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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자의 이너뷰]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다루려고 했다"
- <국가대표> 김용화 감독을 만나다

 

2009.8.13.목요일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가 소리 소문 없이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이야기를 다룬 <국가대표>는 천만 관객을 향해 승승장구 하고 있는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8월 9일까지 관객수 746만 vs 241만)의 관객동원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오히려 관객의 충성도는 월등히 높은 편이다. <해운대>보다 잘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만듦새에 있어서는 <국가대표>나 <해운대>는 별반 차이가 없다. 두 영화 모두 대중성에 기댄 철저한 기획영화인 까닭이다. 안 그래도, 최근 한국영화계는 <국가대표> <해운대> <킹콩을 들다> 등과 같은 대중영화가 흥행을 선도할 뿐 아니라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흐름의 출발점에는 다름 아닌 김용화 감독이 서있다. <오! 브라더스>(2003)로 데뷔한 그는 두 번째 작품 <미녀는 괴로워>(2006)를 통해 감독의 자의식보다 대중의 감성에 철저히 영합하는 전략으로 662만 명의 관객을 동원, 한국 대중영화가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대표>는 김용화 감독의 대중적인 연출력이 정점에 달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의 결말부, 우여곡절 끝에 대회에 나선 스키점프 국가대표 팀의 경기를 통해 웃음에서 울음까지, 환호에서 아쉬움까지, 관객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주물럭거리는 솜씨는 전작에서의 흥행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 그가 왜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선택했을까? 제대로 된 스키점프 제반시설이 하나도 없는 한국에서 어떻게 영화를 찍을 수 있었을까?

 

김용화 감독과의 인터뷰는 그의 사무실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그는 막 배급사 관계자들을 만나 앞으로의 상영관 수를 논의하고 오는 길이었고 오자마자 네이버의 <국가대표> 관객 평점부터 살폈다. 그리고 사무실 한편에는 그가 사용했다는 스키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원래 스키를 잘 타나보다.
김용화(이하 김) 아니다. <국가대표> 하면서 스키점프 국가대표한테 배웠다. 스키점프 영화를 만들면서 스키를 못타면 안 될 것 같아서 단기코스로 특훈을 받았다. 지금은 상급자 코스를 내려올 수 있을 정도다.

 

배울만하던가?
당구랑 비슷한 것 같다. 300까지는 무난하게 가는데 그때부터 잘 안 오르잖나.

 

그럼 지금 300?
짠 300 (웃음)
 
대개 영화 인터뷰는 개봉을 전후해서 많이들 하지 않나. 근데 <국가대표>는 개봉 일주일이 지나서 많이 이뤄지는 것 같다.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개봉을 너무 급하게 했다. 회사 생각은 지금 개봉 프리미엄이 없을 것 같다, 영화는 좋은데 배우 인지도도 없고, 근데 절대 관객 수가 많은 시즌이라서 전격 결정이 난 거다. 인지도 90을 못 찍고 시작을 했다. 85정도인가? 그래서 첫 주에 망하는 줄 알았다. 상대(<해운대>)가 그렇게 셀지 몰랐다. 

 

어느 기사를 보니까, 2위를 유지하면서 가늘고 길게 장기적으로 가는 게 <국가대표>의 전략이라고?
너무 고통스럽다. 무대인사도 너무 많이 해야 하고.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하정우의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에 놀랐다.

 

