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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척 매뉴얼] 조지 오웰의 1984


2009. 10. 8. 목요일
너부리



 취지


본 기사는 각종 매체에서 이루어졌던 광고 아닌 척 책 소개하기식의 서적 광고도 아니고 필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 평가가 천차만별인 니맘대로 서적 리뷰도 아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 본 기사는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 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한 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들어가며



조지 오웰의 <1984>가 일상에서 거론되는 경우, 거의 십중팔구는 ‘빅 브라더’때문이라 하겠다. 특히 범죄예방을 이유로 곳곳에 무인카메라가 설치된다거나, 혹은 그 반대로 범죄행위를 위해 모텔이나 여성 탈의실 등에 설치한 몰래 카메라가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을 경우 ‘빅 브라더’는 마치 사건의 공범인양, 혹은 몰카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제조업체라도 되는 양 함께 언급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에 혹자는 무인감시카메라, 통제사회 등과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는 ‘빅 브라더’만 알면 당 서적에 대한 읽은 척은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이는 마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연배우 이름이 무엇인지를 두고 한 무리가 식음을 전폐해가며 고민하던 와중에 누군가 무릎을 치며 ‘드디어 생각났다! 카이저 소제!’라는 식의 자다봉창을 연출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 하겠다. 참치회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고 있다고 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은 척 할 수 없듯, 당 서적 역시 섣불리 읽은 척을 했다가는 적들에게 정신적 관장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한 작품인 것이다.


특히 조지 오웰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사회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기도 하고, 스페인 내전에서 통일노동당 민병대로 활동하는 등 골수 빨갱이의 길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동물농장> 및 <1984>를 똘이장군의 전신쯤으로 활용함으로써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를 반공작가로 인식하고 있는 나머지, 마치 D.H.로렌스를 두고 역사에 길이 남을 야설작가라 평하는 것과 유사한 대재앙적 읽은 척이 발생할 우려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그밖에 최근 국제적 경기침체와 금융위기가 맞물리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자본주의의 몰락과 사회주의의 득세, 그도 아니면 파시즘의 부활 등에 대한 술자리 갑론을박이 매우 잦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대한 읽은 척은 단순한 자아방어용 호신술로서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미래상에 대한 읽은 척 행위자의 우수에 찬 고민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디어악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뉴스에서는 환율하락과 유가하락, 주가상승에 대한 소식이 연일 쏟아지며 가카의 은덕으로 마치 5공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있는 것만 같은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찬양함에 있어서도 당 서적은 유용하다 할 것이다. 


요컨대, 조지 오웰의 <1984>는 역사 속의 실존 인물과 실재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요소도 많고, 마치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막판 반전도 도사리고 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와 같은 선과 악에 대한, 인간과 권력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통찰 역시 존재하는 대작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당 서적의 형식은 인류의 미래를 염두에 둔 일종의 SF소설이다 보니 공각기동대나, 스타워즈와 같이 현실에서 독립된 별도의 세계관이 펼쳐지는 관계로, 앞서의 다른 어떤 서적보다 전체 구성과 스토리의 흐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등장인물과 특수용어 등에 대한 학습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읽은 척 매뉴얼


1)등장인물


-윈스턴 스미스 : 당 작품의 주인공. 과거의 신문 기사나, 잡지 등의 기록을 당의 주장에 모순되지 않게 왜곡하는 일을 맡고 있다.


-줄리아 : 주인공의 애인. 진리부의 창작국에서 포르노를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 외부당원.


-오브라이언 :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이 안 되는 신비한 분위기의 고위 당간부.


-빅 브라더 : 오세아니아의 통치자.


-골드스타인 : 오세아니아의 공공의 적. 마치 과거 김일성이 혹 달린 돼지로 묘사된 바 있듯, ‘2분간 증오’시간에 역겨운 소리를 내는 염소 얼굴을 하고 나타나 전 국민의 염장을 사시미 뜨는 인물로 활용된다.


-채링턴 : 윈스턴과 줄리아에게 밀회의 장소를 제공하는 노동자계급의 고물상 주인.




