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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논평] DJ가 옳았다.

 

2009.8.12.수요일

 

클린턴이, 갔다.

 

왜, 왜 클린턴인가.

 

두 달 전인 2009년 6월 9일자 RFA 기사를 틈새논평서 다룬 적이 있다. (틈새 논평 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당시 방한했던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앨 고어를 대북특사로 파견한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억류된 여기자들은 Current TV 소속의 리포터였고 그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현직 회장이 바로 앨 고어다. 미 행정부가 적임자로 판단한 것도, 앨 고어 본인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적극적이었던 것도 당연했다.

 

분명 그렇게 앨 고어였다.

 

그런데 두 달 후, 결국 클린턴이 갔다. 왜.

 

바로 그 궁금증에서 이번 틈새논평은 출발한다.

 


 
클린턴 방북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마자, 이런 기사가 떴다.

 

지난 5월18일 C40 서울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 참석 차 방한한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당신이 적극 나설 때"라고 조언했다고 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4일 밝혔다. ("DJ, 지난 5월 클린턴 방북 권유" 연합)

 


5월 18일 서울 하얏트호텔. 

 

DJ가 그렇게 권유했단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단다.

 

"(합의가 지켜지지 않아) 북한이 초조하고 억울해 하니까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9.19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선언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의) 제네바 합의에 의거해 핵을 포기하기로 했는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파기돼 핵개발이 시작됐고, 9.19 합의로 폐기 과정으로 가다가 네오콘들이 약속을 안 지켜 또 핵실험을 한 것"

 

이에 클린턴은, 무릎을 치며 "미국에 돌아가자마자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겠다."며 화답했고.

 

또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이런 발언도 거론된다.
(박지원 "클린턴 前대통령, DJ 조언에 무릎 치더라"/노컷뉴스)

 

"중국 시진핑 부주석을 만나보니 북핵 문제 해결에 북미 간 대화하는 방법밖에는 없더라"
"중국 지도자들 역시 북핵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해줄 것은 미국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자 클린턴은 "중국이 실제로 그러더냐"며 두 번이나 확인했단다.

 

글쎄.

 

반신반의했다.

 

그런 대화를 실제 했느냐가 아니라 - DJ와 클린턴은 서로의 재임시절 대북정책의 직접 의논대상이었으며 퇴임 후에도 4차례나 만났던 사이다. 이 정도 대화는 자연스럽다. - 과연 그 권유가 클린턴의 방북에 영향을 미쳤겠는가 하는 대목에서.

 


2007년 9월 뉴욕에서의 Clinton Global Initiative(CGI) 연례회의 개막식에서

 

정치인들이란 사설 만유인력을 구비한 족속들이다. 지구가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 그거, 그 세계에선 일종의 능력이다. 그래야 정치 할 수 있다.

 

이제 누구도 진지하게 주의 기울이지 않는 노정객의 독백 같은 정세분석과 그에 대한 예우 차원의 립서비스 응대가 있었을 뿐인데, 우연히 당시 대화와 비슷하게 일이 돌아가자, 오비이락에 아전인수 격으로 박지원 혼자 신나게 북 치고 장구 치는 건 아닐까. 과연 미 정가에선 DJ의 제안을 알고 있기나 할까.

 

실제 박지원은 그 만남이 클린턴 방북의 한 원인이 됐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 측에서 꼭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배석한 입장에서 당시 대화 내용이 100% 현실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지원 "클린턴 前대통령, DJ 조언에 무릎 치더라", 노컷뉴스 )

 

한 발 뺀다.

 

실은 그 대목에서 자신이 없는 거다. 하긴 클린턴이 DJ의 제안을 힐러리와 오바마에 전하긴 했는지부터 의문이다. 국내 누구도 그 이후를 확인해 본 일이 없다. 지금까지는.

 

이제부터 그걸 확인해보자.  

 

 

 


 
 

 

클린턴 방북의 전후사정을 보도하는 최초의 기사들은 무척 단편적이고 뒤죽박죽이었다. 클린턴 방북 직후 일본 쪽에서 쏟아진 보도들은 주로 미 관료들의 입을 빌린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마이니치 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직접 방북을 요청했으며, 억류되었던 두 기자가 미국 가족과의 통화에서 클린턴이 방북하면 석방될 거란 이야기를 전하며 전기가 마련됐다 보도했다. 미 국무성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YTN 보도)

 

북한은 중국계 로라 링과 미국에 있는 그녀 가족과의 통화를 총 4차례 허용했다. 그리고 지난 달 중순, 북한당국은 로라 링을 통해 클린턴이 적임자라는 이야기를 미국에 전했다. 여기까진 모든 언론의 보도가 일치한다.

 


중국계 로라 링(왼쪽)과 한국계 유나 리

 

미 언론들의 초기 보도 역시 주로 오바마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다만 그 내용이 서로 인용한 관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CNN은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계자 2명의 말을 인용해, 클린턴과 오바마가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다는 보도도 했다. 일본 쪽 보도와는 다르게.

 

또한 클린턴은 국가안보회의(NSC)의 존스 보좌관과 대화하고서야 결심을 굳혔고, 행정부 고위 관계자가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으며 따라서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이번 방북이 성공적일 것이라는 점을 조언"해서 방북하게 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클린턴 방북과 여기자 석방 뒷얘기" 연합)

 

방북 직후 일본과 미국 언론을 통해 전해진 오바마 행정부 관계자들의 주장대로라면, 클린턴의 방북은 어디까지나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한 작품이 된다. 기사 뉘앙스로 보자면 심지어 걱정하는 클린턴을 설득까지 해서 보낸 게다. 어디에도 클린턴이 먼저 제안했단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미 언론 중에서도 담당기자가 취재원을 누구로 삼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관점의 시나리오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의 피터 베이커(Peter Baker) 백악관 출입기자는, 앨 고어 측에서 바라본 일의 전말을 이렇게 전한다.