하정우가 차기작 일정 때문에 <국가대표> 홍보에 소홀하다는 기사도 봤다.
개인적으로 (하)정우와는 형, 동생 하는 사이인데 이번에 많이 배웠을 거다. 대중영화 주인공이면 대중영화 메인 롤에 맞게끔 행동해야 하는데 본인 스스로가 그런 거에 낯가리고 배우면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나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등에 출연하는 등 홍보에 열심이던데?
그런 부분에서 지금 서로 배우들끼리 으쌰으쌰 해서 무대인사 일주일에 5일씩 하고 그런다. 무대인사할 때면 봉구 역의 꼬마 (이)재응이 앞세워서 말투도 영화처럼 리허설까지 시켜가지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와주세요." (웃음) 지금은 영화가 바람이 불어서 폭발하는 느낌이 드는데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첫 주에 140~150만은 할 줄 알았다. 개봉 전 10만 시사(기자주_ 국내 최대의 시사회 규모다!)를 하면서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개봉을 하니까 94만 명 정도 들었다. 게다가 <해운대>는 국민영화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고, 정말 큰일이다 싶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여름 시즌에 겨울 스포츠 영화를 보니 시원한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에 하니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9월 추석시즌에 가야 하는 건데, 결과론적으론 지금 시즌에 개봉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영화라고 본다. 이건 시즌 프리미엄도 못 받고 개봉 프리미엄도 없고. 지금 입소문으로 가는 거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면 지금 개봉을 안 했겠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비주류 삶과 영화가 흡사한 것 같다. (웃음)
똑같다. 오늘 정우 만나서 같이 인터뷰 하고 이런 얘기 했다. 어떻게 영화랑 개봉 후 상황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냐고. 그래도 올림픽까지 나가야 한다고. (웃음) <해운대>와 상영관 수에서 차이가 나지만 영화의 생명력으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본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재를 골랐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영화는 충무로에서 기피하는 소재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제대로 된 경기묘사를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우생순>이 충무로의 징크스를 깨긴 했지만 경기묘사에 있어서만큼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국가대표>는 한국 스포츠영화의 최대 난점을 극복한 경우라 할만하다. 스포츠영화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경기 장면의 리얼리티를 실전에 가깝게 묘사해내는 것이다. 어설프게 흉내 내는 배우의 경기 장면이 없고, TV스포츠 중계와는 차별되는 장면을 선보이며, 실제 경기 버금가는 현장감과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들이 하늘로 비상하는 것처럼 <국가대표>의 경기묘사 역시 높이 날아오른다. 

 

<국가대표>는 본인이 기획한 게 아니라 제안 받은 프로젝트라고?
제안을 받았는데 처음엔 관심 없었다. 제목도 국가대표인 10분짜리 스키점프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못 찍겠는 거야, 이걸 영화로 과연 어떻게 찍을까. 우리나라에 경기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이나 오스트리아로 가서 찍어야 하는데 그러면 제작비가 2백 억 정도는 있어야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근데 내가 힘들지 않으려면 어디 몰빵을 해야 되겠더라. 다행히 그때 <국가대표> 얘기를 들었는데 운전하면서 집에 가는데 캐릭터들이 정형화 되도 될 것 같고 거기에 입양아 얘기가 슬쩍 떠올랐다. 처음엔 (김)동욱이가 연기한 흥철이가 주인공이었는데 입양아 캐릭터가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와 관련 없는 주변 사람들한테 의견을 구했는데 이야기도 좋고 캐릭터도 너무 좋다는 거야. 내게는 세 번째 작품인데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안전장치라고 해야 하나, 정형화된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특별함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 감독(최종스코어 662만 명)이면 찍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도 됐을 텐데 왜 굳이 제안 받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됐나?
김 나는 내가 찍고 싶은 걸 못 만들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대중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걸 못 볼 거 같다. 사실 시장상황도 안 좋은데 내가 만들고 싶은 거 할 필요 있나.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기대치나 내가 해야 할 몫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물론 심각하게 고민해서 나온 얘기는 아니고. 사실을 말하자면, 원래 못난 놈들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못 살다가 뭔가 얻으면 사실 잘 안 놓으려고 하잖나. (웃음)

 

오히려 그 때문에 <국가대표>는 부담이 더 컸겠다. 사실 <미녀는 괴로워> 개봉 전만 하더라도 관객이 김용화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았나. 하지만 그 뒤로 상황이 급변했다. 
그래서 더 자신 있는 걸 했다. 모험하기 싫은 거지. 그게 이유인 것 같다. 좀 더 안정된 플롯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 완성도의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관객들이 <국가대표>를 보면서 이 영화 정말 잘 찍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공부했다. 개인적으로 연출은 연기를 끌어내는 사람이지 다른 부분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감독들이 사운드부터 시작해서 촬영, 편집, 조명 등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한 편이라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만들어놓고 그 안에 인물을 바닥에 붙여놓을 정도로 연기를 잘 끌어내면 완성도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관객들이 예상하는 바는 조금 피하고 기대할만한 요소는 만족시켜줄 수 있는 플롯을 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거다.

 

그럼 <국가대표> 연출을 수락한 이상 가장 관건은 제작비를 어떻게 맞추느냐였겠다.
<국가대표>가 특성상 제작비를 적게 들여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면 안 되는 영화다. 완성도가 있으려면 한국에서 다 촬영한다 해도 미니멈 60~70억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예산이 된다고 해도 하정우를 빼놓고 모두 신인급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힘들 거라고 생각을 했고. 근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다들 호의적이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한국에서 다 소화한다.

