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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대의 딴지스에게


2009.8.12.수요일


얼마 전 분노하지 않는 20대 운운하는 이야기들이 오간 적 있었다. 주로 근심과 걱정, 우려를 안고 한탄하는 내용. 가끔 그들을 옹호하며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라는 윗세대의 자책이 섞이기도 하고. 더러 현실의 버거움을 들먹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 세대의 항변이 섞인, 씁쓸하고 우울한 논쟁.



나는 그보다 훨씬 윗세대로서, 지금의 20대들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물론 그들을 우려하는 측이 무엇을 우려하며 왜 한탄하는지 대강 알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주로 이런 것.


20대는 사회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현실에 냉혹하며 관심도 없다. 정치에도 무관심해 정치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하고 편한 것만 찾는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거들떠보면 물론 더 있겠지만 대략 그런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 내가 동의하는 부분은, 냉혹하다는 것 정도.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고.


반면 그런 우려와 한탄에 대해 항의하는 20대 당사자들의 의견들을 보면 어딘가 좀 옹색하다. 이유는 그 항의가 대부분 개인적 삶에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이 돼봐라. 우리도 힘들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다 당신들 아니냐. 우리도 공부보다 운동만 하면 장래가 보장되는 사회에 살고 싶다, 는 정도.


좀 덜 옹색하게 보이고자 들먹여지는 시대적 요인이란 것도 이런 정도다. 당신들은 대가족시대에 살지 않았느냐. 우린 핵가족 시대에 형제 없이 자라 그렇다. 그게 우리 잘못이냐, 는. 또 더러는 항변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항의한다. 당신들은 큰소리 칠 자격 있어? 뭘 얼마나 잘 했다고! 이렇듯 좀 옹색해 보이긴 하지만 나는, 저 마지막 항의에 방점을 찍어주며 그들을 심히 이해한다.


저 먼 삼국유사 시대에도 그랬다고 하듯 요즘 애들은 틀려먹었어 라는 말은, 어느 민족 어느 시대에든 통용된다. 그 통용이 가능한 것은 그 말이 기성세대의 우월감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거 생각해 보면 코미디다. 어른이 아이들보다 나은 건 너무 당연하고, 반대로 아이들이 어른보다 못한 것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말이 논리성을 가지려면 기성세대의 어렸을 때를 기준으로 비교 측정해야 하는데, 훗, 사실 이 자체가 비논리, 비과학적이다. 혹 억지로 비교한다 해도 올바른 평가가 나올 리 만무하다. 기억의 재구성으로 인한 과거의 윤색과 향수에 가해지는 덧칠. 또는 부모 자식 간의 역학관계 등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식을 기르며 자신의 성장기를 낱낱이 고해성사하는 부모는 없다. 부모의 그 시절은 어느 모로든 자식보다 나았으며 흠결은 미세하거나 거의 없었다. 혹 있다면 그건 단순한 고해가 아니라 자식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될 때뿐이다. 나는 못 배웠으니까 넌 배워야 한다. 나는 이렇지만 넌 공주처럼 자라 좋은 남자한테 시집가야 한다.


이런 경우 대개 자신이 못 배운 것은 오로지 환경 때문인데 지금은 잘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는 내용이 옵션처럼 바탕에 깔린다. 그 환경을 조성한 것은 자신의 자랑이고 그럼에도 공부를 못하면 그건 모두 네 잘못이다, 라는 부담. 공주도 마찬가지. 난 공주처럼 커서 좋은 남자한테 시집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문제가 아닌 외부적 요인 때문에. 하지만 너에겐 다 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넌 공주처럼 자라 멋진 왕자님과 결혼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네 탓이다, 라는 식.


이런 틀은 가정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공부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그런데도 공부를 했고 이런 위치까지 왔다. 그런데 너희들은 뭐냐. 우리는 모두 짭새에게 잡혀갈 각오하고 치열하게 시대의 아픔에 동참했으며 앞장서 싸웠고 역사를 배웠으며 사회에 참여했다. 그런데 니들은 대체, 라는 식.