 



 

사실 앨고어는 지난 몇 달 대부분을 그의 리포터들을 북한으로부터 빼내느라 노력하는 데 보냈습니다.

 

"두 미국시민이 위험에 처하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만사 제쳐두고 이 일이 해피앤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힘썼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어떤 곳인지 여실히 말해줍니다." 
 
그는 심지어는 도움만 된다면 직접 방북하려고도 했으나 북한은, 전직 대통령급 이하는 안 된다며, 빌 클린턴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앨 고어는 전직 상관에게 10여일 전 전화해 의사를 물었고,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가 괜찮다면 자신도 좋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후 백악관은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인지 다각도의 검토 끝에 네 방북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Al gore, he’s actually spend much of the last few months working intensively on getting his reporters out of NK.

 

“It speaks well of our country that when two American citizens are in harms’ way that so many people would just put things aside and just go to work to make sure that this has... had a happy ending”

 

He even offered to go to North Korea himself if that would help but NK said, no, they want Bill Clinton, no one less in the stature of former president. So Gore called his former boss 10 days ago or so and asked him if he would make the trip. Yes as long as the Obama administration was happy with that and After testing it out deciding whether it was a good idea, the White House said yes please do make that trip.

 

이 버전에서 주인공은 앨 고어다.

 

앨 고어 사이드의 스토리는, 북한이 빌 클린턴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열흘 전쯤 빌 클린턴에게 제안을 했고 또 백악관에도 이야기해 승인을 얻어 클린턴 방북이 이뤄졌다는 거다.

 

아마 각자 나름의 진실을 이야기한 걸게다. 자신들의 이해에 맞도록 강조하고 생략된 부분적 진실이라 그렇지. 앨 고어가 클린턴에게 전화를 한 것도 사실일 게고 오바마가 클린턴에게 요청한 것도 사실일 게다. 그러나 같은 당의 전직 대통령이 북한 가는 데 현직 대통령이 전화 한 통 안 했다는 오바마 행정부 관료들의 부자연스러운 이야기는 거짓일 게다. 전화 한 통 없었다 하는 것이, 클린턴의 방북을 지극히 사적 임무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이 덜하겠지.

 

언론들이 이렇게 직접 당사자인 클린턴이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관료나 앨 고어 측의 해명에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건, 클린턴 본인은 방북을 전후에 완전히 입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귀환성명 한 줄 내지 않고 한 마디도 없이 뒷줄에서 묵묵히 서있기만 했다.

 

두 버전을 버무린 오바마 행정부 입장의 종합정리 판은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의 입에서 나온다.

 

클린턴의 방북 5일 후인 9일, 아프리카 순방 중이던 힐러리는 케냐에서 있었던 CNN 퍼리드 자카리아(Fareed Zarkaria)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방북이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한다.

 



 

힐러리 : 당신도 알다시피, 이건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시작된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이건 로라와 유나가 북한사람들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를 그들의 가족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전 부통령 고어에게 전한 거죠. 

 

퍼리 : 그를 특정해서. ( 클린턴을 의미 )

 

힐러리 : 그를 특정해서. 그런 후 그들은 그 소식을, 당연히 나머지 우리들에게 전해준 거죠. 음... 빌은 그 임무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었고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런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부통령 앨 고어가 전화를 하고 우리 행정부가 그것을 평가하고 그에게 브리핑을 시작하자, 그는 만약 그 방법이 옳고 자신이 해야만 한는 거라면, 당연히 할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인도주의적 임무였지, 정부의 공식 임무가 절대 아니었죠.

 

Hilary : This, as you know, came from the families. I mean, this was a message that Laura and Euna were given by the North Koreans which they passed on to their families and former Vice President Gore...

 

Fareed : Naming him specifically.

 

Hilary : Naming him specifically. And then they passed it on, obviously as they should, to the rest of us. Um, You know, it was not anything Bill was interested in, seeking or even contemplating. But, of course, when Vice President Gore called, and when our administration evaluated it and began to brief him, he said, look, if you think its the right thing to do, and if you think I should do it, of course I will do it. But it is a private humanitarian mission. It was not in any way an official government mission.”

 

이 사안의 주무부처인 국무부 현직 수장이자 클린턴의 현재 아내가 한 말이다. 당사자인 클린턴 본인이 입을 다문 이상, 이 이상의 공식권위는 없다. 그녀는 아예 못을 박는다. 클린턴은 애초 그 일을 꿈도 꾸지 않았다고.

 

음, 이건 무지하게, 부자연스럽다.

 

재임 시절 북핵 1차 위기를 겪은 장본인이고, 미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을 북에 보냈던 당사자이며, 미 역사상 최초로 현직 장관을 북에 보냈고, 부시의 반대만 아니었더라면 올브라이트의 사전정지 작업 후 임기 마지막 달에는 다시 한 번 미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인 자신이 직접 방북하여 북한과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맺을 계획이었던 클린턴이, 그리고 바로 두 달 전 DJ로부터 당신이 직접 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란 이야기를 들었으며 사건의 현직 주무장관 남편인 그가,

 

이 사건의 해결에 관심조차 없었다고.

 

 


이게 모두 클린턴 시절 일이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이미 입을 맞추고 자신들 사이드의 스토리만 풀고 있는 미 행정부나 앨 고어가 아니라, 객관적 제3자의 관점과 논평이 필요하다.