 

한국에서 어떻게 다 소화했나?
프리비주얼(Pre-Visual) 계획한대로 해야 한다. 욕심내지 말자, 최대한 올림픽을 보는 것만큼만 하자. 거기서 보아왔던 것만큼은 우리가 충실히 영화적으로 재현을 하자. 그게 비주얼적으로 목표였다. 앵글과 렌즈 위치 등 정해진 대로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프리비주얼 단계에서 3D 시뮬레이션을 6개월 이상을 했다. 목숨을 담보로 스키점프를 하는 애들한테 NG 났다고 계속 뛰라고 할 수는 없잖아. (웃음) 근데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까 그런 부분이 너무 막히는 거라. 스키점프 경기장 알펜시아 평창에서 지어준다는 거 완공되지 않았고 오스트리아 초빙선수 데리고 와서 우리는 삽 들고 눈 퍼다 놓고 근데 눈은 녹아가지.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바로 눈이 다 녹아버렸다. (웃음)

 

한국 외에 해외에서도 촬영한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촬영한 분량은 모두 배경 합성이다. 실제 경기대회인 독일 오버스트도르프 스키점프 월드컵 대회에 2K급 HD 카메라 가져가서 소스 촬영했다. 다른 나라 카메라 팀은 경기 장면 촬영하는데 우리는 카메라 세 대 가져가서 관중만 찍었다. (웃음)

 

월드컵 대회 촬영 협조는 어떻게 얻었나?
발로프라고 분과위원회로 치면 스키점프과 회장인데 한국선수들을 되게 예뻐한다. 월드컵에서 경기할 정도면 전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은 거다. 한국의 경우, 쇼트트랙 제외하면 월드컵 대회 수준 이상에서 경기할 수 있는 종목은 스키점프가 유일하다. 그 외의 스포츠는 100위 안에 드는 선수가 없다. 스키점프는 국가적인 지원이 없는데도 성적이 월등하거든. 그래서 발로프가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줘 수월하게 촬영을 할 수 있었다.

 

힘든 건 없었나?
인물의 연기를 먼저 찍은 후 배경 합성에 들어갈 촬영을 맞춰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보니 그렇게 안됐다. 어떻게 찍힐 거라는 예상을 하고 배경을 최대한 많이 찍다보니까 양이 남발됐다. 그래도 지금 올림픽 장면 배경 합성한 거 보면 잘됐다 그런 생각이 든다. (웃음)   

 

결말의 스키점프 장면 보면서 요즘 유행하는 3D나 아이맥스로 보면 더 굉장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정확히 영화 만들고 나서 그 생각을 했다. 이거 나중에 3D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왜냐면, 캐릭터에 몰입하는 감정이 충만하니까 스키점프 비상하는 순간에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빡! 느끼는 경외감 같은 게 있지 않나. <국가대표>는 3D로 적합한 영화인 거 같다. 만약 처음부터 그렇게 찍었다면 아마도 제작비가 20~30억은 더 들었을 텐데. (웃음)

 

<국가대표>는 여타 한국의 스포츠영화에 비해 경기 묘사가 기본에 충실하다. 실제 스포츠 중계를 보는 느낌이다. 연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스키점프가 영화에 적합한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종목이긴 하지만 개인별 경기라 편집하기 좋고 배우들이 몸소 익히기에도 구기 종목에 비해 수월한 느낌이고.
그게 정답이다. 내 대신 답을 얘기했네. (웃음) 사실 스포츠영화에서 스포츠를 잘 찍은 건 자랑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 스키점프 영화가 스키점프를 잘 찍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다만 구기 종목은 스포츠영화에서 잘 찍을 수가 없다. 그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일정부분은 포기하고 가야한다. 서스펜스 측면에서 감정을 이완하고 확장하기에 적합하지가 않다. 스키점프는 감정을 모았다가 풀었다가 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스포츠다. 그래서 자신감이 있었다. 만든 사람들이 없다는 게 너무 감사한 거다. 이건 내가 최초네, 이건 잘 만들면 대우 받을 수 있겠네, 그렇게 생각했다.

