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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 화해 좋아하네

2009-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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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 화해 좋아하네

 


2009.8.13.목요일 

 

 

얼마 전 이제는 친구나 다름없는 대학 후배들을 만났는데, 한 녀석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간략히 평하였다.

 

"왕 보수적이라 어째 거부감은 드는데, 사람은 너무너무 멋지더라구요."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 클리트 이스트우드 감독)>를 보고 든 생각이란다. 왕 동감이었다. 은퇴한 전쟁 영웅이란 정치적인 보수성을 띄게 마련이지만 영화에서 그가 보여 준 인간미와 카리스마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사내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풍기는 남자의 기품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문화 소비 성향이나 취미까지 비슷비슷해진 우리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잔을 부딪쳤다. 그 정도 남자라면, 생각이 달라도 지향이 같지 않아도 인정할 수 있는 법이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8월 11일 자로 각 신문에 YS의 사진들이 도배된 것을 보게 되었다. 기사들의 제목이 하나 같이 화해더라.

 

[김영삼 김대중의 화해] [김영삼 - 김대중 극적 화해] 등등, 등등등.

 

 

YS가 정치인들의 병문안이 줄을 잇는 중에, 동지이자 경쟁자이자 적으로 단정해 격심하게 매도하기까지 했던 DJ를 찾아간 건 꽤 의외의 일이긴 하다. 그도 이제 나이를 드실 만큼 드셨으니 지난 과거 툭툭 털고, 가실 이 마음 덜어주려 했다 좋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도대체 언제 두 사람이 화해를 했다는 말인가?

 

YS는 DJ의 병문안을 갔을 뿐이다. 정작 DJ는 만나지도 못했다. 그는 그때 의식이 없었으므로.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YS가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대답한 것뿐이지 않은가. 이게 어째서 화해일까.

 

화해란 맺혔던 감정을 서로 푸는 행위이다. 일방이 청한다고 화해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YS가 청한 화해를 DJ가 받아들여야, 언론들이 말한 것처럼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YS의 답변을 확대 해석해, 아예 화해를 공식화해 버렸다. 역사적 화해라며 호들갑까지 떨고들 있으니.

 

YS, 김영삼(1927- ). 그는 여러 가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정치인이다.

 

● 1954년, 26세의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다.

 

● 그 엄혹하던 유신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며 단 한 번 입건(1975년 긴급조치 9호 위반, 입건은 피의자의 범죄 혐의 사실을 인정하여 사건을 접수하는 단계를 말한다. 입건 후, 구금. 구금 후, 구속과 불구속 사안을 가르는 것이다. YS는 단 한 차례도 구속되지 않은 것이다) 되었을 뿐이다.

 

● 1990년 1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물밑 협상 끝에 전격적으로 합당에 성공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였고, 이 당의 대표로 취임하였다. 제2야당의 당대표에서 거대여당의 당대표로 유례없는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 1992년에는 여당인 민자당(신한국당을 거쳐 현재의 한나라당이 된)의 후보로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이른바 32년 만의 민간인 정권을 창출했다.

 

● 집권 말기, 외환금융이 악화되어 IMF 시대라는 초유의 경제 위기 시대를 창출했고, <대한민국 청년실업시대>를 활짝 열어 젖혔다.

 

그는 퇴임 후에도, 갖가지 돌출 발언으로 언론과 국민의 입에 오르내렸고, 급기야 1999년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 강연을 위해 김포공항 귀빈실로 향하던 중, 재미교포 박의정이 던진 붉은 페인트가 담긴 달걀에 얼굴을 맞기까지 했다.

 

[
출처: 오픈연대기(http://www.openchronicle.com/)]

 

이 사건 후 YS는 "배후가 있는 정치테러"라는 참으로 흥미로운 말을 남겼다. 거의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던.

 

그는 같은 해인 그 얼마 후, "IMF 책임자는 박정희와 김대중"이라는 깜짝 발언으로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었고,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있자 "노벨상의 가치가 떨어졌다", "독재자에게 노벨상은 어불성설"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어록은 2008년에도 어김없이 추가되어, "촛불집회, 완전히 버릇을 고쳐야 한다", "DJ, 정신 이상", "DJ, 이북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 최선" 등의 아연한 말을 우리 역사에 남겼다.

 

올해 1월에도 그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자택 방문에 "DJ, 민주주의의 근본도 모르는 사람"이라 화답했고, 4월에도 SBS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IMF 맞은 책임의 65%는 DJ에게 있다"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20세기 말, 50여 년간의 한국정치사에 YS와 DJ는 누가 뭐라 해도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들이다. 그 중 한 명이 이제 먼 길을 떠나시려는 듯하다.

 

내 부모님 세대는 DJ가 작성한 문건을 비밀문서처럼 장롱 깊숙이 숨겨 놓고 읽으셨다 들었다. 공과를 다 따져도 공이 더 많다 할, 한국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노정객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것이다. 왠지 쓸쓸해지는 마음인데... 일부 언론이 선동한 이따위 코미디가 신문 지상에 떠돌다니. 김영삼 - 김대중 극적 화해라.

 

유가(儒家)에서는 수치를 아는 마음이 용勇에 가깝다(知恥, 近乎勇 - 中庸 20장 9절)고 한 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 기억이 너무도 수치스럽기에 용기를 내는 것이랄까?

 

내게 YS는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화해를 간절히 주선했던 이들의 바람은 끝끝내 외면하더니, 의식도 없는 이를 찾아가 만나지도 못하고서, 자신 혼자 화해를 운운하다니.

 

때가 되었다고? 때는 예전에 지나가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도대체 뭘? 그것도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서!

 

거부감이 들 뿐 아니라 전혀 끌리지도 않는 사람, YS. 클리트 이스트우드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

 

딱, 내 마음을 대변한 한겨레 만평을 링크시키며 글을 맺는다. YS와 나란히 앉아 있던 김동길과 조갑제가 그를 욕하는 만평이다. 그렇다. 우리 입으로 그를 욕하는 것도 욕스러운 일이니, 김동길과 조갑제의 목소리를 빌릴 수밖에 없다...

 


[출처 한겨레]

 

신독(kangbik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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