷어 치우고, 세상의 어느 누구도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외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생활기반이 무너졌을 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없기 때문이다. 인신매매 혹은 장기밀매. 이게 광범위하게 벌어지면 그것은 정말 인세지옥이다.

 

 

 










국제부 Samuel Seong

트위터 @ravenclaw69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