 

<국가대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국가대표>를 비롯해 김용화 감독 영화의 모든 주인공은 루저다. <국가대표>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도, <미녀는 괴로워>의 성형 가수 한나(김아중)도, <오! 브라더스>의 흥신소 직원 형(이정재)과 조로증에 걸린 동생(이범수)도 그 누구 하나 사회에서 환대받는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피해의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목격되더라도 삶에서 장애가 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겐 피해의식이 극복할 목표라서 그런지 강하고 밝은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관객들에게는 감동으로 다가갈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김용화 감독의 영화는 근본적으로 신파가 아니다. 울음을 위해 의도적으로 감동을 연출하는 것이 아닌 피해의식을 오히려 긍정적인 삶의 동력으로 삼기에 감동을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용화 감독의 영화에 굳이 장르로 이름 붙이자면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상영시간이 길다.
본편이 2시간 11분이고 크레딧까지 하면 2시간 16분이다.

 

대중영화로 너무 긴 편 아닌가? 흥행을 생각하는 영화라면 2시간 안에 맞추는 것이 추세일 텐데.
그렇다. 완전 바보짓 한 거다. 모니터 시사를 했는데 관계자 중 아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굳이 지적 안 했는지 알 것 같다. 마지막 스키점프 장면에서 모든 감정이 폭발한다.
우리 제작사 대표님이 편집 잘 하는 걸로 유명하다. 잘 자르는 걸로 유명해. (웃음) 근데 이번엔 얘기를 안 하시더라. 본인이 너무 좋았던 거야. 내부 모니터 평점 결과도 지금의 네이버 평점(인터뷰 당시 9.53)처럼 나왔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5백만 관객 넘으면 디지털영사(DLP)버전은 디렉터스컷으로 나갈 거다. 지금보다 더 길어질 전망이다. 내가 아끼는 신들이 있거든. 그런 장면들이 상영시간 때문에 없어졌는데 극중 캐릭터의 성격과 사연을 이해하는데 지금보다 도움이 될 거다. 그래서 지금 편집하고 있다.  
 
어느 부분이 늘어나는 건가?
앞부분은 준다. 헌태(하정우)가 방송에 나와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는 장면에 다른 인물들도 교차편집으로 소개하는데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헌태 부분만 제외하고는 다 뺄 거다. 그래봐야 서너 씬 더 붙는 정도다. 그들이 얼마나 개차반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될 거다.

 

근데 왜 아까는 2시간에 못 맞춘 것을 두고 바보 같다는 표현을 썼나?
그래도 영화는 물리적인 시간이라는 게 있는데 줄였어야지. 사실 맨 처음 나온 버전은 2시간 7분이었다. 더 줄이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안 되더라고. 캐릭터 이해도 전혀 안 되고. (웃음)

 

그럼 처음부터 아예 캐릭터의 수를 더 줄일 생각은 하지 않았나?
그랬어야 되는 건데 시나리오를 잘못 쓴 거지. (웃음) 영화라는 건 관객 하나하나에 따라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욕심을 부렸다. 인물들이 설정만 남아있고 단선적이지만 설정에서 오는 진부함을 연기로 없애려고 했다. 영화에 정답이 어디 있겠나. 제일 많이 보고 제일 많이 연구한 사람들이 냉철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건데 불행하게도 관계자들이 영화를 너무 사랑스럽게 본 거야. 누가 줄이자는 얘기도 안 하고 그냥 내놓은 자식 같다. (웃음)

 

개인적으로 클라이맥스 이전까지 캐릭터의 상황 묘사가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렇게 쌓인 감정들이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인데 내가 더 깊이 잘하지 못할 거면 자르면 안 되겠더라. 2시간 7분 버전은 그런 반응이 안 나왔다. 왜냐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한 다음부터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은 거지. 그걸 뚝뚝 잘라내면 엣지(edge)가 없어지는 거다, 후반부가 안 살아나더라고. 결과론적이지만 관객의 만족도를 보면 조금 길게 간 게 맞은 것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어디까지가 실화인가?
기사로 쓰려면 최소 A4 2장은 필요할 거다. (웃음) 간단하게 말하면, 올림픽에 언제 진출했고, 몇 위를 했는지 역사적인 사실만 진짜다. 캐릭터는 실제 선수들에게 영감을 받아서 가져왔고.

