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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아이의 성적을 올리는 법

 

2009.10.13.화요일
김지룡

 

아이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끊임없이 부모의 기대를 배신하는 일이다. 그것이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대나 바람대로 큰다면? 그건 강아지 새끼지 인간의 새끼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지능이 있다. 지능이 있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따라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의미다. 설사 부모의 말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좋은 성적을 얻기를 내심 바란다면 차라리 성적이 나쁠 것을 기대하자. 공부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성적이 나빠도 세상사는 데 별 지장 없다고 말해주자.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배신하고 좋은 성적을 얻어올 것이다. 100% 보장은 없지만,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반쯤 농담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공부가 자신의 삶에서 상당히 중요할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그런데도 가방을 내팽개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다. 공부에는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힘든 일을 참고 견디는 것은 자기 자신을 좀 더 만족스러운 상태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런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라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잘했다 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느끼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가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좋은 옷을 입히고, 남들이 다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햅틱 휴대폰을 사준다. 생일 때 반 아이 모두를 초대해 파티를 열고, 출석률이 저조하면 아이 자존심이 상할까봐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자존심을 세워주려면 한도 끝도 없다. 옆집 아이에 뒤처지지 않도록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조기유학을 보내야 한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게 하기 위해 부모가 대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 주어야 한다.

 

아이의 자존심 세워주면 아이가 자기 삶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까.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불행한 삶을 사는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다. 자존심의 근원은 소유, 성취, 직책, 외모 같은 것인데, 모두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나온다.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 얼마나 성적이 뛰어난지, 얼마나 외모가 뛰어난지, 얼마나 직책이 높은지...자존심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아이들도 친구 물건이 자기 것보다 비싸거나, 친구 성적이 더 좋으면 자존심 상한다는 말을 곧잘 한다. 자존심은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무너지기 쉽다. 자존심에 의지해 사는 아이들은 늘 불안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심리학에서는 자존심보다 자존감을 더 강조한다. 한자의 뜻은 둘 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지만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자존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자존감이 높으면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는 일이 없다. 남보다 낫다고 우쭐대지도 않고, 남보다 못하다고 위축되지도 않는다. 자존감은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은 부모나 아이 모두 피곤한 일이지만,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은 무척 쉽고 간단하다. 딱 하나만 하면 된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칭찬하는 일이다. "네가 내 딸(아들)이라서 너무 행복하다." "너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이런 칭찬에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어떤 인격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아이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칭찬이다.

 

자존감이 있는 아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할 수 있다. 자존감이 없는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는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에 상처를 받는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남을 비난하고 공격한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아빠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사회생활을 참고 견딘다. 그런데 아빠의 사랑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자존감의 토대인 존재에 대한 칭찬은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들의 사랑은 종종 조건부 사랑처럼 느껴진다.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아이를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흡족한 일을 했을 때만 잠깐 사랑해주는 반짝 사랑. 성적이 올라가면 사랑해주고 성적이 떨어지면 야단을 치는 성과급 사랑.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또 그런 짓을 하면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라고 위협하는 애정철회.
조건부 사랑은 내 눈앞의 아이가 아니라 미래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이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사랑을 해준다. 기대에 어긋날 때마다 실망을 하고 결국 아이를 미워하게 된다. 아이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일지 모른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인정을 받아도 사회생활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사회에서 주는 사랑이 조건부 사랑이기 때문이다. 조건부 사랑은 항상 쟁취하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아이가 집밖에서 받는 사랑은 대부분 조건부 사랑이다. 성적이 좋아야 칭찬 받고, 행실이 발라야 귀여움을 받는다. "네가 비록 꼴찌지만 네가 자랑스럽다" 고 말하는 교사나, "네가 학원비를 내지 않아도 나는 언제든지 환영한다" 는 학원원장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이가 무엇을 잘하든 잘못하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공부를 잘하든 잘못하든, 그 어떤 경우에도 아빠는 아이를 무조적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내게 이런 일을 가르쳐 준 것은 딸아이였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특히 아이는 절대로 낳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얘를 먹여 살려야 하는 구나" 라는 책임감을 느꼈다. 아이를 낳는 일이 왠지 싫었던 것은 그런 책임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난 지 삼 주정도 지났을 때 큰딸아이가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딸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구나 느낄 수 있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전혀 모른다. 내가 잘난 사람인지 못난 사람인지,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돈은 잘 버는지, 어떤 생각을 지닌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그런데도 내게 사랑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아이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항상 어떤 노릇을 하면서 산다. 김춘수 시인의 꽃 이라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는 남자의 삶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아무도 부르지 않으면 나는 하나의 몸짓이면 된다. 자연스럽고 편하다. 누가 나를 부르면 그에게로 가서 노릇을 해야 한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신입사원이 김 대리님 이라고 부르면 상사 노릇을 해주어야 하고, 과장이 김 대리라고 부르면 부하 노릇을 해야 한다. 술자리에서 누가 내게 형님이라고 부르면 지갑을 빼들어야 한다. 아내가 여보라고 부르면 남편 노릇을 해야 한다.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면 아빠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서 말하는 아빠 노릇은 학원비를 벌어다 주고 큰집에서 살게 해주고 유학 자금을 마련해 주고 결혼할 때 전세 자금이라도 주는 것이다. 그런 일도 어느 정도는 잘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빠의 본질은 아니다.

 

아이가 아빠하고 부르는 것은 단지 아빠가 좋기 때문이다. 아이는 단지 아빠이기 때문에 아빠를 사랑한다. 아빠 노릇을 잘하라고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다. 아빠 노릇은 사회에서 말하는 아빠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족을 만드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기 때문이지,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정을 기능으로 파악하면 집이라는 공간은 지옥이 된다. 아빠는 돈 벌어오는 기능, 엄마는 살림 잘하는 기능, 아이는 성적도 좋고 행실이 바르고 주위 평판도 좋아 부모를 돋보이게 하는 기능.

 

가족이 기능이 되면 결국 성능을 비교하게 된다. 아빠가 기능이 되면 옆집 아빠보다 돈을 잘 벌어오는지 친구보다 큰집에 살게 해 주는지 얼마짜리 결혼식을 해주는 지로 평가받게 된다. 아이도 존재이지 기능이 아니다. 아이에게 내 친구 아이보다 성적이 나쁘다고 야단을 치면 아이에게는 ‘왜 아빠는 내 친구 아빠처럼 돈을 많이 못 버냐’고 비난할 권리가 생긴다.

 

아이는 태어날 때 아빠라는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그런데 점점 커갈수록 아빠의 존재보다 기능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아이의 책임일까, 아빠의 책임일까.

 

제목으로 낚시질한 것 같아 미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성적이 나빠도 아이를 사랑하자"는 제목과" 아이의 성적을 올리는 법"이라는 제목 중 어느 것을 사람들이 더 많이 읽을까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애 키우는 일에 미쳐서
문화평론에서 자녀교육으로 직업을 바꾼
김지룡(http://blog.naver.com/edu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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