 

이를 가장 먼저 제공한 건, 오히려 미 행정부나 앨 고어와 너무 가까이 있어 그들로부터 직접 브리핑 받는 미 주류언론이 아니라, 공영방송 PBS다.

 

여기자 석방소식이 전해지자, PBS의 한 대담프로에 북한을 11번이나 방문했던 미국의 대표적 대북전문가이자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인 셀리그 헤리슨(Selig Harrison)이, 부시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담당 보좌관이었던 데니스 윌더(Dennis Wilder)와 함께 출연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제프리 브라운: 그 생각을 알기 어렵기로 유명한 게 북한이지 않습니까, 해리슨씨?

 

셀리그 해리슨: 이번 경우 중요한 건, 이게 미 정부의 기획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이 임무를 생각해낸 게 아니에요. 빌 클린턴이 한 거지. 빌 클린턴은 5월에 남한 서울에서 그가 오랜 기간 존경해 왔고 대통령으로서 함께 일했던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클린턴 당신이야말로 억류된 두 명의 기자의 석방뿐 아니라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열고 북미 교섭의 무대를 마련할 적임자라고 했다고 해요.

 

빌 클린턴은 돌아왔고... 이 사실은 남한에 알려졌고, 북한도 김대중이 그런 제안을 했다는 걸 알게 됐죠. 클린턴은(이 대목에서 김대중이라고 잘못 말 함) 워싱턴으로 돌아와 힐러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북한에 가고 싶다는 걸 알렸죠. 그리고 이게 바로, 지난 5월 말 이래로 국무부 장관의 남편이 이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미 행정부 내의 논쟁과 우려 - 왜냐면 빌 클린턴이 북한문제는 자신의 전유물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단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 를 불러 온 거죠.

 

제프리 브라운: 그의 과거에 근거해 볼 때?

 

셀리그 해리슨: 그가 대통령 시절,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우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켰었죠. 이건 클린턴의 큰 업적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전, 행정부 내에서 적임자를 물색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을 거라 봐요. 그들은 이 임무에 대해 매우 불편해 했고, 그래서 이번 임무가 얼마나 사적인가에 대해 그렇게 강조하느라 난리법석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 클린턴이 가져올 내용을 두고, 왜냐면 클린턴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는 두 젊은 여자의 운명을 훌쩍 뛰어넘는 큰 주제였을 테니까, 행정부 내에서 아주 커다란 논의가 있을 겁니다.

 


왼쪽부터 사회자인 제프리 브라운, 데니스 윌더, 셀리그 해리슨

 

원문보기

 

JEFFREY BROWN: Well, Mr. Harrison, I mean, its very famously hard to know what the thinking is in North Korea.

 

SELIG HARRISON: Well, in this case, the important thing is that was not the administrations baby. The administration did not create this mission; Bill Clinton did. Bill Clinton went to Seoul, South Korea, in May. He met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of South Korea, whom he had long admired and worked with as president. Kim Dae-jung said, Youre the guy to go to North Korea and not only release the two -- get the release of the two imprisoned journalists, but open up a dialogue with North Korea, set the stage for negotiations.

 

So Bill Clinton went back from -- this became known in South Korea. The North Koreans knew that Kim Dae-jung had made this proposal. Kim Dae-jung goes back to Washington and makes it known to Hillary and to others that he wants to go.
And this is what led to the whole thing, that youve had a debate, really, in the administration since late May over whether its appropriate for the husband of the secretary of state to go to a mission like this and also a nervousness, because its quite clear that Bill Clinton has a very proprietary feeling about the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JEFFREY BROWN: Based on his past?

 

SELIG HARRISON: When he was president -- well, when he was president, we froze the nuclear program from 1994 to 2002. This was one of his big successes.
So I think that theres been a lot of soul searching within the administration. Theyre very uncomfortable about this mission, all this emphasis on how private it is and so forth and so on. So now youre going to have a big discussion within the administration over what hes found out, because hes going to be talking about the conversations he had with Kim Jong-il, which went far beyond the fate of the two young women.

 

여기서 적어도 세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5월말 클린턴은 실제 DJ의 제안을 힐러리와 미행정부에 전했다는 것. 그리고 당시의 DJ 제안을 미국 내 북한전문가들과 북한은 알고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의 방북 제안을 부담스러워 했단 것.

 

셀리그 해리슨의 주장대로라면, 6월 초 방한했던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클린턴의 방북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앨 고어를 방북대사로 이명박 정부에 통보했던 것도 설명이 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의 방북 아이디어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게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그건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모양새가 영 후지다. 버젓이 오바마 행정부가 존재하는데 행정부의 누군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앨 고어도 아니고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10년 전 클린턴이라니. 더구나 그의 아내가 국무부의 현직 장관인 상황이니 클린턴 부부가 다 해먹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 역시 정치적으로 치명적이다.

 

힐러리 입장에서도 남편의 방북은 전혀, 내키지가 않았을 게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클린턴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까지 했던 게 힐러리의 자존심이다. 이제는 자연인에 불과한 남편이 현직 주무장관인 자신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대신 해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힐러리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심정의 일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건이 마침 지난 주 콩코 킨샤샤에서 있었다. 한 학생이 중국과 콩코 간의 외교 이슈에 대한 남편 빌 클린턴의 견해를 묻자, 힐러리가 버럭 화를 내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이다.

