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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배반의 장밋가시

 

2009.10.12.월요일
산하

 

 

좋은 일에서건, 그 반대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능성이 현실로 닥칠 때 그 반응은 극대화하게 마련이다. 일종의 배반이 주는 통렬함이라고나 할까. 베트남 축구팀이 한국 국가 대표 팀을 상대로 누구도 상상 못했던 1승을 기록했을 때 베트남 감독은 "해방 전쟁 승리 이후 최고의 기쁨이다."라고 부르짖었다. 반면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에 큰 코를 다치고 고향 앞으로 돌아갔던 이탈리아 팀은 당연히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아야 했다.

 

좀 있으면 4년을 꽉 채우는 기간, 험난하기로 소문난 프로그램에 몸을 담다 보니 흔히 ‘인간 말종’이라고 일갈해 버리기에 충분한 이들을 꽤 만나 봤다. 그런데 정작 우리 분노의 임계치를 시험하는 것은 원래 인생이 구린, 즉 볕들 일 없는 쥐구멍에서 살아왔고, 그들 자신 정신적 외상을 입고 있던 사람들의 패악질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말종과는 거리가 서울 부산은 될 것 같은, 또 응당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거침없이, 부끄럼도 없이 사람을 짓밟고 무시하고 패대기치는 것을 보았을 때, 참을 인자를 허공에 쓰게 되는 것이다. 

 

근처의 생활 수급자나 지적 장애인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이장 주제에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썩은 밥 먹이고 돼지우리 같은 초가에 재우면서 노예로 부리는 경우도 있었고, 불가에 귀의한 신분으로서 어떤 사건을 통해 훌륭한 관대함을 보여 주어 매스컴도 짜하게 탔던스님이 내연의 여자에게 즐겨 칼을 던지는 풍광을 목도하기도 했었다. 그 숱한 케이스들 가운데 나를 가장 격동시켰던 사람이라면 나는 서슴없이 어느 지역의 기독교 전도사 (목사일 수도 있다)를 들 것이다. 

 

기실 나는 그의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가정폭력이 심하다는 그의 집을 방문했지만 그 아내가 방송을 하게 되면 목회자로서의 인생이 끝장나는 것이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울먹이는 것을 듣고는, 그러시라고 하고 돌아온 것이 인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내가 그리 흥분했을까. 왜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좀 더 아내를 설득해서 그 성직자(?)의 이중생활을 까발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주먹을 부르쥘까.

 

그것은 피해 상황을 증언하면서 아내가 했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알콜을 금기시하는 한국적 기독교인답게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도 주먹을 즐겨 휘두르던 남편이 하루는 모질게 한쪽 뺨을 돌려세운 다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왼뺨 맞았으니까 오른뺨도 돌려 대. 이 X아. 넌 성경도 안 보냐."

 

아마 그 성직자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평생의 사표로 삼겠다고 서약했을 것이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라는 예수의 말이 힘센 자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부당한 폭력에 대한 연민이며, 그마저 감싸 안으려는 사랑을 표현한 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도 교회 강단에 서면 그렇게 얘기할 것이고, 그 크신 사랑을 설파할 것이며,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써 달라고 두 팔 들어 올릴 것이다. 그래 놓고는 집에 들어와서는 그 두 팔로 아내의 왼뺨과 오른뺨을 골고루 때리며 성경을 폭력적이고도 파렴치하게 인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가 이 꼴을 보았더라면 아내에게 이렇게 부르짖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옷을 팔아서라도 칼 하나 장만하십시오!"(누가복음 22:36)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한 성직자의 두 얼굴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일종의 배반감 때문이다. 그래서는 정말로 아니 될 사람이, 남이 그런다 해도 오히려 신명을 다해 막아야 할 사람이 그 도리와 의무를 송두리째 저버리고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그를 강요할 때, 우리는 배반의 장밋가시에 손톱 밑을 찔리게 된다. 그리고 이 비루한 시대, 배반의 아픔은 계속된다.

 

얼마 전 수의 계약을 통해 자기 마누라가 속한 단체에 특혜를 주었다고 구설수에 오르시기도 한 , 한국 노동 연구원 이라는 국책 연구 기관의 기관장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는 비슷한 아픔에 가슴이 아렸었다. 노조 가입률이 10퍼센트를 갓 웃도는 나라,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일이 점차 가문의 영광이 되어 가는 사회, 노동 3권은 커녕 "시키는 대로 일하고 따르고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일상이 된 형편에서 전경련 산하 정책 연구원도 아니고, 노동 문제를 다룬다는 국책 연구원장님의 입에서 어찌 "노동 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것이 내 소신이다" 는 말이 튀어나올 수 있었을까. 그런 소신을 가진 분이 어쩌다가 저런 자리에 가시게 되었단 말인가.   "왼뺨을 맞았으니 오른뺨을 돌려대라"던 전도사가 다 무색할 지경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문제의 소신과 해당 직위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를 배반한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 낸 보도 자료를 보면 노동 연구원 원장님은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 기염을 토한 적도 있으시다고 한다. 글쎄 이쯤 되면 배반에 발끈할 여유조차도 상실되고 만다. 이는 배반이 아니라 반역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보장된 공무담임권의 향유자로서 자연인 박기성씨가 맡지 못할 직위와 자리는 없다.   정권 교체에 일익을 담당했다 자부신 드높은 뉴라이트 출신이라니 국회의원을 시키든, 외무부 장관을 맡든, 까짓거 차기 대선에 용꿈을 싣든 내 알 바도 아니고 뭐라 할 처지도 아니다.  하지만 노동연구원장만큼은 안된다.   그 이유는 "왼뺨을 맞았으니 오른뺨을 돌려대라"고 으르대는 인격장애자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목사만큼은 사양해 줬으면 하고 소망하는 이유와 같다.

 

 

 

산하(nasanh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