2)내용요약



당 서적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1장에서는 1984년의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 및 그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참고로 당 서적은 1948년도에 쓰인 작품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그런 미래는 언제쯤 도래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때가 마침 48년도라 이를 거꾸로 뒤집은 ‘1984’가 제목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빅 브라더의 ‘영사’(영국사회주의의 줄임말, 단순한 줄임말이나 통신언어가 아니다. 인간의 사고 범위를 최소한으로 축소시키기 위한 과학적 언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세부스킬의 ‘특수용어’관련 부분에서 다루고자 한다)가 지배하는 1984년의 오세아니아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진리부 기록국에서 근무하는 외부당원으로 과거의 신문 기사 내용이나 잡지 내용 등이 현 시점에서의 당의 노선과 맞아 떨어지게끔 조작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당의 강령에 부합하는 그의 임무라 하겠다.


윈스턴은 최근 삶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회의를 느끼고 있던 중이다. 그 주된 이유는 1950년대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기억의 충돌 때문이다.


즉, 지금의 당이 집권한 시점 이전과 이후 중 언제가 더 나은 삶이었는지 분간도 안 되고, 현재 오세아니아가 오래전부터 전쟁을 치루고 있던 나라는 유라시아라지만 불과 몇 년 전에는 분명 유라시아와 동맹이었고 현재의 동맹국인 동아시아와 전쟁을 벌였던 것 같은데 주위에 이를 명쾌히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십여 년 전에는 한때 당원이었던 존스, 아런슨, 러더포드 등이 반역죄를 저질러 처형되었으나 그것은 모종의 음모였음을 증명하는 사진 한 장까지 손에 쥐었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이후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일종의 몰카)을 피해 당원에게는 금지된 행위인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반역과 사상범의 길로 서서히 접어들게 된다.



다음 2장에서는 앞서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일종의 연애소설이 펼쳐진다. <1984>가 ‘빅 브라더’를 위시한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과정을 그린 SF활극쯤으로 알고 읽은 척을 하는 사람이거나, 읽었어도 앞의 1장 정도만 훑어본 이들이 가장 많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앞서 1장에서 주인공은 얼굴만 알 뿐 이름도 모르는 검은 머리의 한 여성에게 강력한 증오심을 느끼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당에 충성하고, 당의 슬로건을 곧이곧대로 신봉하며, 이단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을 것 같은 그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기 때문에 자신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자격지심에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게다가 어느 날, 당원들이 드나들 경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인 노동자 지역의 고물상(일기장을 샀던) 주변에서 그녀와 마주치는 바람에 조만간 그녀가 자신을 신고할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마저 갖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이게 웬일. 당사 복도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된 그녀는 윈스턴 앞에서 은근슬쩍 넘어지더니 그의 손에 뭔가 비밀스런 쪽지를 쥐어주는 게 아닌가. 대체 무슨 내용일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뭔가를 요구하는 협박의 쪽지일까? 아니면 혹시 그녀는 당의 전복을 꾀하는 지하단체인 ‘형제단’의 일원이었던 걸까? 결국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피해 자신의 책상에서 조심스레 펼쳐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가 적혀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런 제길... 남몰래 짝사랑하던 그녀에게 입대 전날 고백을 들으면 이런 심정일까. 빚 때문에 자살하러 한강에 뛰어드는 순간 로또에 당첨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런 심정일까.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상에 대해 총체적 회의를 갖고 있던 주인공은 그 순간, 마치 완치된 치질환자가 더 이상은 발병원인을 추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나 몰라라 술을 퍼마시듯 빅 브라더 나부랭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그녀에 대한 생각, 즉 어떻게 하면 그녀와 몰래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하면 그녀와 대화라도 한 번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사내연애를 금지하듯 당원끼리의 연애도 금지된 상황이고, 윈스턴은 별거 중이긴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인 관계로 그 둘 사이의 사랑에도 당과 빅 브라더는 태클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걸리면 죽는 그런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가능하게 만들 듯 두 사람은 한적한 시골 숲속의 야외 공터를 유사 숙박업소로 삼는 기행을 벌이고, 급기야는 일기장을 샀던 노동자지역의 고물상 2층에 그들만의 러브호텔을 꾸미는 등 더욱 대담한 애정행각을 과시하는데...