 



 

내 남편이 아니라 내가 국무부 장관이에요. 내 남편 생각을 내가 말해주길 원합니까. 만약 내 견해를 묻는다면 그건 말해줄 수 있어요. 난 내 남편의 전달자 역할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My husband is not secretary of state, I am. You want me to tell you what my husband thinks? If you want my opinion, I will tell you my opinion, I am not going to be channelling my husband.

 

힐러리의 자존심은 이 정도다. (사실 힐러리가 그렇게 화낼 만도 했다. 남편에게 지기 싫고 국무부장관 안 죽었고 오바마 행정부 잘 돌아간다는 걸 보여주려고, 방북 스케쥴 딱 맞춰 아프리카 대순방을 떠난 건데, 자신의 아프리카 국가들 순방뉴스는 남편 소식에 완벽히 묻히고 거기서도 남편에 관한 질문이나 받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 개인적으로는, 클린턴 방북의 최대 정치적 피해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내 힐러리라 본다. )

 

특히 10년 전 마무리 짓지 못했던 북핵문제를 직접 매듭짓고 싶어 하는 클린턴이 자신의 공명심에 덜컥 모종의 약속을 김정일에게 해버리거나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을 남기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북한이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차질없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공식입장인 오바마 행정부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다음 날, 셀리그 해리슨의 주장과 이런 복잡했던 정황을 뒷받침하는 보도가 이어진다. 미 주류 언론 중엔 LA 타임스만 이 사실을 간략하게 보도한다.

 

전직 대통령(클린턴)은 몹시 그 역할을 원했다. 그가 처음 그 임무를 맡아야 한단 촉구를 들은 것은 지난 5월, 그가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다. 둘은 현직이었을 때 대북 화해정책을 함께 추진한 바 있다.

 

The former president was eager for the role. He had first been urged to take on such a mission in May, when he met in Seoul with Kim Dae-jung, the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who had worked with Clinton while both were in office to carry out a policy of reconciliation with the North. ( " Talks for secret mission to North Korea began once journalists were seized, sources say" LA Times 8. 5)

 

미국 외 세계 주류언론 중엔, 미 행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영국 가디언지가 오히려 상세한 관련 정황을 보도한다.

 

빌 클린턴의 이름이 처음 부상한 건 남한의 김대중 전대통령이, 클린턴이야말로 기자들 석방협상에 가장 적합한 대북사절이란 제안을 하면서다. 재임시절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던 클린턴은 북핵을 ‘마무리 짓지 못한 임무’로 여기고 있었고 그 기회를 반겼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일은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다 그의 이름이 지난 달 중순 다시 한 번 떠오른다. 백악관과 국무부 그리고 클린턴의 전직 부통령이자 두 여기자의 고용주인 Current TV사의 설립을 도왔던 앨 고어는 누가 사절로 가는 것이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여기자들의 석방 업무에 깊이 관여해 왔던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 미 국부무 장관은, 애초 엘 고어를 고려했었다고 한다.   

 

Bill Clintons name first came up in May when a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Kim Dae-jung, suggested he would be the perfect envoy to fly to Pyongyang to negotiate the release of the journalists. Clinton, who had invested time during his presidency in trying to persuade North Korea to abandon its nuclear weapons programme, regards North Korea as unfinished business and would have welcomed the chance. But at the time nothing came of it.

 

Then his name came up again in the middle of last month. The White House, the state department and Clintons former vice-president, Al Gore, who helped found the Current television company that employed the two journalists, had been discussing who might go as an envoy. Clintons wife Hillary, the US secretary of state, who has been heavily involved in trying to secure the release of the journalists since their arrest, initially considered sending Gore. ("Bill Clinton was the only man North Korea wanted to see" Guardian. 8.5,)

 

이제야 전체의 그림이 그려진다.

 

대략 이러하다.

 

5월 18일 클린턴은 DJ를 만난다. DJ로부터 당신이 적임자란 이야기를 들은 클린턴은 미국에 돌아가 힐러리와 오바마 행정부에 DJ의 제안을 전한다. 그러나 5월말 오바마 행정부는 논의 끝에 부담스런 클린턴 카드가 아니라 앨 고어 카드로 결론을 낸다. 6월초 앨 고어가 대북특사가 될 것임을 남한에 통보한다. (이때 이명박 정부는 뻔뻔하게도 자신들은 개성공단에 억류된 유씨 문제를 풀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만 문제를 해결하면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갈 테니 대북특사를 보내지 말라고 요구한다. 기사링크.) 그러나 북한이 앨고어 카드를 거부한다.

 

 

7월 중순, 북한이 억류된 기자들로 하여금 가족과 통화를 통해 북한이 클린턴을 원한다는 사실을 전하게 한다. 이 사실을 가족들로부터 들은 앨 고어가 클린턴에게 다시 묻는다. 클린턴은 오바마 행정부가 좋다면 나는 OK라 답한다. 미 행정부 내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번엔 북한이 직접 지명했기에 결국 클린턴으로 낙점된다. 대신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 방북으로 야기될 지도 모르는 각종 문제들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개인자격이며 오로지 기자의 귀환임무만을 수행한다는 점을 철저히 강조하기로 한다. 그제야 오바마는 클린턴에게 직접 전화한다. 클린턴이 가고 기자들은 돌아온다. 그리고 클린턴은 입을 다문다.

 

대략 이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게다.

 

다만 앨 고어가 7월 중순 여기자의 전화를 받고서야 클린턴에게 처음 전화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나중에 오바마 행정부가 앨 고어와 입 맞춘 시나리오일 가능성이 있다. 이 사안은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한 것이고, 애초 클린턴은 방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스토리라인을 위해. 클린턴이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앨 고어에게 DJ의 제안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통령이었던데다 여기자 소속사의 현직회장인데 그 이야기를 안 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여하간 이건 대세에 영향 없는 디테일이니 넘어가자.  

