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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몽유도원기 (夢遊桃源記)

 

2009.10.08.목요일
불기둥

 


 거리를 거닐다.

 

최근 거리를 거닐다 보니, 군데군데 종종
나라는 인간의 인생과 전혀 무관한 

 


국립 중앙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 여민해락(與民偕樂)

 

이런 포스터가 여기저기서 눈에 뜨이곤 했다.

 

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은 지난달 29일 개막 이후
5일까지 모두 3만명 가까이 다녀갔다고 하더라.
4일 하루에만 8000명이 몰려들었다는데
사람들이 추석때 술은 안먹고 대체 뭐하는걸까.

 

박물관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몽유도원도> 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전시 이틀째부터 몽유도원도에 별도의 줄을 만들었다"고 했다는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4시간 기다려서 단 30초.
10명이 한조가 되어 한줄로 나란히 서서 단 30초.
그나마 어두운데서 멀리 실루엣만 구경;;했다고 하는데.

 

몽유도원도가 무엇이길래 왜 그런 짓을 할까.
그냥 우리나라 옛날사람이 그린 그림이잖아.
그런거 그냥 박물관 가면 늘 볼 수 있는거 아닌가.

 

몽유도원도, 하면 생각나는것은
조선의 어떤 세자가 꿈 얘기를 누구한테 들려줬더니
그 사람이 그걸 듣고 그림을 그렸다는 정도.

 

그정도까지는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겠는데
그 이야기 뒤에 첨부된, 칼라인지 흑백인지 분간이 안되는 

 

 

이런 얼룩;;;을 보면 참 이미지가 깨지더라구.

 

나는 국사 교과서에서, 미술 교과서에서,
기타 등등 역사를 다룬 책 귀퉁이에서.
저 이미지 사이즈의 반도 안되는 얼룩;;;을 여러차례 본 적 있다.

 

그때마다 이런거 없이 이야기만 써놨다면 좋았을것을.
저 그림이 오히려 스토리를 버린다는 생각을 했다.

 

아 나도 저런거 만들줄 안다. 여러번 남이 만든것도 봤다.
니스칠 안한 장판에 쉬를 하고나서 석달쯤 놔두면 저런게 생긴다.
저런게 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
저거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거잖아?

 

그런데 몽유도원도를 검색해 보았더니
다음의 다섯 항목이 소개 되더구나.

 

작가 : 안견(安堅) 
종류 :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크기 : 38.7×106.5cm 
제작연도 : 1447년(세종 29) 

 

이거까진 밋밋하니 국사나 미술 시험에 나올법한 내용이군.
설명하는 항목이 네개나 다섯개면
딱 객관식으로 내기 아름답잖아.

 

아, 그러나 결코 다음 항목인
소장 :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 
이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미안하다. 나 이거 일본껀거 지금 알았어.
그냥 우리나라꺼길래 당연히 우리나라에 있는건줄 알았어.

 

지금 안보면 평생 다시 못본다는 말도 들리길래
그냥 오래 된거니까 부식 방지를 위해
깜깜한 질소가스탱크속에 넣어놓은줄로 알았어.

 

교과서에 저런 얼룩;;;으로만 소개된 이유도
저게 우리나라에 없어서, 제대로 된 사진자료가 드물었기 때문이구나.
그렇다면 몽유도원도가 얼룩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가 바로 얼룩이었던 것이었던구나.

 

저걸 실제로 감상해본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저걸 실제로 감상해보지 않은 일본인은 별로 없을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던
나의 마음이 얼룩이었던거지.
이제, 몽유도원도가 대체 무엇인지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두 선비가 꿈에 무릉도원을 거닐다.

 

1447년 4월 20일 밤,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이 꿈을 꾸었다.
그는 사육신중 하나가 된 박팽년과 함께 꿈에서 무릉도원을 거닌 후
오밤중에 눈을 뜨자마자;; 급히 안견을 불러 꿈;;그림을 그리게 시켰다.

 

안견은 아 씨바 지가 왕자면 다냐;; 투덜거리면서
당장 그날 밤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3일만인 23일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오오오.
3일이면 내가 딴지기사 하나 쓰기에도 벅찬데 오오오.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 라는 제목 바로 아래에
이 그림이 천년을 가길 바란다는 축사를 적었고
그 다음에 안견의 그림이 들어간다.