고로 향후 당 서적을 읽은 척 함에 있어서는 수줍어 얼굴을 붉히며 “난 그 책 너무 야해서 중간에 읽다 말았어.”정도의 한 마디도 나름 개성 있는 읽은 척을 연출하는 멘트라 하겠다.


마지막 3장은 결국 그 두 사람의 파멸과 함께, 계급과 권력에 대한 진실, 빅 브라더의 무시무시한 권능을 확인할 수 있는 챕터라 하겠다.


2장에서 주인공은 아마도 ‘형제단’의 일원일 것이 분명해 보이는 오브라이언과 약속을 잡게 되고 결국 커플동반으로 ‘형제단’에의 가입을 맹세하고는 며칠 후 골드스타인이 작성했다는 비밀스러운 책을 건네받게 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 커플은 둘만의 밀회장소인 고물상 2층에서 몸으로도 반역을 하고 정신으로도 반역을 하던 중, 마침내 사상경찰에게 체포되어 사상범을 고문하는 애정부에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된, 오브라이언의 정체.


형제단의 고위 간부쯤으로 여겨지던 오브라이언을 애정부에서 만나게 되자 그 역시 체포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는 사실 윈스턴을 고문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즉, 지하단체의 요원인줄로만 알았던 오브라이언은 사실 사상범들을 색출해내기 위해 위장한 이중간첩이었던 것. 지하가 아닌 반지하쯤의 요원이었다고나 할까.(오브라이언의 정체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많은 부분이 암시, 생략되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는 어쩌면 ‘빅 브라더’ 자체일 수도 있고, 당을 배반했다가 붙잡힌 골드스타인이 사상전향을 한 것일 수도 있으며, 그저 사상범 색출에 일가견이 있는 고문전문가일 수도 있다. 행여 오브라이언의 정체성을 두고 논쟁이 붙을 경우에는 그냥 다수결의 원칙에 운명을 맡기시라.)


그리고 이때부터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에게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기존의 가치와 윤리가 송두리째 번지점프를 하는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되고, 마침내는 당이 원하는 완벽한 이중사고자가 되어 빅 브라더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편안히 숨을 거둔다.



3)읽은 척 세부스킬



빅 브라더는 누구인가?


<1984>의 부제처럼 사용되는 것이 ‘빅 브라더’이다보니 빅 브라더에 대한 정체성 탐구는 당 서적에 대한 읽은 척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 하겠다.



참고로, 과거 당 서적에 대한 직역에 충실했던 모 출판사에서는 ‘빅 브라더’를 따꺼, 즉 우리말로 대형(大兄)이라고 하는 춘장냄새 물씬한 표현으로 번역을 한 바 있다. 대형이라는 번역이 촌스럽기는 할지언정 당 서적에서 ‘빅 브라더’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면 어쩌면 가장 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당 서적에서의 빅 브라더는 특정인의 이름이나 별명으로 쓰인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신격화된 절대적 무언가를 지칭하는 대명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빅 브라더’의 정체성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규정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실질적 권력자로서의 빅 브라더이다. 이때의 빅 브라더가 바로 김정일과 같은 절대 권력의 살아있는 상징이며,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 통제하려는 몰카 파시스트의 수장 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본문 p.10)



그리고 두 번째는 실재 인물이 아닌 당이 추구하는 절대 권력의 보조적 이미지로서의 빅 브라더이다. 간혹 빅 브라더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와 같이 작품 내에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 인물일 것으로 오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 작품에서 빅 브라더는 과거의 기사나 선전 벽보, 동전의 초상화 등으로만 등장할 뿐 사건과 갈등을 이끄는 구체적 등장인물로 출연하지는 않는다.


즉, 가랑잎을 탄 채 대동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셨던 SF적 김일성 장군으로써의 빅 브라더가 묘사될 뿐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한 인간 김성주와 같은 빅 브라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 되겠다.



“빅 브라더가 존재합니까?”


“물론 존재하지. 당도 존재하고 말일세. 빅 브라더는 당의 화신이네.”


“제가 이렇게 존재하듯 존재한다는 겁니까?”


“자네는 존재하지 않네. 윈스턴.”


.......