 

이제 남는 큰 의문은 한 가지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7월 중순이 되어서야 클린턴을 지목한 걸까. DJ의 제안과 5월 말 클린턴이 힐러리와 오바마 행정부에 이야기한 걸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북한이 클린턴을 지목했음에도 8월 초까지 기다린 걸까. 그 사이 북미 관계를 변화시킬 사건이라도 있었던 건가.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가장 궁금했다.
 
사실 북한 외교전술은 남한이 근처도 못 갈만큼 치밀하다는 걸 발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북한외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이 외교에 있어 그냥 하는 일이란 결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치밀하고 이기적 외교야 미국의 트레이드마크다만, 적어도 북한만은 그 외교전술에 있어 미국과 막상막하 혹은 그 이상이다. 미국이 어쩌지 못해 쩔쩔 매는 국가는 지구상에 북한이 유일하다. 하긴 북한의 그런 외교전술이 없었다면, 북한은 애저녁에 지도에서 사라졌을 게다.

 

그래서 궁금했다.

 

북한과 미국은, 각자 무슨 이유로 그랬던 걸까.

 

 

 

 

 

그 의문이 풀린 건 DJ와 클린턴 사이에 있었다는 대화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읽고서다. DJ와 클린턴의 대화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중국 시진핑 부주석을 만나보니 북핵 문제 해결에 북미 간 대화하는 방법밖에는 없더라"
"중국 지도자들 역시 북핵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해줄 것은 미국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클린턴은 "중국이 실제로 그러더냐"며 두 번이나 확인했다고 한다.

 

클린턴이 두 번이나 확인을 했던 건,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중국이며 중국을 설득하거나 압박하면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6자 회담의 틀도, 그래서 고집하는 면이 강하다. 그런데 DJ가 적어도 북핵에 관해서는 그게 아니라고 하자, 클린턴은 그게 맞는 건지 재차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다.

 

중국이 북핵 관련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분석은, 본지가 2년 전 했던 이 인터뷰를 참고 하시라. (딴지 북핵 인터뷰2 - 조선족 김림성 씨)

 

그렇다.

 

살펴봐야 할 건 그 사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 사이의 미국과 중국 관계였던 게다. 7월 중순부터 8월 초 사이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대북관계에 영향을 끼칠만한 중대한 사건이 있었던가.

 

있었다.

 


왼쪽부터 오바마 대통령, 다이빙궈 외교부 국무위원, 왕기산 중국 부총리

 

7월 27일과 28일, 미중전략경제대화(U.S.-China 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 - 약칭 S&ED)라는 오바마 행정부 최초의 대규모 미중 간 최고위급 미팅이 미국 워싱턴에서 있었다. 기본적으로 경제현안을 다루는 회동이었음에도, 미 언론들과 미 국제전략연구소(CSIS)에 따르면, 핵확산 문제 그 중에서도 북핵문제가 바로 미중전략경제대화의 주요 의제였다.

 

세계의 경제적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역동적이고 복합 구조적 이슈와 함께 북핵과 핵확산에 관한 긴급한 우려들이 함께 다뤄질 것이다.

 

Dynamic and complex structural issues arising from the global economic interest share the stage with urgent concerns over North Korean nuclear weapons production and proliferation.

 

- 원문링크

 

이 날의 집단 회동을 오바마 행정부가 얼마나 중요하게 취급했는지는 오바마가 당일 행한 연설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21세기를 만들어 갈 것이며, 그러므로 양자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ll shape the 21st century, which makes it as important as any bilateral relationship in the world.(7. 27 로널드 레이건 빌딩에서 오바바 연설)

 

이게 단순한 레토릭이 아닌 것이, 중국의 인구나 중화권 경제의 규모 그리고 최근 중국경제의 발전 속도도 대단하지만, 현재 중국은 8천억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소유하고 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미국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거다. 미 정치인들은 벌써 몇 년 전부터 향후 미국의 최대 라이벌은 중국이란 이야기를 자주 해왔었다. 미 언론들이 이 회동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G2라고 표현한 것도 그래서다.

 

북한과 미국은 바로 이 회동을 기다린 게다.

 

미국은 북한을 좀 더 강하게 압박해달란 미국의 바람에 대한 중국의 뜻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북한은 북미 간 양자 대화를 촉구하는 중국의 북한 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서로 완전히 상반된 기대로.

 

그 결과는.

 

중국은 미국 손을 반쯤 드는 척 하다 북한 손을 번쩍 들어준다.

 

중국 외교부의 실무총책 왕광야(王光亞) 수석 부부장은 이 회동에서 북한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공개 비난한다. 중국은 진지하고도 충실하게 (seriously and faithfully) 일련의 UN 대북제재 방안을 이행할 것이라며. 미국이 보기에는, 2년 전만 하더라도 북한을 공개 비난하는 데 매우 신중하던 중국이었기에 놀라울 정도로.

 

하지만 이건 페인트 모션이었다.

 

이어 왕광야는 경제제재와 선박검사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하는 대신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히기 위해 어떤 인센티브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China Seeks Assurances That U.S. Will Cut Its Deficit" 7.29 뉴욕타임스)

 

또한 28일 회동을 끝내고 발표한 양국의 합의문에는 "핵확산 저지에 노력할 것이며 이란과 북한 핵문제에 협력한다" 수준의 원론적 내용만 들어 있는 반면, 회의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외교부의 왕광야(王光亞) 수석 부부장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미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는 미국의 북한과 직접대화 의지를 환영한다. 중국은 미국이 생각하는 패키지 해결책이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수용한다면, 이는 북한 측에 매력적인 것이 될 것이라  믿는다."