 

강칠구(김지석)와 최흥철은 실제 선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렇다고 똑같은 인물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강칠구 선수한테 봉구(이재응)의 어떤 부분을 가져왔고 최용직 선수에게서 봉구의 주된 캐릭터를 가져왔다. 최흥철은 영감 받은 부분이 제일 비슷하다. 오히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선수다. 코치(성동일)의 캐릭터도 많이 가져왔다. 그는 실제로 대한민국 최초의 스키점프 코치로 천마산 어린이 스키교실 선생님이었다. 그 전까지 스키점프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다.

 

그럼 극중 올림픽 대회에 나가서 강칠구 선수가 부상당하는 장면은 실제가 아니겠다?
그건 영화의 극적성을 높이려고 창작한 부분이다.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결성된 상황 역시 역사적인 부분과 비교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인터뷰를 하고 그에 더해 당사자들이 자기 입으로 얘기는 안 하지만 내 상상력을 통해 그렇게 결성이 됐겠구나 싶게 구성했다.

 

근데 왜 강칠구와 최흥철만 실제 이름인가?
일단 이름 자체가 주는 느낌이 있었고 두 번째 이유는 나머지 이름이 영화로 쓰기에는 안 좋아서. (웃음) 차헌태 하면 느낌이 오지 않나? 내 조카 이름인데 영화를 제일 재밌게 보더라고.  

 

연습하는 장면들도 실제인가? 봉고 위에서 스키 주행 연습하는 장면 같은 경우 굉장히 위험해 보이던데?
사실 더한 상황도 있는데 좀 순화해서 극화했다. 실제로 90km 속도로 촬영할 만한 곳이 없으니까. 리어카에 타서 매달려 가는 연습이나 공중 위로 끌어올리는 장면은 비슷하게 착안을 해서 만들었다. 실제로는 더 열악하고 더 남루하다. 근데 그렇게 하면 재미가 없는데다가 어느 정도 관객들이 알기 쉽고, 영화적으로 저 정도까지 하는구나, 대단하다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국가대표>도 그렇지만 전작 모두 주인공이 루저다.
루저인가? 나는 우리가 모두 루저라고 생각한다. 나는 똑똑한 사람인데, 선택 받은 사람인데, 재능이 있는데 나라를 잘못 만나서 멸시 받고 주말도 제대로 못 놀고 돈도 제대로 못 받고,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부분을 영화적으로 조금 더 편협하지만 상업영화화 했다고 보면 될 거다. 나에게 <미녀는 괴로워>의 주진모가 연기한 음반 프로듀서 한상준 같은 이가 소수자라고 생각한다. 지금 자기 삶이 우리 사회에서 환대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지 않을 거다. <국가대표>에도 등장하지만 입양아야 말로 대표적으로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의 가장 큰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대표>를 향한 논란에 입을 열다

 

 

네이버 평점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대표>를 향한 네이버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찬사일색이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완성도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대표>의 결말부 스키점프 대회에서 주인공을 향한 관객의 감정이 폭발하는 그전까지 캐릭터 구성에서는 인위성이 엿보이고 그들의 관계와 사연에서는 종종 작위성이 노출된다. 하지만 <국가대표>를 향한 논란은 다른 곳에 있다. 입양아, 불법체류, 병역기피, 에이즈 등 흥행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소재까지도 희화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김용화 감독은 정말 그런 의도를 가지고 한국 사회의 뇌관이라 할 만한 문제들을 대량으로 건드린 것일까?

 

극중 인물들의 배경만 보면 신파인데 웃음과 울음을 적절히 조화했다.
안 그래도 <국가대표>에 대해 신파라는 기사가 많이 나와서 그런데 신파가 뭐라고 생각하나? 정말 신파로 갈 거였다면 내가 할머니 죽였지. 신파라는 게 극적 필요에 의해 극단적인 설정을 가져와 사람을 죽게 하는 건데 나는 그런 설정이 제일 싫다. 나는 신파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한국에서 스포츠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제대회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스포츠와 한국이 동일시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생역전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에 이르기까지, 혹자는 피나는 노력이라고 하지만 훈련 과정에서 혹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인권 유린에 가까운 모욕을 겪지 않나. (기자주_ 오해마시길, 전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가대표>는 만들면 사람들이 놀랄 거라고 판단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라든지 극복해야 할 것들이 스키점프 하는 순간과 잘 매치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거 참조할 필요 없이 영화 전체적인 외형은 <제리 맥과이어>에서 가져오고 캐릭터 풀어가는 방식은 <미스 리틀 선샤인> 가져가고, 거기에 나만의 연출력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면 관객들이 마지막에 슬퍼서만 우는 게 아닐 거라고 봤다. 무언가 벅찬 감동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싶었다.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짜증도 나. 쟤네들 왜 저렇게 일이 안 풀리는 거야, 근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그런 분위기가 울컥 했다가도 웃음이 나올 거라고 본 거다. 그래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워줄 생각으로 후반 삼십 분을 구성했다.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에 만족하나?
요즘도 계속 극장가서 체크를 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을 한다. 박수까지 친다.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영화도 만들어 보는구나. 내가 관객들 반응에 너무 고무가 됐다. 나도 위로 받으려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반응들을 해주시니까. 내가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감정이 나의 세 작품 중에서 가장 가깝게 다가가 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행복한 영화다.  