“저는 저 자신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태어났고, 언젠가는 죽을 겁니다. 팔다리도 있습니다. 저는 공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체든 제가 차지한 부분을 동시에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도 빅 브라더는 존재합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네. 어쨌거나 그분은 존재하고 있다네.”


“빅 브라더도 죽을까요?”


“물론 죽지 않지. 어떻게 죽겠나? 다음 질문은 뭔가?”(본문 p.362~363)



또 마지막 세 번째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소비에트 공화국의 스탈린에 대한 문학적 상징으로서의 빅 브라더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적인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에서 관중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갈색 머리의 자그마한 여자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비명을 꽥꽥 질러댔다. 골드스타인은 오래전(얼마나 오래전인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당의 지도급 인물로서 빅 브라더와 거의 맞먹는 지위를 누렸는데,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용케 탈출한 뒤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변절자이자 반동분자였다. ‘이 분간 증오’의 프로그램은 날마다 바뀌었지만, 중심인물은 언제나 골드스타인이었다. 그는 최초의 반역자요, 당의 순수성을 처음으로 모독한 인간이었다.(본문 p.22~23)



즉, 위 인용문에서 인민의 적 임마누엘은 ‘영구혁명론’을 주장하다가 추방당했던 트로츠키를 의미하며 이후 모든 반역죄에는 트로츠키주의자라는 올가미를 사용해 대대적인 숙청을 벌여 30여 년간 유혈독재를 했던 스탈린이 바로 빅 브라더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앞서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서도 주인공이 트로츠키를 찬양하는 농담을 했다가 당에서 축출되었음을 기억하자).




사실 조지 오웰의 작품에는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늘 함께 언급된다고 보면 된다. <동물농장>이 그러하고, <1984>가 그러하며, <카탈로니아 찬가>는 더욱 직접적으로 그러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조지 오웰의 작품은 특히 대한민국에서 똘이장군에 버금가는 반공서적쯤으로 널리 오인되기도 했던 것이다.


반공작가 조지 오웰?


소련의 스탈린 독재를 비판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너뮈 쉽게 읽은 척을 했다가 봉변을 당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특히, 그의 <동물농장>의 경우 해외에 첫 번역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을 만큼 그의 작품은 소위 빨갱이를 주적으로 삼고 있는 국가에서는 그 어떤 잠입 르뽀보다 공산주의의 허상을 까발리는 효과적인 반공서적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된 바 있다. 게다가 러시아혁명이 스탈린 독재에 의해 배반당한 혁명임을 우화적으로 그린 것이 <동물농장>이라면 <1984>는 그 후편 격으로 스탈린 독재가 가져올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실감나게 그린 작품이라 하겠으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조지 오웰이 오래만 살았다면 대한민국으로부터 무궁화훈장이나, 하다못해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정도는 자셔도 몇 번은 자셨지 않았을까 싶다.




심지어 그의 조국인 영국에서마저도 어느 덜떨어진 보수단체가 그를 반공작가로 착각하여 강연을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은 일화도 있다고 하니 일반 독자들이 그동안 그를 멸공통일의 선봉에 선 재향군인회 소속 문인쯤으로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지 오웰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은 대체 무엇인가.



조지 오웰은 오직 노동자의 집권만이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남의 나라 전쟁에 자기 목숨까지 걸었던, 좌파 중에서도 거의 좌측 갓길의 인도까지 점령한 소위 극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극단적인 이념의 지점이 바로 미국과 대한민국을 비롯한 극우적 국가들이 앞 다투어 그의 작품을 반공서적이라며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했던 본의 아닌 코미디의 시발점이라 하겠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기냐.



간단히 얘기한다면 다음과 같다. 


조지 오웰은 너무도 독실한 빨갱이다보니 점점 파시즘과 독재로 변질되어가는 러시아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는 더욱 완성도 높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힘을 모으자고 외쳤던 것인데 이를 두고 서구자본주의 국가들은 마치 귀순 용사가 덤으로 비행기라도 한 대 몰고 온 듯 아전인수의 호들갑을 떨었다는 얘기 되겠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스탈린을 돼지 ‘나폴레옹’으로 우화화한 <동물농장>에 영감을 받은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김일성을 인간의 탈을 쓴 돼지로 묘사하는 바람에 조지 오웰은 본의 아니게 똘이장군의 원작자쯤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고 말이다.