 

"We believe that in order to solve the DPRK nuclear issue, the United States has a very important role to play. We welcome the willingness of the United States to have direct talks with the DPRK.

 

China believes that if the package solution that the United States is thinking about accommodates reasonable security concerns, it will be attractive to the North Korean side (China urges U.S. to accommodate DPRKs "reasonable security concerns" 7. 29. 인민보 영문판)

 

외교적 수사로 포장됐지만 결국 이런 뜻이다.

 

미국은 6자회담 틀에만 매달리거나 중국에게 역할을 기대하지 말고 북한문제는 북한과 직접 풀어라. 북한의 걱정(북한의 안보)을 덜어주면 일은 풀리게 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표현은 "reasonable security concerns"이다. 합리적인 안보 우려. 그러니까 중국은 북한이 자신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걸, 그럴만하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을 위협으로 느끼는 건 중국 자기들이 보기에도 납득이 간다는, 확실하게 북한의 입장에 서는 발언이 되는 거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북한 압박을 원한 미국의 마지막 기대를 저버린 게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이 그러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게고. 미국이 마지막으로 기대고 있을 중국이란 압력 수단이 부질없는 것이란 걸 깨닫고 자신들의 요구에 바로 응하도록 만들자면, 바로 그 미국과 중국의 최고위급 회동 직전에야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란 계산도 한 게다. 그래서 한 달 이상 침묵하다 7월 중순에야 클린턴을 요구한 거다.

 

기자 두 명의 석방 건을 고리로 클린턴을 방북케 만들고 북미 직접 대화의 채널을 열게 만드는 외교 게임에선, 적어도 지금까지는, 북한이 미국에 완승한 게다. 클린턴 방북 즉시 중국이 적극적인 환영 입장을 밝힌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 "중국, 북-미 양자대화 첫걸음", 8.5. YTN)

 

중국 입장에선, 미국이 중국의 말을 들은 셈이 되는 거니까.
그 역시 북한의 계산에 있었던 게고.

 

외교는 이렇게 하는 거다.

 

 

 

 

 

마지막 외교적 레버리지 수단이 사라지자 오바마 행정부는 결국 클린턴 카드를 받아든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혹시 닥칠지 모를 반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취한 철저한 조치들이 재밌다.

 

우선 클린턴 팀의 멤버들을 보자.

 

 

뒷줄 6인 중 국내언론에 의해 신분이 명확히 밝혀진 사람은 왼쪽에서 세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인물들이다.

 

세 번째 인물은 6인 중 가장 유명한 존 포데스타(John Podesta)다. 클린턴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자 오바마 정권 인수팀장이었으며 민주당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진보센터 회장인 그는 클린턴과 오바마 정부를 연결하는 고리다. 국내 언론에 의해서도 가장 많이 거론됐다.

 

 

 

다섯 번째는 데이비드 스트로브(David Straub). 국무부에서만 25년 근무했으며 부시 1기 시절 한국과장을 지냈던, 동아시아 전문가다. 아내가 한국인으로 한국어 역시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알려진 그는 현재 스탠퍼드대의 한국연구소 부소장이다.

 

 

여섯 번째는 주한 미대사관의 통역업무를 맡고 있는 권민지씨라고 한다. ("클린턴-김정일 통역한 韓여성 누구지" 8.7. 이데일리.)

 

여기까진 국내 언론에서 이미 다 소개됐다.

 

그럼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3명은 누군가. 방북 직후, 그들의 정체는 미 언론 중에도 명확하게 거론한 곳이 없었다. 단서는 여기자들이 공항에 내린 후 했던 도착 성명 속에 있었다. 여기자 중 한 명인 로라 링은 도착성명 중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super cool 팀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다음의 이름을 목록을 보며 읽는다.

 

John Podesta, Doug Band, Justin Cooper, Dr. Roger Band, David Straub, minji kwon

 




16초 정도부터 그들의 이름이 나온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세 사람 Doug Band, Justin Cooper, Dr. Roger Band. 그들은 누구인가. 이거 못 밝히면 또 본지가 아니다.

 

먼저 Doug Band 혹은 더글라스 밴드(Douglas Band). 사진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인물.

 

이 자는 그 이전 국내 언론에 딱 한 번 등장한다. 클린턴은 올해 DJ를 만난 다음 날인 5월 19일,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을 만난다. 이를 보도한 언론들이 배석자의 이름을 나열하며 단 한 번 등장한다. 더그 밴드로. 물론 국내 언론에 실린 사진은 한 장도 없다.

 


DJ와 만남 때 클린턴의 표정과 비교하면, 재밌다. 각하의 표정은 언제나 재밌고.

 

사실 그는 미국 내에서도 거의 노출되지 않은 인물로, 미 주류 언론이 그를 최초로 본격 보도한 건 그가 클린턴에게 소개해 엮어 줬던 Raffaello Follieri라는 이탈리아 사업가가 거액의 소송에 휘말리면서다. ( "How Bill Clintons Aide Facilitated a Messy Deal" 2007. 9. 26. 월스트리트 저널)

 

이후에도 그는 미 언론에 의해 "mysterious man"이라 불리며 클린턴의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것이 주요임무라고 비꼼을 당하기도 하는 클린턴의 "right man"(오른팔)이다. 클린턴 재임시절 백악관 인턴으로 시작해 임기 마지막엔 클린턴의 개인비서였고 퇴임 후에는 클린턴 재단 사무총장을 지내며 클린턴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동행한다.