 

그림에 이어 안평대군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적었고
그 아래에 당대 최고의 문사 20명이
찬미하는 글을 자필로 적은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다.

 

몽유도원도는 그림 도(圖)자가 들어가지만
이렇게 알고보면 이것은 단순한 그림만이 아닌 것.

 

그러니까 이건, 안평대군이 제목과 본문을 포스팅;했더니 

 



세상에서 제일 비싼 짤방.

 

안견이 짤방을;; 단 다음에 

 



세상에서 제일 비싼 리플.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
당대의 본좌 21명이 모조리 리플을;;;달았다고 생각하면 돼.
짤방;; 자체는 길이 1미터에 불과한데
리플이 글쎄 두루마리 두 권에 길이가 20미터짜리야.

 

몽유도원도라고 하면 "그림"인줄만 알았어.

 

그러나 이건 제목과 본문과 짤방과 리플이 합쳐진
하나의 기념비적인 결과물이다.

 

마이클 잭슨이 만든 위 아더 월드 공연처럼.

 

 

 꿈은 꿈결처럼 흘러갔다 흘러오고.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 안평대군은 셋째 아들.
둘 다 어머니를 소헌왕후로 하는 친형제였어.
세조, 즉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을 죽인 사태가 계유정난이다.
1453년의 계유정난 이래 아무도 이 그림이 간 곳을 몰랐다.

 

1893년, 일본의 가고시마에서 드디어 발견되었는데
당시의 소장자는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장의 후손이었다고 하더군.

 

1939년, 몽유도원도는 일본의;;;;국보로 지정됐고-_-
1950년 초 덴리대(天理大)가 구입해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꺼를 우리한테 여태까지 세번 빌려줬다고 한다.
첫번째는 1986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전 기념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로의 이전을 기념한 것이었다니.
시작부터 여러가지로 기분 나쁘게 하는군.

 

1996년 12월 호암미술관의 조선전기국보전이 두번째고
2009년 9월, 국립 중앙미술관 100주년 기념이 세번째다.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 전시회는 11월 8일까지이지만
몽유도원도만은 9월29일부터 10월7일까지, 단 9일동안만 전시했다.

 

우리꺼를 남한테 빌렸으니, 다시 남에게 돌려줘야 하니까.
걔들이, 이게 니껀줄 착각하기 전에 내놓으라고 했으니까.

 


 현실에서 꿈과 만나다.

 

1) 첫째날.

 

10월 5일 월요일. 열두시 반에 박물관에 도착하는 순간
마음속 깊이 아 씨바-_- 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아님. 나땐 저거 딱 두배였음.

 

아 그래, 웬만한 회사랑 학교는 다 오늘 쉬는 날이었지.
이자식들. 쉬는 날이면 건전하게 술먹고 자지 않고 뭐하는짓이냐.

 

긴 사람의 줄이 몇 겹을 굽이굽이 돌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1분에 한걸음의 속도로 움직였다.

 

이것을 예상못하고 나는 밥도 안먹고 왔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아무도 없을테니 간단히 보고 밥먹으려고.

 

재빨리 주변에서 먹을걸 구할 수 있나 찾아보았어.
그런데 월요일이 휴관일이라 매점도 카페테리아도 닫았다.
하다못해 화장실에 불도 안켜지더라고.

 

근처 매점에는 과자;와 물;;밖에 없었어.

 

정문에 있는 패밀리마트까지 가 보았지만
이미 그곳에도 거의 모든 식품이 매진되어 있었다.
간신히 몇 개 남은 빵과 우유를 사서, 씹으며 계속 줄을 섰다. 

 

 

세시간 넘게 꾸물꾸물 줄을 섰더니
어떻게 기획전시실 입구;까지는 도착했다.
전시실 내부에는 몽유도원도 말고도 여러가지 유물들이 있었다.

 

여러가지 유물들을 구경하느라 줄이 흐트러졌다.
나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도자기와 귀고리와 고서적과 술잔과 그림을 눈여겨보았다.