좀 복잡하게 얘기한다면 다음과 같다.


조지 오웰이 활동하던 시기의 좌파는 대략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의 세 개 분파로 나뉘는데, 조지 오웰은 당시 좌파들 중에서도 마이너라 할 수 있는 트로츠키주의자에 속했다. 권력쟁탈보다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트로츠키주의는 마르크스-레닌 주의자들에게도 따를 당하고,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부르주아 이상의 공적으로 여겨지며 박해를 받던 터, 바로 여기에 조지 오웰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 비판의 총대를 겨눈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스탈린체제의 소련 공산당은 반드시 변질될 것이라 예견했던 트로츠키의 논리에 대한 공감 때문에,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당시 소련 공산당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이중간첩, 혹은 분열주의자라며 전략적 누명을 씌워 숙청했던 정치공작에 대한 고발차원에서 조지 오웰은 소련 공산당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예컨대, 과거 민노당이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가장 보수적인 한나라당 대신, 어정쩡한 민주당(구 열린우리당)의 보수성을 공격함으로써 범 진보세력에게는 내부의 적으로 비난을 받고, 딴나라당에게는 본의 아닌 지원군이 되었던 것처럼 조지 오웰 역시 이념적 주적은 당연히 서구 자본주의 진영이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끌 요량으로 스탈린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가 본의 아니게 귀순용사처럼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당 작품을 읽은 척하기 위해 트로츠키주의가 어떻고 범 진보세력이 저떻다는 둥의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얘기를 꺼내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자학적 행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므로, 이런 얘기가 그동안의 자신의 정치적 행보와 자연스럽게 부합될 수 있는가를 따져봄과 동시에 상대의 지적 수준과 정치성향 역시 면밀히 체크하는 신중함도 필요하다 할 것이다.



가령 상대가 학교 교장선생님이나 대기업의 부장급 이상의 우편향적 어르신 앞에서 당 서적을 읽은 척해야 할 경우에는 뭐라 길게 떠벌일 필요도 없이


“제가 좀 조숙해서 현실에 일찍 눈을 뜬 편이라 사회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 좌편향 작가의 책은 일부러 읽지 않고 있습니다.”


정도의 멘트면 충분하다는 얘기되겠다.


<1984>와 파시즘


조지 오웰이 반공작가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읽은 척 대상서적에 선정될 리는 없다. 게다가 그가 저주를 퍼부었던 구소련의 공산당이 결국 역사에서 퇴장한지 십여 년이 넘은 지금에도 당 작품이 널리 회자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당 서적이 스탈린 자체를 비판했다기보다는, 파시즘으로 변색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비민주적 공산주의를 비판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 파시즘은 오직 소련의 공산주의에서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가의 삐까뻔쩍한 민주주의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984>에서 조지 오웰은 윈스턴과 오브라이언의 대화를 통해 미래의 발전된 형태의 파시즘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과두정치와 다르네. 우리와 다르든 비슷하든 과거의 사람들은 모두 겁쟁이고 위선자일세.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공산당은 그 수법에서는 우리와 매우 흡사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동기를 인정할 만한 용기가 없었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만 권력을 장악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꾸며댔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믿기까지 했네. 우리는 그들과 다르네.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면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법이지. 권력은 수단이 아닐세. 목적 그 자체이네.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는 걸세. 박해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박해일 뿐이네. 고문의 목적은 고문이고 말일세. 그처럼 권력의 목적도 권력 그 자체이네. 이제 내 말을 이해하겠나?”(본문 p.368)



“...개인은 오직 개인임을 포기할 때만 권력을 갖게 되지. ‘자유는 예속’이란 당의 슬로건을 알고 있지? 혹시 그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예속은 자유라고 말일세. 혼자 있는 인간, 다시 말해 자유로운 인간은 언제나 패배하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죽음은 가장 커다란 패배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인간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스스로 당이 될 만큼 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때는 불멸의 전증한 존재가 된다네. 두 번째로 자네가 알아야 할 건 권력이란 곧 인간 위에 군림한다는 점일세. 권력은 인간의 육체도 그렇지만, 특히 그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어야 하네. 물질에 대한 권력, 자네 식으로 말하자면 외적인 실재에 대한 권력은 중요하지 않네. 사물에 대한 우리의 권력은 이미 절대적이니까 말일세.”(본문 p.369)



