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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자의 부산일기] 첫 번째 일기, 다리오 아르젠토를 만나다

 

2009.10.13.화요일
허기자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해운대 열기가 작년만 못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작년까지 해운대 메가박스가 메인상영관 역할을 했다면 올해는 CGV 센텀시티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신세계와 롯데백화점이 모여 있는 센텀시티는 부산영화제를 찾은 관객과 백화점을 방문한 고객이 섞이면서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자갈치 시장의 시끌벅적한 풍경을 연상케 할 정도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70개국 355편을 상영하며 역대 최다를 자랑하는데 세계 영화제를 통틀어 5위권(칸, 토론토, 베를린, 베니스, 그리고 부산)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영화)도 역시 역대 최다인 144편으로 이 또한 세계 영화제 10위권 규모라고 한다. 더욱 높아진 부산영화제의 위상답게 올해 부산을 찾은 해외 게스트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할만하다. 김동호 위원장이 4년 동안 초청에 공을 들였다는 의 코스타 가브라스,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 <흑사회>의 조니 토(두기봉), <서스페리아>의 다리오 아르젠토 같은 감독을 비롯해 할리우드 유명배우 조쉬 하트넷과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의 유명배우까지.

 

이들을 향한 내외신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구름같이 쇄도해서 개별 인터뷰 없이 기자들을 모아 라운드 테이블로 진행이 됐다. 특히 다리오 아르젠토의 경우, 무려 14매체가 참여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다만 다리오 아르젠토의 최신작 <지알로>(2008)만 보고 참석한 기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심도 깊은 질문과 대답이 이뤄지지 않아 아르젠토 마니아인 모 기자는 인터뷰 뒤 얼굴 가득 불만이 가득했더랬다.)

 

안 그래도 부산영화제 주말 기간 동안 배우를 제외하고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이라면 단연 다리오 아르젠토다. 호러 영화계의 거장이라는 수사가 무색하리만치 빼빼 마르고 창백한 인상으로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아르젠토는 기대 이상의 환대로 다소 들뜬 기분이 역력했다. 이번 부산영화제가 마련한 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 걸작선 중 첫 번째 상영작 <수정 깃털의 새>가 끝난 후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수많은 영화제에 참석해봤지만 개막식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처음 봤다."며 "정말 스펙터클한 영화제”라고 엄지손을 추켜세워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수정 깃털의 새>(1969)는 다리오 아르젠토가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던 중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뒤 같은 해 직접 연출한 감독 데뷔작이다. 개봉과 함께 대중적인 성공은 물론 평단의 찬사를 받은 그는 이후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1970) <딥 레드>(1975) <서스페리아>(1977) 등을 연달아 내놓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모국에서는 지알로(giallo, 이탈리어어로 노란색 192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큰 인기를 모은 노란색 표지의 싸구려 장르소설을 일컫는 말로, 1960년대 마리오 바바의 출현과 함께 이탈리아 호러영화를 통칭하는 용어가 됐다.)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세계적으로는 호러영화의 세계유산으로 지금껏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수정 깃털의 새>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최고작이라 할만하다. 대중적인 인기도에 있어서는 분명 <서스페리아>가 앞서지만 <수정 깃털의 새>는 아르젠토 영화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영화는 미국 작가 샘이 출판 차 이탈리아를 방문했다가 검은 장갑을 낀 검은 옷의 살인마가 한 여인을 살해하는 광경을 목격한 후 직접 쫓는 과정을 그린다.

 

사실 아르젠토의 영화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독창적인 살해 장면과 리듬감 있는 장면 구성을 위해 이야기의 비약을 밥 먹듯 구사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여 아르젠토의 영화는 걸작과 졸작의 구분이 굉장히 명확한 것이 특징인데 <수정 깃털의 새> 역시 이야기적으로 빈 구멍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다만 아르젠토는 그만의 인장으로 이를 메우며 이야기의 한계를 매혹적인 장면으로 극복한다. 그것이 여간 중독성이 있는 게 아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핏빛 영롱한 원색의 배경, 여성 살해 장면에 유독 공을 들이며 희생자의 고통을 즐기려는 듯한 악취미적 연출, 히치콕주의자답게 히치콕 영화의 주요한 요소에 대한 제멋대로의 패러디와 오마주(<수정 깃털의 새>에서는 <이창>의 관음증적 시선과 <사이코>의 죄의식에 사로잡힌 살인마의 영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반드시 인상적인 살해 장면으로 끝을 맺는 엔딩신 등 아르젠토의 작품은 영화 그 자체보다 특정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잣다.

 

 

 

그래서 아르젠토의 영화는 평작이거나 졸작이라도 반드시 하나 정도는 기억 속에 보관해둘만한 장면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경력은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급격히 하락세를 걷고 있지만 비교적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슬립리스>의 경우, 고블린의 바로크 음악에 맞춰 살인이 이뤄지는 기차 안에서의 리듬감 있는 추격신은 거장의 졸작은 평범한 감독의 걸작보다 훌륭하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그대로 증명한다. 그러니 <수정 깃털의 새>에 대해 더 이상 떠들어 무엇 하리오. (딱 하나만 덧붙이자면, 세계적인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코네와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지옥의 묵시록><마지막 황제>)까지 참여했다!)

 

10월 10일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다리오 아르젠토는 그 자신을 일러 "다리오 아르젠토를 만나는 건 힘들다.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아르젠토를 장시간 여행한 이후에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을 살짝 비틀자면, 다리오 아르젠토가 40년간 이어진 긴 활동 기간 끝에 부산을 찾았듯이 한국의 관객 역시 그를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의 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젠토가 방문한 부산에서, 그의 걸작을 관람하며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환상적인 일이다. 평생에 한 번 오지 않을 바로 그런 경험을 다리오 아르젠토가 한국의 팬들에게 선사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고양이>를
놓쳐 두고두고 한으로 남은
허기자(edwoo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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