 

그 순간 안내원이 앞에서 소리친다.

 

"몽유도원도 보실 분들은 빨리 앞쪽으로 붙어 줄 서세요.
이쪽 줄에 안 서시면 몽유도원도 못봅니다."

 

...아 그런거였어?;;;;;
여기에 있는거 순서대로 다;;;봐야 몽유도원도 볼수 있는게 아니라
그냥 그 줄에 빨리 서기만 하면 되는거였어?

 

그러고보니 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 슬그머니 앞으로 빠지더라니?
어쩐지 안내원이 계속 "끼어들지 말게 하세요!" 라고 소리지르더라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 그걸 몰랐던것같다.
전시실 내부에 온통 흩어져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던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순식간에 한방향으로 수백명이 달려나갔다.

 

...그러니까 새삼스럽지만, 왜 우리가 우리꺼를 보려고 이지랄을...

 

몽유도원도를 볼 수 있는 줄 끝자락에 간신히 붙었다.
그런데 이제 줄은 5분에;; 한걸음의 속도로 이동한다.

 

"지금;;;;;부터 한시간 반 남았습니다."

 

나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
세시간이면 다 보고 나올수 있을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줄만 서느라고 네시간 반을 보낼줄은 몰랐어.
세시간을 날린것이 억울했지만, 줄을 벗어나와 밖으로 향했다.

 

내일 다시 보자. 박물관 개장전부터 기다려주겠다.

 

오늘 얻은 몽유도원도 감상을 위한 노하우.

 

첫째, 무조건 박물관 개장전에 일찍 와서 기다린다.
9시 개장이면 8시에 와라. 그러면 딱 한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9시 개장이라고 9시에 오면 최소 세시간 기다린다.

 

둘째, 전시실 내부에 와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기웃거릴때
일직선으로 몽유도원도를 향해 질주한다.
오늘은 이거만 보면 된다. 다른건 다음에 봐라.

 

오늘이 목요일이니 어제 끝났지. 다 끝나고 말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런 노하우를 잘 기억해 놓으면
다음에 또 걔들이 우리껄 우리한테 빌려줄때 반드시 도움이 될꺼야.
한 10년뒤면 틀림없이 또 빌려줄꺼야. 선심쓰듯이. 한 1주일쯤.

 

2) 둘째날.

 

10월 6일 화요일,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
오늘은 제대로 달려야 하는 날.
컨디션 조절을 위해 30분동안 조깅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 입구에 여덟시에 도착했다. 

 

 

전시실로 향하는 대로는 사람 한명 없었다.
역시 개장 전에 오니 상쾌하구나. 

 

 

편의점 앞에 도착하니 슬슬 한두명씩 보이더군.
약간 불안해졌지만 이정도는 큰 지장이 없겠지. 

 

 

잔뜩 쌓인, 오늘 새로 진열해야 할 음식물 박스와 

 

 

휑하니 빈 진열장이, 어제의 아비규환을 말없이 설명해주고 있다. 

 

 

무료 입장이지만 입장권은 받아야 한다.
8시 10분, 내 앞에는 20명밖에 없었다.
역시 개장 전부터 기다리는게 진리. 

 

 

8시 20분, 60명의 사람들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에서 1/4 지점에 쪼그려 앉은
파란거 겨드랑이에 낀 아줌마 바로 뒤가 내자리.
지금은 내 가방이 대신 줄 서고 있는 중. 

 

 

8시 30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8시 40분,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짐작하는게 아니라, 안내원들이 세면서 무전치는거 들었다. 

 

 

표 나눠주는건 9시.
이제 질주 개시 5분 전,

 

 

 

표를 나누어 받고 

 

 

사람들은 질주하기 시작한다.
나처럼 두번째 이상 온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처음 온 사람들은 남들이;;; 뛰니까 그냥.

 

앞에 안내하는 언니가 표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돌격하는 사람들의 기세에 눌려 표의 ㅍ;소리도 못하고 그냥 서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는 차이를 벌일 수 없다는걸 안다.
하지만 신참들과, 두번째 이상 온 사람들의 차이는
이제 안에 들어가서 드러난다.