사실 파시즘이란 뭐라 명확하게 정의될 수 있는 간단한 용어는 아니다. 신문이나 토론게시판 등에서 많이 쓰이고는 있지만 대체로는 그저 ‘나쁜 놈, 맘에 안 드는 놈’ 정도의 통칭 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파시즘은 늘 정치적,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욕구불만의 집단이 혁명이랍시고 벌인 행위가 사실은 집단 광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로 최근 청년실업과 장기불황, 금융위기 등이 겹치면서 IMF환란 못지않은 경제적, 정신적 공황을 맞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에 대해 거론할 때, 조지 오웰의 <1984>의 내용을 인용하여 대한민국의 미래와 지구의 운명을 예측해보는 푸닥거리적 읽은 척도 충분히 가능하다 할 것이다.



말하자면, 얼마 전 미국발 금융사태나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와 같이 자본주의의 폐단이 드러날 때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가 싹틀 것이라 기대하는 낭만적 좌파들도 있고, 기대가 아닌 우려의 차원이겠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빨갱이의 부활을 염려하는 우파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이 때,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라며 조지 오웰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수정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바로 파시즘이라며 마치 인류의 미래를 홀로 짊어지고 있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일갈할 수 있다는 얘기 되겠다.


알아두어야 할 특수용어들


앞서 내용요약이나, 본문에 대한 인용문 등에서 보았듯, 당 서적에는 언뜻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특수용어들이 나온다. 이는 파시즘이 전 세계를 삼분하여 통치하고 있는 미래 상황을 좀 더 치밀하게 구축하기 위한 작가의 상상력에서 파생된 용어들로, 마치 스타워즈의 ‘제다이’라던가, ‘무역연합’, ‘나부 행성’ 등과 같은 가상의 명칭들이라 하겠다.



물론 스타워즈를 감상함에 있어 나부 행성이 어디 박혀있는지, 무역연합이 무엇에 대한 상징인지, 그딴 거 몰라도 얼마든지 재밌게 볼 수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제로 본 사람에 한해 적용될 수 있는 무지에 대한 똘레랑스라 하겠다. 원래가 그런 것이다. 특정 작품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잘 아는 경우, 이는 실제로 작품을 읽어서라기보다는 본 읽은 척 매뉴얼을 읽어서일 확률이 더 높다 할 것이다.



고로, 소탐대실이라고 아래 정리한 당 작품 관련 특수 용어들에 대해서는 괜히 읽은 척 선빵을 날리기 위한 공격용 스킬로 사용될 것이 아니라 특정 부위만을 선호하는 일종의 페티시(fetish)적 취향의 적들에 대한 방어용 스킬로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하겠다.



먼저, 전 세계를 삼분하고 있는 세 개 국가의 이름들이다.



-오세아니아 :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나라.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대서양의 여러 섬들과 아프리카의 남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영국사회주의(영사)를 근본 철학으로 하고 있다.



-유라시아 : 포르투갈에서부터 베링 해협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북부 전 지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신(新) 볼셰비즘’이 근본 철학이다.



-동아시아 :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과 베트남, 대한민국, 몽고 등이 이에 포함된다. 동아시아는 ‘죽음 숭배’의 이념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단 여기서 주의할 것 하나. 중요한 것은 세 개의 초강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 나라의 이율배반적 관계라 하겠다.



앞서 내용 요약에서 언급한 바 있듯, 주인공 윈스턴은 현재 적대국가로 증오하고 있는 유라시아가 사실 몇 년 전에는 동맹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쟁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총체적 회의에 빠져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은 오브라이언이 주었던 논문 형식의 책에 나오는데 사실 세 나라의 전쟁은 서로의 운명을 건 전면전이 아니라 세 나라의 통치자들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했던 것이다.



