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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억원짜리 청산가리

 

배우는 입을 조심해야 하는가
-나는 왜 이 짓을 해야하는가-

 

2009.8.14.금요일

 

 
전여옥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자료를 수집하면서 그녀의 사진을 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다. 곧 주말이 다가오는 이 따스한 여름날에 이런 주제로 키보드 두드리는 것이, 그다지 정신위생에 좋은 일도 아니고.

 


그러나, 할 말은 해야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는가. 오늘은 평소 내 스탈은 버리고 좀 짧게 한마디 하겠다. 정진영씨의 논리정연한 글에 비하면 사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만.

 


 일본은 있을까?

 

독자제위도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아실 것이다.

 

 

일본은 없다 (다음 백과사전)

 


표절이야 뭐... 대한민국 지식인의 기본 교양이니 꾹 참고 넘어가 주자. 난 오늘 이 책의 대부분은 전여옥씨가 자신의 머리로 쓴 것이라는 걸 전제로 이야기를 할 참이다. 

 

90년대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한마디로 일본은 저질스런 국가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여옥씨 개인의 자질구레한 경험담이, 일본 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과장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라는 수준으로 줄줄이 엮어나와 책 두권이 완성된 형국이다. 뭐,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던 그건 전여옥씨 자유다.

 

하나 물어보자. 전여옥씨의 이 책에 대해 일본 정부가 이 책 때문에 한국내에서 일본에 대한 국가 브랜드와 이미지가 저하되었다. 그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액수다. 게다가, 전여옥씨의 책 때문에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펼쳐온 양국 우호정책이 타격을 입었다.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추진한 정책이 전여옥씨의 책 때문에 손해를 입은 거다. 배상해라 라고, 말한 적 있나?

 

전여옥씨는 이 책에서 일본사회를 참 다각도로 공격했다. 학교, 병원, 방송사, 술집...

 

단 한군데라도, 전여옥씨 때문에 장사 말아먹었다면서 소송 제기한 곳 있나?

 


일본과 한국은 나라가 다르니 재판이니 뭐니 하기 힘들다고 할텐가? 우리가 지금 한우 때문에 이런 논쟁 중인가?

 

 
 인과관계

 

일본이 바보라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지금 청산가리 어쩌고 하는데, 저 책 때문에 90년대 한국에서 다시금 일본 까대기가 횡행하여 일본이 입은 유형무형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기업이 베트남 진출하려는데 베트남 국영방송의 서울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사람이 한국은 없다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을 모아 한국은 돈독 오른 살기 힘든 나라라는 식의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치자. 베트남에서 기업하려는 한국인들 입장에선 얼마나 난감하겠나.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그 베트남 전직 특파원을 상대로 국가적 손해를 운운하며 소송을 걸 수는 없는 문제다. 왜 그럴까?

 

이렇게 생각하니 독자제위가 봐도 그건 좀 비약이 심하다라는 생각이 드실거다. 그래, 한국은 없다라는 가상의 책과 한국 기업인들의 베트남에서 기업하기 힘들어 졌어요라는 주장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듯, 일본은 없다 때문에 일본 기업인들이 한국에서 장사하기 힘들어 졌다는 말은 아전인수적 성향이 지나치게 강하다. 주장할려는 쪽이 쪽팔릴정도로.

 


그럼, 청산가리 발언과 3억원이라는, 나같은 서민은 한 번 보지도 못한 피해보상금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 인과관계 같은게 존재할까?

 

"국민 53% 김민선 광우병 발언에 영향 안받아."(한국일보 08.12) 

 

글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 정도 수치가 나오는데 피해를 보상해라라고 설친다면, 오바도 가지가지라는 말 밖에 해 줄 말이 없다. 사법부가 상식이 있으면 재미있는 농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갈 사안이다. 전여옥씨 책 읽고 일본이 싫어져서 일본 제품 살 마음이 순간적으로라도 줄어들었다는 사람 설문조사 해 보면, 좀 더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의도

 

얼마전 광화문 꽃밭에 관한 이야기로 언론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기나긴 썰을 푼 적이 있다. 설마 서울시가 그걸 가지고 우리 예산으로 만든 광화문 광장이 너 땜에 이미지 저하되서 방문객이 몇 명 줄었으니 피해액 보상해라라고 소송을 제기하진 않을거다. 만약 소송당하면 나야 차압당할 돈도 없으니 실형 선고되면 몸으로 때우는 수 밖에 없겠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라는 걸 다시 찾기는 좀 요원해 졌다고 봐도 무방할거다.

 

온 국민이 다 아는 배우와 익명으로 글질하는 나를 비슷하게 취급할 생각은 없다만, 그래도 어쩐지 씁슬한 마음은 지울 수 없다. 

 

에이미트가 지금 당장 급전 3억원이 필요해서 저런 소송을 내진 않았을거다. 전여옥씨도 소고기가 먹고 싶어서 저런 지원사격을 하진 않았을 거고. 

 

 


내가 우려하는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다. 있는 사람에겐 별 것 아닌 돈이겠지만, 서민들에겐 생사가 갈릴수도 있는 금액을 통해 언론 플레이를 벌이면, 간단히 말해서 소송 당하기 싫으면 입조심 해야한다라는 암묵적인 위협효과가 생겨나는 거다. 공인이니 책임을 져야한다지만, 우리는 전여옥씨 본인을 포함해, 이 나라의 언필칭 공인들이 막말을 질러놓고 책임지지 않는 행태를 지겹게 봐왔다. 한 정치단체 대표가 좀 큰 손녀뻘 될만한 아가씨의 기부행위에 대한 언론 보도를 두고 친족까지 싸잡아 모독하는 나라에서 공인이니 발언 하나하나에 책임져라라고 들이대는건, 비위 상하는 더블 스탠더드에 불과하다. 내가 하면 언론의 자유. 니가 하면 명예훼손.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정진영씨 글에 답이 나와있다. 입 조심 하라라고 저쪽이 위협하면, 정중히 반사라고 외쳐줄 수 밖에 없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시민인 나라에서, 그것도 못하면 어떻게 사나.

 

 마지막으로, 김민선씨께 한 말씀만 드리고 싶다. 

 

맘고생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가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김민선씨의 발언에 동조하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김민선씨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를 위해 싸워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케케묵은 서양 철학자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민주사회를 사는 시민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선씨의 다음 작품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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