 

우리들은 들어온다고 끝이 아니라는걸 안다.
이 안에서도 몽유도원도를 보는 바로 그 줄에 붙어야 한다는것을 안다.
어제는 들어오면 아싸 다 끝난거라고 생각했던것이 패인이였지.

 

사람들이 일단 뛰어서;;;들어온 다음에
갈 곳을 몰라 어리둥절 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는동안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오늘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 몽유도원도.

 

 

남이 빌려준 우리껄 내일 내놓으라 그러니까
오늘은 닥치고 뛰어야하는거다.

 

다른건 남이 빌려준게 아니니까 오늘 안본다고 못보는게 아니다.

 

 

오늘은 저런 구시대의 잔재, 과거의 유물따위(...)는 안중에도 없는거다.
저런건 나중에 와서 천천히, 느긋하게 봐도 되는거다.
자 빨리 뛰자. 목표가 앞이니 속도를 높이자.
근데 왜 난 그러면서 사진이나 찍고 있는거냐.

 

 

 헉헉헉ㅎ...뱆ㅅ도ㅔㅂ재ㅓ후[ㅣㅐㅁ뉴ㅣ아ㅓㅂ루ㅏ!!!!!!!!!!!!!!!!!!!!!!!

 

 

...드디어 몽유도원도를 기다리는 라인에 접어들었다.
이제 질주하던 사람들이 차분히 경보;한다.
줄은 한사람 폭이니, 여기 들어오면 앞질러질 걱정은 없으니까.

 

어제 "여기부터 한시간 반" 이라던
그 끝이 없을것 같던 통로를 입장 30초만에 내딛고 있다.

 

이제 드디어 몽유도원도다. 라고 승리의 외침을 지르는데, 

 

 

몇몇 사람들이 진열창에 바싹 붙어서 감상하고있다.
역시 뛰는게 진리로구나. 나는 성공한거다.
자 그럼 나도 이제 저 사람들 틈에 끼어 유리창에 코를 붙이고..

 

응? 그런데 나와 저 사람들 사이에는 안전선이 쳐져있네.
바닥에 있는 선은 여기를 넘어오지 마시오 라는 표시같고.
대체 그들은 어떻게 여길 넘어간거지? 

 

 

저 선을 넘어 들어가려니까 안내원이 가로막는다.

 

"여기로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이 밖에서 보세요."

 

아, 그러니까 저 안전선을 치는 기둥은
문 열면 그때서야 창고에서;;;꺼내오는거로구나.

 

문 열고 창고에서 꺼내와서 설치하기까지의
20초 될까 말까 하는 시간.
딱 그 시간 내에 도착하면 

 

 

창에 찰싹 붙어, 

 

 

몽유도원도를 눈으로 핥고, 빨고, 씹어먹듯이 감상할 수 있는거다.

 

저 자리에 있는 사람한테는 안내원이 빨리 보고 가라는 소리도 안하더라.
어차피 저 사람들 다음에는 줄선 사람이 없으니까.

 

줄선 사람들은 저 사람들의 장벽 뒤의;;;자리를 기다리는 거니까.

 

그래, 나는 일찍 들어왔다.
달리고 달려서 1등석에 들어오긴 했다.
그러나 저 특등석이란게 있는줄은 지금 알았다.
특등석을 차지하는 사람은 하루 첫 입장객 5명 내외.

 

안전망을 꺼내와서 설치하기 전의 시간.
전시창에 달라붙을 수 있는 것이 묵시적으로 허락되는 유일한 시간.
박물관에서도 저들을 강제로 뜯어내지는;;못할터.

 

이는 하루에 제일 처음 입장한 단 몇명에게만 허용되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래, 뭐 나도 안전선 바로 밖의 1등석에서
몽유도원도를 멀리 구경하기는 했어.

 

조명도 어둡고 그림도 칙칙해서
30센치만 떨어져도 안보이는 그 그림을
그림 1미터 밖의 1등석에서 구경하기는 했어.