 


왼쪽부터 김정일, 더글라스 밴드, 존 포데스타 그리고 클린턴

 

그 다음.

 

Dr. 로저 밴드(Roger Band). 사진 속에서 왼쪽 첫 번째에 서 있는 인물.

 

 

그는 놀랍게도 더글라스 밴드의 동생이다. 왜 동생이 동행을 했느냐. 그가 펜실베니아 대학의 응급실 내과의사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국제여행을 할 때면 그가 동행한다. 그러니까 형제가 클린턴의 건강과 보좌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확인이 가장 어려웠던 두 번째 서 있는 인물. 저스틴 쿠퍼(Justin Cooper).

 

 

그는 누구냐. 클린턴 자서전의 편집자다. 2003년 2월 6일, CNN의 래리 킹 라이브 쇼에 출연한 클린턴이 자서전을 직접 쓰고 있냐고 묻는 래리 킹에게 이렇게 답하는 내용이 있다.

 

 

직접 쓰고 있죠. 커다란 공책에 쓰고 있는데, 저스틴 쿠퍼라는 젊은 조수가 사실관계 확인을 도와줍니다. 그가 그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제가 두세 번에 걸쳐 편집하는 식이죠.

 

Well, I am writing it by myself. I am writing it in big notebooks. I have a young assistant Justin Cooper who back facts checks things for me. He types it in the computer and puts it back. Then I edit it two or three times.

 

그 역시 클린턴 재단에 소속되어 클린턴의 주요 국제행사에 동행한다고 한다. 이 방북도 차기 발간할 클린턴의 책을 위한 자료수집 차원에서 동행한 걸 게다.

 

이들 중 누가 김정일과의 공식 대담에 함께 자리했느냐. 
 

 

 


왼쪽부터 데이비드 스트로브, 권민지, 클린턴, 존 포데스타, 더글러스 밴드.

 

의사와 편집자는 공식회담에선 빠진 게다.

 

이렇게 3명은 공적 임무를 띤 멤버로, 나머지 3명은 클린턴의 완전한 사설 팀이란 구성비 역시 클린턴과 오바마 행정부의 사전조율 결과일 게다.

 

그 외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의 방북에 부여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징성을 얼마나 세심하게 사전에 관리하고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고자 했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국가적 공무라 해도 누구 하나 시비 걸 수 없는 성격의 임무건만 그래서 미공군기를 이용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건만, 그들은 굳이 개인 소유의 전세기를 타고 간다.

 


그들이 타고갔던 기종, 737-700 보잉 비즈니스 제트기

 

소유주는 민주당의 오랜 후원자로 빌 클린턴은 물론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선거자금을 지원했던 할리우드의 백만장자 제작자인 스티븐 빙(Stephen Bing). 오바마의 선거자금도 후원했던 그의 이름 역시 도착성명 마지막 부분에 로라 링의 입을 통해 알려진다.

 


왼쪽 끝이 스티븐 빙. 참고로 가운데는
포브스지 선정 400대 자산가 중 하나인 Ron Burkle.

 

심지어는 20만 달러에 달하는 왕복 연료비와 식대와 위성전화비 등의 부대비용 일체까지 빙이 부담했다고 한다.

 

비행경로 역시 남한을 기착지로 삼지 않고, 러시아극동 루트인 캄차카 항로를 이용, 평양으로 직행했다. 과거 카터의 방북 때는 남한을 먼저 방문해 육로로 방북했었다. 이를 두고 북미 직접대화가 가능하다는 간접 메시지를 북한에 던진 거라는 분석부터 이번 클린턴의 방북은 여기자 석방문제에 국한한다는 의미라는 분석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본인 해석 한 가지 덧붙이자.

 

이명박 정부는 앨 고어가 대북특사가 될 것이란 미 국무부의 통보에, 여론 안 좋아지니 보류해달란 요구를 했었다. 오바마 정부로서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명박의 요청도 나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항로여야 했던 게다. 바보라서 배려 받는 기분... 씨바.

 

여하간 비행경로까지 철저히 사전 조율 되고 계산된 것만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클린턴의 표정이다.

 

클린턴은 달변에 미소로 유명하다. 그런데 북한에서 찍은 모든 사진은 경직된 표정으로 일관한다.

 

 

심지어는 김정일이 활짝 웃고 있을 때조차 클린턴은 무표정이다.

 

 

이 정도면 명백히 의도적이다.

 

이 표정에 관해 가장 공감 가는 분석은, 94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북협상을 진행했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로부터 나왔다.

 

그는, CNN 특집방송 "왜 북한은 빌 클린턴의 방북을 원했는가"(Why North Korea Wanted Bill Clinton To Visit)에서 바로 위 사진을 보며 이렇게 설명한다.

 



 

갈루치에 따르면,

 

"그러나 클린턴은 깊은 인상을 받은 것처럼 보여선 안 되죠. 여기서 그의 신체언어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의 신체언어는 이렇게 해석되어야만 하죠) 우리는 북한정권을 승인하러 온 게 아니다. 우리는 오직 일을 처리하러 온 것뿐이다. 반면 김정일은 이것이 북한 내 자신의 위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 기쁜 마음을 숨길 이유가 없죠.  

 

But Clinton, Gallucci says, cant look impressed. Body language he explains is crucial here. We are not at all in a business of signaling to NK that we endorse the regime. That we are doing anything other than business. For Kim jong-il on the other hand, no need to mask his feelings about what this does to his statue at home.