즉, 현재 끊임없이 치러지고 있는 전쟁의 기본적 목적은 적의 침략 때문도 아니고, 세계 정복의 야욕 때문도 아닌 국민의 전반적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공산품들을 완전히 소모함으로써 잉여생산물을 두고 벌어질 수 있는 계급투쟁 및 내적 반란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데 있는 것으로,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 동아시아는 그동안 정기적으로 동맹과 적의 관계를 서로 교대하는 쇼를 해 내국민들을 속여 왔을 뿐 사실은 체제 유지에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들이었던 것이다.



이는 과거 남과 북의 위정자들이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겼던 시스템을 거의 정확하게 짚은 대목으로, 최근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서적 리스트 1위에 올라야 마땅했을 당 서적이 그동안 오히려 반공교육을 위한 권장서적으로 쓰였다는 점은 대한민국의 군 수뇌부에게 본 읽은 척 매뉴얼의 보급이 얼마나 절실한지에 대한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주요 용어들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텔레스크린 : 간단히 말해 송신과 수신이 동시에 이뤄지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툴이라 하겠다. 즉, 당의 소식과 지령을 전달하는 티브이로 작동하기도 하고 각 개인의 행동과 말을 감시하는 몰카이기도 한 것이다.



습관적으로 몰카 자체를 빅 브라더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마이크로폰 : 텔레스크린이 없다고 찧고 까부는 당원들을 위해 만든 도청장치. 텔레스크린이 없는 야외에서도 당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메카니즘적 설정이라 하겠다.



-이중사고 : 이중사고란 말 그대로 서로 모순되는 생각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원래 진리부에서 근무하는 주인공이 과거의 기록을 왜곡하는 중에 스스로 왜곡하면서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모순을 가능케 한 사고방식으로, 사람에 대한 애증의 마음을 동시에 갖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으며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뱀의 혓바닥은 갈라졌다는 전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 분간 증오 : 이는 오세아니아 사회에서 매일 진행되는 것으로 영사의 첫 반역자인 골드스타인과 적국으로 상정된 유라시아에게 저주를 퍼붓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 정도로 네거티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 오후 5시면 동작그만의 자세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다른 사람은 매국노라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대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101호실 : 아련한 모텔방, 혹은 반지하의 추억이 떠오르는 독자도 있겠으나 당 서적에서의 101호는 가혹한 고문을 일삼는 애정부 내에서도 가장 최악의 공포가 대기하고 있는 그야말로 인생막장을 의미하는데, 그 최악의 공포라고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공포의 절대값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텔레스크린 등을 통해 수집된 개인정보와 취향, 과거의 트라우마 등을 종합분석하여 내놓는 개인별 맞춤형 공포라 할 수 있다.



“...말해 보게. 빅 브라더에 대한 자네의 진심은 뭔가?”


“그를 증오합니다.”


“그를 증오한다고? 좋아. 결국 자네가 마지막으로 밟아야 할 단계가 코앞에 다가왔군. 이보게. 윈스턴. 자네는 빅브라더를 사랑해야만 하네. 그에게 복종하는 걸로는 부족하단 말일세.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를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하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윈스턴을 간수들 쪽으로 밀치면서 덧붙였다.


“101호실로!” (본문 p.395)



참고로 주인공 윈스턴이 101호실에서 겪는 공포는 공교롭게도 ‘쥐’와 관련이 있다.
 





 

조지 오웰의 작품 중에서 어떤 작품이 가장 읽은 척 우선 서적이 될 것인가에 대해 필자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동물농장>, 모든 작품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할 작품으로는 <카탈로니아 찬가>, 생애 마지막 유작이자 역작인 <1984>를 두고 어떤 작품에 대한 읽은 척이 독자에게 가장 득이 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는 얘기되겠다.



결국, 필자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1984>를 선택하였다. 작가들 중에는 초기 완성된 세계관을 다른 구조와 관점으로 반복재생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조지 오웰의 경우는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며 조금씩 성숙해지기 시작한 세계관을 마지막 작품에 집대성한 경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늘 강조하건데, 본 읽은 척 매뉴얼은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책 얘기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호신용 매뉴얼일 뿐이다. 결코 자신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나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읽은 척 매뉴얼 저자
딴지 편집장 너부리(newtoil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