 

저 사람들이 안나가서, 저 사람들 어깨 너머로 홀끔거리기는 했어.
나도 저 사람들의 마음을 아니까, 비키라고 말도 할 수 없었어.
어차피 나의 거리에서는, 저 사람들이 비켜도 제대로 볼 수 없지. 

 

 

이야 그림 참 감동적이다-_- 

 

 

이야 글씨 참 획이 살아있다-_- 

 

 

이야 참 잘 구경했다-_-

 

구경;;;은 잘 했지만 이런걸 감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것같아.
그러니까 이번 전시중, 3만명이 훨씬 넘게 방문했다지만

 

실제로 몽유도원도를 감상한 사람은 50명 남짓일꺼다.

 

한 1미터 앞에서 구경;;하니까 뭐 보이는게 없다.
1등석과, 하루 단 20초동안에만 잡을 수 있는 특등석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더라.

 

나는 그래도 일찍 와서 별로 기다리지도 않고
구경할;;;; 시간도 충분히 가졌지만
이걸 세시간 기다려 30초 구경했다면 정말 열받았을꺼다.

 

오늘의 유일한 수확은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 김종서 -

 

김종서(金宗瑞) 장군의 친필을 내가 보게 되다니.

 

나는 나와서 몹시 침울했다.
저 거리에서면, 아무리 오래 봐도 이건 여전히 얼룩에 불과하다.
내가 장판에 그린 얼룩 보자고 이짓을 한건 아닌데. 

 

 

약식, 유부초밥, 오징어 동그랑땡의 전투식량을 먹으면서
나는 오늘의 패인을 분석했다....

 

니가 뛰면서 취재랍시고 사진찍으니까 그랬지 밥팅아.
우사인 볼트가 사진찍으면서 뛰면 우승하겠니.

 

오늘 몽유도원도의 진정한 감상을 위한 노하우.

 

첫째, 개장 전에 줄을 선다.
둘째,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한다.
셋째, 전속력으로.

 

그러니까 이걸 마음에 담아두고, 내일 다시 보자.
아직 하루 더 남았잖아.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걸어 보겠어.

 

또 다 끝난 다음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
하지만, 아까 말했잖아.
다음에 또 걔들이 우리껄 우리한테 빌려줄때 참고하라구.
그때 반드시 나한테 고마워 하게 될테니까.

 

3) 셋째날.

 

10월 7일 수요일. 다섯시 반에 기상.

 

오늘은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 날이니 스쿼트로 기합을 넣고.
어제처럼 목적지에 랄라랄라 여덟시 10분에 도착했더니 

 

 

 

아 제대로 좆망이에요-_-
내 앞에 벌써 80명이 있어요.

 

이 사진 보면 80명은 안되어 보이겠지만
한명 일찍 와서 기다리면 나중에 두세명 끼고.
서너명 일찍와서 기다리면 나중에 한무리 이루고.
입장 직전엔 진짜 이 사진 두배로 불어났어요.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아는 이해심 많은 나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의롭고 올바른 나지만 뭐라고 하지 못했어요.

 

아 오늘이 마지막 전시날이라고
사람들이 제대로 결심을 하고 온것이었군요.
구태의연하게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온 내가 병신이네요.
오늘도 어제랑 똑같은 꼴 날꺼같아요 흑흑.
죽도록 달려서 멀리서 장판 얼룩이나 좀 구경하고 가게 되나요. 

 

 

8시 20분에 이미 100명이 넘었고 

 

 

8시 30분, 어제랑 같은 시간에 오면 될줄알고 계단을 오른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하며 질주한다. 

 

 

8시 40분. 이제 200명은 확실히 넘는다.

 

누차 말하지만, 왜 우리 그림을 보려고 우리가 이 지랄을 해야 하는가.
지금 열도에서는, 이런 지랄을 뉴스에서 보고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이걸 보려고 일부러 빌려준 건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80명. 어제보다 60명 많다.
잘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 그냥 뛰는거다.

 

8시 50분. 개장 10분 전인데 앞이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드니까, 10분 전인데 표를 나눠주기 시작하는거다.
사람들은 이런 무질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모르니 당황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이 세 번째다. 이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
나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앞으로 뛰어나갔다.

 

-2부에서 계속

 

불기둥(bakky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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