 

클린턴이 구체적으로 어떤 표정으로 사진을 찍을 것인가 하는 것까지도 그렇게 꼼꼼하게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던 게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참 대단한 미국넘들이다. 이런 미국넘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놀고 있는 북한의 외교전략 또한 대단하단 말,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렇게 클린턴의 방북이 대성공으로 막을 내리자, 미국 여기자들과 비슷한 시기에 개성공단에 억류된 유씨 문제가 자연 거론되며 이명박 정부는 대체 뭐 하고 있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이명박은 이렇게 말했다.

 

"한미 양국이 사전과 사후에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했다. 앞으로 북미 간 어떤 접촉도 이처럼 한미 양국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진행될 것" ("“휴가복귀 MB 클린턴 방북, 사전에 협의" 8.7 데일리안)

 

그리고 이동관은 "수면 위에서 뭐가 잘 안 보인다고 해서 수면 아래 움직이는 무수한 물갈퀴질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미공조를 강조했다.

 

이 이야기들은, 클린턴의 방북을 통보받은 건 클린턴 방북 바로 전 날인 3일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 "방북 007 작전... 靑, 하루 전에 통보 받아" 8.5 한국일보 ) 이미 지난 주 미국으로부터 언질을 받았으며, 3일 미국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 받았다는 보도에 대해 "명백한 오보"라고 반박한 후에도( "靑, 클린턴 방북 지난주 알았다" 8.5. 아시아투데이) 비난 여론이 끊이지 않자, 이틀 후 다시 한 번 강조 차원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그럼 그 전날 통보를 받았느냐 아니면 그 전 주냐.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로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청와대 공식해명만 놓고 볼 때, 두 가지는 명백하다.

 

청와대가 그 사실을 그 전 주에 통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이 그냥 휴가를 갔다는 건, 스스로 얼마나 무책임한 정부인지를 폭로하는 자해라는 거. 그리고 사전 통보를 무슨 대단한 한미공조의 증거라도 되는 양 거론하나 그건 웃기는 소리라는 거.

 

그 정도 사전 통보는 일본도 받는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관방장관은 클린턴 방북 직후 "미국 정부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앞서 일본 정부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본과 같은 수준에서 통보받는 걸 무슨 자랑이라고. 거꾸로 미국과 일본이 뭔가 일을 벌일 때 우리가 따로 통보받는가. 못 받는다.

 

개인적으로 묻는다면, 전날 통보 받았다는 데 한 표다.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과 미국의 직접대화 채널이 열릴 지도 모르는, 이 정도 사건을 미리 알면서 그냥 휴가 가버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나라당에서조차 미국에 배신당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니다 미리 연락 받았다 한미공조 잘 하고 있단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다만 그게 워낙 다급하다보니, 클린턴 방북통보에도 불구하고 휴가 가 버린 대통령을 만들어버렸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그러나 가장 압권은 이거다.

 

남북 현직 정상 두 사람과 미국 전직 정상 두 사람이 같은 주에 한반도에서 만난 건,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북쪽에선 김정일과 클린턴이 남쪽에선 이명박과 부시가 만났다. 그래서 클린턴은 김정일로부터 두 기자의 석방과 북미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명박은 부시로부터 "기부는 대단한 일"이란 칭찬을 이끌어 냈다.

 

 

 

장하다, 이명박.

 

 

 

 

 

 

 

 

 

이제 마무리 하자.

 

DJ가 클린턴의 방북을 직접 만들어낸 거라고 말하면, 그건 과장이다. 그렇잖아도 대북 역할을 원했던 클린턴이 DJ의 제안을, 대북특사로서 자신의 적합성과 당위성을 오바마 행정부에 피력하는 데 근거로 활용했다, 고 말하는 게 적확한 표현 일게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클린턴이다. 주인공 관점에서 사건을 설명하는 게 객관적이다.

 

그러나 DJ가 중국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클린턴 특사 발상을 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성사시킬 수 있는 당사자에게 직접 권면할 수 있었던, 국내 유일의 정치인이란 사실만은 전혀 과장일 수 없다. 또한 클린턴이 자신을 어필 할 때 그 근거로 이용할 만큼 DJ의 판단에 대한 국제적 신뢰와 지명도가 있다는 것도.

 

그러니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DJ는 북한의 불안과 중국의 입장 그리고 클린턴의 욕망과 미국의 이해를 정확하게 간파해 그 교착상태를 풀어낼 안목과 비전이 있었으며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역사의 물꼬를 터냈다.

 

정치는 이렇게 하는 거다.

 

이후 DJ가 노무현 서거로 자신의 화두를 민주주의로 올인 하기 전, 북한과 관련해 한 마지막 발언은 오바마가 올 가을부터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었다. ("오바마, 올 가을부터 북한과 대화할 것" 중앙일보 5.22.)

 

이 기사를 처음 접했을 즈음만 하더라도, 난 클린턴 방북은 생각도 못 했을 뿐 아니라 이명박의 말도 안 되는 북한 제외 5자회담론 따위가 국내에서 유통되는 주요한 북한뉴스였던지라, 이건 좀 뜬금없다.. DJ 머릿속 혼자만의 그림이겠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얼마나 합리적인 정세판단이었는지.

 

 

 

세월이 충분히 흘러 지금 떵떵거리고 있는 등신들이 다 사라진 후, 이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하는 사가들은 아마 이 한 줄로 그 끝을 맺을 게다.

 

 

 

 

 

 

 

DJ가, 옳았다.

 

 

 

 

 

 

 

- 이 기사를 그의 영전에 바치며,
틈새논평 담당 딴지총수
( chongsu@ddanz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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