 

반면 논란이 되는 부분도 있다. 가령, 입양아, 조선족, 병역, 기독교 등등 한국 사회의 뇌관이랄 수 있는 부분을 노골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 (웃음)
의도였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을 거다.

 

사실 그런 의도는 첫 장면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헌태의 여동생이 흑인남자와 결혼한 모습에서 방청객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은 정확히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편견에 대한 감독의 비판의식을 잘 보여준다.
제발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 제발 당혹스러워했으면 좋겠다. 그때 좀 느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장면의 숏 사이즈라든지 지속시간을 그렇게 가져가지 않았을 거다.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의 수위인지 모르겠지만 내 스스로는 아주 임계치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 더 나가면 관객들이 불편해하니까. 그리고 그때 정우가 너무 멋있게 대사도 하지 않나. 사실 한국의 폭군남편 만나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고 나를 평생 이해해주는 사람이면 피부색에 관계없이 누군들 어떤가. 사랑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다른 문제들도 에둘러 가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 스스로의 도덕성에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단순하게 그런 문제들을 희화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족 생활력 굉장히 강하다. 원래 그녀의 사연이 더 길었다. 재복 아버지(이한위)의 가든을 먹으려고 한다는 그런 디테일한 사연이 많았지만 주인공 얘기를 못할 것 같아서 자른 거다. 근데 그게 나쁜가?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살고 싶어 하고, 신분상승하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건데. 

 

나는 한국인들의 사회적 감정의 기저에 약자에게 너그럽지 못한 심리가 깔려있다고 본다. (기자 주_ 이 또한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난 필요 이상의 혐오가 있다고 본다. 한국인들에게는 선민의식이 있다. 그게 좀 더 자유롭게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본다. 나는 그런 게 더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통찰력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에 대한 울분이 있긴 하지만 그거를 또 액면 그대로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최대한 순화해서 넣은 거다. 원래 헌태 몸의 문신을 바코드로 넣으려 했다. 입양아들은 자신들이 팔려왔다는 거에 대해 물건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바코드를 문신으로 새긴 사람이 많다. 하지만 영화상에서는 너무 막나가는 것 같아서 바코드 대신 지금 나온 걸로 바꿨다. 나는 입양아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사회적인 약자라고 했지만 모든 작품에 루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만 봐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 멋있는 거에 애정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은 위로 받고 보듬어줘야 할 존재라고 본다. 그렇게 나약하고 모순 덩어리이기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위로 받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칠구가 부상을 입을 때 안개가 자욱한 상황에서도 일본 심판이 계속해서 내려가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기보다는 단순히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느 나라 사람이 하긴 했어야 할 텐데 그 순간에 외계인이 할 순 없지 않나. (웃음) 극중 칠구에게 지시는 영어를 하는 일본인을 시킨 거였고 뛰게 하는 판단은 독일 사람이 내리게 했다. 중간에 장면이 하나 제거 됐는데, 이 상황은 당신 재량이지만 오히려 불합리할 수 있다고 칠구에게 말하는 미국인도 있었다. 그것이 도리어 미국인에 대한 민족감정을 일으킨다고 할 것 같아서 뺐다. 나 정말 민족감정 불러일으키려고 그렇게 몰고 간 거 아니다. 진심이다.

 

 

관객들이 그 진심을 받아들이든, 오해를 하던 감독이 제시한 비판의식이 비록 논란의 형태일지언정 토론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나중에 관객이 많이 들면 토론 프로그램 같은 데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일본인이 왜 그런 지시를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논란이 되는 부분을 관객 분들과 활발하게 나누고 싶다. 

 

글 허기자(edwoong@daum.net)
사진 허남준(paintbox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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