가정에서 자기 자식에게 하던 사회에서 다음 세대에게 하던, 이런 것 모두 후지고 웃긴다. 이 모두 믿음직스럽지 않다, 는 한마디에 담긴다. 나에 비해 너는, 또는 우리 세대에 비해 너희는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것. 이거 큰 착각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어린 세대는 기성세대에게 믿음을 줘야 하나? 도대체 왜?


부모라면 자식에게 믿음을 주는 것 당연하다. 윗세대도 아랫세대에게 믿음을 줘야 하는 것 당연하다. 자식이나 아랫세대가 믿던 안 믿던 간에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많이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건 당연한 책무다. 그 책무를 다한 인간은 죽어서도 존경받고 다하지 못하는 인간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앉아도 쥐새끼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믿음을 주지 않아도 된다. 물론 줄 수 있으면 좋겠지. 하지만 믿음을 주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거 아니다. 전혀. 자식이 그 부모에게 믿음직스럽게 보여야 할 책임은 눈곱만치도 없다.


생각해 보면 자식이 성장하며 부모에게 믿음을 줄 때는 모두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을 때, 즉 거래가 필요할 때뿐이다. 부모를 만족시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할 때. 그 외엔 부모가 아무리 믿음을 갖고 싶어도 그에 부응해 믿음직한 일을 하는 경우는 없다. 혹 자식을 엄청 믿음직스레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건 자식이 그 부모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식이 잘난 놈일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직한 자식을 바라는 거나 그런 세대를 바라는 건 모두 터무니없는 과도한 기대다. 그런데 왜 기대에 못 미친다며 실망하고 한탄하나?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에 기대해 놓고. 


우리 자식이나 다음 세대들은 모두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나름대로 깊이 사색하고 치열하게 의논하고 골 빠개지게 고민하며 살아갈 뿐이다. 에미 애비가 보기에는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고 혹 그렇게 보여도 가당찮을지 모르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항상 나름대로 진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성숙이다. 부모들의 눈엔 아무리 미숙해 보여도 그걸 성숙하지 못하다고 할 게 아니라 성숙의 기준을 낮춰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부모나 기성세대는 모두, 자식이나 다음 세대 걱정하지 말고 자신들이나 잘하면 된다. 너나 잘하세요. 개인적으로야 부모로서 얼마든지 과거를 윤색하고 기억에 덧칠해 자식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론 다르다. 윗세대가 다음 세대들에게 기대하고 요구할 자격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이 말을 하기 위해 지금껏 썰을 푼 것인데,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대개 자신들에게 부족한 부분들이란 것이다. 정치에 관심 없는 것이 걱정이라면 그건 제대로 된 정치를 물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의식이 없는 게 문제라면 자신들이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없다는 반증이다. 역사의식이 없어 걱정이라면 자신들이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거 똑같지 않나?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 난 배우지 못했으니 너만큼은 배워야 한다. 넌 이쁘게 자라 왕자님에게 시집가거라. 그리고 그걸 못하면 자식 탓으로 돌리는 것. 문제의 저 분노하지 않는 20대 론은, 그런 요소들이 한순간 집단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지금 그 위의 세대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반증이다.


정리하자.


20대보다 위의 기성세대들, 20대를 나무라지 마라. 당신들이 지금의 20대보다 우월하다는 증거 단 하나도 없다. 20대, 너무 걱정하거나 자책하지 마라. 특히 윗세대들에게 어떤 열등의식이나 부채감 갖지 마라. 지금 그대들에게 책임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 모두, 그대들 책임이 아니라 그들 책임이다.


단 하나, 위에 이야기 한 냉혹하다는 부분. 또는 소위 쿨하다고 하는 것. 요즘은 이게 트렌드인 모양이다. 이해찬을 지지한다는 카페에서도 쿨부엉이라고 하고. 난 이놈의 쿨이란 게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다. 차갑다. 냉정하다. 그게 왜 좋냐? 지적이라서? 그거 위험하다. 지성적이라면 모를까 그저 지식만 가득한 지적인 인간은 좋은 거 아니다. 지성인이라면 차가워 질수도 뜨거워 질수도 있지만 지식인은 차가울 수는 있어도 결코 뜨거워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제, 쿨 따윈 버리고 모두 뜨거워져라.


그래서 차가운 지식인이 아니라 뜨겁게 불타는 지성인이 많은 사회를 만들어 다오. 


불타던 과부(hagonol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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